인간관계는 평생 풀 수 없는 숙제와 같다. 오죽하면 한때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에서 우리의 모든 고민은 사람과의 관계 때문이라고 단언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사회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하고, 기왕이면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타인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일치하는 현상은 정말 기적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개체가 상대를 이해하고 보듬으며 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않는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능한 잘 지낼 방법을 알고 싶었고, ‘마음을 훔치는 기술’의 ‘캣치’는 그 비법을 알려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때는 아싸 그 자체였던 저자 바네사가 인싸가 될 수 있었던 비법을 축약한 이 책을 그대로 적용하고 따라 한다면 당신은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환영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싸가 되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엄청난 노력과 세밀한 관찰력,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어있어야 한다. 이러한 선행조건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이 아니고서야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우리 모두 명문대에 가기 위해선 교과서 위주로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진부한 진리를 알고 있지만 실천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 몰라서 하지 않는 게 아니다. 마음을 훔치는 기술을 터득하기 위해선 철저한 교과서 예습 복습보다 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해 보였다. 인간관계에 너무 무관심한 것도 문제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지울 수 없었다.
책의 처음은 나의 PQ지수를 점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PQ지수는 정치지능으로, 대인관계 능력을 측정해 볼 수 있는데 20문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난 고작 8개를 맞췄다. 반타작도 못 했다는 것에 상당히 절망하며 역시 사람은 생긴 대로 살아야 하는가, 기가 죽었지만, 다행스럽게도 51~100점 범위는 대부분의 사람이 속하는 점수대로 그럭저럭 평범한 사람은 된다는 것에 안도했다.
이 책은 관계를 맺을 때 내가 유리하게 판을 짤 수 있는 법을 알려준다. 사교 모임에 갔을 때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어떤 말을 하며 상대방에게 흥미를 이끌어야 하는지, 첫인상을 강렬하게 만들 수 있는 법은 무엇인지. 상당히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예시를 들며, 장마다 도전과제를 준다. 평소 무심코 하는 진부한 안부 인사도 어떻게 바꿔서 해야 하는지 알려주어 스파크를 튀길 수 있도록 팁도 준다. (p67)
다 좋다. 정말 좋은 팁들이다. 하지만, 내가 진단하는 나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타인에 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타인이 나에 대해서 아는 것도 별로 내키지 않고 그만큼 타인도 내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니 대화에 있어 상당히 소극적이게 되고, 바네사가 만났던 전직 패션모델 제네비브에 상당히 공감했다 (p88). 바네바가 표현한 제네비브는 차분하고 밝은 기운에 남을 배려하는 모습이었지만,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질문을 받으면 웃으며 재빨리 대답하고 와인 한 모금을 홀짝였다고 한다. 그리고 수십 번도 더 만났던 사람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제네비브가 불평을 했을 때 놀랄 일이 아니며, 사람들이 제네비브를 기억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혹평을 한다. 차분하고 밝은 기운에 남을 배려했는데,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하는가? 훌륭한 청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듣느냐’가 아니라 ‘들은 것에 어떻게 반응하냐’의 문제(p89)라고 말하는데, 난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뒤의 내용과 유기적으로 이어지긴 하겠지만 이 에피소드에서 제네비브가 어떻게 반응해야 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지침이 없다는 건 아쉽다. 왜냐면 이 부분이 내가 인간관계에 있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성인이 되고 나서 사람들은 타인의 약점을 지적하지 않는다. 자신도 약점이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하며 살아가는 게 인생이지 다른 사람을 내 입맛대로 바꾸고자 하는 건 내 욕심이다. 하지만, 아직 어린아이들은 상당히 솔직한데 멘토링을 할 때면 아이들에게 자주 듣는 지적이 내 리액션에 영혼이 없다는 것이다. 칭찬을 해줘도, 축하를 해줘도, “와 영혼 1도 없음”을 노래처럼 부르고 다닌다. 지금은 약간 놀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난 최선을 다해서 웃었고, 감정을 끌어올렸는데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사무적으로 느끼나 보다. 솔직히 그 말을 들을 때면 작은 부분이라도 아이들의 장점을 찾아 말해줄 필요성을 상실하기도 하고 - 왜냐하면 평소에 딱히 타인의 장점을 찾으려 노력하며 살지 않는다― 이게 내 성격인데 어쩌라고, 라는 반발심이 들기도 한다. 그래, 이건 내 성격이다. 책 중반부에 빅파이브 성격검사를 하는 부분이 있는데, 나의 외향성은 상당히 낮다. 사람을 귀찮아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최소한의 인간관계를 추구하며 사람이 많으면 기가 빨린다. 이런 내가 다른 사람과 나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대화하고, 그들의 표정을 살피며 해석한다고? 보편적인 미세표정을 읽어내며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싶을 만큼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여기서부터 나와 책의 괴리감이 생겼다. 내 성격이 좋지 않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상대에게 전전긍긍하며 눈치를 봐야 하는 건 더 끔찍하다.
나는 타고난 리더형도 아니고, 자기 앞가림하는 걸 지상 최대의 과제로 여기는 그런 사람이다. 사람들의 숨겨진 마음을 읽으려는 의지가 없으니 아무리 좋은 기술도 무용지물이 된다. 하지만 바네사가 풀어낸 대화법은 유익했다. 나의 삶을 이끄는 기본가치를 찾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데, 상대의 기본가치를 알면 그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기본가치를 숨긴다.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아낼 수 있는데, 또 나 같이 삐뚤어진 사람은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도 끝까지 모른 척하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본인이 원하는 기본가치와 타인이 바라본 기본가치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길 원하지만, 제3자의 눈으로 봤을 땐 무능해 보일 때.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을 곧 죽어도 안 한다. 이것도 심리학과 가서 많이 유해진 편이니..... 이쯤 되면 나같이 사회성이 떨어지는 인간은 그냥 생긴 대로 살아야겠다는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건 이런 나를 변화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가치를 찾아내고, 그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마음을 훔치는 방법(p193)을 여전히 탐구하고 싶었다.
사람의 마음을 훔친다는 건 이런 것이다. 자랑, 성취, 업적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감명을 줄 수 없다. 진심으로 다가가 정신적 주파수를 맞춰야 한다 (p195).
이 부분은 캣치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핵심 부분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것들을 ‘배려’라고 생각한다. 즉, 다른 사람이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찾아 만족시켜 주는 것. 그 과정에서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사람을 대해야 하는데, 이게 어디 말처럼 쉬운 가. 나는 그게 절대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자는 상당히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행동지침을 적어주었다는 점이다. 바뀌려는 의지만 있다면, 이 책을 통해 당신은 변할 수 있다. 나는 이렇게 행동해야 갰다는 생각만 해도 온 몸이 피곤해진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평범한 이야기를 끝내주는 이야기로 바꾸는 기술, 즉 내가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구조화시켜 적어준 건 정말 획기적이었다. 이 틀에 끼어 맞춘다면 어느 정도 입담은 보장될 것이다. 이러한 3단계 스토리텔링 기법과 나의 약점을 드러내는 허당미. 사람과의 대화가 어렵다면 이 방법을 내가 알고 있는 이슈에 적용해 체화시키면 될 것이다. 그런데 점점 씁쓸해진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훔치고 싶은가? 나의 답은 부정이다. 나도 안다. 말하는 족족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다며 초를 치는 건 마치 공부는 잘하고 싶은데 공부가 하기 싫다며 징징거리는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보인다는 걸. 그렇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과정에 이렇게까지 인위적 개입이 필요하다면 나는 그 사람을 만나지 않는 법을 택할 것 같다. 왜냐하면 나와 정말 잘 맞는 사람은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만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훌쩍 흐르고 즐겁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정말 유익하고 좋은 내용도 많이 담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 이렇게까지 처절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게 마뜩잖을 뿐이다. 상대를 배려하는 법을 배울수록 서로 상처받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관계가 얼마나 진실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다만 약점이 매력으로 바뀌는 대화법은 꼭 사람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p227). 요즘 드는 생각인데 어른이 될수록 틀렸을 때 솔직하게 고백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빠르게 인정하고 사과해야지 수백 번 수천 번 마음을 먹지만 생각처럼 행동으로 옮기는 게 쉽지 않다. 모르는 걸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하는 것도 나만 왠지 상식이 부족한 사람처럼 보여서 꺼려진다. 꼭 최고의 성과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내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 많이 표현하고 무지보다는 허세를 부끄럽게 여기며 잘못을 빠르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그런 사람이 된다면 우리는 사람 때문에 상처받는 일이 확연히 줄어들 것으로 생각한다. TMI지만 빅뱅의 우주론을 부정하고 정상우주론을 주장했지만, 훗날 자신의 주장이 틀렸음을 겸허히 인정하고 빅뱅 우주론의 부족 부분을 채운 프레드 호일이야말로 우리가 배워야 할 인간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그렘린 - 설명할 수 없는 문제나 실수의 이유가 된다고 여겨지는 상상 속의 말꾸러기 요정- (p234)을 이겨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렘린은 상대가 나를 못 알아보거나, 받아주지 않을 때 발생하는데 상대에게 내가 알고 있다는 걸, 받아들인다는 걸 받아주면 공포를 다스릴 수 있게 된다 (p241). 그렘린에 빠진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p244), 그가 공포와 멀어졌을 때 문제점을 대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면(p245) 상대는 화를 누그러뜨리며 공포심을 덜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공포에 빠진 상대를 공감 전략을 통해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렘린이 너무 심한 사람에게 우리의 에너지를 쓸 가치가 없으며 “아니오”라고 말하라는 조언은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그 사람에게 자신의 모습 그대로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p255).
꼭 누군가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가 행복해지기 위해 내가 받았을 때 기분 좋은 것을 상대에게 해준다면 세상의 갈등은 반으로 줄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구체적인 지침이 나올 만큼 슬픈 세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구체적인 코칭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기에, 인간관계가 너무 고민이 되는 사람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이 귀찮다면 큰 효과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