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셋 2025
김혜수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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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환한 불안을 줄게

김혜수 외 5명, 《셋셋 2025》(한겨레출판, 2025)


각자가 원하는 구원에 다가가는

조용하고 확실한 발걸음들

한겨레출판에서는 작년부터 신인 작가를 발굴해 '셋셋'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다. '셋셋'은 작가, 출판사, 독사 총 '셋'의 만남을 '셋(set)'한다는 의미다. 한겨레 아카데미에서 문학적 역량을 지닌 신인들을 발굴해 소개하는 듯하다. 작년에 선정된 작가 중에서는 서울신문 신춘문예나 너머 신인문학상, 림 문학상 대상에 선정된 작가도 있다고 하니, 이번 2025도 충분히 기대를 해도 좋을 듯하다.

불확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사적인 두려움과 공적인 두려움, 둘 다 비교할 수 없는 공포지만, 특히 공적인 두려움은 책임이라는 문제가 있기에 대면하기 어려운 것 같다. 예견할 수 없지만, 미래를 믿고 나아가려는 움직임. 그런 것들을 최근 고민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셋셋》 시리즈는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시리즈다. 앞서 언급한 모든 두려움을 딛고 나아가는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필진뿐만 아니라 회사도 리스크를 안고서라도 나아가려는 노력이 책의 곳곳에 서려 있기에 이런 기획들은 잘 되었으면 한다.

《셋셋 2025》은 주목할 만한 책인 것 같다. 신인 작가를 발굴한다는 점도 마음에 들지만, 뒤표지 띠지 카피에 적힌 '셋셋'의 의미가 잘 뽑혔던 것도 한몫한다. 그런 의미들을 하나씩 짚으며 책을 읽으면 신인 특유의 미숙함이 읽히고, 그 미숙함을 들키지 않으려 치밀하게 고민한 흔적이 기성 문인들과 다른 지점을 만들기도 해서 좋았다. 작년 《셋셋 2024》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이번 2025는 어쩌면 출발선조차 가지 못했던 작가들에게 용기를 주어 출발선에 두었더니 가자마자 달려나가는 사람들을 본 느낌이랄까. 거침없는 목소리들이 이 책에 있다.

작품은 총 여섯 편이 있다. 김혜수의 <여름방학>, 이서희의 <지영>, 김현민의 <동물원을 탈출한 고양이>, 이지연의 <아이리시커피>, 양현모의 <호날두의 눈물>, 전은서의 <경유지>이다. 이번 작품들을 보며 공통적으로 '구원'이라는 것을 화자마다 시도하는 듯했다. 몇몇은 아예 기독교적 워딩을 썼고, 어떤 작품은 그런 종교적 색채를 넣지 않도고 '구원'이라는 것을 쥐기 위해 움직이는 화자를 자유롭게 풀어두는 듯했다. 유려하고 매끄러우며 새롭고 엄청난 문장과 서사는 아닐지라도, 이 여섯 편의 소설에는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를 표현하는 데 거침없다. '거침없음'이 용기라면 이들은 이미 용기를 지닌 작가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내가 주목한 작품으로는 김현민의 <동물원을 탈출한 고양이>, 양현모의 <호날두의 눈물>이다. 김현민의 작품은 읽으면서 정말 그만 읽고 싶다고 생각했다. 주인공 '해연'은 산책길에 있는 길고양이를 동물원을 탈출한 표범으로 오해하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보살핀다. 아주 더운 여름에 소변을 닦는 해연의 돌봄은 처연하면서도 계절감이 뒤섞여 독자들에게까지 그 느낌을 확실하게 전달한다. 동시에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겹치지만 "조금만 더 이 순간을 견뎌보기로" 한 해연의 모습이 어머니를 다그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이 소설은 기승전결의 법칙을 성실하게 지켰음에도 어딘가 자꾸 벗어나려 하는 이상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트라우마를 공유한 모녀간의 애증은 곳곳에서 아주 조용하면서도 끔찍하게 그려진다. 서로의 공포를 자각하고 그것을 견디기로 할 때 해연의 구원은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구원이란 특별한 현상보다 치밀하게 뒤섞인 일상에서 발견하는 잠깐의 찬란함은 아닐까 생각했다.

양현모의 <호날두의 눈물>은 여섯 편 중에서 가장 즐겁게 읽었다. 어쩌면 이 작가가 등단해서 책을 낸다면 제2의 이기호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유머와 열받는 현실을 잘 구현한다. '개저씨'의 표본으로 보이는 주인공은 정말 개저씨지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다. 호날두의 경기를 애인(하지만 헤어지게 된다)과 보러 가고, 휴대폰 매장에서 근무하며 근처 편의점에서 여자 아르바이트생에게 '호의'를 가장해서 껄떡거렸지만 화자의 삶을 보면서 응원하게 된다. 왜냐하면 과거가 조금씩 틀어질 때는 걷잡을 수 없고 결국 현재에 와서 과거를 반추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반추하기만 해도 화자를 '개저씨'라고 부르면 안 되지 않을까 싶지만 그의 행동들이 너무 '개저씨'여서... 이것은 어쩔 수 없겠다. 하지만 읽으면서 '그래, 정신 차려라...!'하면서 응원하게 된다. 건강해라!

짧은 단편들을 보면서 나는 이 책에 작품을 발표한 작가들의 개인적인 구원은 무엇일까 생각한다. 이들이 소설을 배우고 소설을 쓰면서 바라는 구원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들은 절대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을 사람인 듯하다. 그들의 작품에서 보여준 구원이 너무나 끈끈해서, 이들은 쓰고 또 고치면서 어디론가 나아가 결국 한국문학의 최전선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단행본으로 각 작가의 단편 소설집을 만나볼 수도 있으면 좋겠다.


#셋셋2025#김혜수#이서희#김현민#이지연#양현모#전은서#한겨레출판#하니포터#하니포터10기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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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폴라 일지
김금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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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땅에서 기록한 가장 투명한 마음

김금희, 《나의 폴라 일지》(한겨레출판, 2025)


생명의 시작점에서 각자의 일상으로

단순하고 환한 미래의 단서에 관하여

한겨레출판에서 김금희 소설가의 《나의 폴라 일지》가 출간되었다. 2024년 2월, 작가는 《한겨레》의 특별 취재기자 자격으로 남극에 방문했다. 한 달간 남극에서 취재하고 응시했던 투명한 세계를 즉물적으로 펼쳐 보인다. 전작 《식물적 낙관》에서 돋보였던 작가의 세심한 시선이 낯선 남극이란 공간에서 확장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하고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생활은 익숙함으로부터 깊이를 얻는다. 생경함이 더해지면 둘레가 생긴다. 생활을 돌본다는 말은 익숙함을 지키면서도 생경함을 추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너무 익숙하기만 하다면 깊고 깊은 자신의 일상에 빠져 고립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사람에게는 좁고 기다란 구덩이가 아닌 현실이란 총알을 피할 수 있는 방공호 같은 커다란 동굴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가고 싶은 곳이 있을 것이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갔으면 하는 장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에는 여백이 생긴다. 그 여백을 독서나 누군가의 방문기를 통해 채우곤 한다. 나는 이탈리아에 가보고 싶다. 정말 가고 싶다. 내가 이탈리아에 가보고 싶은 만큼, 누군가가 다른 어떤 장소를 염원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 바람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곤 한다. 원했던 나라 혹은 장소에 갔을 때 그 사람은 아주 환하고 구경거리가 많은 동굴이 될 테니까. 운이 좋다면 나도 방문해 볼 수 있겠지. 그런 의미에서 여행 에세이는 조금 특별하다. 그중에서도 다시는 갈 수 없는 장소에 발을 디뎌본 사람의 글은 어딘가 특별하다. 내게는 이번에 읽은 김금희 소설가의 《나의 폴라 일지》가 그랬다.

동물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원칙대로 가만히 서서 지켜보는데 한 발 한 발 내게 다가왔다.

곧 있으면 3월이건만 아직 솜털을 달고 있는 아기 펭귄들이었다.

너희 늦둥이구나, 싶으면서 콧날이 시큰해졌다.

인간처럼 펭귄도 개중 좀 늦된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고마울까.

가장 강한 것만 존속하지 않고 저마다 다른 힘과 속도를 지닌 존재들이

공존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의 질서라는 사실이.

……

언덕을 내려오는데 남극에 오고 싶어 한

정확한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싶어서였다.

작가가 남극 기지에 방문하기 위한 철저한 준비 과정부터 펭귄 마을에 들러 작별을 고하기까지의 여정은 우리에게 여러 질문을 던진다. ‘자신만의 남극’은 무엇인지, 남극이라는 공간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한다. 나라는 사람의 품을 넓히기 위해서는 작가의 남극 같은 공간이 필요하다. 나에게는 이탈리아고 누군가에게는 다른 공간이 있을 것이다. 작가처럼 자신이 원하는 공간에 갔을 때, 생활은 생활을 벗어나 무한한 확장을 거듭하는 미래가 된다. 바라던 장소에 가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하찮다는 것은 아니다.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원하는 미래에 당도할 수 있다는 것을 작가가 보여주었기에, ‘자신만의 남극’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생활은 언제나 확장될 가능성을 품고 있는 씨앗과 같은 ‘존재’가 된다.

공간으로서의 남극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즉물적인 공간이다. 작가는 “인간종으로서 작고 단순하고 겸손해지는 과정을” 겪었다고 할 만큼 압도적인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간은 사실 우리 생활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것 같진 않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고, 크게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적어도 작가가 보여 준 남극이라는 현실은 실존하기에, 우리는 미래로 나아가는 인간으로서 남극이라는 공간과 환경에 대해 고민하고 치열하게 자연을 보존해야 한다. 본연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말이다. 자연은 그런 공간이니까.

여행 에세이를 읽으면 나의 동굴이 잠시 넓어지는 느낌을 겪게 된다. 누군가 나에게 남극은 어떤 곳이냐고 만약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 책에서 보았던 풍경을 내가 느꼈던 대로 말해줄 수 있을 듯하다. 작가가 환하게 보여준 풍경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 한편에는 남극이 있어 이 책을 읽은 뒤로 다른 마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나의폴라일지#김금희#한겨레출판#하니포터#하니포터10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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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 너머 - 범죄 전문 피디의 묻기, 뚫기, 그리고 뒤집어엎기
도준우 지음 / 글항아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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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서 미칠 수 있었던 나날들

도준우, 『스릴 너머』(글항아리, 2024)


온몸으로 부딪히고 솔직하게 파고드는

유쾌하고 진지한 피디의 시간들

글항아리 출판사에서 도준우의 『스릴 너머』가 출간되었다. 코미디언에서 래퍼, 래퍼에서 SBS 예능국 PD, 예능국을 떠나 교양국에 합류해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 팀에 들어가고, 교양국에서 범죄 전문 피디가 되어 활약하기까지의 기록이 담겨 있다.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것들을 이루기 위해 무모하면서도 당차게 애쓰고 파고든 기록 앞에서 독자들은 진지해졌다가도 웃음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나에게는 항상 꿈이 있었다. 가장 처음으로 되고 싶었던 건 동시통역사였다. 아마 성인이 될 때쯤에는 외계인과 대화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싶어서, 동시통역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내가 초등학생이었던 2000년대에는 매번 과학의 날마다 어른이 되었을 때의 미래를 그리는 과제를 받았던 것 같다. 자동차가 날고 로봇이 뛰어다니는...). 중학생 때는 사진작가, 기타리스트, 양식 요리사였고 고등학생 때는 무역을 하겠다고 말했지만 시인이 되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시인이 되고자 한 게 벌써 8년이다. 앞서 언급한 이 꿈들 말고는 나는 꿈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래서 저 꿈들을 이루려고 대부분 1년 정도 넘게 노력을 한 것 같다. 상상하고 바라고 파고드는 시간들이 어쩌면 지금 내가 꾸는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발판이 된 것은 아닐까, 가끔 생각한다.

북클럽문학동네 티저북 서평단에 당첨되어 도준우 피디의 『스릴 너머』를 읽게 되었다. 일부분이긴 하지만 십 대부터 이십 대 그리고 피디가 된 과정과 이후의 일부분을 읽었다. 내가 꿈을 꾸고 그것이 꿈이라고 말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 이 사람에게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꿈이라는 소망만을 두고 보았을 때, 나보다 더 먼저 내가 가려는 길을 걸은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더 몰입하기가 쉬웠다.

『스릴 너머』는 저자가 직업을 갖기 전, 고향인 부산 만덕에서 코미디언이라는 꿈을 가지게 된 이유를 설명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의 빈자리를 채워준 텔레비전은 그에게 코미디언이라는 꿈을 심어주었다. 항상 타인에게 웃음을 전달하려던 그는 텔레비전 방송에 나오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상은 상상에서 끝이 났다. 그렇게 도준우는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해 대학을 다니고 서울대에서 중앙흑인음악동아리인 바운스 팩토리를 친구 둘과 함께 만든다(이 유명한 동아리를 만든 게 저자라니, 정말 신기하다). 힙합에 빠져 상도 받지만, 군대에 다녀온 뒤 그는 예능국 PD가 되기로 결심한다. 랩을 사랑하지만 래퍼가 되기에는 애정이 사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 어렵다는 고시를 한 번에 되고(이 과정도 참 웃기다. 어케..? 이런 반응을 계속했다) PD가 되었지만, 수직 문화에 진저리를 치던 그는 그만두고 교양으로 옮겨 그알에 몸을 담게 된다.

내가 본 내용은 여기까지다. 뒤에는 더 무슨 내용이 있을지 모르지만, 400쪽이나 되는 전체 원고를 한 번에 쭉 훑는다면 내가 느꼈던 재미나 진지함을 배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알 피디의 책이라고 그알처럼 진지하고 범죄로 가득할 거라 생각했던 내 생각을 단숨에 지운 티저북이었다. 가능하면 나중에 전체를 다 읽어보려고 한다. 미쳐서 미칠 수 있었던 사람의 미친 나날들이기 때문에, 그 미친 재미가 이 책에 있기 때문이다.

+ 문동은 티저북이나 이런 것도 후가공 해서 주는 게 신기하다. 역시 제대로 책을 나누고 해야 책을 팔 수 있고 팔리는 책을 내놓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본문 디자인도 해서 보낼 줄은 몰랐다. 폰트도 매력적이었고(하시라는 안쪽에 있어서 취향을 탈 것 같다) 특히 각주와 하단에 들어간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저렇게 해도 되는구나 싶기도 했다. 글항아리 참 책 잘 만든다..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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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2
김멜라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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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려고

김멜라 『환희의 책』(현대문학, 2024)

모든 의문을 들여다 보자

세계는 그보다 더 많은 의문을 가져다 주었다

김멜라의 『환희의 책이 현대문학 출판사의 핀시리즈로 출간되었다. 2021년부터 '젊은작가상'을 연속 수상하고 올해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김멜라는 『내 꿈 꾸세요』 등 여러 작품에서 사회적 약자를 조망했다. 다수의 세계에서 소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새로운 소설의 형식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낯설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지금 한국에서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이라는 것을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이번 작품 또한 기존의 소설 작법에서 벗어난 형식적 실험을 시도한다. 비인간동물(인간을 제외한 모든 종의 동물, 이하 비인간)의 시선으로 레즈비언(일명 두발이 엄지, 주인공인 호랑과 버들) 커플을 관찰하며 자연의 비밀을 밝히려 하는 세 마리 곤충(톡토기, 거미, 모기)의 연구를 보여 준다. 시나리오 형식으로 소설이 진행되며 지루하지 않은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성은 항상 옳은가? 논리는 늘 통하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규격화된 이성, 각자에게만 옳은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듯하다. 그래서 세상은 다양한 것이다. 이 생각은 사랑에도 적용할 수 있다. 사랑은 꼭 '연애 - 결혼 - 2세'의 굴레를 따라야 하는가? 나는 사실 연애도 관심이 없지만, 결혼, 2세는 더더욱 하고 싶지 않다. 요새는 고려하고 있긴 하다만, 이 생각은 고등학생 때부터 이어져 왔으니, 오래된 생각인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 종을 보전한다. 이 과정은 그들의 일이다. 존중하지만, 나의 일로 맞이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나의 생각은 생각일 뿐이지만, 이러한 생각이 생활인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는 여러 소수자가 있고,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바깥으로 표출하길 겁내지 않아 수많은 상처를 입는다. 상처를 입는 과정에서 병이 생기고 미쳐버린다. 욕망은 더 거세지고 거부하고 싶은 건 더 거부하면서 극단으로 치닫는다. 김멜라의 소설은 이들을 조명한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에서 그들의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비인간의 시선, 벌레의 시선으로 주인공인 레즈비언 커플의 욕망과 슬픔에 파고든다. 연구로써, 관찰로써 아주 차갑고도 집요하게.

김멜라의 『환희의 책』은 인간이 아닌 톡토기와 거미 그리고 모기의 시선으로 두 인간 레즈비언 커플인 호랑과 버들의 사랑을 들여다본다. 곤충들은 비생식 동거 집단으로 불리는 호랑과 버들을 관찰해 연구를 하는데, 이들의 시선으로 보는 인간은 매우 특이하게 그려진다는 것이 특징인 듯하다. "벌레를 잡으려고 발달한 엄지가 인간 신체의 가장 큰 특징"이기에 인간을 '두발이엄지'로 분류하는가 하면 인간의 이족보행에 관해서는 계속 넘어져야만 했던 이들을 조롱하기도 한다. 벌레의 눈으로 본 호랑과 버들의 사랑은 아주 활발(?)하지만,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들의 사랑에는 불안과 슬픔 그리고 분노가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로를 안고 만지는 여성들이 머무는 폭력과 허무의 세계에서 그들의 사랑은 항상 전시되고 판단되며 질문화되기 때문이다. 이 서술은 소수자의 사랑이 세계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를 과감하게 보여준다. 그리하여 소수자 당사자들은 자신의 사랑을 거듭 의심하게 되고, 탈출하려 하거나 모든 것을 내면화해 받아들이고야 만다. 이는 호랑과 버들의 서술로도 확인할 수 있다.

호랑: 그렇게 다 보여주면 사람들이 싫어해.

버들: 숨기 싫어. 너도 그만 숨어. 아무도 우릴 해치지 않아.

호랑: 넌 자야 돼. 잠을 못 자서 그래.

버들: 언제는 그만 좀 자라며!

#집. 거실. 동틀 녘. pp. 92~93.

호랑: 나랑 같이 죽을 수 있어?

버들은 대답 없이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호랑을 바라보지도 않는다.

호랑: 못 죽어? 이제 마음이 변한 거야?

버들: 안 변했어. 나는 늘 똑같아.

호랑: 그런데 왜 대답 안 해?

버들: 죽고 싶어서 물은 거 아니잖아.

···

버들: 나는 괜찮아. 난 받아들였어. 근데 넌 어떡해?

호랑: 내가 왜?

버들: 넌 무서워하잖아. 죽는 것도 사는 것도. 그래서 나랑 못 헤어지는 거잖아.

#거실. 이른 아침. pp. 135~136.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정신질환을 앓는 버들의 상태는 의연해지고 오히려 버들을 돌보던 호랑이 위태로워 보이게 전환되는 부분이 있다. 이 장면의 전환은 번개라는 매개로 전환된다. 번개의 경고를 본 버들은 앞으로 닥쳐올 재난을 예감하고 호랑은 이를 보고는 버들에게 도망가자고 한다. 이성애 중심의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비생식 집단인 이들이 짐을 싸고, 환전을 해서라도 벗어나 행복해지자고 버들에게 권유하지만, 버들은 계속 이곳에 남겠다고 선언한다. 이 선언은 세계 자체를 사랑하려는 선언임과 동시에 개체를 넘어선 포용을 보여준다. 이들의 삶을 계속 관찰한 곤충들은 호랑과 버들의 관찰기를 재현하면서 계절의 흐름에 따라 어떤 시절을 주기로 반복되는 흐름임을 밝혀 낸다. 곤충인 이들이 살아가는 삶과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임을 관찰로서 알게 된 것이다. 이후 곤충들은 두발이엄지인 인간을 향한 오해를 풀고 존재와 삶을 받아들이며 궁극적인 환희로 나아가려 한다. 끝나지 않을 관찰을 계속하면서 사랑을 거듭하려 하는 것이다.

초반에 이 소설에 몰입하기까지의 과정은 조금 어렵고 힘들 수 있다. 곤충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이 진행될수록 어느새 곤충이 된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이는 저자의 의도기도 하다. 처음 들여다보는 순간이 어렵다만, 보기 시작한다면 어느새 제대로 볼 수밖에 없으며 본 것이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 달라 자신이 오해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려면 진심으로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다. 보았을 때 수많은 눈과 몸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김멜라는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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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게 될 것
최진영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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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개의 눈으로 본 미래를 말하려면

최진영, 『쓰게 될 것』(안온북스, 2024)


 

오답도 정답도 아닌 믿음으로

미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안온북스 출판사에서 최진영 소설가의 『쓰게 될 것』이 출간되었다. 2020년대에 발표한 여덟 편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금 가장 화두가 되는 사회문제를 비롯한, 다양하게 사유할 수 있는 지점들을 여러 인물의 시선으로 내놓으며 폭넓게 다룬다. 작가가 쓸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씀으로써, 독자는 그것을 읽고 자신이 있을 미래의 장면에 도달하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최진영의 신작은 지금까지 출간한 여러 작품처럼 자신만의 소설적 세계를 전면에 내세우며 한 걸음 더 확장하는 단단한 에너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궁금해하는(물론 나도 나의 주변은 매우 좋아하고 아끼고.. 그렇다) 인간적인 현상을 버거워한다. 가끔은 지구온난화나 전쟁, 질병 등의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커다란 이유로 얼른 지구가 리셋되는 편이 서로에게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뉴스를 보면 야당과 여당은 항상 싸우고, SNS에는 가면을 쓴 채 자신이 표출할 수 있는 가장 혐오스러운 모습을 당당히 내놓는 걸 보면서 갈 때까지 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고 수많은 바깥을 경험하면서 조금 아쉬운 것들이 생겨 주머니에 쌓이기 시작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지만 귀한 기억들을 변기 물 내리듯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이 사라지는 걸 보고만 있게 된다면, 그건 정말 슬프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질문은 단 하나, "어떻게 살 것인가"

최진영의 신작 『쓰게 될 것』은 믿지 못하는 것들을 눈앞에 두고 그것 주변에 있는 것들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체감하게 한다. 표제작 「쓰게 될 것」의 배경인 전쟁을 기점으로 기후 위기, AI 여성 서사, 빈부 격차 등 지금을 사는 우리가 죽기 직전까지 고민해야 할 지점들을 정면으로 맞서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는 작가의 태도는 작가만의 확신을 가질 때까지 위험으로부터 도망가지 않는다. 소설에서 중요한 건 이야기도, 플롯도 아닌 작가의 일관된 태도라고 생각하는데, 최진영의 소설에는 항상 모든 이야기와 플롯을 뛰어넘는 태도가 앞장선다. 무엇이 작가를 현재의 가장 끝이자 미래의 초입에 우뚝 서게 했는지는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기꺼이 망하도록 두지 않겠다는 마음, 그 마음은 주변에 있는 귀한 것들을 살리고 싶은 마음에서부터 발현된 마음일 것이다.

모두 지난 일이다. 그리고 반복될 일이다.

나는 이제 그것을 이해한다.

'이해한다'는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태어나면서 세상을 받아들이듯.

그러므로 싸우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쓰게 될 것」 39P.

표제작 「쓰게 될 것」은 전쟁의 현장에서 아이가 바라보는 상황과 그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된 이후에 전쟁의 기억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 상황을 담았다. 가볍지 않은 주제임에도 아이의 발랄함이 어떤 미래가 분명 존재할 거라는 암시로 작용한다고 느껴졌다. 소설의 가장 마지막에 나온 저 인용문은 이 소설집에 수록된 모든 소설의 중심이기도 한 문장들이라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 표제작을 맨 앞에 두었기 때문에 저 문장들이 빛난다고 생각했다. 이후 일곱 편의 소설로 넘어가기 전에 작가의 포부를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여전히 최진영이 왜 읽히는지 느꼈고 오랜만에 압도적인 소설을 읽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정말, 압도적이다.

중간에 있는 모든 소설이 다 좋았는데(진짜 좋았다) 표제작 다음으로 좋았던 소설은 「홈 스위트 홈」이었다. 소설집의 맨 마지막에 수록된 소설인데, 암에 걸린 화자가 "미래의 어느 여름날"에 부추전을 해 먹겠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나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확신은 미래에 자신이 살아갈 집을 지금의 내가 찾는 과정에 의미를 더한다. 작가는 지금을 살아가는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집중한다. 그것은 지금의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의미를 찾고 그 의미가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도록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일 것이다.

쓰게 될 거라는 말은 쓸 수밖에 없다는 말이고 그걸 쓰기 위해서는 써야만 하는 것을 계속 손에 쥐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과 같다. 그렇다면 앞서 던진 질문은 지금도, 미래에도 유효하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최진영의 소설에는 최진영이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답이 있다. 그 답은 정답도 오답도 아니지만,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 어떤 미래의 초입에 서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하는 모습에 가깝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읽은 최고의 국내 소설이었다. 어쩌면 독자들은 오답도 정답도 아닌 흔들리지 않는 개인의 믿음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최진영은 먼저 길을 만드는 사람이 맞다. 그 길을 만드는 과정은 이 소설집에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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