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 - 세상을 경악시킨 집단 광기의 역사
맥스 커틀러.케빈 콘리 지음, 박중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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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사람들로 사회 보기

맥스 커틀러, 케빈 콘리, 박중서 옮김, 『컬트』(을유문화사, 2024)


나사가 빠진 모습으로

온 세상에 오물을 던지는 자들

을유문화사 출판사에서 『컬트』가 출간되었다. 미국의 인기 팟캐스트를 토대로 한 이 책은 20세기 이후 세상을 뒤흔든 집단 광기의 역사를 펼쳐 보인다. 총 다운로드 수 5500만 건을 기록한 9명의 범죄 사이코패스 집단(인물)을 다룬다. 찰스 맨슨부터 마셜 애플화이트까지 이상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악명 높은 컬트 집단에 관한 상세한 설명과 분석으로 흥미를 돋울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퍼진 사회 문제를 관찰하는 것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세상엔 미친 사람, 미친 척하는 사람, 미치기 직전인 사람이 있다. 미치지 않은 사람은 없는 듯하다. 좋은 쪽으로 미친 사람들은 어딘가 아우라가 밝다. 환하고, 자신의 일에 확신을 가진다. 다만, 나쁘게 미친 사람들도 자신의 일에 확신을 가지기에, 살면서 미친 사람들과는 조금 거리를 두는 편이다. 이왕이면 천천히 파악하는 것이 좋다. 미친 사람 옆에 있으면 미치기 때문이다. 근묵자흑은 틀린 말이 아니다. 좋은 사람 곁에서 좋은 사람이 되고, 나쁜 사람 곁에서는 나쁜 사람이 된다. 그 집단에 들어간 자들은 좋거나 나쁘다는 가치판단을 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컬트』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나조차도 이 책에 이 정도의 이야기가 있는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더럽고, 역겹고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죽이는 것은 기본이고, 사람을 탕에 넣고 끓이거나 납치하고 노예로 삼는 우두머리들. 악마가 있다면 이들이 악마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더럽고 펼치기만 해도 찝찝한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 그것은 그들을 이해하고자 읽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읽어야 한다. 이들은 다 달라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사이코패스성, 즉 후회의 결여였다.

둘째는 악성 자기도취증, 즉 가학적 과대망상이었다.

셋째는 마키아벨리즘, 즉 자기 이익을 위한 타인 착취였다.

「제 2장 수치: 아돌포 데 헤수스 콘스탄소와 마약악마숭배파」, 살해 견습 생활 78P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이코패스 집단의 주동자들에게 보이는 대표적인 모습들이 있다. 사이코패스성, 악성 자기도취증, 마키아벨리즘이다. 누구도 범죄를 저지르고 후회하지 않고, 어떤 현상을 확대 해석하며 이익을 위해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다. 4장에 등장하는 짐 존스를 예로 들자면, 그는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나, 가학적이었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 성적으로 성별을 막론하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심리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모아 착취하고 약속의 땅이라 말했던 존스타운에서 수백 개의 시신을 유기했다. 즉, 악성 범죄자의 대부분은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컬트』는 악성 사이코패스 집단을 중심으로 인간성의 결여가 보여주는 가장 최악의 사태를 모아 아주 강한 목소리로 인간성이 중요하다는 말을 전달하는 듯하다. 사회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타인을 고려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이것이 존재하지 않으면 점점 사회에는 이런 사람들이 증가할 거라는 무언의 예언을 던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국 사회에도 점점 공감과 관심이 부족해지는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공감'과 '관심'은 무작정 안아주는 것과 다르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이야기를 다 들은 뒤에 자신의 말을 하는 어떠한 상호작용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팩트'가 싫다. 정확히는 '자신만의 팩트'가 싫다. A를 말하면 꼭 다음에 B를 말하도록 강요하는 자세는 『컬트』에서 소개하는 사이코패스 집단의 기저와 다를 게 없다. 우리는 A를 듣고 A'를 말하거나 A의 각도, 형태, 어원 등 모든 걸 말하고 B로 넘어갈 여유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여유, 즉 틈을 견딜 수 없을 때 사회는 점점 사이코패스를 양성하는 양성소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컬트』처럼 끔찍한 이야기 모음집을 읽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덜 병들 수 있는가. 이 책은 그러한 지점을 꼬집는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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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 - 데뷔 30주년 기념 초기단편집
듀나 지음, 이지선 북디자이너 / 읻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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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되었지만 미래의 이야기들

듀나,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읻다, 2024)


구시대의 미래에 닿지도 못한

지금에서도 꿈꿀 수 있는 미래의 이야기

읻다 출판사에서 얼굴 없는 작가로 알려져 있는 듀나의 30주년 데뷔 기념 초기 단편집이 출간되었다. 컴퓨터가 처음 대중에게 전파되었던 시절, 하이텔 과학소설 동호회에 짧은 단편을 올리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듀나의 작품을 드디어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미발표 데뷔작이자, 이 책의 표제작인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가 수록되었으며, 어떤 작품들은 단행본 최초로 공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양장으로 만들어졌으며 디자인에는 이지선 북디자이너가 참여했다. 표지에 이름을 뺀 파격적인 디자인과, 듀나의 아이덴티티인 토끼, 90년대부터 발표된 소설이라는 점을 강조한 뒤통수 큰 컴퓨터를 표지 디자인으로 내놓았다. 세네카도 각진 폰트를 사용했으며 책배나 위아래로 기념 단편집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디자인이 되어 있어 읽는 맛을 더한다. 그리고 내지는 소설 한 편 당 듀나의 설명이 더해져 독자의 독서에 재미를 더한다. 여러모로 과학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작품집이 될 것이다.

최근 마감한 책은 과학사 책이다. 과학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내가 과학에 입문하게 되면서 은근히 과학도 재밌는 분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을 여행하려면 알아야 하는 양자물리학이나 우주 탐험이 독일의 우주 여행 회원들의 욕구에서부터 시작되었다거나 하는 후일담을 들으면 과학도 문학처럼 재미가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왜 자꾸 과거나 미래로 가고 싶다거나 우주를 탐사하고 싶어 할까? 이유는 잘 모르겠다만, 무언가를 알려는 마음에서 비롯될 것이다. 지금도 이러한 것들에 과학적인 설명을 하려면 힘이 들겠지만, 컴퓨터가 상용화되기 시작했던 90년대에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뒷받침할 자료도 부족하니 사람들은 더 애썼을 것이다. 한국의 SF 소설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시작된 듯하다. 타임 머신이나 외계인 등 지금은 한물 갔다고 할 수 있는 소재들이 당시에는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부족한 근거를 기쁘게 꿈꾸는 자유로 채운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주자가 바로 듀나다.

나는 듀나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다. 앞에서도 밝혔듯 과학을 좋아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처음으로 읽은 과학 소설이 김초엽의 단편이었던 것 같다. 나의 SF는 2020년에 시작된 것이다. 나와 듀나 사이에는 30년의 간극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듀나라는 이름을 들어봤어도 무엇을 먼저 봐야 할지 모르는 내게 읻다에서 출간된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는 정말로 나비가 타임머신을 타고 내게 날아와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표제작에서는 과거로 날아가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는 타임머신에 붙어 있던 나비 한 마리가 과거에 남겨진 것을 꿈에도 몰랐다.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 중에서

(이번 서평에도 최대한 내용은 배제하겠다)듀나의 입문으로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는 기묘하다. 어딘가 과학사 요약 같기도 하고, 픽션이라는 점에서 소설이기도 하다. 듀나는 서구 철학사와 과학사를 섞어 썼다고 밝혔던 만큼 조금 지루하게 보이기도 한다. 복잡하지 않은 서사 구조에 이후의 단편 몇 개는 비슷하게 단순하다. 하지만 듀나의 초기 소설에서 재미를 찾으려면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한다. 하이텔 시절 당시의 사람들이 꿈꾸거나 생각하던 미래가 이러한 모습이고 지금은 아주 많이 다르며 생각보다 크게 발전하지 않은 듯한 점이 나에게는 조금 재미로 다가왔다. 이러한 재미는 듀나의 해명 같은 설명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과학 소설이라고 해도 모두 같은 과학 소설이 아니듯이 「장례식」이나 「렉스」 같은 소설을 읽으면 또 느낌이 다르다. 몇 개는 취향이 아니고 몇 개는 취향이다. 취향인 몇 개에서 어쩌면 당신만의 듀나가 재탄생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1994년부터 2009년까지 썼던 단편 21개를 모은 만큼 책은 두껍고 독특하다. 시간에 따라 듀나가 자꾸만 달라진다. 더 구체적이고 독특한 세계로 독자를 초대한다. 좋은 편집과 디자인이 더해졌기에 처음 듀나에 입문하거나 나처럼 SF 문학에 초행길을 걷는 독자라면 충분히 읽을 만하다. 어차피 듀나 독자라면 다 읽었을 테니까, 듀나를 모른다면 이 책으로 듀나를 만나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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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워커홀릭들 - 일, 사람, 돈
홍정미 외 지음 / 읻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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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일을 사랑해서

홍정미 외 11명, 『서울의 워커홀릭들』(읻다, 2024)

원하는 일을 다양한 사람과 함께 많이 벌고 싶은

'서울의 워커홀릭들'의 다채로운 이야기

읻다 출판사에서 열두 명의 워커홀릭들의 문답을 담은 『서울의 워커홀릭들』이 출간되었다. 현재 서울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거나, 프리랜서로 일을 하기도 하며, 인플루언서라는 새로운 직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기존의 에세이, 자기계발서에서 찾아보기 힘든 내지 디자인을 사용하여 한 페이지에 일, 사람, 돈이라는 세 개의 카테고리를 모두 담아 냈다. 어쩌면 형식상 기존의 방식을 따르지 않았기에 보기 불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이 도전적인 디자인은 '서울의 워커홀릭들'이 살아가는 방식처럼 전혀 새로운 삶으로 뻗어 나간다는 취지 하에 이뤄진 것은 아닐까. 이렇게 새로운 디자인처럼 이 책은 밤낮없이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워커홀릭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과감하게 드러낸다. 어쩌면 이 책을 읽은 독자 중 몇 명은 일, 사람, 돈의 밸런스를 찾아 자신만의 길을 나아가게 될 수도 있다. 읻다의 『서울의 워커홀릭들』은 그것을 의도하는 듯하다.

올해 취업을 한 나는 정말로 갓 태어난 병아리처럼 지냈다. 업무에 도움이 되는 기초적인 교육을 받았지만, 현실의 업계에 진입한다는 것은 조금 다른 의미가 있는 듯하다. 한 달 하고도 11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고 궁금한 것이 많다. 가끔은 '이건 왜 이렇게 할까', '조금 더 다른 곳처럼 재밌고 독특하게 할 순 없을까'와 같은 질문이 생기면 윗선에 여쭤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해주시고 내가 더 배워야 할 지점들을 스스로 고려하게 된다. 아직 더 많이 남았다는 것이 좋고 두렵다. 이 일을, 이 업계를 내가 더 사랑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가 벌써 이런 고민을 하면 안 되는 것 아닌지 스스로 갈팡질팡한다. 하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더 이 업계에서 더 큰일을 벌이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큰돈을 벌려면 조금이라도 어릴 때 이런 고민들을 해야 개인적인 발전을 더 해서 미래의 내가 기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쉽지 않다.

『서울의 워커홀릭들』은 내가 가진 고민들을 포함해서 더 미래의 고민을 가진 열두 명의 사람들이 스스로 돌아 보며 앞으로를 고민하는 치열한 흔적이 담긴 책이다. 무조건 돈이나 명예를 보고 일에 뛰어든 것이 아닌, 나처럼 무언가를 좋아해서, 좋아하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는 일에 빠져든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딘가 이상하고 과감하며 침착하다. 자신만의 브랜드를 론칭하여 운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프리랜서나 인플루언서로 자신의 입지를 단단하게 만든 이들은 누구보다 자신의 일을 많이 사랑하는 듯하다.『서울의 워커홀릭들』을 통해서 우리가 그들의 삶을 잠시 엿보는 것을 통해서 우리의 삶과 직업을 더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앞서 언급했듯『서울의 워커홀릭들』은 내지 디자인이 독특하다. 한 페이지 안에 일, 사람, 돈에 관한 모든 에세이가 담겨 있는데 한 페이지를 가로로 삼 등분하여 세 개의 카테고리를 모두 담아낸다. 나는 최근 유행하는 병렬 독서에 취약한 사람이라 독서 또한 직렬로 하는데, 이번 책 또한 나는 한 사람의 일에 관한 에세이를 다 읽고 사람을 보았다가 돈으로 넘어갔다. 게다가 나는 이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해서 먼저 읽은 것도 있으니, 이 서평을 읽는 사람들은 개인의 취향에 맞게 알아서 읽으면 되겠다.

열두 명의 사람을 모두 담을 수 없어서 나는 광화문에서 '녁'이라는 레스토랑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박정묵씨의 에세이를 주목하려 한다. 박정묵 씨는 방금 언급했던 '녘'을 을지로에서부터 시작했다. 초등학생들의 빛나는 꿈으로 가득한 기념 책자에 장래희망을 '평범한 회사원'으로 적었던 그가 어떻게 레스토랑 브랜드를 운영하게 되었을까. '일' 카테고리의 제목 '삼천포에 빠지셨습니까?'에서 유추할 수 있듯, 그는 자신의 삶을 삼천포에 빠진 듯 다양한 길을 만들어 나갔다. "컴퓨터공학에서 광고홍보학과로, 회사원에서 브랜드의 대표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다 보니 스스로 메타 인지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된 듯해 보였다. 아무도 가지 않는 을지로에서 사업을 시작한 것도 어떻게 보면 삼천포에 빠진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취향을 통해 미래를 그려보면서 을지로에 있을 자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냈기에 그곳에서 성공해서 지금의 '녁'이 될 수 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게다가 그가 사람을 상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한배에 탔다'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그는 '우리는 한배를 타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사람' 카테고리의 제목이기도 한 그의 생각은 사람과의 관계를 버스에 비유한다. 한 버스에 탔지만 언제든지 멈출 수 있고, 회차를 돌고 돌아도 내릴 위치가 아니면 계속해서 타고 있을 수 있다는, 건강한 인간론을 가졌기에 브랜드를 키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가끔 좋은 사람 곁에 좋은 사람이 모인다는 말을 하는데, 그의 태도에 이 문구는 안성맞춤인 듯하다. 돈을 대하는 태도도 김화영 작가의 말을 빌려 물이 아닌 갈증을 원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의 가치관에 관해 말한다. 짧지만 그의 이야기는 어딘가 많은 매력이 숨어 있었다.

점점 N잡 시대가 되어가고 누구는 직업이 아닌 업의 시대가 왔다고들 한다. 그 말인즉슨 자신을 더욱 사랑하고 들여다보는 사람이 많은 돈을 벌게 되어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여 편승하는 만큼의 돈만 손에 쥐고, 그만큼의 기쁨만을 만지며 살아갈 테니까. 그래서『서울의 워커홀릭들』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빛이나 보였고 그만큼 힘들어 보였다. 다만 그들은 즐기는 듯하다. 자신의 괴로움을 오히려 원하는 것처럼 일에 달려드는 모습이 사회초년생인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조만간 나도 내 직무에서 벗어난 다른 큰일을 맡을 듯한데, 이들처럼 새로운 것에 마구 도전하는 기쁨에 달려들어도 좋겠다. 가치 있게, 새롭게, 다르게 살아가는 것은 나의 움직임에 달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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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큐레이터 - 건축과 디자인을 전시하기
플러 왓슨 지음, 김상규 옮김, 정다영 감수 / 안그라픽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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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방식의 연결

플러 왓슨, 김상규 옮김, 정다영 건축 감수 『뉴 큐레이터』(안그라픽스, 2023)




틀을 깨는 큐레이션으로

관객과 작가를 잇는 큐레이터


 플러 왓슨의 『뉴 큐레이터』가 안그라픽스에서 출간되었다. 저자는 RMIT 대학교 건축 및 디자인 학부의 부교수이며 협력적 큐레토리얼을 실천하는 스튜디오 섬싱 투게더의 창립 이사다. 건축과 디자인 전시에서 완결된 작품을 그대로 선보이거나 건축가의 건축물을 모형 또는 사진으로 재현하여 전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건축과 디자인을 전시하는 데 필요한 여섯 가지 움직임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큐레이터가 실천하는 다양한 행위성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많은 사람이 전시를 보러 간다. 서울만 놓고 봐도 여러 구에서 각기 다른 전시가 열리고 어떤 전시는 얼리 버드를 해서라도 보기도 한다. 이와 같은 흐름은 사람들이 예술 작품을 직접 체험하고자 하는 욕구가 늘어났다는 것이며, 동시에 작가와의 쌍방향 소통을 원한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전시는 작품을 보기 전에 엄청나게 긴 설명이 벽에 적혀져 작품의 의도와 배경을 모두 설명한다. 일반인들에게 더 폭넓고 깊은 이해를 주기 위해 설명이 불가피하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지만, 이러한 설명과 작가의 생각이 적힌 도움은 오히려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끔 한다는 단점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평범한 관객과 저자 사이에 유의미한 소통이 발생하려면 무엇이 필요한 걸까. 저자는 큐레이터의 역할에 관해 언급한다. 지금까지 있었던 많은 전시는 작품을 재현하여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전통적인 전시 방식의 틀을 벗어나 저자는 건축과 디자인을 전시하는 데 필요한 여섯 가지 움직임을 제시한다.

여섯 가지 움직임이란 공간 제작자, 번역가, 개입자, 사변자, 행위자, 드라마쿠르그로서의 큐레이터가 실천하는 행위성을 가리킨다. 건축과 디자인 아이디어를 실험적으로 접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수행적 큐레이션’을 논의하는데, 여기서 큐레이터의 역할을 설명하는 방식이 새롭다. 보통 큐레이터는 예술 전문가로 담당하는 예술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자는 ‘전문가’가 아닌 관객과 전시를 잇는 ‘매개자’로서의 큐레이터가 되어야 함을 언급한다. 24개의 전시 사례와 9편의 큐레토리얼 대화를 통해 ‘뉴 큐레이터’를 탐구하고 현장에서 일하는 큐레이터가 고민하는 지점을 파고든다.


 시대가 발전할수록 큐레이터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말하거나, 다양한 이들을 한데 모아 예술이라 칭하는 형태로 만들어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 자리를 마련하는 이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뉴 큐레이터』는 미래의 큐레이터를 말하는 듯했다. 앞으로 자신의 작품 혹은 다른 이의 작품을 말할 때 더 효과적인 것을 찾고 서로를 이어 각자가 고민하는 지점을 토로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게끔 하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책에서 나오는 내용은 해외를 중심으로 건축과 디자인을 말하지만(호주와 베니스비엔날레의 사례) 이와 같은 담론은 충분히 현재의 한국에서도 다룰 수 있고 고민해야 할 것들이 많다고 느껴졌다. 『뉴 큐레이터』는 일종의 커다란 가능성을 말한다. 정답이 없는 전시를 계속해서 말하고 더 깊고 더 자세하고 더 아름답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한다. 그래서 『뉴 큐레이터』를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정말 좋은 책이며 동시에 노력이 많이 들어 있는 책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앞으로 건축과 디자인 그리고 전반적인 예술을 바라보는 태도와 우리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하고 풍부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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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 암실문고
마리아 투마킨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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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인간이 선명해질 때까지 바라보기

마리아 투마킨, 서제인 옮김,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을유문화사, 2023)


불가능한 이해를 시도하기 위해

망가진 기억의 저편으로 걸어가는 여정

마리아 투마킨의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이 을유문화사의 암실문고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소련 하르키우(현재 우크라이나에 속함)에서 태어난 작가는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하여 다양한 사회 문제와 인간 내면의 수수께끼를 탐구하였다. 2018년에 해외에서 먼저 출간되었던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이 전미 비평가 협회상 비평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는 등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가끔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타인의 고통에 관해 들었을 때 ‘나는 너를 이해한다’라는 식의 말을 한다고 해도, 타인의 고통의 실제적인 고통과 아픔 그리고 이후의 여파까지 체감하여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며 아예 시도조차 될 수 없는 미지의 감각일지도 모른다. 최근 팬데믹을 지나며 많은 예술 작품 혹은 사회의 태도에서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를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고통을 많이 겪는 약자를 공감하고 이해하여 더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에서 말이다. 약자를 이해해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식의 생각에서 비롯된 행위일 것이다. 하지만 이해를 시도하고자 하는 사람 중에서 정말 그들의 고통을 몸소 체험하거나 고통 이후의 세계에 발을 디뎌 피부로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 이해하고자 하는 행위나 연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약자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껴 손을 건네는 전형적인 부르주아의 호의는 아닐까? 이해는 시도와 동시에 결례와 오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그 이해조차 ‘이해해 주려는 사람’이 섣부르게 베푸는 호혜”(책소개)일 수 있다고 한다. 정확히는 타인을 향한 태도로서는 합당하지만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는 아름다운 결말에 도달할 수는 없다고, 이해는 환상에 가깝다고 언급한다. 그러기에 계속해서 시도하고 실패의 벽에 머리를 박으면서도 기어코 시도하는 실패-움직임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한다.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저자는 고통을 겪는 사람들과 대화하여 듣게 된 고통을 어떤 고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고통을 들은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보여주는 고통 그 자체는 어딘가 뒤틀려있고 평생 평평해질 수 없는 망가진 땅처럼 보인다. 뒤섞이고 망가져 어떤 이야기는 먼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도착하는 혹은 도착할 수 없는 미래의 이야기처럼 먼 곳에서 고통이 기다리는 듯하다. 고통을 겪는 사람은 끝이 고통인 그 길을 계속 걷게 된다. 저자는 그 걸음에 함께하며 그저 듣고 이해되기 전의 고통과 사건을 통해 한계 없는 슬픔을 목도한다.

이것은 태어난 환경이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치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운명이 어떻게 세대를 건네 이어지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다시 말해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 부모로서의 고통, 슬픔 학대(당한 것이든 가한 것이든), 무관심, 손에 쥔 채 건네 주지 않은 애정, 마치 탱크처럼 자식의 삶을 밟고 올라가 터뜨려 버리기.

「역사는 반복된다」 중에서

저자는 자신이 이주한 오스트레일리아를 중심으로 다양한 국가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사회 문제를 다루면서 그 문제에 피해를 받은 사람들과 대화한다. 자살 생존자, 마약 중독자, 홈리스, 전쟁 이민자, 나치 집단 수용소 생존자, 가정 폭력 피해자 등 많은 당사자의 증언은 사회에서 밝혀진 것들과는 조금 다르다. 이유 없이 자살하거나, 홈리스를 도왔지만 그를 사망케 한 사건이 일어나고 아이들은 나치 정체성을 배운 적도 없는데 배워버린다. 사회에 나타나는 다양한 통념들이 뒤섞이고 전복된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을 분류하고 통합하는 사회 제도가 실패하는 지점들을 보여주며 암담함을 직시한다. 고통을 겪는 이들은 ”커다란 요트나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 왜냐고? 난 어디에 가든 진심 어린 환영을 받지는 못할 것.“(「내게 일곱 살이 되기 전의 아이를-」) 같아서 점점 침잠하고 상징체가 되어가는 약자가 되어간다.

한 인간의 내면을 추적하기란 힘든 일이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이의 다른 면을 목격했을 때 우리는 충분히 당황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한 인간은 다양한 파편으로 이루어진 깨진 거울 같아서 들여다볼 때마다 다른 표정을 볼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글의 구조 자체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타인의 마음의 복잡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복잡함은 누군가를 이해하기 전에 이미 구성되어버린 것이어서 이해를 거부하면서 발생한다. 그래도 저자는 왜곡하지 않고 들여다본다.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는 꽝꽝 언 호수 위에 선 사람처럼 말이다. 그것이 언제 깨질 줄 모르고 오도 가도 못하는 한 사람이 여기 있다.

언젠가 사람을 이해하고 싶다는 것을 포기했을 때, 나는 한 사람의 깨진 면 전체를 멀리서 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는 균열을 세세하게 들여다볼 수 없음을 인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깨져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부터 저자가 말하는 이해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주하기 어려운 것을 마주하는 것, 이해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을 때 그 앞에는 표지의 무거운 돌처럼 커다란 벽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을 것이다. 흐린 세네카처럼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을 멀리서 보일 때까지 바라보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이해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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