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대의 미래에 닿지도 못한
지금에서도 꿈꿀 수 있는 미래의 이야기
읻다 출판사에서 얼굴 없는 작가로 알려져 있는 듀나의 30주년 데뷔 기념 초기 단편집이 출간되었다. 컴퓨터가 처음 대중에게 전파되었던 시절, 하이텔 과학소설 동호회에 짧은 단편을 올리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듀나의 작품을 드디어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미발표 데뷔작이자, 이 책의 표제작인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가 수록되었으며, 어떤 작품들은 단행본 최초로 공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양장으로 만들어졌으며 디자인에는 이지선 북디자이너가 참여했다. 표지에 이름을 뺀 파격적인 디자인과, 듀나의 아이덴티티인 토끼, 90년대부터 발표된 소설이라는 점을 강조한 뒤통수 큰 컴퓨터를 표지 디자인으로 내놓았다. 세네카도 각진 폰트를 사용했으며 책배나 위아래로 기념 단편집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디자인이 되어 있어 읽는 맛을 더한다. 그리고 내지는 소설 한 편 당 듀나의 설명이 더해져 독자의 독서에 재미를 더한다. 여러모로 과학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작품집이 될 것이다.
최근 마감한 책은 과학사 책이다. 과학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내가 과학에 입문하게 되면서 은근히 과학도 재밌는 분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을 여행하려면 알아야 하는 양자물리학이나 우주 탐험이 독일의 우주 여행 회원들의 욕구에서부터 시작되었다거나 하는 후일담을 들으면 과학도 문학처럼 재미가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왜 자꾸 과거나 미래로 가고 싶다거나 우주를 탐사하고 싶어 할까? 이유는 잘 모르겠다만, 무언가를 알려는 마음에서 비롯될 것이다. 지금도 이러한 것들에 과학적인 설명을 하려면 힘이 들겠지만, 컴퓨터가 상용화되기 시작했던 90년대에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뒷받침할 자료도 부족하니 사람들은 더 애썼을 것이다. 한국의 SF 소설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시작된 듯하다. 타임 머신이나 외계인 등 지금은 한물 갔다고 할 수 있는 소재들이 당시에는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부족한 근거를 기쁘게 꿈꾸는 자유로 채운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주자가 바로 듀나다.
나는 듀나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다. 앞에서도 밝혔듯 과학을 좋아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처음으로 읽은 과학 소설이 김초엽의 단편이었던 것 같다. 나의 SF는 2020년에 시작된 것이다. 나와 듀나 사이에는 30년의 간극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듀나라는 이름을 들어봤어도 무엇을 먼저 봐야 할지 모르는 내게 읻다에서 출간된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는 정말로 나비가 타임머신을 타고 내게 날아와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표제작에서는 과거로 날아가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