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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플레이리스트 ㅣ 주니어김영사 청소년문학 18
윤혜은 지음 / 주니어김영사 / 2024년 6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0723/pimg_7203762004370241.jpg)
책 표지처럼 푸르게 우거진 나무 그늘 아래서 마주하는 반짝이는 햇살만큼 마음 한켠이 몽글몽글해지는 소설 한편을 만났다.
이 소설은 선선한 기운이 숨 쉬는 초봄을 지나 청량한 바람 한 줄기가 땀을 식히는 여름이 오기까지 여정이 담겨있는 고등학교 2학년을 맞이하는 다섯 명의 친구들의 꿈, 진로, 성장, 우정 등을 그린 청소년 소설이다.
<우리들의 플레이리스트>는 한 장의 앨범에 수록된 노래를 한 곡씩 따라가는 듯한 구성이 돋보이며, 설렘, 불안, 두려움 등 꿈을 둘러싼 10대들의 온갖 들끓는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낸 저자의 감각적인 문장들이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매력 만점의 책이었다.
주인공 나래를 중심으로 단짝 이나, 그리고 유림, 소영, 정현 다섯 친구들의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나에겐 이미 지나온 과거를 추억하게 했고, 또 이제 이 시기를 거쳐야 할 나의 아이를 떠올리며 걱정, 안쓰러움, 미안함이 공존하는 감정이 느껴져 마음 저 깊은 곳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한없이 벅차오르면서도 한없이 외로워지는,
복잡다단한 꿈의 진실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간 나래는 여전히 빈칸으로 남겨진 진로 계획서를 보고 어서 꿈을 찾아야 한다는 서늘함을 느낀다. 그러다 문득 단짝인 이나를 따라 노래를 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어, 보컬 학원에 따라 들어가고 뜻밖의 재능과 열정을 발견한다.
나래의 단짝인 이나는 나래보다 훨씬 전부터 가수가 될 준비를 해 왔지만 언젠가부터 노래할 때마다 스스로를 갉아먹는 기분이 든다. 결국 음악이 더 싫어지기 전에 꿈을 찬찬히 내려놓기로 결심한다. 꿈에서 뒤돌아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이나의 이야기는 꿈을 꾸는 것만큼 꿈을 포기하는 선택에도 크나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 준다.
나래는 아주 멀리서, 그러나 분명한 빛을 내며 다가오고 있을 제 미래를 상상해 보았다. 어두웠던 마음 어딘가에서 소금 같은 별이 흩뿌려지는 것 같았다. p.50
노래가 소리로 마음을 주고받는 일이라면 이나와 자기 사이를 오가는 속도는 알맞은지 궁금했다. 나래는 우선 자신이 어떤 템포로 흘러가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그동안은 멈춰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느리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또 너무 빠른 게 아닐까 걱정이 됐다. 인생이 노래라면 나래는 제 삶을 쓴 작곡가에게 묻고 싶었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거냐고. p.132
어른들이 들으면 코웃음 칠 소리지만, 나래는 노래를 시작하면서 이제야 인생이 손에 좀 잡히는 것 같았다. 주먹을 쥐면 곧장 가려질 아주 작은 크기이기는 해도, 주무르는 대로 모양이 변하는 지점토 같은 덩어리처럼 어떤 형태가 주는 만족감이 있었다. 나래는 가사지에 카피를 하다 말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지금처럼, 들리는 대로 느낌을 받아 적고, 부를 수 있는 만큼 표현하는 것만으로 적당히, 다음, 다음, 그다음 레슨 곡으로 넘어가는 삶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p.136
진짜 적응이 안되는 건 우리를 자꾸만 불안하게 만드는 현실이다. 꿈을 가지라면서 갈림길 전부를 겪게끔 두지 않고, 제한된 보기 안에서 원하는 걸 선택하라고 채근하고 재촉하는 어른들. 시험을 치를 때마다 나래는 생각했다. '답을 찾으시오'가 꼭 '답이 되시오' 처럼 보일 때가 있다고.
"아무래도 세상이 우리한테 좀 너무하네."
"그래, 차라리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라는 말이 더 괜찮게 들릴 지경이야."
어른들이 들으면 하다 하다 꿈꾸는 것조차 미룬다고 타박하려나. 하지만 지금 우리의 대화는 꿈꾸기를 언제까지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에 더 가깝다. 각자의 현실에 실망보단 애정을 더해 가면서 봄을 건너왔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p.154-155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0723/pimg_7203762004370252.jpg)
꿈이란게 뭘까.
때로는 설렘을 안겨 주는 희망찬 단어 같지만 때로는 부담스러운 짐짝처럼 느껴지는 말이다.
어릴때부터 꿈을 가지라고, 그리고 그 꿈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고 달려가라고 닥달하는 어른들 밑에서 성장해온지라, 그 꿈을 이루지 못하면 꼭 실패한 루저의 인생이 펼쳐질 것처럼 움츠러들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꿈에 대한 환상과 부담감을 걷어내고 주인공처럼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한 걸음씩 걸어간다면, 희미하지만 분명한 빛깔을 지닌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우리들의 플레이리스트>는 자기만의 리듬으로 열여덟의 여름을 부지런히 통과하는 다섯 명의 친구들을 통해, 벅차게 뛰고 싶을 때는 격한 박자로, 숨을 고르고 싶을 때는 느릿느릿한 템포로, 다양한 리듬의 이야기를 재생해 내게 맞는 속도를 찾아 나갈 수 있다고, 또 꿈을 향해 걷는 방향과 속도에 결국 정답은 없다고 전한다.
꿈을 향해 걷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이 책이 이어폰 한쪽씩 나눠끼고 함께 걸으며 들으면 좋을 플레이리스트가 되어 주길 바라며 마무리 한다.
내 지난 꿈들은 모두 외로움 속에서 피어났구나.
꿈꾸는 일이 외로워서가 아니라,
외롭지 않으려고 꿈을 꾸었구나.
꿈은 결코 단일하지 않고,
드높거나 거창할 필요도 없다.
나는 언제고 다시 외로워질 것이고,
그럴 때마다 아주 작은 단위의 꿈들이 다가와
혼자가 아니게 만들 테니까.
(저자의 말 중)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