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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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 그 외 각종 음식 관련 소설, 만화, 또는 푸드에세이까지. 음식과 이야기를 조합한 이색 스타일의 단문집 중 하나인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는 특히 푸드와 여자를 엮어낸 것이 특징적이다.

이 책이 에세이라고 한다면 그야 말로 무라카미 류는 희대의 방탕 카사노바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고, 모두 허구라고 한다면 이렇게나 많은 이야길 만들어냈다는 게 신기하구나 라는 감상을 일으켰을 것 같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진짠지 허군지). 무라카미 류는 일본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난교, 원조교제, 동성애, 폭력, 마약 등의 소재로 적나라하게 지적해 온 작가로 통한다. 그렇다고 하는 기본 지식이 없이 이 책을 펼쳤을 때의 충격이란.

 

 

일본과 서양을 자주 왕래하는 일본인 남자가 서양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보내며 먹고 겪은 여자들에 대한 단편적인 글들이 실려있다. 일단 여러 나라의 여러가지 음식이 소개 된다는 점이 흥미로웠고. 각각의 음식의 맛과 모양, 텍스쳐에 대한 풍부한 표현은 읽는 내내 상상력을 자극했다. 뭔진 몰라도 왠지 알 거 같은 그런 느낌이다. 너무 생생하게 표현돼 있으니까. "과연 어떤 음식인 걸까." 머릿 속으로 그 모양새를 떠올리고,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을 떠올린다.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에는 '이야기'가 있다. 무엇보다 그냥 이야기는 아니고, 재미가 있는 이야기. 좀처럼 볼 수 없을 거 같은 사치스러운 세상에 속하는 사람들이 향유하는 괴벽, 또는 희망이라곤 없는 밑바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퇴계적인 일상 등. 거기서 느껴지는 방황. 급속도의 경제 성장을 이룬 일본 사회의 색다른 이면을 엿보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것도 신기한 음식들과 함께. <심야식당>이나 <미식견문록>이 소박한 음식들을 소재로 한 데 비해, 사치스럽고 고급스러운 음식들을 상상하는 것도 흥미로웠고. (물론 소박한 음식도 등장하긴 한다)

 

 

미각 중추가 만족되는 것. 식탐이라는 본능적 욕구가 만족되는 순간,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 처럼 정욕이 거세어 지기도 하는 그런 현상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 많았다. 그게 푸드와 여자를 엮어서 책을 쓴 계기가 된 걸까. 예를 들어, 고기는 씹는 맛이라는 진부한 표현 대신에 "고기는 이빨로 맛을 보는 것"이라는 내용이 인상깊었다. 이빨로 맛을 보기에 동물적 감각이 자극되고, 심지어는 두뇌가 명쾌해져 과거, 현재, 미래도 보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한편 먹는 행위를 '죄악'으로 인식하는 구절을 자주 볼 수가 있었는데. 정말 그렇게 느껴지는 음식들이 많이 나온다. 양뇌 요리, 생선 이리(정액), 송아지 갈비살... 인간의 도덕성을 자극하는 음식들은. 작가가 그려낸 어두운 뒷세계의 모습과 맞물려 죄악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쯤 먹어보고 싶다'라는 욕구를 자극한다. 정말 죄악스러운 작품이다.

 

 

"남자는 이리를 입 속으로 밀어넣었다. 나도 먹었다. 늘 그렇듯이. 절대로 허락될 수 없는 것을 입에 넣는 기분이 든다. 죄 그 자체를 먹고 있는 기분이다. 그리고 죄를 먹고 우리는 원기를 되찾는다."

 

"이 피탄이라는 놈은 달걀 조리법으로서는 거의 기적에 가까워. 이 피탄을 우리 인류라고 한다면, 스크램블드에그는 백악기의 공룡이야."

 

"샤블리로 차가워진 목으로 생굴이 미끄러져 들어갈 때의 그 감촉이다. 그것은 정욕고가 마구 뒤섞여 있었다."

 

"양의 하얀 뇌는 혀 위에서 서늘하게 느껴진다. 여자의 새끼발가락 크기의 미끌미끌한 덩어리, 그 표면의 엷은 막을 씹으면, 질 좋은 올리브오일과 농축된 밀크를 섞은 듯한 맛이 입 속으로 퍼져나가면서 카레의 자극을 모두 지워버린다. 지운다기보다는 젤리 같은 막을 형성하여 맛과 향기를 봉쇄해버리는 것 같다. 그 순간 가치스런 불쾌감을 느끼면서 다시 카레 수프를 떠넣는다. 그것이 반복된다. 먹으면서 다른 어떤 것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콧방귀끼며 "누가 궁금하댔나" 하는 감상을 일으키는 에세이나, 재미도 감동도 없는 밋밋한 표현만 득실거리는 맛집 리뷰와는 전혀 다른, 진짜 감각을 자극하는 텍스트를 읽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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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흉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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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케이고의 소설을 전부 읽어볼까나 하는 마음에서, 책 소개 등을 보다가,

"괴물이 되어 버린 여자의 복수극"이라길래 바로 꽂혔다.

그런데 내가 기대한 거랑 너무 다르던 걸?

 

 

"1992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꾸준한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작가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이다. 범인을 추리하는 재미보다는 서스펜스에 초점을 맞추는 작가 특유의 빠른 전개와 교차 편집, 인물의 내면 묘사가 돋보인다. 특히 주인공 타란툴라는 서울올림픽과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미국 국가대표 재키 조이너 커시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

 

인터파크에서는 책을 위의 글로 소개하더라. 인물의 내면 묘사가 돋보인다......?

 

내가 소설을 읽을 때 가장 주목하면서 읽는 건, 인물의 내면묘사이다. 내가 실제로 그 인간이 된 것 처럼 느끼게 해주는지..

인물의 내면이 왜 어떻게 어떤 식으로 어떤 단계를 거치면서 변해가는지.. 거기 어떤 당위성이 있는지..

그런 걸 신경쓰면서 읽는다.

나는 범인(추격자)의 내면을 알고 싶었다. 범죄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뭔 말인지 알거다.

근데 이 책은 정작 추격자의 내면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그저 그녀의 짐승같이 아름다운 근육과 몸짓에 대해서만 설명한다.

 

책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야 '괴물'의 심리 묘사가 나타난다. 이 부분이 없었더라면  난 시간낭비 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럼 인물 내면묘사가 전혀 없었냐고? 그건 아니다.

쫓기는자, 특히 '유스케'의 심리가 부각되고 있다. 그렇다고 아주 세밀한 것도 아니다.

 

 

 

또 하나 인상깊게 다가왔던 건, 책이 '인간 개조'를 다루고 있단 거다. 

등장인물 '센도'는 나치의 인간개조에 관심을 가졌던 인물로, 이를 스포츠의학에 접목시켜 

사이보그와 같은 초인을 만들어내는 데에 몰두했던 인간이다.

그는 이 목적을 위해, 생명윤리에 반하는 짓을 서스럼없이 저지른다.

이런 어두운 일면이, 내가 늘 관심을 갖고 보는 주제 중 하나이다.

이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에 대해서는 심도있게 다루지 않는다. 추격과 추격당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생각할 거리를 잠깐 던져주는 데서 그치는 건 당연한 듯 하다.

 

읽으면서 야나기하라 케이의 '콜링'이 생각난 건 왜 였지. 

'외모'와 '美'에 대한 주제들이 겹치면서 생각이 난 듯 하다.

콜링은 성형수술 중독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추격신이 긴장감 넘친다고 하는 것에 비해... 나는 그다지.... 지루하기만 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아마 별로 주목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곳에 주목한다.

Baby.

아마 타란툴라는 센도를 사랑했나보다.

비인간적으로 개조 당해도..

이건 내가 내 인생에서 큰 의미를 두고 좋아하는 어느 한 작품에서 그려지는 사랑구도와도 비슷하다.

한 사람은 절대적인 주인이고 권력자이다. 한 사람은 노예처럼, 실험재료처럼 비인간적으로 길러지지만..

"그런 식으로 밖에 사랑할 수 없는 관계도 있는 거겠지."

난 흔하지 않은, 비극적인 사랑의 형태를 좋아한다. 

특히 지배당하고 저항하면서도 결국은 벗어나지 못하고 주인(?)에게 회귀하는 역겨운 구도를 좋아한다.

 

 

그러한 일면을 봤으니, 

거기에서 나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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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테라피 - 성장과 치유를 위한 힐링 스토리 24
이시스 지음 / 이야기나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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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할 말만 하고 끝내는' 에세이가 있다고 한다면 이 책은 그에 반해 엄청난 '교훈'과 '감동'들은 전해주는 그야말로 '제 할일 제대로 해내고 있는' 에세이라 하겠다. 제목에서 내던지듯 이 책은 '치유'에 목적을 두고 있다. '테라피'. 내적, 외적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영혼을 저자는 '이야기'로서 달래주고 치료해준다. 삶의 한 복판에서 다양한 이유들로 그저 멈추어 서버린, 그리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자신감,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기 위해 쓰여진 책이다.

저자 이시스는 상담심리학을 전공하고 심리치유와 상담 분야에서 10여년을 일한 전문가이다. 현재는 <햇빛섬 자연치유 명상센터>를 운영하면서 특히 청소년들의 성장을 위해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왜 하필 이야기인가. 저자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이 책을 펴고 순간 "어른들을 위한 동화"처럼, 동화를 재해석한 책일거라 오해할지 모른다. 이 책은 동화, 신화, 설화 등등 우리에게 친숙하고 잘 알려진 각종 '이야기'들을 짧게 소개하며 그 안에서 어떤 의미와 교훈을 얻어낼 수 있는지 풀어나간다. 그러는 과정에서 상처받은 영혼들은 어느새 위로를 받고 자신감까지 얻게 되는 아주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된다. 저자의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다. 곡해나 과장 등이 없다. 우리가 그저 지나쳐버린 이야기들 속에 담겨있는 특별한 의미들을 "아, 그렇구나!" 하고 느낄 수 있게 전달해준다.

책은 크게 6가지 주제로 나누어져 있다.
1. 경쟁, 2. 나의 존재의미, 3. 집중과 몰입, 4.사랑, 5.성공, 6.행복.
이 모든 것들이 때로는 현대인을 지치게 하고 얽매여있게 하고 존재가치를 잃게 만드는 '고난'과 '역경'이라 할 수 있다. 위의 6가지의 일들로 인해 현재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분명 가려운 데나 아픈 데가 나아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성장과정에서 각종 고민을 겪고 있을 청소년들. 어른들의 잣대에 의해 가리워진 자기 존재가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자기 자신에 대한 무지, 잘못 형성되는 각종 애정관계들 속에서 고민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은 '휴식처'의 기능을 한다. 이 책은 "이렇게 해라. 그것이 옳다"와 같은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 속에는 이러한 의미도 있습니다. 지금 힘든 우리의 삶에도 이러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 낫지 않을까요" 하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이 전혀 터무니 없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무릎 탁 쳐지는 이야기들인 것이다. 하물며 낙관주의나 우유부단한 태도를 가지도록 권하지도 않는다. 책에서는 동화 등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한편, 그녀가 상담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소개되고 있다. 그래서 동화 속 이야기는 우리 현실속의 이야기와 연결이 된다. 그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 가치, 교훈들을 알려주는 그녀의 통찰력이 감탄하게 된다.

가장 인상깊은 이야기는 5. 사랑 섹션의 '어린왕자와 장미'의 이야기다. 비단 사랑만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지치는 경우가 많은 요즈음이다. 만약 우리가 지금 누군가와 힘든 관계에 놓여져 있고 그로 인해 우리 인생이 엉망이 되었다고 느낀다면 사실 그건 누구의 책임도 아니고 '자기 책임'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 모든 짐을 자기에게 지우고 고통과 희생 속에서 허덕이지 말라고 한다. 오히려 '자기 책임'임을 깨닫고 재빠르게 그 상황 속에서 해결책을 찾으라고 말한다. 엉뚱하게도 '자기 책임'을 남에게 부과하면 오히려 자신만 더 괴로워지게 된다. 우리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길들인' 것에 대해 책임이 있다. 얽매이는 것도 타파하는 것도 결국 본인이 해결해야할 일이다. 기왕이면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지 않은가.

이렇게 저자는 각종 고민과 상황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전달해준다. '테라피'라는 제목이 전혀 아깝지 않은 책이다. 은은한 색채가 감도는 내부 종이들은 색으로 인한 심리적 치유까지 도모하는 듯 하여 잔잔한 감동을 준다. 현재 인생이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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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다상담 1 - 사랑, 몸, 고독 편 강신주의 다상담 1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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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기간: 2013.11.25-2013.12.16

 

인생은 힘들다. 갖가지 문제들이 들고 일어서서 우리를 괴롭힐 때면

이것들이 왜 이러는지, 어떻게 이것들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사람들은 그래서 인문학을 찾는다. 예술, 철학, 종교 등을 뒤지면서

결국은 '행복'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인문학 중에서도 '철학'은 어렵다.

쉬운 것도 어렵고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이 철학의 이미지다.

그런데 일명 철학박사인 강신주 선생님은 이 어려운 철학을 이용해서

우리 삶의 본질이나 의미 등을 꿰뚫어 설명해준다.

 

이 책을 읽게 된 건, SBS 방송 '아이러브인'에서 강신주 선생님이 강의하신 걸 우연히 보고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투는 거침없다. 돌직구를 마구 던지는데, 그게 "아! 유레카!" 하게 되는 일침이 된다.

그래서 이 책을 구했다. 아이러브인 방송때와 마찬가지로 이 책의 주제도 '사랑'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청춘이 가장 힘들어지는 것이 '인생'과 '사랑'에 대한 고민이 넘쳐날 때가 아닌가싶다.

선생님은 말한다.

사랑도 인생도 고통스러운 거라고. 힘든 거라고. 그러나 그 안에서 얻는 즐거움과 행복이 반드시 있다고.

힘들다고 피하고 멀리하면 행복마저도 포기하는 것이 된다. 그렇게 '자기 세계'에 빠져든 사람은 고독하고.

한편 이 책은 늦은 나이에 무언가에 새롭게 도전하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준다.

도전하지 못하는 것은 용기가 없음이고, 그 용기가 없는 비겁함을 '늦었다'라는 핑계로 가리려 하지 말라고.

단지 자신의 행복을 좇으면서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나도 2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답답하고 괴로울 떄가 있는데,

인생을 더 오래 산 선생님이 하시는 이야길 들어보면

오히려 내가 지금 고통스럽기 때문에 배우는 것도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60, 70대가 되어서 무언가를 깨달아도 이미 되돌릴 수 없다.

지금 이미 많이 힘든 게 여생을 바꿔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란 걸 깨닫게 된다.

그런 믿음과 희망을 준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아직도 '답'이라는 건 언제나 보이지 않은 것들이지만.

이런 희망을 얻은 것만으로도 다행인 것 아닐까.

 

지금은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구해놓은 상태.

강신주 선생님의 매력에서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다.

 

떠나는 사람은 매우 잔인한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친구로 남자는 이야기는 정말 분통이 터지는 일입니다. 그 사람의 소식을 듣거나 만날 때 실연의 상처는 다시 도질 테니까요. 더군다나 상대방은 언제든지 다시 "타다 남은 심지에 파란 불꽃 다시 켜질" 수도 있다고 희망 고문을 자행하기까지 합니다. 당연히 이제 실연의 슬픔은 증오로 바뀌게 되겠지요. 상대방에 대한 증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에 대한 분노로 바뀌게 됩니다. 지금 시인은 떠나는 연인에 대해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럴 때에만 사랑의 감정도 극복될 수 있을 테니까요.

 

고독에는 병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고독은 자기에 대해서 몰입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고독은 타인에 대해서 몰입하지 않기로 작정했을 때 쓰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결구구 타인을 사랑할 수 없으니 나만을 사랑하기로 작정하는 것이 고독의 숨겨진 메커니즘입니다. 제가 안타까운 건 고독한 모습이란 타인과의 관계를 접기 위해서 쓰는 전략일 수 있다는 겁니다. 자기 혼자  관계를 맺으면 상처를 안 받잖아요. 타인은 자신에게 상처 줄 가능성이 많게 다가오는 거예요. 그렇지만 타인은 절망의 원인이자 동시에 희망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불행의 원인이자 행복의 원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세계 때문에 고독해진 것이라면, 세계와의 관계를 통해서 고독이 해소될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감정을 지켜야만 해요. 그만큼 여러분은 삶의 주인이 될 테니까요. 내가 행복하면 행복한 거예요. 내가 즐걱우면 즐거운 거고요. 내가 불쾌한 건 피해야 되죠. 불쾌한데도 억지로 하고 있다면, 문제가 있죠. 행복한데도 버려야 된다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요? 사실 돌아보면 우리는 너무 비겁하잖아요. 내 감정을 지키면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 자신의 감정 쯤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자신의 감정이 소중하다고 이야기는 하죠. 이렇게 비겁한 의식들 때문에 우리는 계속 힘들어지는 거예요. 아주 쉬워요. 아주 단순하죠.

 

물론 그렇다고 상처를 너무 크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상처받을 걸 자꾸 생각하면, 지금 해야 될 걸 못 합니다. 좀 불안할 것 같으면 '미래에 힘들 거야'라는 생각을 엄청 크게 해서, 이 생각이 충분히 커지면 지금 해야 할 걸 안 해요. 차라리 '난 비겁해서 못 해. 난 용기가 없어서 못 해.' 이렇게 인정을 해야 되는데 그건 싫은 거죠. 후회는 하지 말아야 해요. 해야만 했던 것을 하지 못했다는 후회, 자기의 삶을 감당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진짜 힘든 거거든요.

 

삶은 헬리콥터로 정상에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힘들여 정상에 오르는 데 묘미가 있으니까요. 미래에 대해서 자꾸 어찌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하는 거는 여러분이 비겁하다는 얘기밖에 안 돼요. 그리고 미래를 계속 공포스럽게 그리면 그릴수록 지금 내가 선택해야 될 걸 포기하려는 거예요. 그래서 오지도 않는 미래에 오만 것들을 투사한단 말이에요. 지금 것을 포기하겠다는 건, 안 하겠다는 말이에요. 오지도 않은 엄청난 불행을 한쪽에 놓고 지금의 행복을 한쪽에 놓으면서, 어느 한쪽이 커져서 다른 걸 붕괴시킬 때 말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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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카트 멘쉬크 그림 / 문학사상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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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세가 된 평범한 가정주부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일주일 넘게 잠을 자지 않아도 신체나 정신에 어떠한 이상도 생기지 않고

오히려 생명력이 넘치게 된 여성이 살아가는 일상을 단조롭게 그리고 있다.

 

남편과 아이에 대한 묘사는 지독할 정도로 냉정하다.

남편을 '이상하게' 생겼다고 생각하는 주제에 겉으로는 "당신은 미남"이라고 하는 이중적인 모습.

그 무미건조한 얼굴과 말투에서 삭막함이 느껴졌다.

남편을 닮은 아이를 보고 심지어 짜증까지 느끼는 것을 보면서...

단조롭기 그지없는 여성의 일상이 얼마나 끔찍한지 느껴보게 된다.

 

평소 얼굴엔 자신이 없어도 수영을 통해 다져진 몸매에는 자신이 있었던 주인공.

잠을 자지 않는 그녀는 점점 더 자기만의 세계에 파고든다.

그녀는 몇번이고 <안나 카레리나>를 읽으며 그녀에게 동화되어 간다.

그리고 몸에 넘치는 생명력과 아름다운 곡선에 매료된다.

 

그렇게 혼자만의 세계에 심취해

길 가에 홀로 차를 세워 놓고 있다가...

불현듯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현실로 돌아온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차 속에 꼼짝없이 갇힌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지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그런데, 그래서 그 다음 어떻게 됐는지?

 

괴한들이 흔드는 차 속에서 그렇게 이야기가 끝난다.

열린 결말.

독자에게 해석을 맡겨버리는 열린 결말.

그렇다고 결말에서 딱히 어떠한 교훈을 찾기가 어려운 작품이라 결국

본 내용으로 돌아가 작가의 의도를 찾아야 한다.

 

잠이 없어진다는 것은 축복일거라 생각했다. 주인공은 일생의 1/3을 차지하는 잠을 잃은 것을

삶의 확장의 기회로 삼는다.

그러나 이러한 '불균형'이 언젠가 대가를 치르도록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또한 갖고 있다.

 

괴한들이 흔드는 차 속에 갇힌 주인공은

그렇게 '불균형'을 유지하던 대가를 치르게 되기 때문에 눈물이 난다.

 

주어질 수 없는 축복을 누리고 나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 교훈인가.

우리가 축복으로 여길 만한 것들이 결국은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인가?

읽는 사람 각자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

그래서 열린 결말을 준 거겠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솔직히 이 결말은 너무 아니지 않은가? 볼일 보고 뒷처리 안 한 기분.

어이가 없어지는 기분.

 

General한 교훈은 그렇다치더라도.

내가 느낀 것은.

30대 평범한 가정 주부가 느끼는 무료함과 무기력함...

그런 것들이 무섭다고 느꼈다.

식구들 다 나가면 집에 홀로 있을 가정부들에게 갑자기 위로를 건네고 싶어졌다.

 

그 정도 수준의 '공감'을 느끼게 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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