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신장판 1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 <듄>을 보고 멍하고 지루한 기분이 든 사람이 나뿐일까... 극찬하는 사람들은 극찬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정도로?" 하게 될 법한 영화였다. 딱히 흠 잡을 건 없지만 그냥 재미가 너무 없고 지루했던 게 문제였는데.

<듄> 의 소설을 읽어보았고, 과거의 <듄> 영화도 보았던 직장 상사가 열띤 태도로 듄의 배경을 설명해줬고, 난 소설을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내가 모르는 뭔가 대단한 뭔가가 있겠다 하고.

사실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건, 영화가 소설에 묘사된 장면과 세계관을 잘 구현해냈단 것이다. 세세한 동작이나 장면, 사물까지도 아주 잘 재현했다. 다만. 그 잘 재현된 점을 소설을 읽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게 문제지만.

듄은 '아라키스'라는 사막 행성을 말한다. 이 행성은 우주 항로 계산의 필수품인 '스파이스'를 생산해낼 수 있는(거의 유일한 행성) 곳인데, 프레멘이라 불리는 원주민들이 이를 담당하고 있다. 원주민과 스파이스... 마치 과거 동인도회사와 후추에 관련된 역사가 떠오르기도 하고. 미국 원주민을 살해하면서 그 땅을 점령한 미국 역사가 생각 나기도 한다.

오랫동안 우주 황제의 허락하에 이 행성의 지배를 맡고 있던 것은 하코넨 남작이다. 그는 비대하고 탐욕스럽다. 아트레이디스 가문은 황제의 권력에 해가 되는 새로운 세력이다. 아트레이디스 레토 공작은 그 인품이 좋아 주변에 충신들을 많이 두고 있다. 전사 거니 할렉과 던컨 아이다호. 그리고 인간 컴퓨터로 불리는 맨타트 계급의 하와트. 공작에겐 정식 아내가 없고, 첩인 제시카가 있다. 제시카와 레토 사이의 아들이 '폴'.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상당히 '메시아'적인 인물로 소설에선 그려지고 있다. 프레맨들 사이의 전설에는 '무앗딥'이라는 시공을 초월한 존재가 있고, 제시카가 속해있는 종교 단체인 '베네 게세리트'들에겐 약 90대를 거치며 유전자 조합과 태생을 조작해 탄생시키고자 했던 초월한 존재인 '퀴사츠 헤더락'이 있다. <듄> 1권은 폴 아트레이디스가 무앗딥이자 퀴사츠 헤더락으로 각성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영화에선 챠니를 굉장히 신비스럽게 그렸다. 폴은 마치 무슨 신의 계시라도 내렸는지 꿈과 환영을 통해 챠니를 알게 되는 것 처럼 나오는데. 사실 이건 아라키스 행성의 스파이스 가득한 사막에 노출된 폴의 '퀴사츠 헤더락'으로서의 능력이 폭발적으로 각성화되면서 생긴 '예지 능력'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 폴의 의식이 흐릿해지고 그 안에서 보게 되는 것들은 수많은 가능성이 연결된 과거, 현재, 미래를 폴이 보고 이를 통해 '모든 것을 아는 자'가 되는 것이었다. 모두 고도로 발달된 뇌와 세포의 작용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다만, 소설 <듄>에서 설명하는 것 처럼, 소설 속의 인류가 지능을 모방하는 기계에 반기를 들고 모든 컴퓨터를 배제하고 인간의 두뇌만을 고도로 강화시킨 미래에 살고 있단 점을 알지 못하면 폴의 이러한 예지하는 능력도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다. 영화에선 이런 배경과 폴의 능력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아무튼 이러한 영상미 속에서 챠니만이 그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이득을 얻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챠니가 폴에게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 됨에도 불구하고 챠니의 비중은 소설 1권 내에서 그리 크게 그려지지 않는다. 그보단 폴의 어머니 제시카의 시점이 더욱 많이 그려지고 있다. 목소리에 힘을 실어 사람을 조종하거나 죽일 수 있는 베네 게세리트인 제시카는 레토 공작을 위해 아들을 낳은 사람이다. 베네 게세리트 종족은 철저한 계산을 위해 제시카가 딸을 낳게 하려 했지만 (베네 게세리트는 대를 이어 딸만 낳음으로써 남자인 퀴사츠 헤더락을 탄생시키려고 했다) 순서를 거스르고 남자아이인 폴을 낳았다. 폴은 자신에게 괴물같은 능력을 주고 교육시킨 어머니에게 일종의 증오심을 갖고 있다.

이야기는 영화에서 그려지듯, 황제가 아트레이디스 가문에게 아라키스를 정식으로 인계하면서 시작된다. 아트레이디스는 행성을 지배하고 있던 하코넨 남작 가문을 몰아내고, 프레맨을 장악하여 스파이스 생산업무를 총괄하는 미션을 가지고 아라키스로 떠난다. 하지만 이는 아트레이디스 가문의 세력이 커져서 자신의 세력에 방해가 되는 것을 감지한 황제가 꾸민 계략이었고. 레토 공작은 하코넨 가문의 스파이에 의해 살해된다. 폴과 제시카는 사망한 것으로 처리되었지만 몰래 살아남아 프레맨 부족에 합류하였고. 제시카는 베네 게세리트의 능력을 통해 프레맨에게 '대모'로 추앙 받게 되었고. 폴도 그의 전투 및 신비한 예지 능력 때문에 이후 3년간 '무앗딥'으로서 그들에게 추앙 받는다.

영화는 여기까지를 그려냈고. 소설 1권에선 이 다음부분이 전개된다. 폴과 챠니 사이에 아들이 생기고. 제시카는 공작이 죽기 전 임신하고 있었던 딸(폴의 여동생)을 낳는다. 3년간 이들을 프레맨들에게 동화되었고, 스파이스에 중독되어 눈알이 푸른색으로 물든다. 하코넨 남작은 자기 후대를 이을 페이드 로타라는 조카를 양성시키고 있었고, 폴과 제시카의 생존에 대해 알지 못했다. 폴이 죽은 줄 알고 밀수업자들과 결탁해 살아남았던 거니 할렉은 스파이스 기지를 침략하던 중 폴을 재회하여 폴의 부하가 된다. 아라키스 행성을 감시하고 있던 황제는 자신의 군대 사다우카가 프레맨들에 의해 격파당하고 '무앗딥'이라는 자가 있다는 보고를 받은 후 우주 조합과 함께 아라키스 행성을 침략한다. 이 과정에서 폴의 여동생 알리아가 황제에게 납치되고(그러나 영악한 알리아가 직접 납치된 것이다), 남작과 황제는 '무앗딥'이 폴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알리아는 기지를 발휘해 남작을 '곰 자바' 독 바늘로 살해하고, 황제의 사람들이 당황한 이 때 폴이 황제의 우주선 앞머리를 폭파시켜버린다. 폴은 황제에게 직접 항복하고 자신을 보러 오지 않으면 스파이스 생산시설을 모두 파괴해버릴 것이라고 협박하며(스파이스가 없으면 조합은 모두 우주 미아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이 협박이 통할 수 있다) 황제와 베네 게세리트 대모, 페이드 로타가 프레맨의 부지에 오도록 한다. 폴은 자신이 퀴사츠 헤더락이며 목소리의 힘으로 대모를 죽일 수 있음을 증명하고, 대모는 겁을 먹는다. 폴은 자신이 황제가 되기 위해 황제의 딸 '이룰란 공주'와 결혼 하겠다고 황제에게 '명'하고, 대모는 직접 황제에게 폴의 말대로 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이룰란 공주 역시 이를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챠니는 걱정하지만, 제시카가 챠니에게 너는 첩으로 살게되지만 역사는 우리를 '아내'라고 할 것이라고 한다.

여기까지가 1권이고. 사실 초반부는 소설조차도 너무 지루했는데, 그건 듄이라는 소설의 종교관, 세계관을 설명해나가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후반부에선 폴이 퀴사츠 헤더락다운 지혜를 발휘하는 부분과 거침없는 예지, 전투, 격파 장면들이 빠르게 전개되어 훨씬 즐겁게 읽었다. 솔직히 후반부 때문에 2권을 읽어보고 싶게 된다. 역시 책 1권으로는 전부 설명할 수 없는 많은 떡밥과 중요한 존재들이 나오기 때문에, 영화가 왜 모든 걸 담지 못했는지, 혹은 담지 않았는지 등을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모래사막의 괴물인 모래벌레(샤이 훌루드)는 이 사막행성의 스파이스 생산 생태계의 중심이고, 앞으로 폴이 이 황무지를 동식물이 있는 행성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거란 예상을 할 수 있다. 반면에 장차 폴의 라이벌이 될 줄 알았던 페이드 로타는 그 박력있고 야만적인 초반부의 등장이 무색하게.... 1권 후반부에서 폴에게 살해당한다. 그러다보니 앞으로 남은 5권의 소설에서 어떤 인물들이 등장해서 또 새로운 이야기들을 할지 기대가 되긴 한다.

누군가 말하길, 메시아 존재로 그려지는 폴은 사실 히어로가 아니고 안티히어로라고 한다. 히어로의 위험성에 대해 작가가 경고하고 있다는 의미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불안과 우울로부터의 힐링 - 뇌가 알려주는 불안과 우울에 대한 거의 모든 것
다니엘 G. 에이멘 외 지음, 윤혜정 옮김 / 소울메이트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환경유해요인과 정신건강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이전엔 주로 급만성 질환에 대해 연구하다가 정신건강 쪽으로 넘어오니, 대충 어떤 연구가 수행되는지는 알지만 그 질환 자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즉 환경보건 분야에서 이해하거나 논의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본 정신건강 분야에서 어떤 것들이 알려져 있는지는 모른다.

불안과 우울로부터의 힐링 - 이 책은 사실 코로나19로 한참 stay-at-home order의 영향을 받으며 우울과 불안을 겪던 내가 어떻게 한번 극복해보자 하고 빌린 책이었는데. 스스로 할 수 있는 테라피에 관한 내용일 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뇌과학에 기반한 임상연구 쪽 내용이었다. 그래서 우울증과 불안증을 '성격'이나 '심리'에 의해 발생하는 질환이 아니라 실제 뇌 부분에 손상이 발생해서 나타나는 질환으로 다룬다. 원인이 뇌 손상과 연결되기 때문에 단순히 약물치료나 행동치료 하나만 수행해선 질환이 치료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우울증과 불안증을 질환으로 다룸에 있어서 뇌 과학을 다루고 있는 점이 내게 있어선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어사일럼'이라는 테마를 갖는 호러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 처럼, 정신질환을 뇌의 문제로 다루는 것은 '로보토미' 시술을 하던 과거의 접근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저자들이 우울과 불안이 생기는 이유를 뇌 손상, 약물 중독, 호르몬 변화, 독성물질 노출 등 다양한 부분에서 찾고 있으며 그에 따라 치료 방법도 달라진다는 걸 강조한다는 걸 알게됐다.

내 연구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될만한 부분을 스크랩해서 아래 첨부했다. 코로나19 시대가 앞당긴 언택트 시대에는 격리나 소외로 인한 정신건강 문제가 다양한 형태로 다양한 곳에서 생겨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특히 우울이나 불안을 개인의 성격 결함이라 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앞으로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나아갈 길이 멀다고 생각된다. 내 역할은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환경요인 중 득이 되고 실이되는 부분을 밝혀가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연구에 대한 모티브를 더 강력하게 얻는 계기를 준 책이었다.

<본문 스크랩>

최근까지도 사람들은 불안장애나 우울장애가 의지가 약하거나 성격에 문제가 있어 걸리는 병이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벌을 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 장애가 상당 부분 뇌의 기능 이상으로 발생하는 것임이 최신 뇌과학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약물치료만으로 모든 증상을 다스릴 수 있다고 단순하게 접근하면 치료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질병에 약물치료만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좋은 치료법이 아니다.

최근에 행해지는 정신건강 치료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신과 의사들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뇌 기능의 중요성을 간과한다는 점이다.

에이멘 클리닉에서는 불안장애와 우울장애를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유형별로 맞춤식 처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기기입식 설문조사에는 장단점이 있다. 빠르고, 비용이 적게 들고, 점수를 계산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왜곡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단점도 있다. 사람들은 ‘남들에게 비춰졌으면’ 하고 바라는 방향으로 설문지를 작성할 수 있기 때문에 결과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자기기입식 설문조사에 참여할 때 본인 외에 나를 잘 아는 다른 사람도 함께 참여한다면 보다 정확한 조사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때 함께 조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조사 당사자를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하고 가능한 편견 없이 정확하게 응답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불안장애와 우울장애의 증상은 1가지씩 개별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여러 증상이 상호 연관되어 나타난다.

던져 그 사람의 삶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가 선구적으로 개척한 뇌 SPECT 영상기술이 불안장애와 우울장애를 진단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환자의 병력clinical history을 이해하는 일이 환자를 진단하는 가장 중요한 첫 걸음이다.

의학자료나 임상경험으로 보건대 불안장애와 우울장애는 상당 부분 유전적으로 전해 내려온다. 부모님 중 어느 한쪽이 불안장애나 우울장애를 겪었다면 그 자손이 같은 질병에 걸릴 확률은 50%에 이른다.

독성물질 노출: 뇌가 독성물질에 노출되면 감정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수막염meningitis이나 뇌염에 감염되면 독성 염증이 생기고 뇌조직이 손상된다. 태아일 때 약물이나 알코올, 담배에 노출되어도 문제가 생긴다.

이미 독성물질에 뇌가 노출된 상태로 태어난다. 환경적 독성물질도 뇌 기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미치고 불안이나 우울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불안장애나 우울장애, 그 밖에 정신질환을 진단할 때 약물 남용 검사가 중요하다. 불안과 우울 그리고 약물 남용은 보통 함께하기 때문이다. 약물을 사용하면 일시적으로 빠른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과 우울 증상이 악화된다.

불안과 우울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는 호르몬 변화이며, 여성은 특히 호르몬 변화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불안장애와 우울장애에 걸리면 생각이 부정적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부정적인 사고 패턴은 뇌에 부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환자 한 사람의 삶을 전체적으로 그리기 위해 의사나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직장 내 관계나 정신질환 가족력, 가정 내에서 신체적·정서적·성적 학대 여부, 최근에 일어난 부정적·긍정적인 변화, 약물이나 알코올 사용 여부와 같이 환자를 둘러싼 모든 환경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사회적·경제적·생물학적 부담으로 인해 남성보다는 여성에서 불안장애와 우울장애 발병률이 더 크게 증가했다.

우울장애를 치료하는 7가지 유형별 치료 계획이 담겨 있다. 치료에는 교육과 심리치료, 식이요법, 운동 계획, 보충제, 약물치료, 행동치료, 각종 권고사항이 포괄적으로 포함된다.

운동을 하면 뇌혈류가 좋아지기 때문에 격렬한 유산소 운동은 모든 유형의 불안장애와 우울장애에 좋다.

성공적으로 EMDR 치료를 하면 처리되지 않고 남아 있던 고통스러운 기억이 처리된다. 환자는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사건을 이해하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누구의 책임이었는지 정확히 인식할 수 있다.

불안과 우울의 경험은 여러 가지 면에서 남성과 여성에게 동일하게 나타난다. 불안이나 우울증 삽화가 나타난 사람 중 50%는 5년 안에 다시 삽화를 경험하게 되고, 이들 중 대다수가 병이 계속 재발하는 만성적인 장애로 발전한다. 환자가 남성이건 여성이건 위험도는 달라지지 않는다.

에스트로겐 결핍은 골다공증을 일으킨다. 에스트로겐이 분비되지 않으면 뼈가 점점 얇아지고 구멍이 생겨서 골절할 위험이 높아진다.

자살행동은 불안이나 우울장애와 관련 깊으며, 삶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자살을 한다.

여성의 자살 시도는 남성에 비해 3배나 높지만 실제 자살에 이르는 경우는 남성이 여성보다 3배 많다. 남성의 자살 시도 방법이 여성에 비해 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여성은 약물을 과다 복용하는 방법을 많이 쓰는 반면에 남성은 목을 매거나 총을 사용한다.

우리는 자살을 시도한 300명을 대상으로 뇌 SPECT 검사를 실시했다. 그런데 이들 환자의 대부분이 전방대상회 활동은 증가해 있었고, 좌측 측두엽과 전전두엽의 활동은 줄어들어 있었다. 전방대상회의 활동이 증가하면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고, 좌측 측두엽의 활동이 줄어들면 쉽게 화를 내거나 신경이 예민해지며,.......

폭력성은 자해로도 나타난다. 자살하려는 사람과 자해하는 사람의 뇌 패턴은 같다.

DSM 4판에서는 ‘불면증’을 수면의 질, 수면 지속 여부, 수면 시간을 기준으로 정의한다. 수면장애는 적어도 한 달 동안 매주 3회 이상은 발생하고, 회사나 학교생활, 사회적 모임에 지장을 받을 정도가 되어야 진단내릴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갑자기 혼자가 되다
이자벨 오티시에르 지음, 서준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자벨 오티시에의 <갑자기 혼자가 되다>. 읽어보고 싶어서 오랫동안 쟁여만 놓고 있다가 드디어 읽게 된 책. TTS 기능으로 들으면서 읽느라 집중력이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다 듣고 난 후에는 나도 모르게 큰 울림을 받아버렸다.

프랑스인인 루이즈는 약혼남 뤼도비크와 함께 빙하가 있는 대서양 한가운데를 항해하는 결혼 전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뤼도비크의 자만으로 인해 항해 중 실수로 둘은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다. 이 무인도는, 영국령 자연보호구역으로 누구도 이 곳을 지날거란 희망이 있지 않았다. 둘은 이제 살기 위해서 자연과 투쟁을 벌여야 한다. 펭귄과 강치를 사냥해 연명하고, 남겨진 선박 잔해들로 구명정을 만들어보고. 그러다가 어느 날 눈에 띤 큰 선박을 발견하고 뤼도비크는 구명정의 오일을 태워 배를 뒤쫓으려 하는데 루이즈는 구명정을 사용하는 것에 반대하다 뤼도비크와 몸싸움까지 벌인다. 뤼도비크는 구명정을 이용해 배를 뒤쫓지면 배는 허무하게 뤼도비크를 발견하지 못하고 사라진다. 이후 이들에게선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이 끊어지고 만다. 루이즈에겐 뤼도비크를 향한 원망이 들끓기 시작한다.

책의 전반부는 루이즈가 무인도에서 살아 남는 투쟁을 보여주고, 후반부는 루이즈의 이야기를 취재하려는 기자와 루이즈를 언론으로 이용해 먹으려는 가족들의 갈등 등이 주 내용을 이룬다. 루이즈는 일반적으로 무인도에서 표류하던 '여성 로빈슨 크루소'에게서 기대되는 것관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녀는 무용담 처럼 자기 이야길 늘어놓길 좋아하지도 않지만 무인도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극도로 거부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어딘가 절제된 피곤함과 슬픔을 가진 듯 하지만 뤼도비크의 이야기를 할 때면 극도로 침울해한다.

제목이 <갑자기 혼자가 되다> 것에서 결국 뤼도비크는 생존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혼자가 되다> 라는 제목엔 약간의 오류가 있다. 무인도에서 일어난 실제 일은 이렇다. 배를 눈앞에서 놓친 후. 둘은 여러번의 태풍을 겪으며 모진 추위와 불결함을 견뎌냈다. 루이즈는 뤼도비크가 심신적으로 병들어 감을 알 수 있었다. 뤼도비크는 모든 일에 밍기적해지기 시작했다. 루이즈는 이 무인도 한켠을 벗어나 걸으면 어딘가 과학기지 같은 것이라도 있을 거라 생각하고 떠나야 함을 알고 있다. 하지만 뤼도비크는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제 루이즈에게 뤼도비크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불결하고 역겨운 짐덩이일 뿐이다. 루이즈는 그녀가 더이상 뤼도비크를 사랑하지 않는단 걸 안다. 루이즈는 뤼도비크에게 일주일 후 돌아오겠단 메모를 남기고 떠나버린다. 그러니까 루이즈는 '갑자기 혼자가 된' 것이 아니라 '혼자가 되길 선택'한 것이다.

결국 루이즈는 걷고 걸어 텅빈 과학기지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식량과 난방을 얻었다. 혼자가 되길 선택한 루이즈가 안식을 조금 느낀 후. 죄책감이 몰려들었다. 뤼도비크를 버리고 혼자 살겠다고 떠나온 죄책감. 결국 이 죄책감은 이 소설 전반을 꿰뚫는 한 소재가 된다. 이 죄책감이 루이즈가 기자와의 인터뷰를 할 때 늘 어딘가 석연치 않은 모습을 보인 이유다. 루이즈는 과학기지에서 뤼도비크가 혼자 남아 죽어버렸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죄책감을 떨치는 일종의 방법이었다. 루이즈는 용기를 내서 다시 뤼도비크가 있는 곳으로 걷고 걸어갔다. 엉망진창인 기지 '40'에서 루이즈는 노인의 형상이 된 뤼도비크가 간신히 살아있는 걸 발견한다. 루이즈는 뤼도비크에게 미음을 먹이고. 곧 같이 이곳을 떠나자고 생각하며 잠에 들지만. 루이즈가 잠 든 동안, 뤼도비크는 죽어버리고 만다. 루이즈는 깨어나서 뤼도비크의 시체를 발견하고 억장이 무너지도록 운다. 그것은 그녀에게 더 큰 죄책감을 안겨주었다. 뤼도비크가 루이즈가 올 때까지 참고 참다가 이제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단 생각 때문에.

이렇게 전반부에는 참혹하면서 냉담한 클라이맥스들이 있다. 사실 책의 후반부에 가선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알 수 없었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 에서도 무인도에서 탈출한 후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매우 짧은데. 이 소설은 전반부와 후반부의 분량이 거의 비슷하다. 후반부의 이야기는 앞서 말했든 루이즈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모습과, 죄책감을 이겨내고 정상 생활에 복귀 하려는 루이즈의 처절한 모습을 적나라 하게 보여준다.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인 루이즈는 유명인사가 될 참이다. 그녀는 주변의 호의로 호사로운 호텔에서 객실 서비스를 누리기도 한다. 무인도에서의 혹독한 생활을 한 후 호텔에서 느끼는 이러한 호화로움에 루이즈는 취해보기도 하지만, 곧 죄책감이 그녀를 괴롭힌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려는 기자를 비롯한 모두에게 거짓말을 했다. 바로 뤼도비크가 죽은 걸 확인 한 후에 과학기지를 찾아 떠났다고 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뤼도비크를 혼자 내버려둔채 떠났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어서 모두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기자는 이 이야기에서 묘한 어색함을 느꼈지만, 가능한 이야기라 생각했다. 뤼도비크의 시체는 프랑스로 송환되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뤼도비크의 부모는 루이즈를 장례식에 초대한다. 루이즈의 죄책감은 이 장례식장에서 거의 폭발하게 된다. 그 날, 루이즈는 기자에게 모든 것을 밝히며,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이제 루이즈는 거짓말로 죄책감을 묻어둘 수가 없다.

이후 기자는 이것조차 이용해서 책 홍보에 쓰려하지만. 최종장에서 결국 루이즈가 자신의 이야길 스스로 집필하기 시작했단 걸 알 수 있다. 그녀는 소설가 조지 오웰이 소설을 쓰러 들렀던 곳에 머물면서 일상생활로 복귀하려는 노력을 한다. 무인도에서의 삶은 8개월이었다. 그녀는 조지오웰의 소설 <1984>를 읽으며 자신의 실수를 깨닫는다. 그건 자신이 계속해서 과거를 반추하며 내가 왜 뤼도비크를 떠나야했는지 정당화하려 했단 점이다. 루이즈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무인도에서의 혹독한 현실을 그녀가 생존을 위해 혼자 길을 떠나는 것이 매우 정당한 행동이었다고 위로하려 했다. 하지만 루이즈는 과거를 지우려는 노력을 하려 한다 해서 과거가 변하는 것은 아니란 걸 깨닫는다. "아픔에 이름을 붙여 똑바로 바라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쾌유의 징후이고, 쥐라에 온 이후부터 실제로 그렇다고 느껴온 것 처럼 성숙해가는 증거일 수 있다." 루이즈는 자신이 뤼도비크를 떠났다는 걸 스스로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치유를 얻을 수 있었다. 아무리 자신을 추궁하고 정당화 하려해도 결국 뤼도비크가 홀로 남겨졌었단 과거는 바뀌지 않는다. 어떠면 이유보다는 결과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 더 큰 법인지 모른다.

그렇게 루이즈가 깨달음을 얻고, 책을 쓰기 위한 에너지와 의지를 얻은 그 날은. 제이슨 호가 비글 해협으로 들어선지 정확히 1년이 된 날이었다. 루이즈는 구조 후 4개월이 지나서, 회복하게 되었다. 소설 마지막에.... 1년 전 두 남녀가 행복감에 도취되어 있었고, 앞으로 행복한 앞남만이 기약되어 있다고 확신했었다고 마무리 한 점이 개인적으로 매우 서글펐다. 그런 희망과 행복에 차 있었는데,1년후의 결과와 갖는 간극이 너무 커서 압도되는 느낌이다.

누군가 무인도에서 살아남았다고 하면. 소설 속 기자가 그랬던 것 처럼 '어떻게' 무인도에서 생존할 수 있었는지, 구조선을 발견했을 때의 심정은 어땠는지 등에 사람들의 이목이 쏠릴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어떻게' 살았는지 보다, '왜' 살았는지와 구조된 이후의 개인의 심경 변화 묘사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난 이런 부분이 참 좋았다. '대단한 이야기'의 뒤에는 개개인의 말못할 사정과 참혹한 심정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한 점.

그리고 그 '후일담'은 개인적으로 내가 처한 상황과 맞물리는 부분이 있어, 괜히 감화되며 읽을 수 있었다. 모든 선택엔 결과와 책임이 따른다는 흔한 말을. 더 와닿게 한 소설이다. 영화화 된다면 꼭 보고 싶은 작품이다.

<책 본문 인용>

아래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읽는 데에 주의를 요합니다.

어떤 우악스러운 손아귀가 자기들의 몸통을 움켜잡고 놓아주지 않는 느낌, 쓰라린 열기 같은 게 불덩이처럼 목구멍에서부터 거슬러 올라오는 느낌, 어떻게 해도 억제할 수 없는 전율이 두 사람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지나간다. 텅 빈 내포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두 사람은 용기를 잃지 말자고 서로 다독이며 이 혹독한 환경을 이겨내고자 가까스로 견뎌왔다. 그는 자기 기분이야 어떻든 루이즈의 사기가 꺾이지 않도록 농담도 이어가고자 노력했고 루이즈가 어떤 의식을 제안하면 그게 좀 우스꽝스럽더라도 가리지 않고 동참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겨우 이거란 말인가? 그

그냥 다 지긋지긋하다. 그저 너무 춥고 너무 혹독하다 싶을 뿐이다.

뤼도비크는 자기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왜 그런지는 스스로도 모른다. 그는 이 폭풍이 지나가고 나서도 자기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어떨지 속으로 자문해본다. 섬에서 빠져나가는 건? 두 사람은 정녕 그럴 수 있으리라고 믿고 싶었다.

하늘은 지상을 짓누르려는 것처럼 무겁게 내려와 있다. 이제부터는 이 새하얀 페이지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가야 한다. 그러면서 다시 뛰어오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피로가 몰려온다. 억누를 길 없는 낙심에 휘둘린다. 하지만 지금은 그에 맞설 만한 기력도 희망도 없다.

뤼도비크는 육체적으로도 병든 게 확실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신이 망가졌다는 점이다. 그가 병들기 시작한 것은 크루즈 선 사건 이후부터다. 산산조각이 나고 만 쾌속정의 꿈은 뤼도비크를 이 지경으로 주저앉힌 치명타였다. 더 이상은 버텨낼 힘이 없어진 것이다. ‘뤼도비크는 이제 금치산자나 마찬가지다.’ 루이즈는 차마 그의 상태를 이렇게까지 규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이미 그녀 안에서 확고해졌다. 루이즈로서는 이곳에서 벗어나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탐험 기지를 찾아내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

두 사람은 너무 심약해서 그쪽으로 가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 그 길을 함께 떠나기에는 뤼도비크의 병이 너무 깊어졌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는 살아남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거라는 게 훤히 내다보인다. 자기라도 살아야 한다. 그러니 떠나자. 그게 다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도 끝도 없는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뤼도비크를 여기 놔두고 혼자 떠나? 그렇다면 그를 죽음으로 내모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가 이토록 병들어 있는데. 설령 자기들 사이에 사랑이 식었다 해도 실오라기 같은 최소한의 연민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인가? 자기가 그 정도로 무시무시한 에고이즘의 괴물이었다는 말인가?

루이즈의 얼굴 위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뤼도비크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돌아누워 자기를 감싸 안은 후 귓가에 대고 딱 한마디만 속닥거려주면 좋겠다. 애무도 필요 없다. 그저 딱 한마디만. 내가 여기 엄연히 버티고 있지 않느냐고, 나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투덜거리는 어투라도 좋으니 제발 그런 의미를 담아 딱 한마디만. 다른 사람들도 이따금 그렇듯이 그녀는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해본다. 자신의 의지만이 숙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

루이즈는 다시 돌아누워 뤼도비크에게 바싹 달라붙는다. 돌연 속에서 욕지기가 올라온다. 그의 몸에서 역겨운 냄새가 난다. 그에게서 부랑자의 냄새가, 쓰레기통에서나 풍길 법한 악취가, 땀 냄새와 독한 지린내가, 오랫동안 씻지 않은 몸과 한 번도 갈아입지 않은 옷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그 냄새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지냈다는 게 더 놀랍다

그러자 넋두리를 늘어놓듯 묵은 반감이 되살아난다. 모든 건 자기에게만 맡겨두고 뤼도비크는 실제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이제는 자기도 더 이상 두 사람 역할을 떠안을 여력이 없다. 보잘것없는 식사를 나눠 먹는 것도 지쳤다. 더 이상 이런 몰락의 체취를 감당할 자신도 없다. 냄새는 거짓말을 안 하는 법이다. 가장 본능적인 감각이기 때문이다.

루이즈는 계속 생각을 이어간다. 결정적인 순간일수록 인간은 혼자다. 삶과 죽음 앞에서, 지엄한 결단 앞에서 타인은 더 이상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자기는 뤼도비크를 잊어야 한다. 오로지 살아남아야 한다. 이거야말로 가장 절대적인 그녀의 권리다.

루이즈는 잠시 망설이다 이렇게 덧붙인다.

‘몸조심하고 있어. 사랑해.’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거짓이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심지어 하찮아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가 가엾게 여겨지는 건 사실이다. 자기가 떠났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뤼도비크는 엄청난 충격에 빠져 허우적거리겠지. 사랑한다는 말은 그를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베푼 온정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그녀에게 뤼도비크는 더 이상 안중에도 없다. 단지 이런 문제에만 골몰할 뿐이다

가장 먼저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크게 부릅뜨고 있는 두 눈과 느리게 여닫히는 눈꺼풀이다. 그건 더 이상 뤼도비크가 아니다

지금 루이즈와 마주하고 있는 사람은 정체 모를 노인이다. 살이 쪽 빠진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다. 미소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다. 물론 말도 없다. 그저 눈만 끔뻑거릴 뿐이다

그런데도 루이즈는 뤼도비크의 부릅뜬 두 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세 알아차린다. 뤼도비크는 이제 여기 없다.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단지 그 어떤 힘을 통해서도 복구할 수 없는 세포 다발로만 남게 되었을 뿐. 그 세포 다발마저도 나중에는 분해되고 으스러져 형체도 없이 소멸하고 말겠지. 처음에는 뭔가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뤼도비크는 자기가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기와 다시 마주할 순간만을 애타게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결국 자기가 이곳에 돌아온 것을 보고서야 이제 더는 바랄 게 없다는 듯 순순히 죽음에 투항한 것일지도 모른다. 자기를 마지막으로 다시 본 후에야 그동안 힘겹게 막아온 최후의 빗장에서 스스로 물러난 것일지도 모른다. 문득 그녀에게 그런 생각이 스친다. 그렇다면 너무 가혹한 이야기 아닌가! 그래, 그가 도저히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루이즈는 모포 아래 묻혀 있는 그의 어깨에 손을 짚고 가볍게 흔들어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자기도 느끼지 못한 사이에 얼굴 위로 눈물이 흘러내린다.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이 목을 타고 흘러내려 옷섶까지 적신다.

뤼도비크는 자기가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기와 다시 마주할 순간만을 애타게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결국 자기가 이곳에 돌아온 것을 보고서야 이제 더는 바랄 게 없다는 듯 순순히 죽음에 투항한 것일지도 모른다. 자기를 마지막으로 다시 본 후에야 그동안 힘겹게 막아온 최후의 빗장에서 스스로 물러난 것일지도 모른다. 문득 그녀에게 그런 생각이 스친다. 그렇다면 너무 가혹한 이야기 아닌가! 그래, 그가 도저히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루이즈는 모포 아래 묻혀 있는 그의 어깨에 손을 짚고 가볍게 흔들어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자기도 느끼지 못한 사이에 얼굴 위로 눈물이 흘러내린다.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이 목을 타고 흘러내려 옷섶까지 적신다.

루이즈는 혼자 남게 된 슬픔에, 더 일찍 돌아오지 못한 가책으로,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막막해서, 끝없이 터져 나오려는 오열을 멈출 수 없다. 꽤 긴 시간이 흐르자 이제는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몸에 남은 수분이 모조리 눈물로, 한없는 슬픔의 물줄기가 되어 빠져나가고 만 것 같다. 눈물이 메마른 눈자위는 퉁퉁 부어오르고 머리에는 둔중한 두통이 내려앉는다.

아직 부릅뜨고 있는 뤼도비크의 눈은 벌써 불투명해지고 있다.

이윽고 루이즈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제 미처 풀어 헤칠 여유도 없었던 배낭을 챙겨 든다. 그러고는 곧바로 이 공간을 떠난다.

뤼도비크를 잃고 나서부터 루이즈에게는 당시 ‘40’에서 겪은 일이 생생한 기억의 한 장면으로 계속 남아 있다. 그 무렵에는 이 사내가 다시는 그립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살아남는 문제가 절박했으니까. 자기 자신의 생존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었으니까. 생존하는 일은 그녀의 모든 기력을 다 빨아들이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 보니 그게 설령 뤼도비크라 할지라도 다른 누군가에 대한 감정이나 애착을 남겨둘 여유가 없었다. 지금은 안전한 곳에 와 있다. 몸도 마음도 회복 중이다. 이 예전 사진을 오래도록 내려다보고 있으니 무서운 욕망에 몸이 떨려온다. 다시 이것들을 되찾고 싶다는 욕망. 그의 푸른 눈, 두툼한 입술, 자기를 으스러뜨리기라도 할 것처럼 억세게 끌어안던 팔, 그리고 늘 욕정에 굶주려 있는 듯한 그의 성기. 어마어마한 허기가 그녀를 휘감고는 앞가슴에서 출발하여 아랫배를 거쳐 가랑이 사이로 파고들어온다. 이제는 그래 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는 서글픔이 밀려든다. 뤼도비크를 다시 안고 싶다 해도 자기에게 남겨질 것은 그의 풍성한 육신이 아니라 유골에 지나지 않겠지

그녀가 여전히 암시조차 할 수 없는 단 하나의 대목은 처음으로 과학 기지를 향해 떠났다 돌아온 순간이다. 뤼도비크가 죽고 나서 떠났다는 말을 하는 동안 루이즈는 두 손을 예사롭지 않게 배배 꼬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피에르 이브는 그 상황의 전후에 뭔가 심상치 않은 우여곡절이 숨어 있으리라는 것을 감지해냈다. 그리하여 연인의 죽음으로 마음의 고통이 극에 달한 그 순간, 자기라면 어떻게 했을지 그 입장에 스스로를 이입해보았다. 정황상 모든 게 수긍할 만하다

실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했다고, 어떤 일이 있어도 정의롭게 살겠다는 어렸을 때의 꿈과 인간적인 도리마저도 저버렸다고 사실대로 털어놓는 게 옳겠지

그 순간 루이즈는 아직도 자기에게 평안이 찾아오려면 멀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람들이 뤼도비크를 떠올리며 추모할 때마다 기분이 참담해진다. 친구들이 추모의 말을 하다말고 머뭇거릴 만큼 그녀는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린다.

피에르 이브의 머릿속에는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처음부터 루이즈에게 뭔가 숨기는 구석이 있는 것 같더니 그 실상이 바로 이거로구나. 그러니까 그녀는 모든 사회적 규범과 기본 원칙, 심지어 연인에 대한 감정마저도 저버릴 수밖에 없었을 만큼 원초적인 생존 욕구와 대면해야 했던 셈이다

‘과거를 조작할 수 있는 자는 미래도 조작할 수 있다. 현재를 조작할 수 있는 자는 과거도 조작해낼 수 있다.’

그녀가 지난 시간에 대해 다시 적은 방식은 분명 조건이 유리했지만 도리어 자신의 죄책감만 한껏 부풀리는 쪽으로 흐르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오웰처럼 자기도 도망치고 말았다. 자기 아픔에 이름을 붙여 똑바로 바라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쾌유의 징후이고 쥐라에 온 이후부터 실제로 그렇다고 느껴온 것처럼 성숙해가는 증거일 수 있다.

루이즈는 이제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뉘우친다.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오세아니아 원주민들처럼 자기 과거가 함부로 침해당하도록 놔둘 수 없다.

앞으로 언젠가 스트롬니스 섬에서 그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날이 올까? 하지만 본능에 따른 선택을 놓고 이제 와서 다시금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다 부질없는 짓 아닐까? 그 문제에 대해 스스로 내사하고 엄격히 추궁해봐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또다시 자기를 모진 가책 속에 가두는 결과만 낳게 될지도. 어렸을 때 자기는 여주인공이 되기를 꿈꿨다. 하지만 현실은 늘 몽상을 조롱하는 법이다. 그러다 보니 환영을 먹고 자랐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때의 그 ‘꼬맹이’가 아니다.

더는 쥐라에서의 도피 생활이 필요치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차라리 서둘러 이곳을 떠나자. 완쾌한 환자가 몇 분이라도 병상에 더 누워 있어야 한다면 그것만큼 지겨운 일도 없는 법이다. 다시 생활전선으로 돌아가서 직장과 친구, 사랑을 되찾아보자.

오늘은 제이슨 호가 비글 해협으로 들어선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이다. 그 배에는 이 여행의 행복감에 도취된 두 명의 젊은 남녀가 타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 근방의 섬으로 향해가며 자기들에게 계속 행복한 앞날만 기약되어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벙커 다이어리
케빈 브룩스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전세계가 COVID-19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양식을 따르는 가운데, '감금'이라는 소재를 가진 <벙커 다이어리>를 대하는 자세는 사뭇 더 진지해진다. 의문의 남자 '그'에게 납치되어 벙커 공간에 감금된 16세 라이너스는 폐쇄된 공간, 한정된 자원, 암흑 및 시간과 내적 사투를 벌인다. 벙커에는 9살 제니, 70대 노인 러셀, 장년의 버드, 프레디, 젊은 여성 아냐 등이 추가로 잡혀들어온다. 옮긴이의 평을 빌려말하자면, 이들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생존 투쟁을 해나간다.

네이버 웹툰 <머니게임>에서도 배경공간 자체는 비슷했다. 어두운 공간에 복수의 사람들이 갇혀 있는 상황. 머니게임에서는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나갈 수 있고 상금도 탈 수 있었지만 <벙커 다이어리>는 주인공들이 납치 되었기 때문에 언제 나갈지, 나갈 수 있는지 전혀 미지수이다.

소설은 라이너스가 벙커 안에 주어진 공책에 일기를 쓰고 독자가 그 일기를 읽는 형식이다. 라이너스는 일기 자체를 의인화 하고 있고 자신을 납치한 '그'가 언젠가 그 일기를 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일기와 일정의 거리감을 유지하기도 한다. 라이너스가 "그는 대체 누구이고 왜 이런 행동을 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더이상 생각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이르는 지경이 되는 것. 그러한 묘사들이 인상깊었던 것 같다.

소설의 홍보문에서는 폭력, 강간, 감금 등의 단어로 이 소설의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어서 고어 소설인가 싶었지만. 알고보니 청소년 소설이라고 한다. 또 이 소설이 문제작이 된 데엔 꿈도 희망도 없는 암울한 소설의 전개 때문이라고 한다. 작가는 "십대는 어리지 않다."라고 하며 자기 소설을 꿈으로 칠하는 타협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확실히 마지막장까지 읽고 나니 왜 이런 구설수가 있었는지는 이해가 되지만, 애초에 '고어소설'인 줄 알고 읽었던 나로서는 오히려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던 탓인지 더 훌훌 읽히긴 했다.

옮긴이도 밝히듯 이 소설에서는 '그'에 대한 정보가 철저히 제한되어 있다. 탐정소설이나 호러소설을 주로 읽어왔던 나로서는 '그'에 대한 정보를 거의 신경쓰지 않는 이 소설이 신선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이런 장르는 최근에 들어 그렇게 낯선 것만은 아니다. 넷플릭스에 올라온 영화 <더 플랫폼>이 비슷한 구조였다. '그들'이 누구든간에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고 한정된 음식만 주어서 그들이 어떻게 붕괴되어 가는지 보고, 그걸 통해 사회 구조를 이해하려고 한다는 설정이었는데, 이 영화에서도 '그들'이 누구인지보다 감옥 안에 갇힌 사람들의 변모와 행동양식이 더 강조가 되었다.

감금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주인공의 내면의 목소리에 밀착하며 진행이 된다. 지금 돌이켜 보면 <벙커 다이어리>의 라이너스의 내면도 16세 소년이 가질 법한 내면으로 훌륭히 묘사했다. 아마 이미 성인이 된 작가가 청소년의 심리를 그 연령에 맞게 묘사하는 건 쉬운 작업은 아니었을 것 같다. 벙커에 갇힌 6명 중의 다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했다면 아마 상대적으로 공포감이 덜했을 것이고, 그래서 더 잔인한 범죄행위들이 표현되어야 했을지 모른다.

covid-19으로 실내 생활이 강요되는 지금, 실내생활의 무료함도 오히려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할만한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엠브리오 기담> 의 작가 야마시로 아사코 (aka 오쓰이치)의 새 작품이 출가됐다 하여 냅다 관심이 생겼는데.

표지에서만 봐도 잔잔한 일본 단편선인 게 너무 느껴져서 왠지 내 스타일이 아닐 것만 같은 거다.

그래도 <엠브리오 기담>을 재밌게 읽었다는 사람의 호평을 보고 구매를 결정.

읽어 보니 역시나 단편선인 거다.

분위기로 치자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다.

정통 환상 소설이나 호러 미스테리 소설 같은 느낌은 거의 없다고 봐야 좋다. 잔잔하게 시간 죽이기 위한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좋은 소설이겠다.

하지만 <엠브리오 기담>의 엔딩에서 본 것과 같은 여운이 남는 열린 결말도 없고.

여러개의 이야기가 절정에 이으러 떡밥 회수 되는 그러한 구성도 없다.

정말 짧고 흔한 구성의 이야기들이다.

그래도 곤드레만드레SF 와 같이 과학 미스테리 단편이 실려 있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시간 여행을 주제로 하여 긴박한 느낌을 조성하는 것은 현재 미스테리 소설들이 지향해야 할 방향과 일치한다.

다만, 시간 여행을 주제로 한 다른 소설들 보다 더 재미있다곤 느끼지 않았다.

고바야시 야스미의 <장난감 수리공>에 수록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가 훨씬 짜임새도 플롯도 탄탄하다.

(그러고보면 두 작품 모두 '술에 취한 상태'라는 소재가 있는 건 무슨 우연이지... )

알라딘 평점 9/10이던데, 내 체감으론 7.5 정도일까.

모자라지도 차지도 않는 필력과 이야기. 군더더기는 없지만 그렇다고 감동도 여운도 없다.

야마시로 아사코나 오쓰이치의 이름이 아까운 작품이다.

----------------------------------------------------------------------------------------

<스포일러 주의 - 결말 다 있음>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부부에게 어느 날 부터 중년 남성 귀신이 보이기 시작한다. 남편은 기겁하는 반면 아내는 탐정 처럼 이 귀신에게 숨겨진 사연을 찾아내고자 한다.

둘은 결국 인터넷 블로그를 이용하여 귀신 몽타주를 배포하고, 남자를 안다는 제보를 받아 이들을 찾아가는데.

결론(스포)은 부부가 식사 했던 식당에서 남자는 살해당했고, 그 살해 도구였던 '얼린 생선'에 남자의 혼이 묻어와 생선을 먹었던 부부에게 빙의가 된 것이었다. 살해를 저지른 식당 종업원이 잡히면서 사건 마무리. 귀신도 부부의 신체 구성성분이 자연 분해(?) 됨에 따라 사라지게 된다.

머리 없는 닭, 밤을 헤매다

열두살 친한 친구인 후코와 '나'. 후코는 이모가 머리를 친 닭이 머리 없이도 살아있는 걸 보고 갸륵히 여겨 이를 소중히 돌보고 키우는데. 후코는 이 이모에게도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이후 후코가 실종되고, '나' 는 후코를 찾기 위해 후코의 집에 갔다가 욕실에 있는 도끼자루를 보고 이모가 후코를 살해했음을 안다. 후코의 시체는 후코가 아끼던 머리 없는 닭에 의해 발견이 되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 하면 후코가 닭을 숨겨 다니는 봉지에 숨 구멍을 뚫어 놓았고, 이모는 이 봉지에 후코의 토막 시체를 넣고 유기 하려 하였는데, 숨구멍을 통해 후코의 피가 떨어진 것이 단서가 되어 경찰이 후코의 유기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라고 하는 것. 결국 후코의 머리는 발견이 되지 않은 채 끝이 난다.

곤드레만드레 SF

동기에게 수소문 하여 '나'의 연락처를 알아내 찾아온 후배 N은 자신이 과학 소설을 써보려 한다고 한다. 술에 곤드레만드레 취하면 시간에 대한 감각이 혼탁해져 시간 개념을 잃고 현재에서 벗어난 미래에 도달하는 것 처럼 느끼게 된다. 술에서 깨면 시간 개념도 돌아오고, 미래에서 본 것들까지 기억나 현실과 미래가 뒤죽 박죽으로 보인다. '나'는 N에게 이 주제를 이용해 어떻게 소설을 쓸지 제안 해 준다 - 즉 미래를 본 사람이 경마권을 구매해 부자가 된다는 내용.

후배 N은 나중에 실제로 부자가 되어 나타난다. 알고 보니 N의 여자친구가 실제로 그런 능력을 갖고 있고, 소설을 쓴단 건 핑계였으며, 어떻게 이 능력을 써먹을지 조언을 구하려 했단 것이다. 후배 N은 '나'에게 보답을 하고 싶어하는데. 어느 날 N은 '나'에게 여자친구가 N이 피 흘리며 죽는 미래를 봤다고 하며 허둥지둥 전화를 한다. '나'는 여자친구가 본 것과 같은 미래를 최대한 피하기 위해 집에서 나와 도망갈 것을 권하지만. 결국 N이 죽었다고 하는 경찰의 연락을 받는다. 나중에 '나'가 여자친구에게 자초지종을 듣길, 그건 N이 아니라 N과 매우 비슷하게 생긴 N의 동기 (이 친구가 N에게 '나'의 연락처를 준 인물이기도 하다)였고 N이 그를 집에 설득 시켜 데려와 식칼로 살해 한 후, 곤드레 만드레 취한 여자친구에게 이를 보게 하여 'N이 죽는 미래'를 뒤틀었다 (애초에 여자친구가 본 게 N인지 살해당한 동기인지 알 수도 없지만. 그렇게 미래는 만들어졌다). '나'와 여자친구는 사실 시간이 혼탁해지는 능력은 여자에게 있는 게 아니라 늘 칵테일을 제조해오던 N 본인에게 있던 건 아닐까 하고 의아해 하고 끝이 난다.

이불 속의 우주

소설가 '나'는 슬럼프에 빠진 동료 소설가 T가 십여년 슬럼프에서 벗어나 다시 좋은 작품을 출간한 비결을 궁금해하여 그를 식사에 초대한다. T는 이혼 후 중고장터에서 이부자리를 구매 하였는데, 이 이불안에 들어가면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환상세계가 펼쳐진다는 것. 여기서의 경험을 토대로 소설을 쓰니 슬럼프가 극복되었다는 것이다. 몇번의 만남을 거듭하며 '나'는 점차 현실 세계에서 동떨어져 환상 세계에 집착하는 T에게 위화감을 느끼고 경고를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데. 결국 T는 환상 세계에서 만난 인간인지 귀신인지 모를 여자를 따라 창작 도구를 챙겨 떠났고, 행방불명이 된다. 이 난리 통에 이부자리는 누가 처리 했는지 어디론가 또 사라진다.

아이의 얼굴

학창시절 친했던 여자친구 3명이 모두 자신들의 아이를 살해한 죄로 잡힌다. 아이를 가져 결혼을 준비중이던 주인공인 가오루에게 그들 중 한명인 유키에가 편지를 보낸다. 예전에 학창시절 왕따를 시켰던 이쿠타메 요리코가 저주라도 걸었는지, 자신들의 아이 얼굴 모습이 요리코와 같이 보였고 이 때문에 공포를 느껴 아이를 살해 했단 고백이었다. 직접적으로 괴롭히진 않았어도 무리 중 하나였던 가오루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경고 하기 위해 편지를 보낸 것이다. 요리코는 학창시절 괴롭힘을 이기지 못해 자살 했었다. 남편의 도움으로 공포를 이겨내며 가오루는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의 얼굴이 요리코와 점점 비슷해져 간다. 아이를 낳은지 몇주가 안되어서 가오루는 벌써 아이가 두려워 지기 시작 하지만. 결국 아이를 죽이지 않고 받아들이는 선택을 한다. 아이가 교통사고로 하마터면 죽을 뻔 했을 때 가오루가 몸을 던져 구해낸 것. 이 사건을 통해 가오루도 요리코를 딸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요리코를 닮은 딸도 의미심장하게 가오루를 받아들이는 표정을 짓는다.

무전기

지진사고로 어린 아들과 아내를 잃은 '나'. 이후 짐을 정리 하다가 아들이 갖고 놀던 무전기를 발견하는데. 이 무전기가 매체가 되어 밤이면 죽은 아들이 무전기를 통해 말을 걸어왔고, '나'는 아들과 남몰래 대화하며 그리움을 삭혀간다.

몇년이 흘러 남자는 직장 동료와 결혼을 결심하는데. 화재가 나서 집이 불타고 아들과의 유일한 연락처였던 무전기도 불타게 된다. 이걸 계기로 남자는 과거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새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한다.

이후 재혼한 여자와의 사이에서 딸이 태어나고, 그 딸은 무럭 무럭 자라는데 죽은 아들은 여전히 같은 나이에 머물러 있었던것을 안타깝게 여긴다. 어느 날 딸이 어디선가 찾았다며 불타 버린 무전기를 갖고 와서는 '내가 어릴 때 여기서 무슨 소리가 난 것 같았는데. 찌찌통이라고' 하며, 고장난 무전기가 화재 이후에도 소리를 냈던 것을 암시한다.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주인공 '나'는 이혼한 남편이 인파 속에서 자신의 딸과 동반 자살 (교통사고)을 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이후 계속 피폐하게 살다가, 어느 골목에서 '엄마'하고 부르는 환청을 듣는다. 사람들, 특히 '나'의 가족은 주인공이 심신미약으로 정신이 이상해진 거라 생각하지만. 경찰의 만류에도 무릎쓰고 '엄마' 소리가 나는 골목 건물로 들어가는데, 연결된 욕실 안에는 부모의 학대로 방치된 아이가 욕탕 안에 묶여 죽어가고 있었다. 이후 구조된 이 아이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 '엄마' 하는 소리는 왜 나한테만 들렸을까 하고 의아애한다.

아이들아, 잘 자요

학생들과 함께 대형 여객선에 탔던 '안나'는 여객선이 난파 당하는 바람에 아이들 앞에서 죽게 되고.

눈을 뜨니 천상이다. 안나의 영혼 인수, 수습 절차가 꼬인 것을 발견한 담당 천사 이사벨이 안나의 영혼을 밀접히 조사하고.

알고 보니 안나는 지상에서 살기로 한 '추락 천사'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인간이 아니었고, 그래서 일반적인 영혼 수습 절차를 거치지 않았던 것.

안나는 특별히 이사벨과 같이 인간의 영혼을 수습하고 그들의 기억을 영화로 만들어 신에게 상납하는 천사로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안나는 난파된 여객선에 가 아이들의 영혼을 수습하고. 이후에도 천사고 일하면서 많은 이들의 기억을 보며 안타까워한다.

인간의 삶이 신의 영화라고 하는 관점을 매우 가볍게, 그냥 마음씨 착하고 여린 안나의 위기감 없는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