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 그 외 각종 음식 관련 소설, 만화, 또는 푸드에세이까지. 음식과 이야기를 조합한 이색 스타일의 단문집 중 하나인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는 특히 푸드와 여자를 엮어낸 것이 특징적이다.

이 책이 에세이라고 한다면 그야 말로 무라카미 류는 희대의 방탕 카사노바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고, 모두 허구라고 한다면 이렇게나 많은 이야길 만들어냈다는 게 신기하구나 라는 감상을 일으켰을 것 같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진짠지 허군지). 무라카미 류는 일본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난교, 원조교제, 동성애, 폭력, 마약 등의 소재로 적나라하게 지적해 온 작가로 통한다. 그렇다고 하는 기본 지식이 없이 이 책을 펼쳤을 때의 충격이란.

 

 

일본과 서양을 자주 왕래하는 일본인 남자가 서양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보내며 먹고 겪은 여자들에 대한 단편적인 글들이 실려있다. 일단 여러 나라의 여러가지 음식이 소개 된다는 점이 흥미로웠고. 각각의 음식의 맛과 모양, 텍스쳐에 대한 풍부한 표현은 읽는 내내 상상력을 자극했다. 뭔진 몰라도 왠지 알 거 같은 그런 느낌이다. 너무 생생하게 표현돼 있으니까. "과연 어떤 음식인 걸까." 머릿 속으로 그 모양새를 떠올리고,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을 떠올린다.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에는 '이야기'가 있다. 무엇보다 그냥 이야기는 아니고, 재미가 있는 이야기. 좀처럼 볼 수 없을 거 같은 사치스러운 세상에 속하는 사람들이 향유하는 괴벽, 또는 희망이라곤 없는 밑바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퇴계적인 일상 등. 거기서 느껴지는 방황. 급속도의 경제 성장을 이룬 일본 사회의 색다른 이면을 엿보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것도 신기한 음식들과 함께. <심야식당>이나 <미식견문록>이 소박한 음식들을 소재로 한 데 비해, 사치스럽고 고급스러운 음식들을 상상하는 것도 흥미로웠고. (물론 소박한 음식도 등장하긴 한다)

 

 

미각 중추가 만족되는 것. 식탐이라는 본능적 욕구가 만족되는 순간,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 처럼 정욕이 거세어 지기도 하는 그런 현상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 많았다. 그게 푸드와 여자를 엮어서 책을 쓴 계기가 된 걸까. 예를 들어, 고기는 씹는 맛이라는 진부한 표현 대신에 "고기는 이빨로 맛을 보는 것"이라는 내용이 인상깊었다. 이빨로 맛을 보기에 동물적 감각이 자극되고, 심지어는 두뇌가 명쾌해져 과거, 현재, 미래도 보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한편 먹는 행위를 '죄악'으로 인식하는 구절을 자주 볼 수가 있었는데. 정말 그렇게 느껴지는 음식들이 많이 나온다. 양뇌 요리, 생선 이리(정액), 송아지 갈비살... 인간의 도덕성을 자극하는 음식들은. 작가가 그려낸 어두운 뒷세계의 모습과 맞물려 죄악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쯤 먹어보고 싶다'라는 욕구를 자극한다. 정말 죄악스러운 작품이다.

 

 

"남자는 이리를 입 속으로 밀어넣었다. 나도 먹었다. 늘 그렇듯이. 절대로 허락될 수 없는 것을 입에 넣는 기분이 든다. 죄 그 자체를 먹고 있는 기분이다. 그리고 죄를 먹고 우리는 원기를 되찾는다."

 

"이 피탄이라는 놈은 달걀 조리법으로서는 거의 기적에 가까워. 이 피탄을 우리 인류라고 한다면, 스크램블드에그는 백악기의 공룡이야."

 

"샤블리로 차가워진 목으로 생굴이 미끄러져 들어갈 때의 그 감촉이다. 그것은 정욕고가 마구 뒤섞여 있었다."

 

"양의 하얀 뇌는 혀 위에서 서늘하게 느껴진다. 여자의 새끼발가락 크기의 미끌미끌한 덩어리, 그 표면의 엷은 막을 씹으면, 질 좋은 올리브오일과 농축된 밀크를 섞은 듯한 맛이 입 속으로 퍼져나가면서 카레의 자극을 모두 지워버린다. 지운다기보다는 젤리 같은 막을 형성하여 맛과 향기를 봉쇄해버리는 것 같다. 그 순간 가치스런 불쾌감을 느끼면서 다시 카레 수프를 떠넣는다. 그것이 반복된다. 먹으면서 다른 어떤 것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콧방귀끼며 "누가 궁금하댔나" 하는 감상을 일으키는 에세이나, 재미도 감동도 없는 밋밋한 표현만 득실거리는 맛집 리뷰와는 전혀 다른, 진짜 감각을 자극하는 텍스트를 읽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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