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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카트 멘쉬크 그림 / 문학사상사 / 2012년 10월
평점 :
30세가 된 평범한 가정주부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일주일 넘게 잠을 자지 않아도 신체나 정신에 어떠한 이상도 생기지 않고
오히려 생명력이 넘치게 된 여성이 살아가는 일상을 단조롭게 그리고 있다.
남편과 아이에 대한 묘사는 지독할 정도로 냉정하다.
남편을 '이상하게' 생겼다고 생각하는 주제에 겉으로는 "당신은 미남"이라고 하는 이중적인 모습.
그 무미건조한 얼굴과 말투에서 삭막함이 느껴졌다.
남편을 닮은 아이를 보고 심지어 짜증까지 느끼는 것을 보면서...
단조롭기 그지없는 여성의 일상이 얼마나 끔찍한지 느껴보게 된다.
평소 얼굴엔 자신이 없어도 수영을 통해 다져진 몸매에는 자신이 있었던 주인공.
잠을 자지 않는 그녀는 점점 더 자기만의 세계에 파고든다.
그녀는 몇번이고 <안나 카레리나>를 읽으며 그녀에게 동화되어 간다.
그리고 몸에 넘치는 생명력과 아름다운 곡선에 매료된다.
그렇게 혼자만의 세계에 심취해
길 가에 홀로 차를 세워 놓고 있다가...
불현듯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현실로 돌아온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차 속에 꼼짝없이 갇힌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지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그런데, 그래서 그 다음 어떻게 됐는지?
괴한들이 흔드는 차 속에서 그렇게 이야기가 끝난다.
열린 결말.
독자에게 해석을 맡겨버리는 열린 결말.
그렇다고 결말에서 딱히 어떠한 교훈을 찾기가 어려운 작품이라 결국
본 내용으로 돌아가 작가의 의도를 찾아야 한다.
잠이 없어진다는 것은 축복일거라 생각했다. 주인공은 일생의 1/3을 차지하는 잠을 잃은 것을
삶의 확장의 기회로 삼는다.
그러나 이러한 '불균형'이 언젠가 대가를 치르도록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또한 갖고 있다.
괴한들이 흔드는 차 속에 갇힌 주인공은
그렇게 '불균형'을 유지하던 대가를 치르게 되기 때문에 눈물이 난다.
주어질 수 없는 축복을 누리고 나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 교훈인가.
우리가 축복으로 여길 만한 것들이 결국은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인가?
읽는 사람 각자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
그래서 열린 결말을 준 거겠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솔직히 이 결말은 너무 아니지 않은가? 볼일 보고 뒷처리 안 한 기분.
어이가 없어지는 기분.
General한 교훈은 그렇다치더라도.
내가 느낀 것은.
30대 평범한 가정 주부가 느끼는 무료함과 무기력함...
그런 것들이 무섭다고 느꼈다.
식구들 다 나가면 집에 홀로 있을 가정부들에게 갑자기 위로를 건네고 싶어졌다.
그 정도 수준의 '공감'을 느끼게 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