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사전 - 역사상 중요한 탐정의 목록과 해설
김봉석.윤영천.장경현 지음 / 프로파간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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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의 슈퍼 탐정들의 매력은 물론, 추리 작품의 계보까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하드보일드를 좋아한다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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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사전 - 역사상 중요한 탐정의 목록과 해설
김봉석.윤영천.장경현 지음 / 프로파간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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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유명 탐정들을 소개한 사전식 책이 나왔다. 「탐정사전」. 무려 저자도 우리나라 사람들.

 

 

 

책의 첫 문장은 셜록홈즈와 루팡에 대한 언급에서 시작한다. 명실상부 세계적으로 유명한 슈퍼 탐정 캐릭터들이다. 저자들은 어린 시절부터 미국과 유럽에서 탄생한 슈퍼 탐정들에 열광했다. 그리고 더 많은 탐정들이 유명세를 타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거라 기대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러한 안타까운 마음에서 저자들은 이 「탐정 사전」을 써 추리 소설의 계보를 잇는 다양한 탐정의 매력을 소개하고자 했다. 어쩌면 "이로 인해 말귀가 통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있었을지도. 

책은 탐정 이름을 가나다 순으로배열하고, 110명의 탐정에 대해 2-3페이지의 분량을 할당하고 있다. 탐정을 탄생시킨 작가, 탐정의 탄생 배경부터 성격, 주로 맡는 사건의 유형과 추리 스타일 등을 적고, 흥미가 돋는 탐정이 있다면 그 작품을 읽어볼 것을 권하고 있다. 탐정을 그린 삽화도 쏠쏠한 재미다. 애드거 앨런 포부터 코난 도일의 고전 추리 소설, 대실 해밋 등의 미국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 그리고 일본 히가시노 케이고의 유카와 마나부 교수까지,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을 아울러 다양한 탐정들을 소개 하고 있다. 그 계보 안에서 약 15%는 일본 소설이고, 나머지 부분에서 또 반은 하드보일드 계열의 탐정과 형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런가, 계보 자체가 그러한가. 

대륙을 넘나들며 유명세를 타는 이런 많은 탐정들 중에 내가 아는 건 정말 기껏해야 5명 정도다. 내가 얼마나 편협한 시선으로 추리소설을 봐 왔는게 하고 돌아보게 된다. 나는 아마 저자가 가장 안타까워 하는 유형의 독자일 것이다. 겨우 현대 일본 추리 소설의 일부분만을 알고 있는 독자. 지나간 옛 것들 안에도 무궁무진한 모험의 가능성이 있는데도, 그걸 알지 못하는 독자. 아마도 그런 유형. 

여러 명의 탐정의 추리 스타일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에선 다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직관 탐정'. '통찰력 있는 탐정'. 이런 추상적인 의미의 수식어들이 탐정에 대해 뭘 설명하고 있단 말인가 의아해졌다. 엄연히 탐정의 추리 스타일도 '분류'화 시키고 특정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다 유형화 되어있는가 보다. 

문제는, 친절히 멋진 탐정과 형사들에 대해 소개 하고 있지만, 내가 하드보일드 계열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그 여파를 받은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 역시 내 스타일이 아니라는 점..... 원래 나름대로 애독하는 추리소설 계열이 있는 사람에겐 좋은 추리 역사 공부가 될 것 같다. 아니면, 대실 해밋, 레이먼드 챈들러, 로스 맥도널드의 건 필수적으로 읽어봐야 아, 좀 읽었구나 하는 계열에 낄 수 있는 건가 하고 고민하게 되기도. 


결과적으로 「탐정 사전」을 읽으면서, 내 관심사나 취향에 맞을 걸로 보이는 아래의 책들을 읽어볼 계획을 짰다. 


「신주쿠 상어」. 오사와 아리마사.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하라 료.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가이도 다케루. 
「고토바 전설 살인사건」. 우치다 야스오. 
「토로스 & 토르소」. 크레이그 맥도널드.

 

 

 

 

 

이 책이 탐정들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정확하고 의미가 있는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기 위해선, 역시 내가 잘 아는 탐정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지를 기준점으로 보면 될 것 같았다(그래도 될까). 교고쿠도. 그에 대한 설명은 나무위키 같이 네티즌이 직접 정보를 구축하는 인터넷 사전에 있을 대부분의 설명을 다 담고 있다.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정보들이 저자들의 손에 의해 완성된 것인가 생각해볼 정도로. 잘 아는 탐정에 대해 누군가가 역시 잘 알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의 반가운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110명에 대해 다 느낄 수 있었더라면 더 인상적이었을텐데. 열심히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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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빛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5
이누이 루카 지음, 추지나 옮김 / 레드박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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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이 루카 <여름 빛>이란 책 표지를 보는 순간 떠오르는 책이 있다. 2012년에 출판사 프라하에서 먼저 출간된 <혈안>이다. <혈안>은 일본 거장 미스터리 작가 9인의 단편을 모은 모음집으로, 표지에는 무수한 눈알들을 비추고 있는 커다란 붉은 색 눈이 핏기 없는 표지 위에 덩그러니 그려져 있다. <여름 빛>의 표지의 파란 눈 역시 무언가를 비추고 있다. 냉소적인 눈빛을 보며 이누이 루카가 어떤 '호러'를 썼을지 궁금해졌다. 

<여름 빛>은 1부 눈 입 귀, 2부 이 귀 코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눈 입 귀 파트엔 「여름 빛」, 「쏙독새의 아침」, 「백 개의 불꽃」, 이 귀 코 파트에는 「이」, 「Out of This World」, 「바람, 레몬, 겨울의 끝」이라는 단편이 각각 실려있다. 

「여름 빛」은 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떨어져 친척집에 얹혀 지내는 소년 데쓰히코의 이야기다. 동네에는 얼굴 한쪽의 반점 때문에 저주 받은 아이 취급을 받는 다카시라는 소년이 있다. 데쓰히코는 다카시의 한쪽 눈이 때때로 푸른 불빛을 발하는 걸 발견한다. 그러다 둘은 동네 사람들의 핍박을 받는 암담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작정 기차에 오른다. 이들의 행선지에 어떤 미래가 예견되어 있는지 예감하는 다카시의 모습을 그려낸 작가의 필력이 압권이다.

「쏙독새의 아침」은 요양차 어느 의원의 저택에서 하숙하게 된 대학생 이시쿠로의 이야기다. 이시쿠로는 저택에서 늘 마스크로 입을 가리는 아리따운 소녀 '아키코'를 보고 반하게 되지만, 의원 구와타 부부에겐 소녀가 보이지 않는 듯하다. 저택에선 이따금 쏙독새의 괴상한 울음소리가 울려퍼진다.

「백 개의 불꽃」은 어여쁜 동생 마치를 질투하는 못 생긴 언니 기미의 이야기다. 기미의 귀 앞엔 작지만 움푹 파인 구멍이 있고, 기미는 이것이 '액운'의 관상이라 생각한다. 기미는 액운을 미운 동생 마치에게 넘기기 위해 외딴 동굴에서 백 일 동안 양초를 한 개씩 태우는 의식을 한다. 백 개의 양초가 다 탄 날, 마치에게 화마가 덮친다.

「이」에선 두 건장한 남자가 생선 전골을 맛있게 끓여먹는다. 구마노미치는 먹으면서 자신의 오른팔을 잃어야 했던 사건에 대해 남일 이야기 하듯이 털어놓기 시작한다. 어느 축제에서 금붕어 낚시를 통해 잡아온 금붕어가 화근이었다고 한다. 전골을 요리하는 뜨겁게 김 서린 주방의 분위기와 식욕, 괴생물과의 사투 장면에 대한 묘사가 매우 실감난다.

「Out of This World」엔 마술사 아버지의 탈출 마술 실패로 인해 몸에 화상을 입은 소년 다쿠가 등장한다. 다쿠는 아버지의 실패 이후 전학온 시골 마을에서 소년 마코토, 아키히코와 우정을 쌓아간다. 다쿠는 귀에서 또로롱 하는 방울 소리를 내고 공중부양을 하는 기묘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는 다쿠를 학대하는 듯하지만 다쿠는 아버지에게 마술을 배우던 즐거운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여름 방학. 다쿠는 파일럿이 되고 싶은 다쿠에게 자신처럼 하늘을 나는 경험을 선사한다. 

「바람, 레몬, 겨울의 끝」에서 노인 요양 보호사로 일하는 아야코는 '냄새'로 사람의 감정을 읽는다. 죽음을 앞둔 중년 여성 하쓰에에게서 나는 레몬 향기는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와 함께 인신매매 업에 종사할 수 밖에 없게 된 열다섯 소녀 시절의 일이다. 그 때 장기 매매 거래가 성사되기 전까지 자기 집에서 감시 해야 했던 외국인 소녀 '츠마'와의 일이었다. 츠마에게선 죽음의 냄새가 아니라 풀과 레몬의 향기가 끊임없이 났다. 아야코는 하쓰에를 통해 츠마에게서 나던 냄새의 수수께끼를 알게 된다. 


1부는 고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에도 기담으로 유명한 미야베 미유키 여사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2부는 현대를 배경으로 사람들의 어두운 일상 또한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각 부가 얼굴을 이루는 요소를 소재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도 독특한 구성이다. 무엇보다 모든 작품에서 이누이 루카의 뛰어난 감정 묘사력에 감탄하게 된다. 작가는 소년소녀, 성인 남녀 등 다양한 대상의 인간 심리를 깊게 이해하고 있다. 특히 각 인물이 처하게 되는 기기묘묘한 상황 설정 또한 고전적이면서도 참신한 결말을 보여준다. 소년의 성장 과정을 그린 듯한 「여름 빛」이 순간 사회소설로 변하는 대목은 소름이 돋는다. 고저택에 사는 유령소녀는 서양 유령저택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저주 의식과 자매의 비극이란 소재는 동화를 연상시킨다. 괴생물과 기묘한 식욕 탓에 드러나는 그로테스크한 인간 본성은 아야츠지 유키토의 「안구기담」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마술사같은 인생을 사는 불행한 소년의 이야기는 어린시절에 대한 신비롭고 어렴풋한 향수를 자극한다. 인신매매 범행에 가담한 소녀 시절의 기억을 불현듯 떠올리게 한 소재가 '냄새'였다는 설정도 얼굴 요소를 소재로 한다는 전체적인 책 구성에 있어서 위화감이 없이 작품에 잘 녹아들고 있다. 이런 흥미로운 구성들 안에서 애처롭고 안타까운 감정들이 스르르 녹아내리고 있는 것이 이 작가의 특징인가보다. 일종의 치유 효과를 주기까지 한다. 이누이 루카에게 "강림"이란 탄사를 보낸 건 과한 처사는 아니었을 거다. 다만 '여왕'이라는 단어는 잘 모르겠다. 호러 분야에 첫 등장한 사람에게 바로 여왕의 자리를 내주는 건 너무 파격적인 대우는 아닐런지. 이후에 나온 작품들도 호러 자체보다는 환상 소설 장르에 속하기 때문에 '호러 여왕'이란 별명이 이누이 루카에게 정착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누이 루카의 2010년 나오키 상 후보작 <그 날로 돌아가고 싶어>가 2015년 말에 국내에 출간되었다. 기세를 몰아 같은 시기에 <숲에 소원을 빌어요>라는 작품도 번역 출간되었다. 시간을 여행하고 추억을 되찾고 기원을 하는 등 환상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고 한다. 왠지 히가시노 케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연상시키고 있어, 어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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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선 가루카야 기담집
오노 후유미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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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귀」, 「귀담백경」, 「잔예」의 작가 오노 후유미의 신작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이 국내 출간되었다. 표지도 일본 표지 그대로 가져왔고, 제목도 거의 원제와 다르지 않다. 서점에서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기담'이란 제목에 먼저 눈이 갔고 그 다음 오노 후유미란 이름을 발견했을 때 약간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기존의 오노 후유미 호러 소설들과는 다른 이 산뜻하고 어딘가 노스탤직한 표지는 대체 뭐란 말이지. 이게 정말 오노 후유미의 작품이란 말인가. 라이트 소설이 아니고?



책 뒷표지에는 '공포와 아름다움이 포개지는 여섯 편의 기이한 이야기'라고 소개되어있다. 이 책의 기본은 역시 '호러'. 실려 있는 여섯 가지 이야기들은 모두 '집'안에서 일어나는 괴이한 현상에 대한 것으로, 오노 후유미의 전작 「잔예」와 비슷한 느낌을 많이 풍기고 있다. 특히 모든 집들이 낡은 옛 일본 가옥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벌어지는 미스테리한 현상도 특유의 공포감을 조성한다.

◎ 뒤뜰에서 
돌아가신 큰고모의 집으로 이사간 쇼코. 어릴적부터 고모가 들어가지 못하게 했던 금단의 방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서랍장을 앞에 세워 막아둔 장지문이 제멋대로 스르륵 열린다. 밤에는 금단의 방 안에서 누군가가 벽과 바닥을 긁어대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린다. 방 상태를 봐달라고 공무소의 구마다 씨를 불렀다. 그러자 '이런 일'의 전문가라며 젊은 남자를 데리고 왔다. '영선 가루카야' 라고 적힌 명함을 내미는 남자의 이름은 '오바나'이다. 

◎ 천장 위에 
고지는 어머니, 아내, 두 아이와 낡은 집에 살고 있다. 집이 낡아, 천장과 지붕 사이 공간을 뜯어내고 천장을 높였다. 그 때부터 치매 증상이 있었던 어머니가 "천장 위에 누가 있어. 기어 내려온다." 라는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윽고는 딸 나쓰키는 아무 것도 없는 천장 쪽에 손을 흔들고 인사 하는 증상을 보인다. 일이 점점 심각해지자 고지는 천장 공사 문제로 사람을 부른다. 구마다 씨는 전문가라며 오바나를 데리고 온다. 

◎ 방울 소리 
조모 집에 이사온 지 일 년. 유코는 비 오는 날, 방울 소리가 나며 골목길에 검은 상복을 입은 여자가 출몰하는 것을 목격했다. 비가 오고 젖어 있는데도 왠지 젖어있지 않은 듯 보이고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이 여자는 어떤 '규칙'을 가지고 골목을 배회하는 듯 하다. 유코는 이 여자가 자기 집에 들어오게 해선 안된다고 깨닫지만 어떻게 여자를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두려워하는 유코에게 친구 치에가 '전문가'를 소개시킨다고 헐레벌떡 뛰어온다. 상대는 '오바나'. 목수라고 한다. 

◎ 이형의 사람 
마나카는 아버지 일 때문에 시골의 낡은 집으로 이사 왔다. 시골의 문화란 이상하여, 마을 사람들이 제멋대로 다른 사람 집에 허물없이 드나드는 것이다. 마나카는 이것이 싫었다. 어느 날, 자기 집에 몰래 숨어들었다가 도망나가는 허름한 할아버지를 발견한다. 그런데 아무리 불평해도 그 할아버지는 마나카에게만 보이는 듯 하다. 이윽고 부모님도 마나카의 정신 건강을 걱정하기 시작한다. 증상이 심해질 무렵, 전문가가 집에 찾아온다. 영선 가루카야의 목수 오바나라고 한다. 

◎ 만조의 우물 
마리코는 남편 가즈시와 조모의 집인 오래 된 일본식 가옥에 이사 온다. 남편은 정원 꾸미기라는 새 취미가 생겨 일본식 정원을 현대식으로 직접 가꿔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정원 안에 있던 사당도 허물었다. 남편은 우물 위에 우물물이 연결되도록 멋지게 펌프를 설치 했다. 그 무렵부터 집안에서 이상한 악취가 풍기기 시작했다. 질척질척한 무언가가 악취를 풍기며 정원에서 집안 쪽으로 들어오려는 것 처럼 느껴졌다. 사당이 원인인 걸까. 이윽고 마리코는 집 안에 침입하려는 무서운 존재와 마주치고 만다. 정원이 원인인가 싶어 전문가를 불러야 했다. 하지만 전문가조차도 왜인지 무서워하며 도망가고 말았다.

◎ 우리 밖
부모님의 뜻을 어기고 고향을 떠나 멋대로 살다가 이혼하고 딸과 함께 고향에 돌아온 마미. 다 허물어져 가는 오래된 집에 이사를 왔다. 딸 아이를 유치원에 태워주고 직장에 가기 위해서 마련한 고물차가 자주 말썽을 부렸다. 이유없이 시동이 꺼지곤 했는데, 어느 날 마미는 뒷 좌석에서 어린아이가 부르는 목소리와 손길을 느끼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거 사고 차량 아닌가' 하고 생각했는데, 차에서 발생하는 기이한 문제는 자신은 물론 딸의 안전까지 위협하기에 이른다. 마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향 옛 지인과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시작한다. 결국 마미가 집에 불러야 했던 전문가는 '오바나'라는 목수였다.  




집 구조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인물이 처한 상황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게 만든다. 「잔예」에 이어 '집'이라는 소재에 대한 오노 후유미의 선택에 주목하게 되었는데, 다름 아니라 오노 후유미의 아버지가 건축 관련된 일을 했다고 한다. '집'에 담긴 사연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미스테리, 그리고 그것을 겪는 사람의 공포 심리. 「잔예」의 축소판이 여기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에 실려있다. 「잔예」와는 달리 따뜻하고 인간미가 느껴지는 엔딩을 갖고서.

또 비 내리는 장면이나 어두운 밀실이라는 공포 장치를 효과적으로 배치하여 실제로 문장을 읽는 동안 손끝이 차가워지는 감각을 이끌어낸 것 또한 감탄스럽다. 장면만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 흐름 또한 위화감없이 물흐르듯 전개되고 있다. 여고생, 독신 여성, 싱글맘 등 특정 인물의 감각을 그 입장과 시선에서 엇나가지 않게 조화롭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  인상깊다. 그래서 이 소설은 짧지만 스토리다운 스토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호러 소설에서 흔하게 생각할 수 있는 '해결사'는 영능력자나 승려, 아니면 간혹 탐정 정도가 될 수 있겠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책의 해결사는 목수이다. 그런가. '집'이 기이하다면 집의 전문가가 나서야 하는 건지도. 근본적인 쪽으로의 발상의 전환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완성시켰다. 그런데 작품 내에서는 이 목수, '오바나'에 대한 정보가 거의 밝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미스테리한 것은 이 오바나라는 남자 그 자체이다. 단지, 개인적으로는 '나쓰메 우인장'의 나쓰메와 같이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매력을 가진 어른일 거 같단 이미지가 떠올랐다. 다음엔 오바나란 남자의 이야기를 더 들려주는 후작이 나와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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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기 세계 - 내일을 위한 유토피아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 1
알렉시 제니 외 지음, 전미연 외 옮김 / 황소걸음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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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발전과 함께 기후변화, 식량부족, 화석연료 고갈, 빈부격차, 저성장, 인구불균형 등 각종 사회, 환경 문제가 기술의 탓이든 시대의 흐름이든 대두하고 말았지만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뚜렷한 해결책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을 일 같다. 게다가 현대인의 시공간 감각은 이런 문제들이 미래에 어떤 양상을 보일지에 대한 상상력에 어느 정도의 한계를 짓고 마는 듯 하다. <22세기 세계>는 현재의 문제들이 22 세기에 들어서서 어떻게 "구시대적인 문제"가 될 것이고, 인류의 뼈를 깎는 고통의 수혜자인 미래인들의 삶이 지금과 얼마나 동떨어있을지를 유쾌하고 다소 낙관적인 상상력으로 그려낸 책이다.


1장에서 알렉시 제니는 인간의 생활 공간이 한 사람 분의 공간인 유닛화 되고, 모든 물질이나 정보를 웹상에서 다운 받아 부분적으로 자급자족하는 미래인의 모습을 그렸다. 이런 미래에서 남녀 간의 만남 또한 웹상에서 가상으로 이루어지고, 태아(유기체라고 표현한다) 역시 '배달품목'이 된다. 
2장에서 장 가드레는 부유층과 서민층의 소득격차의 상한선이 법적으로 규제되는 세상을 묘사한다. 여기서는 '소득'이란 것의 정의를 다시 내리고, 부유층의 소득 재분배가 가져올 사회적 안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3장에서 이브 생토메는 제비뽑기를 통해 국회위원을 선출하는 미래 프랑스 사회를 그렸다. 의원은 남녀 성비가 균등하게 이루어지게 하고, 당첨의 기회를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제비뽑기가 진행된다. 이렇게 선출된 의원들은 안건 처리를 위해 과거시대보다 더 많은 국민들과 SNS로 대화하고 자유롭게 토론을 진행한다. 모든 것이 제비뽑기 투표를 하기 이전의 시대보다 더 활기차고 공정하게 돌아간다.
프랑수아 드 생글리는 4장에서 결혼제도가 폐지되고 핵가족의 개념마저 해체되어 1인가구가 당연시 되는 미래 프랑스의 모습을 그렸다. 이런 미래는 남녀 평등을 주장하면서도 전통적으로 여자에게만 가정일을 일임하게 되어버렸던 21세기 모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제도 폐지를 선택한다. 미래 사회에서 남녀라고 하는 구분은 사회적으로 의미가 없는 것이 된다. 아이의 양육 또한 적절한 남자와 여자가 입양을 통해 한 가정의 형태를 이루면서 진행된다. 이는 어린이의 성장에 있어서 최소한의 정서적 접촉이 필요하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맺어지는 사회적 약속이다. 가족이 해체되지만 1인가구는 공동 주택에서 생활하며 서로 존중하는 법을 익혀나간다.
5장에서 장 베라르는 높은 범죄율을 줄이기 위해 오히려 재수자의 비율을 줄이도록 하는 과감한 선택이 오히려 일반화 된 미래 사회를 그렸다. 도덕, 범죄, 처벌의 권한 등의 문제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많은 문헌들을 실었다.
6장에서는 영화에서 보던 것 처럼 허공을 가르는 초고속 대중교통이 구현화된 사회가 묘사된다. 미셸 파랑은 초고속 열차를 이용하기 위해 4인승 대중셔틀을 이용하고, 초소속 열차가 도심 곳곳을 막힘없이 빠르게 이동하는 모습을 그렸다. 허공이 대중교통의 길이 되면서 21세기까지 유지되었던 땅 위 도로들이 모두 주거지, 공용지, 상업지 등으로 교체된다. 
7장에서 마티외 칼라므는 농업 기술의 발전을 통해 로컬 푸드가 활발하게 유통되고 친환경적 농법이 가능해지는 미래 사회를 그렸다. 더불어 지나친 육류의 소비가 법으로 금지되고 과일과 채소의 배급이 의무화되어 사람들의 건강 또한 크게 개선된다. 뿐만 아니라 가축이나 어업 양식 등도 친환경적으로 변화하여 동물 생존권에 대한 인식이 반영된다.

8장은 앞의 1-7장과 달리 가장 비관적인 시선을 담고 있는 내용이다.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질병의 치료보다 예방이 주요 슬로건이 되는 22세기 사회가 된다. 자크 로드리게는 17세기 소설가 새뮤얼 버틀러의 소설 <에레혼>에 그려진 디스토피아가 실현됨을 우려한다. 질병의 예방이라는 과학의 진보로 인하여 질병은 '범죄'로 여겨지게 된다. 장애인이나 사소한 만성 질환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들의 '불운' 자체가 '범죄'가 된다. 그런 유전적 소양을 물려준 부모 또한 법적으로 죄인으로 인정된다. 자크는 <에레혼>의 장점에 대해 오늘날의 과학만능주의와 생물학 중심주의의 위험성을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강조하고 있다고 마무리 짓는다. 


이 책에서 취하고 있는 '선택'들이 어떤 정치 세력의 의견과 부합하는지, 정말로 이런 미래 모습이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와 상관없이, 저자들은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의 본질을 날카롭게 인지하고 생각해보게 해준다. 분명 남녀평등, 가족 해체, 환경파괴, 빈부격차 등은 논의를 피해서는 안되는 문제인 건 사실이지만 어떤 완벽한 하나의 해결책이 나올 거라 기대하기는 어려운 사안들이다. 이 책은 지식인들이 마음껏 상상하고 주장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줌으로써 나온 책이다. 어떤 선택을 취했을 때 나올 수 있는 부작용이나 실패에 대한 상상은 일단 접어두었다. 발상을 전환함으로써 맞이하게 될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의 모습에 대한 낙관적인 생각들이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써져 있다. "그게 말이 돼?" 라고 일단 따지고 들기 이전에 꿈 처럼 그냥 상상만 해봐도 즐거워지는 걸 경험해보면 좋겠다. 활발한 논의와 개선책 마련은 유연한 사고에서 먼저 시작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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