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선 가루카야 기담집
오노 후유미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시귀」, 「귀담백경」, 「잔예」의 작가 오노 후유미의 신작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이 국내 출간되었다. 표지도 일본 표지 그대로 가져왔고, 제목도 거의 원제와 다르지 않다. 서점에서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기담'이란 제목에 먼저 눈이 갔고 그 다음 오노 후유미란 이름을 발견했을 때 약간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기존의 오노 후유미 호러 소설들과는 다른 이 산뜻하고 어딘가 노스탤직한 표지는 대체 뭐란 말이지. 이게 정말 오노 후유미의 작품이란 말인가. 라이트 소설이 아니고?



책 뒷표지에는 '공포와 아름다움이 포개지는 여섯 편의 기이한 이야기'라고 소개되어있다. 이 책의 기본은 역시 '호러'. 실려 있는 여섯 가지 이야기들은 모두 '집'안에서 일어나는 괴이한 현상에 대한 것으로, 오노 후유미의 전작 「잔예」와 비슷한 느낌을 많이 풍기고 있다. 특히 모든 집들이 낡은 옛 일본 가옥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벌어지는 미스테리한 현상도 특유의 공포감을 조성한다.

◎ 뒤뜰에서 
돌아가신 큰고모의 집으로 이사간 쇼코. 어릴적부터 고모가 들어가지 못하게 했던 금단의 방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서랍장을 앞에 세워 막아둔 장지문이 제멋대로 스르륵 열린다. 밤에는 금단의 방 안에서 누군가가 벽과 바닥을 긁어대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린다. 방 상태를 봐달라고 공무소의 구마다 씨를 불렀다. 그러자 '이런 일'의 전문가라며 젊은 남자를 데리고 왔다. '영선 가루카야' 라고 적힌 명함을 내미는 남자의 이름은 '오바나'이다. 

◎ 천장 위에 
고지는 어머니, 아내, 두 아이와 낡은 집에 살고 있다. 집이 낡아, 천장과 지붕 사이 공간을 뜯어내고 천장을 높였다. 그 때부터 치매 증상이 있었던 어머니가 "천장 위에 누가 있어. 기어 내려온다." 라는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윽고는 딸 나쓰키는 아무 것도 없는 천장 쪽에 손을 흔들고 인사 하는 증상을 보인다. 일이 점점 심각해지자 고지는 천장 공사 문제로 사람을 부른다. 구마다 씨는 전문가라며 오바나를 데리고 온다. 

◎ 방울 소리 
조모 집에 이사온 지 일 년. 유코는 비 오는 날, 방울 소리가 나며 골목길에 검은 상복을 입은 여자가 출몰하는 것을 목격했다. 비가 오고 젖어 있는데도 왠지 젖어있지 않은 듯 보이고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이 여자는 어떤 '규칙'을 가지고 골목을 배회하는 듯 하다. 유코는 이 여자가 자기 집에 들어오게 해선 안된다고 깨닫지만 어떻게 여자를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두려워하는 유코에게 친구 치에가 '전문가'를 소개시킨다고 헐레벌떡 뛰어온다. 상대는 '오바나'. 목수라고 한다. 

◎ 이형의 사람 
마나카는 아버지 일 때문에 시골의 낡은 집으로 이사 왔다. 시골의 문화란 이상하여, 마을 사람들이 제멋대로 다른 사람 집에 허물없이 드나드는 것이다. 마나카는 이것이 싫었다. 어느 날, 자기 집에 몰래 숨어들었다가 도망나가는 허름한 할아버지를 발견한다. 그런데 아무리 불평해도 그 할아버지는 마나카에게만 보이는 듯 하다. 이윽고 부모님도 마나카의 정신 건강을 걱정하기 시작한다. 증상이 심해질 무렵, 전문가가 집에 찾아온다. 영선 가루카야의 목수 오바나라고 한다. 

◎ 만조의 우물 
마리코는 남편 가즈시와 조모의 집인 오래 된 일본식 가옥에 이사 온다. 남편은 정원 꾸미기라는 새 취미가 생겨 일본식 정원을 현대식으로 직접 가꿔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정원 안에 있던 사당도 허물었다. 남편은 우물 위에 우물물이 연결되도록 멋지게 펌프를 설치 했다. 그 무렵부터 집안에서 이상한 악취가 풍기기 시작했다. 질척질척한 무언가가 악취를 풍기며 정원에서 집안 쪽으로 들어오려는 것 처럼 느껴졌다. 사당이 원인인 걸까. 이윽고 마리코는 집 안에 침입하려는 무서운 존재와 마주치고 만다. 정원이 원인인가 싶어 전문가를 불러야 했다. 하지만 전문가조차도 왜인지 무서워하며 도망가고 말았다.

◎ 우리 밖
부모님의 뜻을 어기고 고향을 떠나 멋대로 살다가 이혼하고 딸과 함께 고향에 돌아온 마미. 다 허물어져 가는 오래된 집에 이사를 왔다. 딸 아이를 유치원에 태워주고 직장에 가기 위해서 마련한 고물차가 자주 말썽을 부렸다. 이유없이 시동이 꺼지곤 했는데, 어느 날 마미는 뒷 좌석에서 어린아이가 부르는 목소리와 손길을 느끼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거 사고 차량 아닌가' 하고 생각했는데, 차에서 발생하는 기이한 문제는 자신은 물론 딸의 안전까지 위협하기에 이른다. 마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향 옛 지인과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시작한다. 결국 마미가 집에 불러야 했던 전문가는 '오바나'라는 목수였다.  




집 구조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인물이 처한 상황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게 만든다. 「잔예」에 이어 '집'이라는 소재에 대한 오노 후유미의 선택에 주목하게 되었는데, 다름 아니라 오노 후유미의 아버지가 건축 관련된 일을 했다고 한다. '집'에 담긴 사연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미스테리, 그리고 그것을 겪는 사람의 공포 심리. 「잔예」의 축소판이 여기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에 실려있다. 「잔예」와는 달리 따뜻하고 인간미가 느껴지는 엔딩을 갖고서.

또 비 내리는 장면이나 어두운 밀실이라는 공포 장치를 효과적으로 배치하여 실제로 문장을 읽는 동안 손끝이 차가워지는 감각을 이끌어낸 것 또한 감탄스럽다. 장면만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 흐름 또한 위화감없이 물흐르듯 전개되고 있다. 여고생, 독신 여성, 싱글맘 등 특정 인물의 감각을 그 입장과 시선에서 엇나가지 않게 조화롭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  인상깊다. 그래서 이 소설은 짧지만 스토리다운 스토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호러 소설에서 흔하게 생각할 수 있는 '해결사'는 영능력자나 승려, 아니면 간혹 탐정 정도가 될 수 있겠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책의 해결사는 목수이다. 그런가. '집'이 기이하다면 집의 전문가가 나서야 하는 건지도. 근본적인 쪽으로의 발상의 전환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완성시켰다. 그런데 작품 내에서는 이 목수, '오바나'에 대한 정보가 거의 밝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미스테리한 것은 이 오바나라는 남자 그 자체이다. 단지, 개인적으로는 '나쓰메 우인장'의 나쓰메와 같이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매력을 가진 어른일 거 같단 이미지가 떠올랐다. 다음엔 오바나란 남자의 이야기를 더 들려주는 후작이 나와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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