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스토리콜렉터 46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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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미쓰다 월드'란 말을 듣곤 하지만 왜 그런 말이 있는 걸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던 때가 《사상학 탐정 - 1권》이 나왔을 때였다. 이후 《사관장+백사당》, 《노조키메》, 《괴담의 집》, 《흉가》 등이 출판되면서 납득하게 된다. 미쓰다의 소설은 지나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정형화 되어있다. 

《화가(まがやmagaya)》는 3부작인 '집 시리즈'의 두번째 이야기다. 평온해야 할 내 집 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혼령이나 원혼들이 찾아와 집 주인의 목숨을 노린다는 것이 기본 설정이다. 《화가》에서도 첫번째 시리즈 《흉가》와 마찬가지로  어린 중학생 남자아이가 괴기한 존재들에게 의문의 습격을 받고, 사건의 전모를 추리한 후, 기지를 발휘해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나간다. 

주인공 무나카타 코타로는 1년 전 사고로 양친을 잃고, 할머니와 치바를 떠나 무사시 나고이케라는 지역으로 이사를 온다. 처음 오는 동네이지만 어째서인지 골목과, 새로 살게 된 집의 모습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할머니가 일 하러 나간 동안 코타로는 집 안에서 이상한 기척을 느끼는데, 점차 기척이 명료해져 무시무시한 모습을 한 '검은 형체'가 되어 코타로를 쫓는다. 코타로는 마을의 동급생 '오이카와 레나'에게 모든 일을 고백하고, 레나의 도움으로 사실 자신이 이사온 집에서 예전에 일가족이 참살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심지어 그 사건은 지금도 '현재 진행중'인데, 이 저주를 끊기 위해 코타로와 레나는 작전을 짠다. 



전작 《흉가》가 이전 작품들에 비해 다소 심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화가》도 대동소이한 수준이다. 중반까지는 도저히 재미가 없어서 읽다 집어던지기 일쑤였다. "쭈욱쭈욱" 이니, "철퍽"이니 의성어를 사용한 장면 묘사도 어디 하나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고, 코타로가 모든 걸 추리하고 이야기의 결말이 밝혀지는 '15장 종지부'에 가서야 드디어 좀 읽는 맛이 난다. 전체적으로 사건의 전개나 결말이 너무 뻔하다. 대체 왜 처음 오는 동네가 낯설지 않게 여겨지는 것인가 하는 미스테리의 답은 너무나도 뻔하지 않겠나. 그리고 예상은 적중한다.

《흉가》나 《화가》가 패러랠 월드처럼 비슷한 전개를 보이는 건, '집 시리즈'니까 의도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미쓰다가 '집'을 소재로 한 소설은 '집 시리즈'만이 아닌데, 《기관-호러 작가가 사는 집》에서도 '인형장'이란 서양식 저택이 호러의 무대가 되었다. '집 시리즈' 이외의 작품들도 모두 무대나 인물 관계에 대한 설정이 하나 같이 비슷하다. 덕분에 《흉가》의 결말을 간파하는 건 식은 죽 먹기 수준이다. 다른 작품들에서는 '민속 신앙'이 주요 소재가 되고 있는데, 역시 밀폐된 '실내 공간'에서 의문의 존재에게 추격 당한다고 하는 상황은 여지없이 등장한다. 《노조키메》에선 누군가가 바라보는 시선이 뒤를 쫓아 오는 장면이 나오고, 《사관장+백사당》에서는 뱀신에 씌인 걸로 추정되는 기이한 여자에게 쫓기는 장면이 나오다. 《괴담의 집》에서는 '와레온나'라고 하는 괴물에게 쫓기던 소년이 저택에 숨어들어 대치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어쨌든 그는 (지겨우리만큼) 좋아하는 스타일을 거의 모든 작품에서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이런 '집'을 소재로 한 공포를 자주 묘사하는 건 미쓰다가 '서양 저택 괴담'에 매료되어 있으며, 관련 서적 편집을 맡은 적이 있다는('작가 시리즈'를 통해 유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국내에도 미쓰다의 옛날 작품까지 하나하나 번역되어 오면서 '미쓰다 월드'를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킬링 타임 수준인 옛 작품들이 최근에 번역되면서 기대에 못 미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지만, 
워낙 작품 수가 적은 '호러 시장'에서 미쓰다의 작품이 있어주는 것 자체가 의미있어 보인다. (...그래도 《사상학 탐정》은 최근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도조 겐야 시리즈보다 나아진 게 없다.) 미쓰다가 '도조 겐야 시리즈'나 '작가 시리즈'를 낼 생각 없이  한 동안 '사상학 탐정' 시리즈에만 전념하려는 생각이라면, 그것 참 편안한 활동이군요. 이미 당신에겐 충분한 네임 밸류가 있으니. 


본문 중>
「도쿄 도심에서도 꽤 떨어진 무사시 나고이케라는 낯선 지역에 있는 우누키 마을 히가시 4번지 거리가 낯익다니, 어떻게 생각해봐도 이상한 일이다.」 - page 9

「"나는 오이카와 레나야. 코타로도 다음 달부터 나고이케 중학교 1학년이지? 나도 그래. 말하자면 우린 이웃이자 동급생이야."」 - page 20

「"첫 번째는 '인형장'이라고 불리는 서양식 저택인데, 어떤 작가가 살고 있었지만 그 집을 무대로 한 괴기소설을 쓰는 동안에 머리가 이상해져서 그대로 행방불명되었대."」 - 63p

「고타로가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계속해서 팔이 뻗어 나온다. 코타로가....... 팔이 뻗어 나온다...... 팔이 뻗어 나온다. 팔이 뻗어 나온다. 쭈욱 하고 팔이 뻗어 나온다. 쭈욱쭈욱 하고 팔이 뻗어 나온다. 쭈욱쭈욱 
쭈욱쭈욱 쭈욱쭈욱 하고 팔이 뻗어나온다...... 어느샌가 뱀처럼 늘어난 팔이,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길이의 팔이 미닫이문 틈새에서 코타로의 발밑까지 뻗어 나와 있었다.」 - 115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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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수리공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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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시 야스미는 데뷔작  「장난감 수리공(1995)」으로 제2회 일본호러소설대상 단편상을 수상하고 베스트셀러 작가 계열에 오른다. 작가이자 공학자이기도 한 이력 때문에 과학적 지식이 뒷받침된 이야기를 통해 독특한 작품을 써온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국내에 출간된 《장난감 수리공》은 단편 〈장난감 수리공〉과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를 엮은 단편집이다. 

〈장난감 수리공〉은 남녀의 대화로 시작된다. 여자는 낮에 선글라스를 쓸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소녀 시절, 여자는 실수로 육교에서 굴러 업고 있던 남동생 미치오를 죽여버린다. 동생을 살리기 위해 여자는 '무엇이든 고치는 장난감 수리공'을 찾아간다. 소문에 의하면 수리공은 무엇이든지 한 번 완전히 분해한 후에 재조립해 고장나기 전과 똑같이 고친다고 하는데... 〈장난감 수리공〉은 괴물 같은 존재에 대한 생리적 공포를 자극하며, 마치 재촉하며 듣고 싶게 만드는 긴장감이 있는 이야기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에서 주인공 '지누'는 술집에서 생면부지의 남자를 만나는데 그는 '우리는 사실 아는 사이입니다'하고 말한다. 남자 '시노다'에 의하면 두 남자는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얻기 위해 뇌의 특정 부위를 파괴하는 수술을 했다. 사랑했던 여자 '데고나'를 살리기 위한 필사적인 모험이었던 것. 시노다와의 만남이 지누에게 비극의 씨앗이 된다. 인간 정신상태 묘사만으로도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대단한 소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에서 느껴지는 공포는 매우 원초적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가 단지 '뇌'가 일으키는 고정된 착각이라고 한다면 대체 나는 누구이고 우주는 뭐란 말인가. 세상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법칙과 규칙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미스테리를 마주하면 인간은 '물리적'으로 자신의 실체를 확인해 심적 안정을 얻고 싶어한다. 작가는 알고 있는 현실들이 무너져 내리는 초현실적 공포를 그대로 본문에 옮긴다. 「세계도 없다. 데고나도 없다. 그러한 공포를 잊기 위해 나는 내 몸을 손톱으로 긁어 상처를 낸다. "난 누구지." "넌 누구야." (214 p)」  이 단순명료한 질문이 위압감을 갖게 하는 것이 고바야시 이야기의 힘이다. 

책에 실린 두 단편과 비슷한 무대장치를 다른 소설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의 배경이 병원이라는 점에서 이즈미 교카의 《외과실》이 연상되고, 주인공이 자주 길을 잃는다는 설정은 야마시로 아사코의 《엠브리오 기담》을 연상시킨다. 또 자연법칙을 벗어난 생명력을 지닌 존재에 대한 묘사는 아야츠지 유키토의 단편 《재생》, 오츠 이치의 《암흑 동화》를 떠오르게 한다. 하나의 작품을 읽고 다른 작품들이 생각나는 건 매우 좋은 현상인데, '비교해 읽는 재미'가 있기 때문. 〈장난감 수리공〉은 어린이의 시선으로 그로테스트한 장면을 서슴없이 묘사하고 있어 더욱 극적이며, 오츠 이치, 히라야마 유메아키 등 그로테스크한 묘사에 한 가닥 하는 작가들과는 또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는 과학적 견해를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진행시켜 비극에 대한 몰입도를 증대시킨다.  

21세기 미스테리 소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홍콩 작가 찬호 께이는 "새로운 과학지식으로 작품을 지탱하거나 심지어 그런 과학적 원리를 주제로 삼아야 한다"라고 했는데. 만약 《장난감 수리공》이 미스테리 소설이었다면 찬호 께이의 견해에 딱 들어맞는 소설이지 않았을까. 
고바야시 야스미는 과학 지식을 내세운 호러소설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를 훌륭히 증명해 낸 작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소설은 추천. 두 번 추천. 세 번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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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론더링 - 국제금융업의 사각지대 기업소설 시리즈 8
다치바나 아키라 지음, 김준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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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파이낸셜 어드바이저로서 일본인의 자금세탁을 도우며 살아가는 구도 아키오. 어는 날 수제자와 같은 마코토의 소개로 와카바야시 레이코라는 여성의 의뢰를 받게 된다. 여자의 의뢰는 5억 엔의 자금을 해외 계좌를 이용해 세탁하는 것. 아키오가 아는 선에서도 레이코의 의뢰는 성립이 불가능한 것이었지만 아키오의 천재적인 수법으로 레이코는 목적을 달성하고 일본으로 떠난다. 이후 홍콩에 남아있는 아키오에게 구로키라는 야쿠자가 찾아와 레이코가 50억 엔을 들고 사라졌다고 하며 행방을 묻는다. 이제 아키오는 구로키에게 수수료를 받기로 하고 사라진 레이코를 찾기 위해 일본으로 향한다(수수료 보다도 어쨌든 미인이니까 찾고 보는 듯한데). 아키오와 레이코의 만남, 그리고 구로키의 방해는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그들을 몰고 가 충격적인 엔딩을 선사한다. 

《머니론더링》은 금융시장의 법칙을 현실적으로 묘사한 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버블 경제 시절의 금융 위기, 테러에 의해 미국 주식 시장이 막혀 버린 사건 등, 실제 현실을 배경으로 다양한 묘사가 나온다. 주로 아키오가 의뢰를 처리하기 위해 고객에게 설명하거나, 혹은 속으로 생각하는 내용들에서 국제 금융 시스템에 대한 다양한 지식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무엇보다 상황과 장소에 따라 비슷한 법도 다양하게 변모한다는 것을 이용해 
어떤 상황에도 '마스터 카드'를 내놓는 아키오의 모습은 전문가들을 매료시키기 충분하지 않나 싶다.

소개되는 금융 지식만 모아놓아도 책 한 권을 될 것 같지만 
《머니론더링》은 소설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겸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캐릭터를 매우 잘 잡아 놓았다. 교활한 지식을 갖고 있고 두뇌 회전도 빠르지만 고국을 떠나 유유자적하고 있는 아키오의 모습은 어딘가 신비로우면서도 시크하다. 그런 그가 실은 '그땐 그랬지'라고 하는 뼈저린 과거를 갖고 있다는 점은 그를 더욱 매력적인 고독남으로 만들어주기 충분하다. 아름다운 품격을 지닌 레이코의 모습 또한 뭇 남성 독자들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여성 독자에게는 어필하지 못할 것이다만). 게다가 레이코와는 반대로 귀여운 매력을 보이는 아키오의 여자친구 메이의 존재도 발랄한 분위기를 선사하고. 그 외 돈이 되면 뭐든 한다는 홍콩 사람의 특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아키오의 동료 창도 빼놓을 수 없는 씬스틸러다. 각 캐릭터의 성격, 이력, 관계성이 모두 저자의 인물 디자인 능력 디테일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토리 자체도 매우 견고하다. 형식으로 보자면 홍콩과 일본을 넘나드는 뒷 돈 세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한 편의 스릴러 소설과도 같다. 아키오는 레이코를 찾기 위해  레이코의 계좌부터 추적해 있을 만한 장소를 유추해내고, 흥신소를 통해 알게 된 내용들을 덧붙여 레이코의 의식 흐름을 더듬어 나가려고 한다. 어떤 현상에 근본적인 의구심을 품고 형사적 추리를 해나가는 아키오의 모습에 빨려들어가지 않을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추리소설 완성. 게다가 야쿠자와 불법 전문가들이 한데 뭉쳐 돈을 쫓는 상황이 이야기를 스피드하고 스릴있게 전개시킨다. 게다가 우리가 좋아하는 "끝난 줄 알았는데 안 끝났어!" 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한편 야쿠자 구로키의 눈을 피해 아키오와 레이코가 만나는 장면은 7080 유치한 성인 애니메이션 같기는 해도 나름 애잔하고 몽환적이었다. 

안타까운 건 차라리 이 책이 적어도 두 개의 이야기가 되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점이다. 저자 다치바나 씨는 금융지식을 너무나도 자랑하고 싶었던 걸까. 치밀해도 너무 치밀했다. 많은 분량을 할애해 설명하고 있는 금융지식들은 결국엔 한 데 뭉치기를 거부하고, 이야기 진행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내용으로도 여겨지지 않을 정도가 되어 버린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아키오는 자기 논리를 합리화 시키기 위해 무슨 금융 규칙이든 구구절절 설명하고 긍정할 수가 있다. '그게 가능하다고?' 라고 묻기 이전에, '설명은 됐고 좀 움직여!' 하고 싶어지기도(우리는 444페이지나 읽어야 했어). 

두번째로 안타까운 건 아무튼 전문 용어에 각주를 다는 데 인색하다는 점. 오프쇼어, 텍스헤이븐 등 사전에 설명되어 있는 단어 이외에도 본문에 각주가 달려 있다면 이해하기 좋았을텐데. 역자가 직접 각주를 달아 출판 하는 책들의 경우와 비교하면, 아무튼 용어나 배경지식 설명이 부족한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머니론더링》의 매력적인 점은 끝이 없다. 홍콩과 일본 거리의 모습을 진짜로 보고 있는 것 처럼 실감나게 묘사한 것도 흥미롭다. 또 금융 이야기 속에 아키오나 레이코 등의 과거 이야기를 삽입해 놓은 것도 스토리를 풍부하게 한다. 이 소설을 '스릴러' 장르의 한 소설로 본다면, 금융과 추적이란 소재를 엮은 것도 참신한 편이 아닐지. 인물간의 약간은 비현실적이고 유치한 대화법을 개선하면 좀 더 성숙한 문학 작품이 될 거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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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 제25회 시바타 렌자부로상 수상작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츠요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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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일어난 큰 "여자행원 공금횡령사건"의 배경에는 항상 남자가 있다고 한다. 이 속설의 배경엔 어떤 이야기가 있는 것일까. 저자 가쿠다 미쓰요는 상상력을 발휘해 횡령 사건과 관련된 스토리를 짜고 각양각색의 등장인물을 창조해냈다. 섬세하고 일상적인 언어로 인물의 의식 흐름을 매우 부드럽게 진행시킴으로써, 평범한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종이달> 속 
등장인물들의 인생은 낭비벽 또는 근검절약이라는 성향 때문에 다양한 모습으로 꼬여가기 시작한다. 교보문고에서는 이 책을 "80년대 말부터 일본 경기의 흐름을 따라 이동하는 이 소설은 큰 규모의 현금을 손에 쥐게 된 고령자들과 자식 세대에 벌어지는 갈등을 그리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지만. 그것보단 남녀관계가 금전적 관계에 갇혀버려 열정을 잃고 순간적 쾌락만을 좇게 되는 상황이 더 중점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야기는 주인공 리카와 그 주변 인물들의 내면을 번갈아 가며 묘사하는데, 특히 죄의식과 행복감 속에서 번민하는 리카의 감정이 잘 묘사된다.

시간제 은행원으로 근무하던 은행에서 주인공 우메자와 리카는 1억원을 횡령하고 태국으로 도주한다. 낯선 땅에서 리카는 평범한 주부에서 범죄자가 되기 까지를 회상하며 암담한 기분이 된다. 횡령 사건을 일으키기 훨씬 전. 리카는 남편의 경제력에 의존하다가 취직을 하면서 미래에 대한 소소한 행복을 그려보지만 마사후미의 태도는 미지근하다. 부부관계에 소홀하고 경제력 우위를 선점하고 싶어하는 마사후미를 보며 리카는 점점 위화감을 느껴가는데. 이윽고 마사후미가 장기 해외 출장을 떠나자, 리카는 취직 후 만난 내연남 고타에게 거액을 투자하며 자존감을 되찾으려 하고, 큰 돈을 들여 둘이 함께 보내는 시간을 오랫동안 꿈꿔 온 '로맨스'라 믿어 의심치 않게 된다. 남녀의 즐거운 시절을 뜻하는 '종이달'은 바로 리카가 고타로 인해 느끼는 꿈과 같은 시간들을 상징한다.

고타와의 연애를 위해 리카가 고객에게서 횡령한 돈은 1억엔이 되도록 늘어난다. 처음엔 잠깐 쓰고 빌리려고 했건만 씀씀이는 커져갔다. 무감각히 돈을 쓰다가, 횡령액을 계산해볼 때는 공포에 휩싸이곤 한다. 리카의 모습에서 보여지는 건 '돈'이 보여주는 일시적 마력에 정신을 홀린 여자이다. 리카에게 빚지는 걸 무안해 하던 내연남마저 '돈의 재미'에 맛들려 화려한 생활을 당연히 여기기 시작하는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종이달>을 계속 읽다보면, 남녀의 대화가 의도적인 것 처럼 대부분 '돈 얘기'에만 집중되었단 걸 느끼게 된다.  그런 텅 빈 일상 속에서 리카를 비롯한 인물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허무함은 극적으로 도드라져 보인다. 리카의 전 남자친구였던 가즈키는 숨막히게 바가지를 긁는 아내 마키코의 "아내한테 돈 벌어오란 소릴 잘도 하네" 하는 말에 귀를 닫아 버린다. 가장 기가 찬 부분은 가즈키가 내연녀 무스미에게 아침상을 차려주며 "어제 얻어먹은 답례"라고 하는 부분인데, 비약하자면 이 장면은 '기브 앤 테이크'가 일상 깊숙히 내면화되어 있음을 보여준다(이 얼마나 째째한 대화인지). 

이 책을 '경제 관념이 없는 어린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라고 하는 건 너무 단순한 평가는 아닐는지. 등장인물 모두가 '돈'에 지배받을 수 밖에 없게 된 상황은 그들 각각이 갖고 있는 심리적인 '결핍'상태가 원인이라는 걸 들여다 보게 된다. 부부관계가 결여되어 있어 리카는 자기 것도 아닌 돈으로 고타와의 일상을 샀다. 부유했던 어린 시절에 누린 만큼 딸에게 해주지 못해 바가지를 긁는 가즈키의 부인이라든지. 이혼해 헤어진 딸을 만날 때마다 환심을 사려고 거액을 쓰는 엄마 주조 아키라든지. 해결해야 할 공허함을 메꾸는 것이 '돈'이 되어버린 것 또한 안타까운 현실로 보여진다. 
이들에게 필요했던 건 경제관념 이전에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해결하고자 하는 태도와, 주변의 적극적인 관심이다. 횡령 사건 처럼 남의 일 같은 범죄는 결국 무관심이 판치는 환경 어디에서나 쉽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라고, 가쿠다는 말 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본문 중>

「"당신이 말하는 해준다느니 해줄 수 없다느니 하는 게 물리적인 것이라면 당신도 일을 하는 게 어때?" 라고 말하자, 마키코는 울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아내한테 돈 벌어오란 소릴 잘도 하네, 그런 말을 되풀이 하면서. 마키코를 울린 후 가즈키는 마키코의 이야기를 듣지 않기로 했다.」

「걸핏하면 마사후미는 리카가 한 달에 버는 돈이 얼마나 적은지 언급했다. 외국 여행은 물론 가계에도 대출금 상환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넌지시 둘러서 말한다.」

「리카가 선술집에서 한턱 낸 다음에 굳이 시내 고급 초밥집에 데리고 간 것과 같다. 그는 리카에게 깨닫게 하고 싶은 것이다. 업무 내용도, 경제력도, 자기가 리카보다 훨씬 위라는 것을.」

「어제 얻어먹은 답례라며 가즈키가 아침 식사를 만들었다. 요리를 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무의식중에 자기가 하는 일을 인정받은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50만, 70만, 카드 결제 때문에 '빌렸던' 금액은 100만, 200만으로 점점 늘어났다. 무엇을 사고, 무엇에 사용했다는 명확한 기억이 없어도 있으면 있는대로 돈은 줄어갔다.」

「"하지만 나는 무엇을 사달라든가 해달라는 말 한 번도 한 적 없어요." "그러네." 리카는 당황하며 말했다.」

「내가 너한테 지금까지 얼마나 썼지? 빌려준 돈, 물건을 산 돈, 먹은 돈, 교통비, 맨션 월세, 차 구입비, 유지비, 주식 자금, 그만큼 돈을 받아놓고, 오늘 만나고 싶다는 단 한 번의 부탁도 거절하는 거지. 리카는 처음으로 고타에게 분노를 느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자유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무엇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던 걸까? 지금 내가 맛보고 있는 이 엄청나게 큰 자유는 스스로는 벌 수 없을 만큼의 큰돈을 쓰고 난 뒤에 얻는 것일까, 아니면 돌아갈 곳도 예금통장도 모두 놓아버린 지금이어서 느낄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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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트 - 변화를 이끄는 행동 리더십
허미니아 아이바라 지음, 이영래 옮김 / 시그마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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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웃사이트는 사람들이 상급 관리자로 진전하는 과정에서 겪는 실패의 원인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구조적으로 분석을 행하고 있어, 독자 개인의 문제와 연결시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리더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능력을 이해하지 못해 문제를 겪는다. 책 첫 장에서 저자는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등에 대해 외부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며 "아웃사이트"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단어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서 점차 이해되기 시작한다.

 

리더에게 필요한 자질 중 가장 강조되는 것이 네트워크(인맥)를 키우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많은 새로운 개인적 성격이나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 또 어떤 사람은 기술적 자질이야 말로 중요한 것이고 네트워크 따위는 허무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네트워크는 새로운 영감을 주고 기회와 가능성을 확대시키는 기회가 된다. 네트워크를 강조하는 허미니아의 태도는 지나쳐 보일 정도이다. 저자가 리더로 전환되는 과도기에 있어서 이전 기술들의 중요성을 너무 간과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 보완하듯, 허미니아는 각자에게 요구되는 여러 개의 역할이 있을 때 역할 전환을 빠르고 완벽하게 해내는 것을 어색하게 여기기 때문에 실패를 겪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역할들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과는 달라 보인다. 결국엔 리더는 리더인 만큼 할 줄 아는 것이 많아져야 한다는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후반부에 "리더" 로서의 전환을 이루는 방법이 논의된다. 책은 "닮고 싶은 리더를 찾고 그처럼 행동하라"고 한다. 누군가를 닮기 위해 행동을 먼저 하는 것이 그 자아를 갖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가 전기를 읽는 것도 이런 이유가 될 수 있다. 또한 이 책이 "해도 안 된다면 떠날 때가 된 것" 이라고 말하는 것이 매력 포인트다. 간부는 자신이 전환기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면 자기 자신과 회사, 팀의 입장을 모두 고려한 후 떠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외적 조치가 반드시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내적 성찰이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세 가지만 기억하자. 리더로서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어색해 하지 말라. 네트워크 형성을 중시해라. 되고 싶은 리더처럼 행동하라.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무리한 지침들을 요구하지만 아웃사이트가 제시하는 것들은 보다 자율적이고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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