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 다이어리
케빈 브룩스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전세계가 COVID-19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양식을 따르는 가운데, '감금'이라는 소재를 가진 <벙커 다이어리>를 대하는 자세는 사뭇 더 진지해진다. 의문의 남자 '그'에게 납치되어 벙커 공간에 감금된 16세 라이너스는 폐쇄된 공간, 한정된 자원, 암흑 및 시간과 내적 사투를 벌인다. 벙커에는 9살 제니, 70대 노인 러셀, 장년의 버드, 프레디, 젊은 여성 아냐 등이 추가로 잡혀들어온다. 옮긴이의 평을 빌려말하자면, 이들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생존 투쟁을 해나간다.

네이버 웹툰 <머니게임>에서도 배경공간 자체는 비슷했다. 어두운 공간에 복수의 사람들이 갇혀 있는 상황. 머니게임에서는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나갈 수 있고 상금도 탈 수 있었지만 <벙커 다이어리>는 주인공들이 납치 되었기 때문에 언제 나갈지, 나갈 수 있는지 전혀 미지수이다.

소설은 라이너스가 벙커 안에 주어진 공책에 일기를 쓰고 독자가 그 일기를 읽는 형식이다. 라이너스는 일기 자체를 의인화 하고 있고 자신을 납치한 '그'가 언젠가 그 일기를 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일기와 일정의 거리감을 유지하기도 한다. 라이너스가 "그는 대체 누구이고 왜 이런 행동을 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더이상 생각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이르는 지경이 되는 것. 그러한 묘사들이 인상깊었던 것 같다.

소설의 홍보문에서는 폭력, 강간, 감금 등의 단어로 이 소설의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어서 고어 소설인가 싶었지만. 알고보니 청소년 소설이라고 한다. 또 이 소설이 문제작이 된 데엔 꿈도 희망도 없는 암울한 소설의 전개 때문이라고 한다. 작가는 "십대는 어리지 않다."라고 하며 자기 소설을 꿈으로 칠하는 타협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확실히 마지막장까지 읽고 나니 왜 이런 구설수가 있었는지는 이해가 되지만, 애초에 '고어소설'인 줄 알고 읽었던 나로서는 오히려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던 탓인지 더 훌훌 읽히긴 했다.

옮긴이도 밝히듯 이 소설에서는 '그'에 대한 정보가 철저히 제한되어 있다. 탐정소설이나 호러소설을 주로 읽어왔던 나로서는 '그'에 대한 정보를 거의 신경쓰지 않는 이 소설이 신선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이런 장르는 최근에 들어 그렇게 낯선 것만은 아니다. 넷플릭스에 올라온 영화 <더 플랫폼>이 비슷한 구조였다. '그들'이 누구든간에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고 한정된 음식만 주어서 그들이 어떻게 붕괴되어 가는지 보고, 그걸 통해 사회 구조를 이해하려고 한다는 설정이었는데, 이 영화에서도 '그들'이 누구인지보다 감옥 안에 갇힌 사람들의 변모와 행동양식이 더 강조가 되었다.

감금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주인공의 내면의 목소리에 밀착하며 진행이 된다. 지금 돌이켜 보면 <벙커 다이어리>의 라이너스의 내면도 16세 소년이 가질 법한 내면으로 훌륭히 묘사했다. 아마 이미 성인이 된 작가가 청소년의 심리를 그 연령에 맞게 묘사하는 건 쉬운 작업은 아니었을 것 같다. 벙커에 갇힌 6명 중의 다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했다면 아마 상대적으로 공포감이 덜했을 것이고, 그래서 더 잔인한 범죄행위들이 표현되어야 했을지 모른다.

covid-19으로 실내 생활이 강요되는 지금, 실내생활의 무료함도 오히려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할만한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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