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 국선변호사 세상과 사람을 보다
정혜진 지음 / 미래의창 / 201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새하얀 색에 의자하나 덩그러이 있는 표지, 그리고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라는 한문장의 짧은 제목은 읽고 있던 수많은 책을 잠시 쉬고,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었다. 표지를 넘기기 전에 어떤 내용일까
상상하다가 ‘국선변호사’라는 말을 듣고 혹시나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변호사의 감동적인 이야기로 가득차 있을까?하는 호기심이 든 것도 잠시 페이지 끝을 넘기면서 접한
이야기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정혜진 변호사의 이야기를 따라갈 수록, 내 머릿속은 질문으로 가득찼다. 이는 적어도 내게 있어 새로운 세상에
대해 알려준다는 증표, 달리 말하면 좋은 서적이라는 반증이다.
_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는 15년간 기자활동을 하다가 국선변호사가 된 정혜진 변호사의 일대기도 감동적인 이야기모음집도 아니다. 오히려 ‘빙산의 일각에서 본 풍경’이라는
머리말처럼 작가의 이야기는 풍경을 담아내는 정직한 시선을 가진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들 같다. 국선변호사라고
하면, 인권변호사라는 몽타주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는
돈없고 가난하고, 불합리한 대우를 받은 사람을 위한 국가적인 복지라는 느낌이 먼저 든다
_
하지만 그녀가 맡은 수많은 사건의 이야기들은 섣부른 동정과 판단을 담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가 수임한 사건들에 대해 정혜진 변호사의 시선은 담담하게 사건의 배경과 경과를 기록한다.
피고인에 대한 내용들 역시, 변호인으로서 그들의 범죄를 감싸지 않고 법률적이나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과 행동에 대해서는 정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감정적인 부분은 정혜진 변호사 자신의
감정과 실수, 혹은 사건이후의 느낌에 관한 건에 국한한다). 신기한점은, 이러한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그녀가 기록하는 모든 이야기들의 내용은 건조하지 않고, 알 수 없는 온기가 느껴진다는 점이다.
_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다 느낀것은, 개별사건들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인간으로서의 도리’와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대한 정혜진 변호사의 진지한 고민이 이야기속에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피고인들의 범죄의 연유를
따라가보면 개인적인 문제도 있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구조적인 문제가 자리한다. 구조적인 문제의 해결이 변호사 한사람의 목소리로 해결될리 만무 하지만, 그녀의
형사재판의 이야기를 통해 이런 세상이 있고, 그런 세상을 한명의 독자들에게라도 알리고 싶었던 변호사로서의
양심의 의무가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에 담겨있다. 재테크와 경쟁, 변화의 속도에 관한 서적의 숲에서, 이 책은 내게 다시 한번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생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