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 규장 A. W. 토저 마이티 시리즈 16
A. W. 토저 지음, 이용복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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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초대교회 당시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켰는지 당신은 상상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그 이름에는 나름대로 합당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또 그 이름에는 한 순간에 폭발할 수도 있는 엄청난 파괴력이 있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들리면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든지 아니면 그리스도께 거역하든지 태도를 표명해야 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이시라고 믿으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그분을 경배했다. 왜냐하면 치유와 위로와 평안과 새 삶이 그리스도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pp.254-255.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는 규장출판사의 A. W. 토저 '마이티 시리즈'의 16번째 책이다.

이 책은 총 17개의 챕터로 되어 있는 데,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자, 구원의 진리를 이해하는 자, 죄인의 삶의 방식에서 해방된 자,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소망을 품는 자, 성령의 능력으로 서로 사랑하는 자, 모든 악한 것을 버리는 자, 성경이 진리를 자신에게 비추는 자, 하나님나라의 왕 같은 제사장, 땅에 살지만 하늘을 향해 걸어가는 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 하나님나라의 법을 따르는 자, 어떤 해도 당하지 않는 존재,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는 자, 세상 사람과 다를 수 밖에 없는 존재,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을 즐거워하는 자, 모든 두려움을 주께 맡기는 자, 진리를위해 싸우는 존재로 그리스도인을 말하고 있다.

이 17가지의 챕터  중 마지막 1개를 제외하곤 베드로 전서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으며, 마지막 1개는 유다서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자신들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존재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확고히 해준다. 사실 우리 인류의 오랜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이다. 아이덴티티. 즉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질문인 것이다. 왜 이 땅에 태어나고 살았던 사람들이 이 질문이 계속해서 했을까? 이 질문이 어떤 유익을 끼쳤을까?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자신을 찾는 것이었고, 자신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가늠해주는 살아갈 이유가 되었다고 생각해본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 를 읽으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그중에 몇가지만 말해보고 싶다.

첫째는 "믿음과 행함의 균형이 있어야 된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히브리서 11장을 말하면서 사람들은 흔히 '믿음 장'이라고 하는데 또한 '행함 장'으로 불려야 한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믿음과 행함 즉 순종은 갈매기의 두 날개와 같다. "믿음은 있는데 행함이 없다면 제자리에서 뱅뱅 돌면서 날아오르지 못한다. 행함이 있는데 믿음이 없다면 그 행함은 죽은 것이다. 믿음과 행함의 두 날개가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날아오른다"(p.89)

최근 한국교회에서 부산의 모교회의 프로그램을 많이 수용하여 훈련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두 날개'이다. 믿음과 행함을 말하는 두 날개는 아닐지라도 날아오르는 것은 분명코 두 날개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두번째는 "순전한 말씀을 사모하라"는 것으로 베드로 전서 2:2절의 말씀이다. 현대시대에 불순물이 섞인 말씀을 먹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단들 외에도 그리스도인들이라 불리우는 사람들 가운데도 너무나 많은 듯하다. 한국교회에 들리는 참담한 소식중 하나는 무슨 무슨 이단이 성도들을 빼간다더라, 이번에 모 교회가 어떤 단체 때문에 넘어갔다더라 하는 말이다. 토저는 그러한 상황에 단호히 외친다 "순수한 말씀만 먹어라"(pp.114-115)

말씀을 가르치는 나 자신이 온전히 순전한 말씀만을 주었었는가? 하는 질문을 해보게 하였다.  

 

세번째는 선물과 선물을 주신 분이 분리되어서는 안되며, 선물이 아니라 선물을 주신 분에 집중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사실 성경 전반을 통해서 느끼는 진리인데, 설교를 듣거나 설교자료들을 보다보면 '선물'에 집중 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인물 설교에서 이런 경우가 많은 듯하다. 성도들이 바로 자라지 못하는 것은 목회자들의 잘못이다. 성도들은 목회자들이 주는 꼴을 통해 자라나기 때문이다. 물론 양들도 스스로 음식을 가려 먹을 수 있도록, 좋은 꼴을 먹을 수 있도록 해야하지만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이 목자의 사명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네번째는 영적거류민을 다루는 9챕터를 통해서는 우리의 본향에 대한 소망을 확고히 가질 수 있었다.  p.228의 여호와 중인에 대해 '러셀주의자들'이라 부르는 부분에서는 나 역시 앞으로 이렇게 말해야 겠다고 생각을 했다. 바로 뒤의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부분의 설명은 난해하여 그동안 이 부분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던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p.239의 토머스 아 켐피스의 말 "당신은 죽을 때 어떤 존재이기를 원하는가  바로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 삶 속에서 애쓰고 힘쓰는 사람은 정말로 지혜롭고 복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이 말 속에는 "앞으로 남은 때에는 지난 때에 살았던 것처럼 살지 말라"라는 뜻이 담겨 있다. 사명선언문 혹은 주님 앞에 이를 때에 나의 묘비명에 어떤 글을 남길 것인가? 에 대한 물음도 가져본다.  

 

예수님의 수제자로 불리우던 사람, 예수님보다 나이가 많았고, 결혼을 했었던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형제와 함께 예수님을 좇았던.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많은 이적과 기적을 체험했고,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했던 사람.

베드로.

신약성경 베드로서를 수십차례나 읽으면서도 부분 부분 설교를 하고 말씀을 인용했었지만, 이 말씀을 통해서 '이것이 그리스도이다'라는 주제로 설교를 준비하신, 그래서 가짜가 아닌 진짜 그리스도인, 반쪽자리가 아닌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사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바랬던 토저목사님의 말씀연구와 깊은 이해 그리고 통찰은 가히 놀라웠다. 이렇게 말씀을 바라보고 통찰하고 연구해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것이 토저목사님을 통해 들려주는 아버지의 음성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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