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1 - 개정판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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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 때까지 일하며 그날그날 필요한 일을 해내는 조용한 여인이었다. 쓸데없는 수다를 떨 만한 여유도 없어 장에도 잘 가지 않았다.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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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 겨울에 살아남았지만 참담한 소식이 너무 많았다. 어린아이들은 잠들었다가 깨어나지 못했고, 여자아이들은 국수 한 그릇에 순결을 팔았으며, 노인들은 젊은이들만이라도 끼니를 때우라고 죽을 자리를 찾아 몰래 떠났다.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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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자야. 아낙네 삶이라는 게 끝없이 일하고 고생하는 기다. 고생 끝에 더 큰 고생이 온다꼬. 각오하고 있는게 낫다. 이제 니도 여자가 된다 아이가. 그러니까 이 말을 해야겠다. (중략). 어쨌거나 고생을 각오하고 그냥 열심히 일하면 된데이. 세상천지에 딱한 여인네를 돌봐줄 ㅏ람은 없다. 믿을 거는 자신뿐인 기라”.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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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는 선자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여자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고 싶었다.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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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를 만나기 전에는 자기 생활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다. 하숙인들의 우스운 습관들, 어머니 밑에서 일하는 자매들과 나눈 대화들,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 마음속 사소한 궁금증을 터놓을 때가 없었다.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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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끔찍하게 잃은 후, 하나님과 신학에 대해 배운 내용이 더욱 생생하고 개인적인 것이 되었다. 믿음이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성격이 완전히 변했다. 따듯한 방이 식었다 해도 여전히 같은 방인 것처럼 말이다. p.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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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희는 혼인하는 것보다 도시에 사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다. 혼인은 끔찍한 일 같았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죽을 때까지 거의 일만 했다. 복희는 어머니의 웃음소리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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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조선인만 살 수 있는 곳이야”. 요셉이 웃으며 말했다. “집 같지는 않지?”.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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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들은 어머니를 잃었고 또 아버지도 잃었대이. 내가 그 애들한테 더 잘해줬어야 했다. 혼인시킬라고 애썼어야 했는데 우리 한테는 돈이 없었다. 여인네는 고생할 팔자를 타고났데이. 우리네는 고생할 수밖에 없데이”.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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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가까이 넘어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새벽 5시까지 한달음에 다 읽었다. 이렇게 한달음에 다 본 게 얼마 만인지. 책을 사두고도 읽지 못하던 차에 새로운 판본으로 세상에 나와 읽게 되었다. 드라마로도 제작되고 전 세계가 주목한 책이었는데 너무 늦게 본 듯하다. 저자가 30년간 구상하고, 그 사이 원고를 다시 쓰기까지 했다는 이 소설이 왜 많은 사람이 주목하고 있는지는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처음에는 어떻게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이런 디테일을 잡아낼 수 있었는가가 놀라웠고, 아직 읽지는 않았으나 2부에서 벌어질 차별과 혐오의 상처를 딛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적 흐름 속에서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그녀였기에 또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다. 소설 속에는 대를 이어 강인한 정신으로 평생을 일하고 수고스럽게, 고생 끝에 더 큰 고생이 오는 이야기들을 여러 여인의 삶을 통해 그대로 보여준다. 1930년대 강경애의 소설, 그리고 몇 년 전 화제가 되었던 내 어머니의 이야기등에서도 봐왔던 이야기 임에도, 조선인이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는 여러 국내 상황들,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간 그곳에서 돼지우리보다 못한 곳에서 살아가는 삶에 관한 이야기들은 그간 크게 생각해보지 못한 이야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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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 어머니와 그의 처 양진, 그의 딸 선자의 이야기가 전체 소설의 줄기를 이루고 있으나, 읽는 내내 어린 시절 부모를 다 여의고 식모살이를 하던 복희와 덕희의 삶은 더 눈에 밟힌다. 대체로 1부의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의 정점에서 6.25 전쟁 발발 직후까지로 선자의 아들들 이야기로 아마 2부로 이어져 나갈 테지만 이야기의 중심에서 온갖 놀라운 상황들을 견디며 분투해 왔을 선자의 이야기를 기대한다. 문장을 여러 개 옮긴 것은 저 짧은 문장들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삶의 모습을 너무도 잘 표현해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 주 2부가 출간될 예정인데 이번엔 받자마자 읽어야겠다. 한참 더디던 책 읽기를 한 번에 날려주었는데. 왠지 주위에 안 읽은 사람이 나밖에 없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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