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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
도메니코 스타르노네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21년 8월
평점 :
표지 때문에, 그리고 줌파 라히리가 번역하여 소개한 책이라는 것에 솔깃해서 이 책을 바로 사서 읽었다. 자르지 않고서는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묶여진 상태, 그러나 결코 자르면 헐거워진 구두로 제 기능을 상실한 채 버려야 하고 새구두를 사서 신어야 할 것 같은. 그런데 그게 단순히 새로 사서 신으면 그만인 구두가 아니라 인생이라면.. 그것도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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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끈 이지만, 읽고 나면 몇 개의 실타래가 이리저리 엉켜져 있는 상태인 것 같은 소설이다. 직조되어 이쁘게 태피스트리의 형태를 갖추기를 누구나 기대했지만, 어느 순간 그런 청사진은 멀리 날아가 버린. 그래서인지 늘 소설을 읽고 살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오랜만에 소설을 본 것 같다는 희한한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아주 사실에 가까운 이야기였음에도 재구성된 이야기가 들려주는 방식 때문인지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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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부(권)로 구성된 각각의 이야기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부분은 2부(권) 3장으로 이루어진 부분이다. 각 권마다 화자를 달리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1권에서 2권으로 넘어가는 순간 이야기는 몇 십 년을 훌쩍 너머 두 부부의 삽십대의 삶에서 칠십대의 삶으로 훌쩍 너머와 있다. 그리고 마지막 권에서 이 긴 시간은 어떻게 흘렀는지, 내 삶이라 하는 것이 순전히 내 몸, 내 마음 하나만이 아님을 오랜만에 상기시키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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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렇게 저마다의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그녀의 돌이킬 수 없지만 다른 길이 없어 그와 함께 받아들인 삶의 결과의 끝에 일어난 일은 얼마든지 현실세계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저자가 그 과정에서 두 아이에게 일어난 일들, 경험들을 이야기 하는 부분은 파괴적이다. 뭐랄까, 우리의 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삶의 총체라면 실은 그 안에서 일어난 무수한 일들이 어떤 식으로 부서지고, 멍이 들고, 상처를 입은 채 그렇게 포장되어 있는지 소설의 유려한 필체와 직접적인 단어로 바로 이야기가 되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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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줌파라히리의 ‘축복받은 집’을 펼쳐들었을 때, 그 단편소설이 내게 주었던 그 역설적 이야기가 떠올랐는데, 가족에 관한 소설은 여러 모습을 띄고 있지만 대부분 이를테면 어떤 ‘순간’이나 ‘단면’만을 다루더라도 여러 이야기를 할 수 가 있는데 ‘끈’의 경우에는 긴 삶의 과정의 끝에 일어난 한 사건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살면서 통과해야 할 욕망과 도덕의 결과는 이렇게 직접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한자리에서 바로 읽어 내려갈 정도로 금방 읽혀 내려가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 소설을 어떻게 읽을지 궁금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