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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모범소설집 1~2 - 전2권 ㅣ 창비세계문학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민용태 옮김 / 창비 / 202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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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집으로 자리를 잡은 오랜 출판사들이 몇 곳 있다. 창비세계문학은 이러한 세계문학의 시장에 뒤늦게 출발한 후발주자이다. 덕분에 나도 아 이 전집만큼은 시작부터 때를 같이하여 보조를 맞춰 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출간된 도서는 가장 최근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작품으로 80번째 작품이다. 금색공책 이후 빈티지 스타일의 표지도 갈아입고나니 창비세계문학 2.0으로 나아간 듯 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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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소설집]은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돈끼호떼]의 저자 세르반떼스가 쓴 단편소설집이다. 2개의 낱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총 12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존재하는지 조차 몰랐는데 ‘모범소설집’ 이라니 제목부터가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서야 표지를 보니 12편의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음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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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소설집]은 [돈끼호떼]와 마찬가지로 책이 시작되기 전, 오자에 관한 증명,감정가, 허가장, 특허장, 헌사 등이 가득하다. 지금 만약 국가가 한 작가의 책을 이렇게 검열하고 허가를 한다 생각하면 그 책은 아무리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나왔다 할지라도 ‘선전용’이라는 느낌을 갖기가 쉬운데 이 책도 보면 여러 사람이 크게 ‘미풍양속과 기독교 신앙’에 반하는 요소가 있는지 확인하고 그결과를 증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런 형식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그렇다면 세르반떼스는 이 책에서 정말 할말을 다 할 수 있었을까 하는 맘이 들면서 읽기 시작했다. 그는 어떻게 허가증을 받았을까? 자기검열과 제한된 표현으로 쓴걸까 싶었는데, 작가가 책머리에서 친애하는 독자들에게 남긴 글에서 말한대로 절제되고 기독교적 언변과 사려깊은 어조로 얼마나 자유로운 글을 쓸 수 있는지 증명한 소설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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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세르반떼스가 언급하고, 이후 문학자들이 언급한 대로 근대소설, 단편소설의 효시로 불린다. 물론 세르반떼스 이전에도 작가들은 많았을테지만 아마도 형식적인 면에서 또한 에스파냐 문학 역사상 그 궤도를 여러면에서 달리한 소설이 이 [모범소설집]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돈끼호테 1]을 쓸때부터 그는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돈끼호테 2]가 발간되기 전 66세의 나이에 12편의 단편을 모은 이 소설집이 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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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신이 글을 쓰면서 즐겼던 이모든 것을 독자들을 향해 맘껏 이야기속에서 즐겨달라고 한다. 세르반떼스가 자신의 재주를 다 쏟아 냈다는 이 작품들은 그시절 아마도 새로운 방식으로 독자에게 중요한 것을 알려주고 즐겁게 한 소설이었을 것이다. 풍성한 언어와 놀라운 창의력으로 쓰여진 노력과 정성이 깃든 책이기에 재미와 즐거움 만으로도 충분하다. 회화나 음악에서와 마찬가지로 신화와 신학의 이야기 혹은 환상과 이상적 이야기에서 벗어나 드디어 동시대인의 이야기를 담게 되면서 사실성에 밀착된 이야기를 소설적 모호함을 더함으로써 진실을 부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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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편의 이야기는 절반은 집시, 도둑, 선원, 가난한 고학생 등의 하층민의 이야기를 다루기도 하고, 절반은 지체가 높은 귀족들의 이야기를 다루기도 한다. 그 이야기들은 때로는 자유를, 때로는 명예를 이야기 하기도 하는데 이후 많은 작가들이 집시-카르멘, 에메랄드- 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많은 소설들의 원형이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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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부터 우리는 전래동화를 듣고 자랐고 그 이야기는 대부분 권선징악을 다루는 해피엔딩 이야기로 모든 것을 기억한다. 세르반떼스의 이 소설은 어떨까? 이 소설의 다수는 ‘~에 관한 소설’로 제목조차 아주 평범하다. 요즘 소설에서 제목만으로는 끝까지 보지 않고서는 짐작을 할 수 없는 소설들과는 달리 [모범작품집]속 소설들은 ‘집시소녀에 관한 소설’, ‘마음씨 착한 연인에 관한 소설’, ‘유리석사에 관한 소설’등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일반적으로 기승전결을 다루긴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 속에서 명문장이 나오고 하다보니 결론에 반전이 없더라도 그 자체로 즐거움을 준다. 그것은 역자가 작품해설에서 언급한대로 사람들은 각각의 사람들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모양지어지기 때문에 그 안에서 다양하게 벌어지는 일을 보고 입장을 달리해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에 이야기가 하나의 진솔함과 성찰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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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반떼스는 에스파냐가 무적함대로 세계를 이끌었던 필리페 2세 시대를 살아간 사람이었고, 레빤또 해전에 직접 참여를 하고 납치를 당한 경험도 있고, 감옥에서 돈끼호떼를 집필하기도 했고 그의 경험들은 고스란히 글로 나타났다. ‘린꼬네떼와 꼬르다띠오에 관한 소설’에서 약간의 냉소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아주 평범한 문장으로 감각을 일깨우고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문장에 까지 이른다. 이 소설에서 ‘집시에 관한 이야기’와 ‘유리석사에 관한 이야기’ , ‘개들의 대화’에서 세르반떼스의 이러한 면을 엿볼 수 있다. 빈정거림으로 혹은 생각없이 말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질문을 되돌아보게 하는데 그 표현은 일침이나 논증으로 말하지 않는다. 소설속 그 혹은 그녀들은 정확한 대답, 한번 더 반박하고자 할 여지를 주지 않고 한차원 높게, 한걸음 더 나아간 말을 들려줌으로서 읽는 독자로 하여금 세상을 간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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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여는 소설처럼 각각의 소설 자체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정리를 해도 되지만, 세르반떼스의 소설이 갖는 역사적 문학적 위치와 그가 자신의 소설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수많은 상황과 수많은 사람을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는 의미에서도 다시 한번 현실을 성찰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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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 평이한 소설은 읽고 나서 할말이 없고, 다층적 의미로 점철된 소설은 읽고나면 이해하기 바쁘다. 내가 바로 이해한 것인가? 내가 겨우 아는 수준에서 적은 이야기들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부분적으로 이해하였다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엄격히 절제되지 않은, 수사학적으로 점철되지 않은, 즉, 하나의 이야기에 더하거나 빼지지 않은 이야기로 만족을 느끼고 싶기도 하다. 모범소설집은 현대소설을 읽을 때 알게 모르게 갖게되는 그런 ‘긴장상태’를 독자에게 주지 않는다. 기이히고 희안한 이야기들은 초대받은 저녁식사 자리에 차려진 음식들 가운데 이건 어떻게 먹는거지 하고 고민하지 않고 그저 맛있게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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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꼭 세르반떼스의 [돈끼호떼]를 읽고 싶었는데, 창비세계문학에서 세르반떼스의 ‘모범소설집’ 나와서 이 책으로 먼저 만나게 되었다. 돈끼호떼가 감옥에서부터 쓰기 시작하여 1권을 출간 한 뒤에도 새로운 글쓰기에 도전을 하여 1, 2권이 확연히 다르다는 그의 소설을 만나보고 싶다. 돈끼호떼를 읽기 전 이 책을 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노련하고 여유있고 한층 위에서 이야기를 써준 그의 소설을 그는 독자들이 즐기길 바랬는데 약 40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소설은 독자가 웃고 즐기는데에 무리가 없다. 무엇보다 이 책의 역자이신 민용태 교수님이 그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해석을 하기 위해 지금 읽는 내가 바로 와닿을 수 있게 의역을 해주신 부분때문에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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