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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29
찰스 디킨스 지음, 유수아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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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동료들을 고통 속에 남겨 놓고 떠나자니, 그 아이들만이 유일한 친구였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 거대하고 넓은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외로움이 처음으로 마음에 사무치던 순간이었다. p.30
“잘 가! 하느님이 지켜 주실 거야!”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온 이 축복은 올리버가 생전 처음 들어 본 말이었다. 이후로 온갖 고난과 역경, 변화 속에서도 올리버는 이 축복의 말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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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너무 믿지 말게. 자기 자신이 적이라면 자기 외의 모든 사람을 경계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만을 너무 믿었기 때문이겠지. 쯧쯧! 그러면 안 되는 건데”.p.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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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래에는 희망이 있소. 우리가 당신의 마음에 평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은 아니오. 그것은 당신이 직접 구할 때만 오는 것이니까”.p.513
내가 읽은 찰스 디킨스의 첫 소설이자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받은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었다. 첫날 밤늦게 읽기 시작했는데 삽시간에 150여 페이지를 넘어간다. 특히 내가 읽은 이 판본에는 19세기 최고의 삽화가였던 ’조지 크룩생‘의 삽화가 24장 수록되어 인물들의 표정, 당시의 복식 등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디킨스의 소설을 좀 더 빨리 접하지 못한 것은 뭔가 난해하고 어려울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는데 적어도 처음만난 그의 소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책은 19세기 당시 산업혁명을 배경으로 고아 등 아동에 대한 노동(도제 제도), 생활상을 보여준다. 당시로서는 가난, 밑바닥 찌꺼기와 같은 빈민의 삶이란 매우 인기가 없는 소설의 소재였으나 디킨스는 오히려 그것을 이용해 역으로 이 소설에 빛을 발하게 한다. 1600년대 빈민에 대한 국가책임 제도를 첫 선보인 ‘구빈법’이 이후 1800년대 들어서면서 ‘신구빈법’으로 변화되면서, 이른바 ‘열등처우의 원칙’, 구빈원 내에서는 서서히 죽든가 바깥에서는 빨리죽는(p.33) 이른바 악법의 시대가 시작된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바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구빈법의 주요 대상이었던 ‘아동’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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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는 산업혁명시대 초기 아동들의 장시간 근무, 열악한 생활환경 등 이라는 역사적 발달과정으로 문헌적으로 이해할 만한 일에서 잠시 눈을 감으면 우리를 그 시대속으로 데려가는 놀라운 경험을 선사한다. 책 속에서는 ‘고아 농장’이라는 곳이 등장하는데 묽은 귀리죽으로 배고픔이 일상화 되어 살아가던 올리버가 9살이 되던 해 장의사 밑으로 도제생활을 시작할 즈음, 그곳 주인의 아내가 개도 거들 떠 보지 않는 썩은 고기 살점을 던져주자 그것을 발라먹던 올리버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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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시종일관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올리버의 지혜롭고 한결 같은 마음, 매 위기가 닥치는 순간마다 선한 용기를 발하는 모습은, 런던에서 생활하던 중 만난 좀도둑 무리들의 생각, 삶과 대비되면서 무엇인가 교훈적 소설의 풍미를 품기기 보다는 춥고 눅눅하고 쉴 곳 없는 배경 속에서도 악덕이 좀체 잦아들지도 않는 도덕적 교훈의 차원을 너머 우리에게 마음으로 경고의 메시지를 속삭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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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와 더불어 등장하는 ‘낸시’는 어린 시절부터 올리버와 다를 바 없는 삶, 오히려 여자아이가 겪을 수 있는 더 모진 일들을 경험한다. 낸시 역시 자신이 속한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을 쳤음에도 결국 자신은 결코 이 세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직감한다. 결국 이 책의 가장 핵심은 아동학대가 일상화 되고 묵인되는 세계로 그들을 지켜줄 사회적 보호체계가 전혀 없었고, 여자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매춘으로, 남자아이들은 소매치기로 전략한 개미굴 같은 세상의 단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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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낸시가 자신을 그 무리속에 잡아둔 사람들을 결코 배신하지 않고 밀고하지 않는 모습은 올리버의 선한 용기(이걸 책에서 디킨스가 매 순간 어찌나 잘 표현했는지.. 나로서는 이렇게 짧은 두 단어로 설명하는 것이 너무 아쉽다)와 더불어 이 책에서 인간이 자신의 동료들에게 해야 할 것과 말아야 할 것의 표상으로 나타나는 듯하다. 자신이 이전과 완전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음에도, 배신이라는 행위가 한평생 그녀의 영혼을 어지럽힐 수 있음을 낸시는 아마 알았을까? 아마 그렇게까지 생각을 해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배신이라는 행위 자체를 결코 염두해 두지 않은 아이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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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기 때문에 낸시의 마지막 모습은 올리버가 도망 나와 런던으로 가던 길목의 이야기와 더불어 이 이 책에서 내가 받은 가장 큰 충격이었다 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매 순간 올리버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어디선가 미인가 아동시설에서 이런일이 벌어지고 지지 않으리라고 믿기 어렵다. 사회적 약자는 사회가 그들을 약자로 취급하기 이전 원천적으로 힘을 가지기 어려운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 약자를 대상으로 전횡을 일쌈고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들(이를테면 고아 농장 이사회 사람들)이야 말로 결코 용서될 수 없고 심판받아 마땅한 인간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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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된 올리버 트위스트는 600쪽에 달할 정도로 벽돌책에 가깝지만 마음만 먹으면 하루만에 읽을 수 있을정도로 흡입력이 좋은 소설이다. 디킨스의 소설 중 가장 좋았다는 누군가의 평을 듣기도 한 이소설은 적어도 나에게는 오랜만에 사회상을 담은 가장 귀한 소설 중 한 권이었다 할 수 있겠다. 꼭 읽고 싶었던 디킨스의 소설을 이번에 현대지성 클래식으로 만나게 되어 읽게되어 무척 기뻤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시대와 세대를 막론하고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 생각했다. 내가 초등학생 이었다면 이 소설을 어디에 초점을 두고 읽었을까? 내가 중학생이었다면, 지금 나는 무엇에 초점을 두고 있는지.. 그것은 이 소설이 쉬운 말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묘사로 누구에게도 와닿을 수 있게 하는 디킨스 소설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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