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 이야기 세트 - 전4권
김은성 지음 / 애니북스 / 201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어머니는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에 돌아가셨다. 책을 읽기 전부터 김영하 작가님께서 웬만하면 눈물을 흘리지 않는 편인데 눈물을 흘렸다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사실 읽기도 전에 벌써 어머니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기대감과 동시에 나의 어머니가 곧 동시의 우리의 어머니’,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이라는 이야기로 들려질 것 같은 이야기는 상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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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만들어진 이 이야기를 엮어 가는 작가는 어머니(놋새)의 막내딸(은성)이다. 집안의 형제들이 다 시집 장가를 가고 난 후 어머니와 함께 살아본 적 있는 막내딸들이라면 이 이야기가 각별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한참 성장할 때며 공부할 때는 나 밖에 모르거나 또래들과 어울리느라 엄마와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지만 직장생활을 하고 언니들이 결혼하고 난 후 엄마와 사는 동안에는 밤이고 아침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그렇지만 지금도 내게 후회로 남은 사실 하나는 젊은 시절 엄마의 이야기를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조금만 더 엄마가 오래 살았더라면 내 어머니의 이야기에서처럼 엄마의 유년시절과 소녀시절에 대해서 좀 더 알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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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하여 내 어머니의 이야기에는 지나온 자신의 삶을 이야기해주는 엄마와 그것을 들어주는 딸이 있다. 그 이야기의 시작이 불과 몇 십여 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머니(놋새)의 어머니(은성의 할머니) 시절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이 바로 남북이 전쟁으로 인하여 갈라기 전 한반도의 북쪽, 물로 유명한 북청에서 살아온 젊은 시절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현재의 남북관계를 생각해 볼 즈음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자연스럽게 우리가 한나라에서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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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언제나 집근처의 밭에서 일을 하고 아버지는 좀 더 먼 밭에서 하루 종일 일을 했다는 장면이 이 책에서는 종종 나온다. 그렇게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언니 오빠 동생들 돌보며 성장하는데 특별히 자녀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이 없어도 아이들은 잘 자란다. 어떻게 보면 이 이야기에는 삼대의 이야기가 들려지는 셈인데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화자인 은성과 은성의 언니 동희 언니의 삶을 자연스럽게 지난 한 세기를 돌아보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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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과 농사일을 같이하는 여인들의 모습은 지금처럼 전업주부의 모습도 아니요. 힘쓰는 일에는 여자들이 일을 못하는 그런 모습들도 아니다. 시골 먼 길 십리 길을 걸어 먹을 것을 가지러 장터를 다녀오는 모습, 어린 시절 고개를 넘어 너머 건너 마을 다녀오신다던 노래가사처럼 이 책을 보다보면 우리네 엄마들이 그렇게 살아온 삶을 아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 은성의 어머니 놋새 또한 어머니(은성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꽤 긴 편인데, 소설 속에서 은성의 할머니가 아파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놋새가 열흘 가까이 병간호를 하느라 씻지도 못하고 하는 부분이 나온다. 생각해보면 딸들에게 엄마란 존재는 그저 존재만으로 모든 것이기 때문에 부재의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진 못한다. 나또한 그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이 소설에서 놋새의 이야기를 통해 병원에서 엄마와 보낸 시간을 생각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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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겪기 전 놋새의 어머니 이야기는 시아버지로부터 온갖 궂은 시집살이를 살기는 했지만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그저 큰 손이고, 여장부다운 면모와 이웃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보며, 집안이 점점 일어나는 모습을 통해 뭔가 시원시원한 면도 있다. 그러다보니 놋새의 어머니 이야기에서는 내가 쉬이 상상해보지 못한 그 시절, 그 곳에서 살아온 여인들의 삶의 이야기들을 그대로 볼 수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전쟁 이전 놋새의 어머니의 삶보다는 오히려 일제강점기를 지나기 시작하면서 놋새와 같은 젊은 소녀들의 삶에 위기가 찾아오고, 이후 전시에 북진하고 남하하는 이러한 과정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가족들을 남기고 오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삼팔선이 그어진 이후에도 경계를 틈타 목숨을 걸고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을 그들은 전쟁 전에는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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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가족의 일부는 그 유명한 흥남부두 빅토리아호를 타고 거제도까지 내려오게 되지만 피난을 와서 정착하기까지 놋새-어머님의 삶의 이야기에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다. 놋새는 남쪽으로 내려온 뒤 정착하기까지 많은 곳을 옮겨 다녔고, 자녀들이 장성하기 전까지.. 한 번도 일을 쉬지 않는다. 놋새가 어린 시절 자신의 어머니가 일을 하러 다닐 때면 놋새와 언니오빠 동생들이 말썽을 필우지 않고 알아서 성장했던 것처럼, 놋새의 아이들 역시 그렇게 어린나이에 폐결핵이 걸려도 혼자 병원을 다니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 시절 어린이들과 지금의 어린이의 모습이 사뭇 다르다. 아이들의 아이다움은 내 눈앞에 보여 진 엄마의 피곤과 엄마의 고된 하루하루의 삶, 거친 손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나보다 엄마를 보고 그렇게 성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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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면, 3권인지 4권인지 부분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엄마는 도통 엄마의 몸과 마음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난 그때 엄마가 엄마 자신에 대해 신경을 쓰는지 쓰지 않는지 알 여력이 없었다...이 부분은 언제나 내가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부분이었다. 나는 언제나 고생만 하고 이 책속 은성의 엄마 놋새처럼 우리 엄마도 평생 우리 형제들을 키우느라 고생을 하셨는데.. 자신의 삶에 오로지 집중한 시간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낙천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는지 언제나 궁금했다. 그것은 정말 타고난 것이었을까? 내게도 가끔 보이는 그런 낙천성을 엄마가 물려준 것일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작가님께서 도통 엄마의 몸과 마음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부분을 보면서, 그래.. 어쩌면 그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몸이 아파도 마음이 아파도 거기에 신경을 쓴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루하루 자녀들만을 위해 살아온 그 삶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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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딸들이 이 만화를 보다보면 나처럼 내 어머니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자녀들은 엄마의 보호를 받던 시절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엄마를 보호해야 하는 시기로 변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그 기간이 무척이나 짧았다. 아직도 살아계시다는 작가님의 어머님의 이야기.. 그 어머님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책으로 남겨드린 것만으로도 작가님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알고 기억하고 새겨듣는 일은, 생명이 끝나도 관계는 영원히 지속될 정말 소중한 일인 것이다. 돌아가시기 직전 늘 밤마다 엄마와 이야기했던 시간들이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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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렇게 나의 개인적인 영역에서도 의미가 있는 책이지만, 지금의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서도 시의 적절한 책이었다. 내게도 여전히 북한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이다. 그런데 불과 백여년 전의 그 시절은 그냥 우리 동네의 이웃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었다. 공동체를 부르짖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나였던 그 마을의 모습 속에서 공동체의 원형을 보게 된다. 생각보다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엄마를 떠올리게 한 것만으로도 내게는 너무도 충분히 좋았던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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