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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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죄가 있고, 각자의 벌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뭉뚱그려 바라보면 모든 것이 다 평평해질 뿐이다. 죄는 그때 반복되는 것이다.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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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유가 있다면 바로 그것 때문 아니었을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마음 편히 쉴 수도 없는 삶. 나는 조용하면 조용할수록, 평안하면 평안할수록, 생각이 많아졌으니까. 그 생각들을 견딜수가 없어서 매번 다른 남자들과 동거를 했으니까.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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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진은 어디로

일반적으로 모욕감은 누군가로부터 모욕을 받음으로써 발생하게 되는 내 안의 감정인데, 첫 번째 단편 최미진은 어디로에서는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받은 사람은 있는 그런 상황이다. 아니 적어도 행위자와 그로 인해 느끼는 자 사이의 대응성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지금 벌어지는 일련의 정황이 가끔은 너무도 합리적 귀인으로 느껴진다. 살면서 그런 날들이 내게도 없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주는 사람은 없고 받는 사람만 존재하는 그런 사실들을 마주쳤을 때 느껴지는 감정을 돌아보다보면, 여전히 내공이 부족함을, 모욕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를 돌아보고 싶어진다. 타인은 나의 삶에 그렇게 깊숙이 개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되새기고 싶을뿐... 앞부분 박형서작가님 언급부분에서 좀 많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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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만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봄

일상에서 언제나 정면이 아니라 주변부만 건드리다가 스스에게 위로를 건낼 뿐 위안이 될 수가 없다. 김연수 작가님이 말한대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일이고, 뭔가 삶의 밑바닥에 퇴적되어 마음에 회오리바람이라도 한번 불면 다시금 잔잔했던 그곳에 파문이 인다. 그것은 어쩐지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삶의 모습과는 좀 다른 모습이지만 그 누구의 위로나 격려로 해결되는 일은 아닌 듯 하다. 지난간 날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하지만 이 소설을 읽다보면 지나간 날이 쌓여 지금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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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찬과 착한사람들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읽었지만 다시 읽었다. 부랑인시설로 끌려간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았던 남은 사람들은 잊고 지낼까. 자발적으로 선한 마음으로 권순찬씨의 사정을 돌아보았지만 그의 속사정, 그가 원하던 것을 들어줄 수는 없었던 사람들. 나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행위로 인하여 내 마음이 불편한 것이 싫은 것. 그게 싫어서 애꿎은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 어쩌면 그것은 자기자신에게 내는 화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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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

마흔셋을 살아온 숙희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이 생각났다. 내게는 작품집 전체를 통틀어 가장 좋았던 작품이었고(‘한정희와 나는 일전에 읽고 아직 생생해서 두 번 읽지는 않았다) 어둑했던 그녀의 삶에 빛으로 다가오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녀가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자신의 외도를 밝힌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자기가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남편이 알아주기를.. 그녀에게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염치)이 있었기에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 것(수치)이기에 나는 그녀가 수치에서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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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김숙희는

야이정재민이나쁜엑스엑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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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오빠 강민호

윤희의 지난했을 3년의 시간을 돌아보았다. 지나가다 주웠어 하면서 무심한듯 시크하게 주는 선물속엔 마음이라도 있었을터인데 누구에게도 친절한 교회오빠 강민호에겐 친절은 있으나 마음이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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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말

이런후기 너무너무너무 좋습니다. 이건 마치 영화관에서 막이 다 내린 후 보여주는 보너스 상영과도 같은 것. 이 부분을 보면서 결국 지난 단편집 모두를 떠올렸다. 내가 이기호 작가님의 단편을 읽으면서 경험했던 여러 가지 감정들, 내 행위의 동기들, 이야기의 즐거움, 사람을 대하는 태도, 우리가 타인에게 베풀수 있는 관대함이나 친절은 과연 어디까지인지.. 그런 이야기를 읽고 들여다 보게 만든 작가님의 글들이 모두 좋았다. 전작 김박사는 누구인가에서의 탄원의 문장화라지송침을 떠올리면, 가끔 내 삶이 거기서 한발작 더 나아갈 수 있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절대적 환대''절대적 윤리'의 인간적인 면에 대해서 다시 신적인 면을 생각하게도 한다. 나는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이해하려고 애쓰기를 바랬던 김애란 작가의 글을 생각하며 이 소설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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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설을 다 보고는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쓸 수 있겠다 싶었는데 막상 적으려고 보니 비슷한 감정인 듯 했지만 다른 면면들이 부끄러움이라는 것으로 뭉치기에는 숙희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았다. ‘한정희와 나는 김박사를 다시 읽고 후기를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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