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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이상한 정상가족 (개정증보판)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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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정상가족>은 아동이 한 개인으로서 가지는 권리를 공공이 더 적극적으로 보장하고 수호해야하며, 이를 위해서 국가는 가족에 대한 개념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고 정부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깊이 내재되어 있는 '정상' 가족에 대한 편견을 빨리 버려야한다고 말하는 책이다.


아동의 권리에 대해 말하며 아동 학대나 체벌과 관련한 사례, 제도, 아동 입양 등과 관련하여 다양한 정보를 읽을 수 있었는데 최근에 보았던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재판>이나 jtbc의 드라마 <서른, 아홉>이 생각나기도 했다.

입양아들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문장을 읽으며 <서른, 아홉>에서 입양아로 나온 손예진의 대사와 장면이 떠올랐고,

아동 학대 신고 후 조치와 관련된 부분들을 읽으며 <소년 재판>에서 소년범의 처분이 끝나고 아이가 집으로 돌아간다한들 부모가 바뀌지 않으면 아이들은 변화하지 않을거라는 김혜수의 판정이 생각났다.

체벌과 관련한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나 스스로 많이 반성하기도 했다.

부끄럽지만 나조차도 아이가 성장하는데 어느정도의 체벌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학대과 체벌의 애매모호한 경계를 그 누구도 정의할 수 없다는 점에 동의했고 체벌을 통해서 아이는 어른들이 바라는 것처럼 무언가 학습하는게 아니라 권위에 따른 폭력이 정당하다고 내면화할 뿐이라는 연구 결과가 충격적으로 다가와 체벌은 부모의 훈육방법이 아니라 약자에 대한 폭력(p.225)이라는 말을 한층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분야는 다르지만 특정한 문제에서 시작했으나 사실 그 문제의 원인은 사회 구조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랬는지 읽으면서 자꾸 김승섭 교수님의 책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책의 저자는 이 책의 주제와 관련하여 언급했지만 어쩐지 사회 모든 분야의 문제점의 시작에 해당하겠다고 느껴졌던 문장도 있었다.

뭔가를 높이 쌓아 올릴 때에는 자칫 발을 헛디뎌 추락할 경우를 대비해 안전망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은 그런 안전망 없이 오로지 더 높이 쌓는 일에만 몰두해왔다.

p. 179

과거 국가의 경제적인 성장만을 목표로 하고 달려오느라 신경 쓰지 않고, 무시하고, 덮어왔던 일들이 주체할 수 없이 커져버려 이 지경이 되었지만 이 책임은 국가가 아닌 개인이 지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씁쓸하다.

<이상한 정상가족>은

아동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개별적 주체이며 이러한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공공이 가족 내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모든 아동이 같은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정상적’ 가족의 형태를 무너뜨리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한다.

라고 이야기한다.

'맞아, 그렇게 해야지.' 까지만 생각하고 더 깊이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던 아동의 권리 그리고 그를 위한 사회의 역할에 대해

저자가 늘어놓은 흐름을 따라 찬찬히 이해하고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고, 덕분에 아동과 관련한 사회적 사안들을 앞으로 더 눈여겨 볼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자녀를 두고 있는 사람들, 자녀 계획이 있는 사람들은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추천드리고 싶다.

본인이 탄생시킨 생명을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할 수 있게 하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책을 통해 아이를 키우는데에 공공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커다란지 알게 된다면 사회에 더 많은 의견을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렇게 되면 누군가의 죽음이 있고 난 뒤에야 법이나 제도가 바뀌었던 이제까지보다는 조금 더 빠르게 아이들을 국가가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글을 맺으며 아이들의 인권, 다음 세대의 삶의 질을 중심에 두고 가족의 문제를 바라본 이 책의 생각이 아이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무관한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다음 세대는 핏줄로 얽힌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p. 286

책을 마무리하며 저자는 '다음 세대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드려고 노력하는데 그것은 비단 다음 세대를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오늘의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더 나아지기 때문'이라는 말을 전한다.

자녀 계획을 논하기에는 '벌써?'라고 생각하는 나이일지는 모르지만

사실 나는 내가 아이를 낳아 오롯한 한 사람으로 잘 키워낼 자신이 없어 조금 이를지 몰라도 현재는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일부에게는 책에 언급한 수많은 내용들이 본인과 상관없다고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다음 세대가 없다면 우리는 지금 말도 안되게 열악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에게 다음 세대가 없다면 어떨지 생각해보자.

지금 당신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상상해보길 권하고 싶다.

그곳은 18년간 아이가 태어나지 않아 더 이상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지 않는 암울한 세계다.

영화에서 세대를 잇지 못해 인류가 사라진다는 사실은 나 자신이 언젠가는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보다 더 절망적이다.

불법 천지에 정부는 자살약을 배급하고 테러와 폭력이 난무한다. 무너져가는 세계를 어느 누구도 보수하려 들지 않는다.

p.287

이 시각은 나에게는 정말 신선하고 신기했다.

생각해보면 이제 나는 아이가 아니고, '미래에 내 아이도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아동의 권리에 대한 문제는 이제 나와 전혀 무관할텐데도

나는 이 책을 정말 열심히 읽었고, 각종 사례를 읽으며 화도 났고, 아동과 관련한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깊히 공감했다.

그러니까 의식하지 못했지만 '다음 세대가 있어야만 내가 현재의 세상을 잘 영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나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 단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할 뿐이지 위의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결론은 본인이 아이와는 이제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는 말!


독후감과 서평 사이의 글을 마치며 여담을 하나 더 하자면

이런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다루는 책을 읽을 때마다 생각보다 재미를 느끼는 나를 보며 스스로 놀라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고, 심지어 가정에서의 아동 체벌을 제일 먼저 금지했고 세계에서 아동의 권리가 제일 보장된다는 스웨덴의 다양한 사례를 읽으면서 영어 공부 열심히해서 스웨덴 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만약 내가 미래의 어느날 스웨덴 대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면

그건 바로 이 책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 만들어낸 미래일테다. (물론 안 갈 것 같기는 하지만 사람일은 모르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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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 비트윈 : 경계 위에 선 자
토스카 리 지음, 조영학 옮김 / 허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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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라인 비트윈: 경계 위에 선 자 - 토스카 리]

📚팬데믹 시대에 읽는 팬데믹 디스토피아 소설!

예전에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록 갈 수 없다면>을 읽고 장난으로 ‘이제 문학까지 이과에게 넘겨주게 생겼구나’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상상이던 간에 그 이야기는 기반이 되어있는 현실이 더 구체적이고 더 철저할수록 아름답게 피어난다.
이런 맥락에서 김초엽 작가의 그 세밀한 상상들이 이과계열의 지식을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은 참 멋있었지만 동시에 문과로서 약간의 초조함을 느끼게도 했었던 것 같다.
라인 비트윈이랑은 상관 없는 것 같은 이 말을 갑자기 왜 꺼내냐하면 토스카 리 작가도 꽤 방대한 양의 조사와 지식을 기반으로 <라인 비트윈: 경계 위에 선 자>를 탄생시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영구동토층이 녹아 드러나게된 고대 바이러스, 사이비 종교의 생활, 팬데믹 상황을 마주하게된 각 계층의 생존 방식 등 다양한 분야의 과학적인 지식과 예측, 그리고 거기에 더해진 토스카 리의 상상으로 코로나가 아닌 또 하나의 엄청난 팬데믹 상황을 마주하고 왔다.
역시 글을 꽁으로 써지는게 아니라는 걸 또 한 번 깨닫고 가는 시간•••

📍p.364
매그너스의 예언이 실현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그 주체가 될 수는 없다.

벗어나고 싶지만 유년기를 통째로 사이비 종교 안에서 보내온 윈터에게 머릿 속에 단단히 박혀버린 그릇된 신앙은 좀처럼 떨쳐버리기 힘들다.
내내 괴로워하던 그가 저 시간을 기점으로 오롯한 ‘윈터’가 된 것 같아 보는 독자가 다 뿌듯했던 그런 문장이었다.
또 힘든 일이 닥쳤을 때 가져볼 마음가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며 곱씹어 보기도 했다.
“저게 망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망치지는 말자!” 하는 느낌으로 말이다.

📍작가의 말 중
프라이온 병 얘기는? 고대 바이어스가 독감 바이러스와 결합한다면서? 걱정하지 말자. 이건 소설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작가의 말에서 소설에서의 스릴과 소름을 느낄 일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라는 말이 너무도 무섭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소설을 현실로 마주하지 않기 위해 부던한 노력이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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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피싱
나오미 크리처 지음, 신해경 옮김 / 허블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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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 크리처가 담아낸 미래 세상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미래처럼 도시적이기 보다는 정겹고 촌스러운 부분들이 많았고 그래서 오히려 더 좋았다.
특히 학교 생활에 잘 녹아있는 로봇들이 굉장히 그럴듯한 미래라고 생각했다.
(그다지 유능하지 않은 학교의 로봇들, 이 친구들은 교육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선생님들의 귀찮은 업무나 일손을 덜기는 한다.)


캣피싱은 주인공 스테프와과 체셔캣이라는 이름의 AI, 이렇게 두 캐릭터를 중점적으로 두 개의 시선이 번갈아 나오며 이야기가 흘러간다.
체셔캣이라는 AI는 본인(인이라는 말을 사용하기가 좀 그렇기는 하지만)에게 주어진 업무 이외에도 스스로 생각해서 약간의 사고를 치기도 하고 또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도 보인다.

AI가 인격을 가진다는 가정은 많이 접했지만 이 <캣피싱>에 등장하는 AI의 독특한 점은 어떤 한 채팅방을 특히 좋아하고, 그중에 한 인물을 특히 아껴서 도와주고 싶어하는 귀여운 성격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양이 사진 좋아하는 거 너무 깜찍하잖아!

학생들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마냥 스릴 없지도 않고 나름 박진감 넘치는 순간들도 있다.
아빠가 스테프를 쫓아올 때 같이 아찔해져서 아주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그리고 사실 그 부분에서 이미 잘 시간이 넘은 상태였는데 책을 덮기 애매해서 대충 그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 나는지까지 보고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다양한 정체성에 관해 짧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언어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간 점도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청소년들이 어떤 과학적인 부분에서든 이런 인식적인 부분에서든 현재와 미래를 비교하고 받아들일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처럼 재미로 읽는 책의 내용은 반드시 지식이 되지는 않아도 어떻게든 삶에 영향을 주기도 하니까 말이다.

약 400페이지 정도로 두껍지 않다고는 못하는 책인데 사실 읽어보면 내용이 그정도로 길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두께는 그렇지 않지만 가볍게 읽기 좋은 책!
부디 다른 독자들이 이 넓은 책등에 겁먹지 않기를.. 하고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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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이 세계라면 -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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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제일 좋았던 책을 하나 꼽으라고 하면 이 글을 통해 소개할 책과 같은 저자의 책인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꼽을 것이다. 잘못된 사회 구조가 우리도 모르는 새에 우리를 어떻게 병들게 하는지에 대해 쉽지만 깊이있게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이다.

너무 인상깊었던 책이고 그래서 다른 책들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고 이제서야 <우리 몸이 세계라면>을 읽게 되었다.

앞서 읽었던 <아픔이 길이 되려면>처럼 우리 사회 구조가 누구를, 어떻게 병들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은 생산되는 지식과 그 지식들의 불평등함이다.


첫 번째 챕터인 '권력, 어떤 지식이 생산되는가' 에서는 의학 연구에 스며들어 있는 남성중심적인 시각의 다양한 사례들과 담배회사의 마케팅 전략에 대해 이야기 한다.

적정 실내 온도나 약물 투약 용량 등 남성 기준으로 맞추어진 과학 지식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또 다시 화가 나기도 했고, 과학자를 매수해 유리한 지식을 생산해냈던 담배회사의 마케팅 전략은 충격적이었다. 지금 기억에 남는 하나는 어린 고객들을 확보하기 위해 아이들 눈높이에 담배 광고를 위치시키는 전략인데 '돈을 벌기 위해 못하는 짓이 없구나'하는 생각까지 드는 정말 파렴치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세번 째 챕터인 '기록, 우리 몸이 세계라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이것이다.

과연 타이타닉호에 탑승했던 사람들의 사망률은 평등했을까?

p. 151

읽자마자 헉 하는 소리와 함께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다. 1/2/3등실 중 3등실의 사망률이 가장 높았고, 1등실 승객과 비교했을 때, 3등실 승객의 사망률은 남성의 경우 1.24배, 여성과 어린이의 경우 20.4배 높았다.

남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죽음에 가깝다는 사실은 단단히 잘못된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일을 이상하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이 저자는 그러지 말자고, 우리 계속 이야기 하자고, 질문을 던지자고 이야기한다.


네 번째 챕터에서 흑사병과 관련해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그 대응 속에서 어떠한 차별이 발생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이 있다. 읽으면서 재미있고 또 대단하다고 느꼈던 부분은 오늘날에 와서 이 일을 다시 돌이켜보고 분석하는 과학자들이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었다.

'사회계층에 따라서도 흑사병으로 인한 사망에 차이가 있었을까?'

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당시 정부가 지역별 인구 분포, 사망자의 나이, 성별, 소득에 대한 체계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아 유의미한 데이터를 얻기가 어려워지자 포기하지 않고 질문을 바꾸어 던진다.

'흑사병으로 인한 사망은 흑사병 유행 이전의 건강 상태에 영향을 받았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공동묘지에 묻힌 490개의 유골을 조사하고, 유골의 취약성을 측정한 후 취약성이 높을수록 사망할 확률이 높았다는 결과를 도출해낸다. 이 결과에서 영양 상태가 취약했던 하층 계급 사람들이 흑사병으로 더 많이 사망했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질문을 바꿔서라도 세계를 탐구하고자 하는 과학자들의 집요함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고, 또 이런 과학자들의 모습에서 어떤 쾌감을 느꼈다고 하면 너무 이상하려나?

흑사병은 당시에 원인을 알 수 없이 사람이 죽어나가는 아주 무시무시한 병이었다.

이 챕터를 읽으며 코로나 바이러스 생각이 아주 많이 났다. 지금이야 어쨋거나 백신이 나왔고 또 접종이 시작되었지만 코로나 시대 초반에는 정말 세계가 아비규환이었으니까. 무지의 공포 속에서도 더 윤리적이고 더 과학적으로 대응하도록 노력하자는 김승섭 저자의 말은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챕터의 마지막 부분은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을 만드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해외 논문을 연구 성과로써 더 높이 쳐주기 때문에 한국의 연구가 모국어로 출판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사실에 더불어 주류에 탑승한 연구가 더 관심을 많이 받기 때문에 권력과 자본에서 소외된 이들을 연구할 자리는 너무나도 작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권력에 치우친 세상이 짜증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할 무렵 나를,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저자의 한 마디로 책은 끝을 맺는다.

"하지만 부조리한 사회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고통을 과학의 언어로 세상에 내놓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 라는 한 문장이 얼마나 든든하던지.

그리고 실제로 계속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이 서평을 통해 나라도 알려드리고 싶다.

작년에 과제를 하다가 필요한 일이 있어서 저자에 최근 연구에 대해 찾아볼 일이 있었고, 코로나 시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연구 발표를 하신 영상을 볼 수 있었다.

비교적 최근의 연구를 알고 있어서 그런가 나는 이 계속해보겠다는 저자의 다짐이 너무도 크게 다가왔다.

나를 포함해 김승섭의 책을 단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이 멋진 연구자를 최선을 다해 응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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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이어 말한다 - 잃어버린 말을 되찾고 새로운 물결을 만드는 글쓰기, 말하기, 연대하기
이길보라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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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보라의 <당신을 이어 말한다>는 소수에게 무례한 사회에 일침을 날리면서
소수인 그들 자신을 위해, 또는 자유로운 세상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내가 여기 있어.’, ‘나도 말하고 있어.’ 라고 곁에서 이야기를 건네며
그 다음은 독자인 ‘당신’이 이어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책이다.

이길보라는 농인 부모를 둔 코다(CODA)이다.
*코다: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음성 언어보다 수어를 먼저 익히며, 농인과 청인 문화에 모두 익숙하다.
그녀는 부모의 장애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과 사회적 편견들에 둘러싸여 성장하면서 느낀,
소수라는 이유로 다수처럼 누리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질문하고, 이야기한다.
이런 삶의 방식은 여성이라는 정체성에도 같게 적용되어 그녀가 페미니즘과 임신중지에 대해 말하게 하고, 이에 더해 과거 베트남전으로 인해 아직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한 번 더 살펴보도록 했다.
우리가 알아야 하지만 알고 싶지 않아하는 것들.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것들. 이길보라는 이런 것들을 세상에 끄집어내 모른 척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콕콕 찌른다.

그래서 나도 많이 찔렸다. 청인 위주인 세상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구나 하고 반성하게 되었다.
그제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눈 앞 가로등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알림 버튼이 있었는데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그 가로등 근처 바닥에는 시각장애인용 보도블럭이 없었다.
노란색의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은 횡단보도의 가운데 쪽에만 짧게 설치되어 있었고, 왼쪽과 오른쪽에 위치한 가로등까지는 이어져 있지 않았다.

그럼 이걸 어떻게 알고 와서 누르지?
다른 사람들이 눌러줘야 하는 걸까?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면 어쩌지?

쓸모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애매한 버튼이었다.
이 버튼이 횡단보도 한 쪽에 놓인지 꽤 오래되었는데 지금에서야 이 생각을 한다는 사실도 참 웃겼다.

P. 186
몇 차례의 문제 제기 끝에 수어통역사가 무대 위에 올라서게 되었다. 그러나 화자 옆이 아닌 무대 구석이었다. 조명이 가까스로 비치는 곳에서 ‘청인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 선’에서만 통역할 수 있었다. 무대에 수어통역사가 등장하자 비로소 청인들은 농인의 존재를 자각했다. 사람들은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고 ‘우리는 이런 소수자의 언어를 존중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챙겼다.

이 버튼도 그저 누군가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챙기는 일 중 하나였을까?

여성인권과 관련해서는 ‘이길보라’라는 사람과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아주 든든했다.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하고 있지만 가끔은 내가 이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나, 뭐가 바뀌기는 할까 하는 절망적인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나서서 임신중지 경험을 공유하고, 여성을 위해 마이크를 사수하는 저자를 보니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 괜히 마음이 벅차오른다.

P. 98
누군가는 당연하게 마이크를 잡았다. 나는 화가 났지만 공손하게 마이크를 뺏었다. 최대한 하고 싶은 말을 한 후 다른 여성 심사위원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 ... 언젠가는 심사위원과 같은 일을 하기에는 아직 어리다고,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나’를 대변하지 못하는 누군가가 무언가를 결정하도록 두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너무 당차고 멋진 언어가 많은데 소개하자니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다 담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사회가 비장애인으로 규정한 다수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날을 바라는 그녀의 이야기 덕에 나는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할 힘을 얻었다.
또 혼자가 아니라고 외쳐준 덕에 용기를 얻고 마음을 굳게 다졌다.
나와 비슷한 마음을 느끼고 있을 2030 여성들, 또 자라나는 10대 여성들에게 든든함을 주고, 연대할 수 있도록 하는 책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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