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 몸이 세계라면 -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2월
평점 :
작년에 제일 좋았던 책을 하나 꼽으라고 하면 이 글을 통해 소개할 책과 같은 저자의 책인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꼽을 것이다. 잘못된 사회 구조가 우리도 모르는 새에 우리를 어떻게 병들게 하는지에 대해 쉽지만 깊이있게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이다.
너무 인상깊었던 책이고 그래서 다른 책들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고 이제서야 <우리 몸이 세계라면>을 읽게 되었다.
앞서 읽었던 <아픔이 길이 되려면>처럼 우리 사회 구조가 누구를, 어떻게 병들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은 생산되는 지식과 그 지식들의 불평등함이다.
첫 번째 챕터인 '권력, 어떤 지식이 생산되는가' 에서는 의학 연구에 스며들어 있는 남성중심적인 시각의 다양한 사례들과 담배회사의 마케팅 전략에 대해 이야기 한다.
적정 실내 온도나 약물 투약 용량 등 남성 기준으로 맞추어진 과학 지식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또 다시 화가 나기도 했고, 과학자를 매수해 유리한 지식을 생산해냈던 담배회사의 마케팅 전략은 충격적이었다. 지금 기억에 남는 하나는 어린 고객들을 확보하기 위해 아이들 눈높이에 담배 광고를 위치시키는 전략인데 '돈을 벌기 위해 못하는 짓이 없구나'하는 생각까지 드는 정말 파렴치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세번 째 챕터인 '기록, 우리 몸이 세계라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이것이다.
과연 타이타닉호에 탑승했던 사람들의 사망률은 평등했을까?
읽자마자 헉 하는 소리와 함께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다. 1/2/3등실 중 3등실의 사망률이 가장 높았고, 1등실 승객과 비교했을 때, 3등실 승객의 사망률은 남성의 경우 1.24배, 여성과 어린이의 경우 20.4배 높았다.
남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죽음에 가깝다는 사실은 단단히 잘못된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일을 이상하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이 저자는 그러지 말자고, 우리 계속 이야기 하자고, 질문을 던지자고 이야기한다.
네 번째 챕터에서 흑사병과 관련해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그 대응 속에서 어떠한 차별이 발생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이 있다. 읽으면서 재미있고 또 대단하다고 느꼈던 부분은 오늘날에 와서 이 일을 다시 돌이켜보고 분석하는 과학자들이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었다.
'사회계층에 따라서도 흑사병으로 인한 사망에 차이가 있었을까?'
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당시 정부가 지역별 인구 분포, 사망자의 나이, 성별, 소득에 대한 체계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아 유의미한 데이터를 얻기가 어려워지자 포기하지 않고 질문을 바꾸어 던진다.
'흑사병으로 인한 사망은 흑사병 유행 이전의 건강 상태에 영향을 받았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공동묘지에 묻힌 490개의 유골을 조사하고, 유골의 취약성을 측정한 후 취약성이 높을수록 사망할 확률이 높았다는 결과를 도출해낸다. 이 결과에서 영양 상태가 취약했던 하층 계급 사람들이 흑사병으로 더 많이 사망했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질문을 바꿔서라도 세계를 탐구하고자 하는 과학자들의 집요함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고, 또 이런 과학자들의 모습에서 어떤 쾌감을 느꼈다고 하면 너무 이상하려나?
흑사병은 당시에 원인을 알 수 없이 사람이 죽어나가는 아주 무시무시한 병이었다.
이 챕터를 읽으며 코로나 바이러스 생각이 아주 많이 났다. 지금이야 어쨋거나 백신이 나왔고 또 접종이 시작되었지만 코로나 시대 초반에는 정말 세계가 아비규환이었으니까. 무지의 공포 속에서도 더 윤리적이고 더 과학적으로 대응하도록 노력하자는 김승섭 저자의 말은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챕터의 마지막 부분은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을 만드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해외 논문을 연구 성과로써 더 높이 쳐주기 때문에 한국의 연구가 모국어로 출판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사실에 더불어 주류에 탑승한 연구가 더 관심을 많이 받기 때문에 권력과 자본에서 소외된 이들을 연구할 자리는 너무나도 작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권력에 치우친 세상이 짜증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할 무렵 나를,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저자의 한 마디로 책은 끝을 맺는다.
"하지만 부조리한 사회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고통을 과학의 언어로 세상에 내놓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 라는 한 문장이 얼마나 든든하던지.
그리고 실제로 계속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이 서평을 통해 나라도 알려드리고 싶다.
작년에 과제를 하다가 필요한 일이 있어서 저자에 최근 연구에 대해 찾아볼 일이 있었고, 코로나 시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연구 발표를 하신 영상을 볼 수 있었다.
비교적 최근의 연구를 알고 있어서 그런가 나는 이 계속해보겠다는 저자의 다짐이 너무도 크게 다가왔다.
나를 포함해 김승섭의 책을 단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이 멋진 연구자를 최선을 다해 응원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