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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평점 :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뉴욕을 누비다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무언가 깨닫게 된 오스카의 모습은 마치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내 모습과도 같다. 수많은 복선과 암시들, 글자와 사진들을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끝으로 달려나갈수록 나를 압도하는 감정이 밀려들었다.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질문해대던 아이가 이해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때, 나도 오스카가 되어 무언가 느낀 것 같았다. ‘미국이 공격을 당했다’는 뉴스를 전세계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을 때 나는 그 뉴스를 본 기억조차 없을 만큼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아직도 깊이 이해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를 울게 만든 이 소설은 참사와 참사 유가족의 마음에 대해 너무나도 잘 그렸다고 생각한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은 너무 가까이 가도, 너무 멀어져도 안 된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적당한 온도를 가지고 전개해 나가야 한다. 자칫하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건에 대한 기록이 될 뿐이고, 자칫하면 사건이 수단으로만 남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911을 큰 화소로 보는 것 같다. 안경을 썼는지 안 썼는지 분별할 필요는 없다. 다만 상실한 사람들이 남아 있는 서로를 돌보려고 하고, 끊임없이 사랑한다는 말을 하려는 그 마음만 섬세하고 제세하게 묘사된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 내가 그의 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내 머릿속 아주 깊은 곳에서조차 그가 내 할아버지라는 것을 알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당연히 그랬어야 했지만, 그 여행 가방 속의 편지들과 할머니 서랍 속에 있던 봉투들 사이의 연관성도 깨닫지 못했다. 그러니 뭔가 이해했던 것이 틀림없다. 분명히 그랬다.
오스카의 뉴욕에서 김서방 찾기 프로젝트 꽤 성공적으로 끝난다. 1년이 되기 전에 정말로 ‘그 블랙’을 찾았고, 그 열쇠가 아빠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은 아니지만 원하던 바를 손에 얻었다. 그렇지만 오스카가 정말로 원하던 것은 자물쇠가 아니라 손에 잡히는 아빠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난데없이 사라진 아빠를 인정할 수 없었던 오스카는 계속해서 물질적인 것을 원했다. 하지만 아빠에 대한 그리움은 손에 쥐고 있을 수 없다. 이 마음은 그렇거나(yes) 그렇지 않은(no) 명확한 문제가 아니니까. 그럼에도 오스카는 수집했다. 사진을 찍어서 기록을 남기거나 정리했다. 꽤나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블랙 찾기 전략을 짜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빠의 영혼이 거기 있잖니.” 그 말에 진짜로 화가 치밀었다. “아빠한테 영혼 따윈 없었어요! 세포뿐이었다고요!”
오스카는 아빠의 죽음을 부정하기도 하고, 엉뚱한 일에 너무 깊게 빠져들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많은 것들을 무서워하기도 한다. 자신을 너무 미워하기도 하고, 타인에게 소리 지르거나 화내는 상상을 하고, 가족들이 끔찍한 일로 죽는 상상을 한다. 오스카가 하워드 박사를 만났을 때 행복에 대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부끄럽다고 대답한다. 부끄러움은 자기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고개를 돌릴 때 느껴지는 감정. 오스카에게 행복은 아빠를 외면하는 것이었을까? 아빠를 손에 꼭 쥐고 있고 싶어서 자꾸만 행복할 수 없는 생각들을 했을까?
여덟 달에 걸쳐 뉴욕을 수색하면서 내가 원했던 것은 행복해지는 것이었다.
드레스덴 폭격 생존자인 여자, 즉 오스카의 할머니는 너무 많은 사람들을 잃는다. 드레스덴 폭격으로 언니와 가족들을 잃고 낯선 땅으로 넘어와 함께 살아남은 남자에게 의지하며 남은 생을 살아낼 의지를 냈다. 살아보려고 했던 여자는 삶에 더 강한 애착으로 아이를 원하게 되지만 911 테러로 아들을 잃는다. 어쩌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오스카의 할머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화소로는 여자의 마음을 십분의 일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계속해서 길어지는 목도리만으로 아들을 잃은 엄마의 상실감을 유추할 뿐이다.
나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몰라, 무엇을 이해했는지 모르고, 무엇을 이해하지 않으려고 했는지 모른다. 나는 몸을 돌려 그녀를 떠나왔어,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을 거야. 내가 네게 이 모든 이야기를 해 주는 이유는, 나는 영영 네 아비가 되지 않겠지만, 너는 언제나 내 자식일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네가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이기심에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나는 살아갈 수가 없어, 노력해 봤지만 할 수가 없다. 그 말이 쉽게 들린다면, 산이 그저 산인 것이나 마찬가지야. 네 어머니도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나 그녀는 살기를 선탰했고, 살았어. 네가 어머니의 아들이 되고 남편이 되어주렴. 네가 언젠가는 나를 이해해 주리라는 기대 따위 하지 않는다, 하물며 용서라니 당치조 않지, (…) 네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나 자신의 행복보다도 더 절실하게 바란다, 쉽게 하는 말 같니? 나는 떠날 거야. 이 종이들은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공책에서 찢어서, 봉투에 넣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나의 아이에게’라고 겉봉에 적어 우체통에 넣을 거야, 다시는 한 글자도 쓰지 않을 게다, 나는 간다, 이제 더는 여기에 없다. 사랑을 담아서, 너의 아버지가
단 한 글자도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아버지는 아들에게 계속해서 편지를 쓴다. 말을 잃지만 언어는 잃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쓰고 쓴다. 살아가길 포기하며 부인과 아이를 버리고 용서조차 바라지 않았을 저 마음은 무엇일까. 이건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나 사랑의 차원을 넘은 이해받지 못할 마음이 있었겠지. 남자는 그리움이 사랑보다 짙다고 했지만 결국은 애도하기 위해서, 아니 다시 살아보기 위해서 사랑을 택한다. 아들에 대한 마음은 가늠이나마 할 수 있지만 여자와 남자,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관계는 참 어렵다. 무와 존재에 대한 저들의 규칙을 이해해 보려고 존재론에 대한 철학책도 꺼내 봤다. 물론 한 문장도 이해하지 못했다. 살아남은 두 사람의 마음은,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마음은, 기다리는 마음은 뭐였을까.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책이다. 손에 쥐려고 하는 사랑과 그리움의 마음이 인물 하나하나에, 글자 하나하나에 잘 들어가 있다. 낯설고 복잡한 형식 때문에 책 읽기를 망설였지만, 그것들이 결국 나중에 가서 더 큰 감동을 주는 요소가 되었다. (아들이라고 적힌 이름 카드를 봤을 때는 정말 참을 수 없었다.) 오스카의 아버지 토머스 셸은 회상 속에서만 잠깐 등장할 뿐이지만 너무 그리워진다. 끝내 오스카가 행복해지겠다고 선언한 것을 보고 안심했고, 지금도 오스카가 행복할 거라고 믿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