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몇 년에 걸쳐 해낸 일들은 다음과 같다. 나는 그간 살아왔던 정상적인 삶에서 벗어났고, ‘순수‘한 예술이 어디까지지저분해질 수 있는지 목격했다. 붓에 미친 너드들, 색깔 광인들, ‘안목‘을 보유한 자들, 머리통들, 예술가의 광팬들에게달라붙어 그들이 밤을 새는 이유를 알아냈다. 캔버스 위에서피를 흘렸고, 조각품에 피부가 벗겨졌으며, 거의 벌거벗은낯모르는 사람을 예술의 이름으로 내 얼굴 위에 앉게 했다. - P-1
난 예술이 왜 중요한지, 중요한 문제가 맞긴 한지, 팽팽하게잡아당긴 천 위에 바위 모양으로 묻힌 물감 자국─보통 ‘회화‘라고 부른다ㅡ을 고요히 바라보는 시간이 정말로 인간 존재를 바꿔놓을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당장 알고 싶어 미칠지경이었다. - P-1
"내가이해하는 이상적인 비평의 핵심은 사용할 수 있는모든 것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프는 현명하게덧붙인다. "이는 버크보다 앞선 많은 위대한 비평가들이 추구했던 방법이며, 오늘날 우리가 단기간에걸쳐서 하고 있는 작업들보다 훨씬 오래도록 살아남을 것이다." - P-1
"만약 시간이 끝나야 한다면 그 끝은순간들의 연속으로 묘사될 수 있겠지. 그렇게 순간을 확장하다 보면 시간의 끝이 보이지 않게 될 거야. 그 사람은 자기 삶의 모든 순간을 묘사하기로결심하고, 그 모든 순간을 묘사할 때까지는 자신이죽는다고 생각하지 않겠지. 묘사를 멈추는 그 순간에 그는 죽을 테니." 칼비노는 이렇게 쓴다.이 마지막 문장과 함께 책은 끝난다. - P-1
구영수는 오진희가 원하는 것이라면 그게 뭐든 해주고 싶었다. 일상의 자잘한 일들, 아이스크림을 사다 달라거나 설거지를 해달라거나 커피를 타달라는 부탁 같은 것들. 달리 생각해보면 오늘의 혼인신고 역시 구영수가 해줄 수 있는 것이었고,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건 해주는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었다. 한마음, 한뜻, 은행을 털러가는 일은 그런 의미에서 사랑의 연장선이자 영원한 결속이었다. 구영수는 위가 단단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느낌을 받으며 시동을 걸었다. 안전벨트를 매면서 오진희가웃고 있었고 구영수는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 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