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이 결여된 읽고 쓰기, 부채감 해소를 위한 읽고 쓰기는 비판해야 마땅하나 당사자가 아님을 문제삼아 글쓰기의 자격을 묻는 것은 윤리를 가장한 입막음으로 작동할 수 있다. 글쓰기의 자격을 심문하거나 그 실효성을 완전히 부정해버리면 각기 다른 조건 속에서 공통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차단되고 만다. ‘글쓰기의 몫이란 무엇인가‘라는어려운 질문에 응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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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가르침이 실패한 진짜 이유는 교회가 ‘나의 질문을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교회는 초인간적인 신의 선함과 권능을 빌려 가르치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 다른 인간이 함께 살아갈 인간의 세계를 만드는 일이다. 여기에 종교와 정치의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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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을 상상하는 일은 어렵고, 청년 탈출기는 실패하기 쉽다.그러나 그 실패는 한계 지점까지 나아간 성실한 실패여야 할것이다. 그래야 실패한 그 자리에서 누군가 다음의 걸음을 꿈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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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유구하고 강고한지의 세계, 즉 말하고 생각하고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인 ‘툴, 그것이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책장(場)이야말로 투쟁의 장소가 된다. 책을 솎아내는 것은 툴을 바꾸는 일이고, 이 새로운 툴로써 지의 네트워크를 재구축하는 것이 바로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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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도시」의 음모론은어느 삼류 기자가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음모론이란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이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었던가. 진실에 합당한 것은, 어떤 인간도(적군일지라도) 가족을 잃는 것에 같은 무게의 슬픔을 느낀다는 공감, 그러한 공감이있다면 현재의 비극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는 희망,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삼류 기자의 가십은 품격 있는 음모론이 된다. 음모론은 유령처럼 출몰한다. 존재도 비존재도 아닌 유령처럼, 진실도 거짓도 아닌 이야기들이 합당한 진실을 추궁한다. 음모론의상상력은 우주를 헤매고, 신비주의의 언저리를 휘돌아 지구 반대편까지 나아간다. 긴 여정 속에서 라면의 황제는 황당하고 ㅠ발랄하게 그러나 진지하고 유쾌하게, 우리 삶에서 그래야만 하는 것들에 대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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