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개의 얼굴을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하자고 졸랐다는 아버지의 젊은 어느 날 밤이 더이상 웃기지 않았다. 그런 남자가내 아버지였다. 누구나의 아버지가 그러할 터이듯. 그저내가 몰랐을 뿐이다.마침내 재가 된 아버지가 유골함에 담겨 나왔다. 아버지는 아직 따스했다. 누구의 차를 타고 왔는지 뒤늦게 나타난 작은아버지가 앙상한 팔을 내밀었다. 그 팔에 아버지를 안겨주었다. 아버지의 온기가 작은아버지의 팔을 타고 핏줄을 데울 터였다. 작은아버지가 풀썩 주저앉으며아버지의 유골을 끌어안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아홉살에어긋난 형제가 칠십년 가까이 지나 부둥켜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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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공으로 사는 일이, 아이 넷 낳고 사는 일이 적잖이 노곤했으리라. 어린 동생 들쳐업고 똥기저귀 빨던 어린 시절처럼 동동거리며 살아왔을 영자의 지난 시간이 눈앞에서 본 듯 환하게 밝아왔다. 그 시간 속에는 우리 아버지손잡고 가슴 졸이며 수술을 기다리던 순간도 존재할 터였다. 그러니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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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괜찮아."
자기 상태가 괜찮다는 것인지, 죽음이란 것도 괜찮다는것인지, 살아남은 자들은 그래도 살아질 테니 괜찮다는것인지 알 수 없는 채로 불현듯 눈물이 솟구쳤다. 그 눈물의 의미도 나는 알 수 없었다. 오빠는 우는 나를 가만히지켜보기만 했다. 고요한 눈빛으로 아버지의 죽음뿐만아니라 곧 닥칠 자신의 죽음까지 덤덤하게 수긍한, 아니죽음 저편의 공허를 이미 봐버린 눈빛이었다. 그 눈빛에서 차마 더는 울어지지 않았다. 내 울음이 사치스럽게느껴졌기 때문이다. 본디 눈물과는 친하지 않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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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아버지는 과한 지출을 했다. 4월30일 구천오백원(식대 4,000X2=8,000. 소주 한병 1,500원). 생의 마지막 날, 아버지는 누군가와 사천원짜리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아마도 메뉴는 된장찌개였을 것이고 상대는 십중팔구 박선생이었을 것이다. 교원 연금으로 그럭저럭 살 만한 박선생이 만류했을 것이나 빚지고 못 사는, 치매 걸려서도 그 성정 버리지 못한 아버지는 호기롭게 만원짜리한장을 꺼내들었을 것이다. 하염없이,라는 말을 나는 처음으로 이해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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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에 우두커니 앉아 동생의 모진 말을 묵묵히견뎌내던 아버지는, 이번에도 타는 속을 소주로 달래며,나는 모르는 씁쓸한 인생의 무언가를 되새기지 않으려나하면서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았는데, 아버지는 당연히그거사 니 사정이제, 모르쇠로, 나는 어딘지 모를 어딘가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게, 아버지의 사정은 아버지의 사정이고, 작은아버지의 사정은 작은아버지의 사정이지, 그러나 사람이란 누군가의 알 수 없는 사정을 들여다보려 애쓰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아버지는 그렇게모르쇠로 딴 데만 보고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뭐 그런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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