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라는 꿈속에서, 현실이라는꿈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참담한 꿈을 가설함으로써, 잠든 우리를 깨어나게 하려는 게 문학 아니겠어요?예를 들어, 카프카의 문학은 조금도 낙관적인 비전을보여주지 않아요. 그런데도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어쩌면 그의 문학은 인생이라는 
화마魔를 잡기 위한 ‘맞불‘ 같은 것이 아닐까요. 저는 이것이 현실을 풍자하거나 계몽하는 것보다 더 본질적인 문학의 기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말하자면 문학은 뜬눈으로 꾸는‘한낮의 악몽‘이고, 치유 불가능한 ‘반복강박‘이 아닐까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처럼 ‘아는 것‘이 정보의 생명이라면 ‘모르는 것‘은이야기의 생명이에요. ‘모르는 것‘이 남아 있어 ‘아는 것‘을 부추기기 때문에, 이야기는 계속 살아 있을 수 있어요.
반지름과 원의 넓이처럼,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모르는것‘은 제곱으로 많아진다잖아요. ‘아는 것‘이 무엇이냐는안회의 물음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해요. "아는 것을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속을 나는 새 - 동물 행동학자의 펭귄 관찰 일지
이원영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펭귄에 대해 알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알아가게 되어 기쁩니다. 사진자료가 충분히 들어가 있어 마치 직접 본 것 같은 느낌을 주네요. 흥미진진하고 사랑스런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떻게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가령 통증을 가리키는 말로 ‘우리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장난치다가 명치끝을 맞았을 때의느낌이 그러하다고 할까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이 말은도무지 번역하거나 대체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시가 지향하고 조명하는 것은 이 말이 가리키는 어떤 지점이 아닐까합니다. 오직 이 지점에서 씌어진 것만이 시이고, 이 지점을 벗어나면 사이비가 됩니다. 만약 어떤 시가 이 지점 아닌 다른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책임 회피와 방관에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애초에 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표현하려다가 실패하는 것일 테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책의어떤 내용도 진실이 아니다. 그대를 용감하고 친절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는 포마에 따라 살지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