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에세이 한권 추천해달라는 말에 이 책을 건넨다면 괴기한 서점 주인으로 오해받을까. 누군가 연필로 빼곡히 칠한 듯한검희색 표지에 제목이 무려 《무정에세이》라면 딱 한번 그랬던적이 있다. 동그랗고 조그만 안경을 쓴 예술가 느낌의 남자분부탁이었다. 아내에게 선물할 책을 고르고 싶다고 했는데 한가지고려할 점이 있었다. 아내가 직업상의 이유로 책을 많이 읽기 때문에 편히 휴식하듯 읽을 수 있는 ‘에세이‘로 골라달라고 했던것. 그러자 곧장 내 머릿속엔 ‘편히 휴식하듯‘이라는 말은 온데간데없고 ‘책을 많이 읽기 때문에‘라는 말만이 남았다. 무릇 다독가의 마음을 내려놓는 데엔 좋은 책을 만나는 것만한 특효가 없을 거라고 믿었다.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을 때도 참았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사회였기 때문이었다. 소재는 그저 언론에서 얻었을 뿐이라고 수차례 말해 왔다. 그 대답을16년 만에 고쳐 준 사람은 딸이었다. 작가는 "이제 언제 어디서든 할 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당당하고 멋진 여성으로 성장한 딸아이가 아동 성폭력 피해자였음을 밝혀 적는다. 딸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이제는 놀다가 넘어진 일만큼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라고. 그 사실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 주라고."
좋은 질문은 ‘앎‘에서 나온다. 의료 지식이 없는 보통 사람의 질문은 구체적이기 어렵다. 매뉴얼처럼 "질문 있나요?"를 외는 의사의 말에서 환자는 ‘묻지 말라‘는 뉘앙스를 읽는다. "저 괜찮나요?"가 최선의 질문이된다. ‘아는 의사‘를 찾거나 인터넷에 개인 의료 정보를 올리지 않고도, 치료의 일환으로 쉽고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는 없는 걸까. 없었다. 한국의 대형 병원에는 그 무엇보다 시간이 없다. 의료진은 친절했지만 너무 바빴거나 바빠 보였고, 나는 그 앞에서 어쩐지 자주 주눅들었다.
나는 의학의 실패를 목격하면서도 환자보호자 중 한 사람으로서 의학의 기적을 바랐다. "우리가 병들고 노쇠한 사람들을 돌보는 데서 가장 잔인하게 실패한 부분은 이것이다. 그들이 단지 안전한 환경에서 더 오래 사는 것 이상의 우선순위와 욕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질문을 들고 책 앞에 서곤 했다. 삶도,세계도, 타인도, 나 자신조차도 책에 포개어 읽었다. 책은 내가 들고 온 슬픔이 쉴 자리를 반드시 만들어 주었다. 슬픔의얼굴은 구체적이었다. 나는 아프고 다친 채로도 살아갈 수있는 세계를 원했다. 고통으로 부서진 자리마다 열리는 가능성을 책 속에서 찾았다. 죽고, 아프고, 다치고, 미친 사람들이 즐비한 책 사이를 헤매며 내 삶의 마디들을 만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