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는 어느 역사학자의 말처럼 극단의 시대였다. 그러나 이 극단은 어느 날 갑자기 솟아난 것이 아니다. 15세기 이래 면면히 준비되어온 것들이 표피를 뚫고 터져 나온 것이다.이제 우리는 극단에서 극단으로 오갈 수 있을 뿐이다. 개념적파악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파악 불가능을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파우스트』 의 한 구절처럼 모든이론은 잿빛‘ 이어서 이론은 현실에 맞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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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손바닥 위에 빗물이 죽은 이들의 이름을 가만히 써주는 것 같다

너는 부드러운 하느님
전원을 끄면
부드럽게 흘러가던 환멸이
돼지기름처럼 하얗게 응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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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당신에게 도착하지 않은 생각과 말과 행위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요?
내 손을 떠나서 어딘가로,
많은 죄를 지으러 간 걸까요?"*

몸 밖으로 나온 것 가운데 
죄 아닌 것들이 없다.

죄의 자리에 거짓이나 오류나 실패를 넣어도 성립한다.

*가톨릭의 고백 기도문 인용.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죄를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quia peccavi nimis cogitatione, verbo, opere, etomissi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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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어디에나 있거나 어디에도 없다신은 어디에나 있는 동시에 어디에도 없다. 신은 세상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유의 개소리만 아니라면, 신이라는주어와는 어떻게 갖다 엮어도 어지간하게 말이 되는 것 같아서,어떤 사람들은 인류의 꿈속에 나타나는 신이 옆머리만 남은 대머리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격렬한 저항감 없이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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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한번본 적 없음은 물론 전화 통화도 해본 적 없는 랜선 너머 타인과 일상의 이미지와 텍스트를 공유하는 동안 잘도 사랑에 빠지는데, 마케팅이나 사회학 연구나 어떤 목적이든 간에 이미 대중의 인식에 생성되어버린 사람과 꿈속에서만 만나 대화한다고 해서, 그걸 상호작용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찰나를 초월한 이미지, 유사성의 끄트머리에 간신히 매달린 기억의 파편, 무시로 변용되고 변주되며 변모하므로 언제까지고 파악되지 않는 것을 가리켜 존재가 아니라고 단정짓는 일의 오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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