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좋아하는 카프카의 말이 있어요. "당신과 세상과의 싸움에서, 세상 편을 들어라 (In the duel between you andthe world, back the world)." 이 말은 문학뿐만 아니라 인생의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원칙 같아요. 어떤 일에서도 자기편을 들지 않고 세상 편을 들 때, 인생에서나 문학에서나 진실함, 올바름, 아름다움이 이루어질 수있어요.
달마의 안심법문安心法門」에도 비슷한 말이 나와요. "지자임물불임기智者任物不우자임기불임물愚者任己不任物."지혜로운 사람은 자기가 아니라 사물에게 우선권을 주는 데반해, 어리석은 사람은 사물이 아니라 자기에게 우선권을준다고 해요. 그 때문에 항상 좋고 나쁘고, 취하고 버리는일이 있게 돼요. 이 말은 세상과의 싸움에서 세상 편에서야 한다는 카프카의 말과 정확히 일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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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라는 꿈속에서, 현실이라는꿈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참담한 꿈을 가설함으로써, 잠든 우리를 깨어나게 하려는 게 문학 아니겠어요?예를 들어, 카프카의 문학은 조금도 낙관적인 비전을보여주지 않아요. 그런데도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어쩌면 그의 문학은 인생이라는 
화마魔를 잡기 위한 ‘맞불‘ 같은 것이 아닐까요. 저는 이것이 현실을 풍자하거나 계몽하는 것보다 더 본질적인 문학의 기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말하자면 문학은 뜬눈으로 꾸는‘한낮의 악몽‘이고, 치유 불가능한 ‘반복강박‘이 아닐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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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처럼 ‘아는 것‘이 정보의 생명이라면 ‘모르는 것‘은이야기의 생명이에요. ‘모르는 것‘이 남아 있어 ‘아는 것‘을 부추기기 때문에, 이야기는 계속 살아 있을 수 있어요.
반지름과 원의 넓이처럼,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모르는것‘은 제곱으로 많아진다잖아요. ‘아는 것‘이 무엇이냐는안회의 물음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해요. "아는 것을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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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을 나는 새 - 동물 행동학자의 펭귄 관찰 일지
이원영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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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에 대해 알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알아가게 되어 기쁩니다. 사진자료가 충분히 들어가 있어 마치 직접 본 것 같은 느낌을 주네요. 흥미진진하고 사랑스런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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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가령 통증을 가리키는 말로 ‘우리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장난치다가 명치끝을 맞았을 때의느낌이 그러하다고 할까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이 말은도무지 번역하거나 대체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시가 지향하고 조명하는 것은 이 말이 가리키는 어떤 지점이 아닐까합니다. 오직 이 지점에서 씌어진 것만이 시이고, 이 지점을 벗어나면 사이비가 됩니다. 만약 어떤 시가 이 지점 아닌 다른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책임 회피와 방관에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애초에 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표현하려다가 실패하는 것일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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