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명의 아버지가 있는 집 레인보우 북클럽 14
마인데르트 드용 지음, 이병렬 옮김, 김무연 그림 / 을파소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12살 아이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일, 또는 극한의 공포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은 어떤 순간일까? 지금 딱 주인공과 같은 12살 아들녀석이 언제 그칠지도 모를 폭우가 쏟아지고, 거기에 천둥 번개까지 치는 상황에서 집안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져 있었던 날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맞다... 12살 아이가 그리 대단한 공포를 느낄 만한 상황이 찾아올까도 싶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아니... 생각하기도 싫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중일전쟁이 막바지였던 1944년, 티엔 파오 가족은 일본의 공습으로 불타버린 고향 마을을 탈출한다. 겨우 탈출해 삼판(강가나 얕은 해안에 띄울 수 있는 작은 배)에서 생활하던 중, 하필 티엔 파오 혼자 잠들어 있던 삼판이 폭우에 떠내려가면서 가족과 이별을 하게 되고, 12살 소년 파오가 가족을 찾기 위해 몸부림 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책 표지 그림에 얼핏 봐선 순하디 순하고, 한없이 여리게만 보여 아들녀석과 성격마저도 닮아 보이는 티엔 파오는, 돼지를 끌어 안은 채 하늘에 쓸쓸히 떠 있는 한조각의 달을 바라보고 있다. 오직 바라볼 것이라곤 그것뿐이라는 듯이 말이다. 이 슬픈 눈을 가진 12살 짜리 아이가 앞으로 만나게 될 이야기가 조금은 그려지면서 한숨이 나왔더랬다. 전쟁 중에 적지에 홀로 남겨져 먹을 것도, 잘 곳도, 누구 하나 의지할 것도 없이 홀로 남겨진 이 아이가 내 아이라고 상상했을 때는 한숨이 아닌... 가슴 한복판이 먹먹해 왔다.

 

어린것이...일본군의 총알을 피해 도망을 하기도, 너무 배가 고프고 지쳐 허깨비에 쫓기기도 한다.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듯 장면이 그려지고, 어른들도 이렇게 버텨내기 힘들텐데...시종일관 아이의 뒤자락을 눈으로 따라가며 안타까움의 탄성만 속으로...속으로 지를 뿐이었다. 먹을 것이 없어 흙을 파먹는 아이에게 자신이 가진 먹을거리의 전부인 쌀 반공기를 기꺼운 마음으로 내미는 장면에선 정말 가슴이 메어져왔다. 이것이 전쟁인 것이다. 철없이 부모에게 응석이나 부릴 나이에 이처럼 말도 안되는 일을 겪어야 하는 것이 전쟁인 것이다. 아들녀석과 영화 [황시]와 [디파이언스]를 보았었다. 우연찮게 모두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였다. 처음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영화로나마 생생하게 보게 된 아이와, 어떤 이유에서든 전쟁으로 인해 무고한 생명이 무참히 죽어가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는 걸 이야기 나누었었다. 나 역시 전쟁을 겪어보지 못했지만, 아들녀석에게는 더더욱 와닿지 않을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우리나라 역시 이런 전쟁을 겪었다는 것을 영화로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뚝딱 책을 읽어치운 녀석이 말을 건네왔다. "티엔 파오가 일본군한테 잡힐까봐 너무 아슬아슬했어!" "전쟁은 정말 끔찍한거야!" 맞다! 정말 전쟁은 너무나 끔찍하다. 비록 어린 소년이었지만 가족을 만나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기에, 결국 엄마 품에서 다시 어린 아들로 돌아가 목 놓아 울 수 있었다. 일본군을 피해 숨어 다니며 만났던 사람들... 그 중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60명의 아버지(그들은 중국을 지원하던 미군 폭격대였다)들은 티엔 파오에게 맛있는 음식에, 따뜻한 잠자리,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 중에 가장 절실한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든든한 사람들이었지만 티엔 파오는 그들의 도움을 받기 보다 가족을 찾기 원했다. 그래... 가족이란 이런것이지... 그 넓은 땅 덩어리에서, 수 많은 피난민들 가운데 가족을 찾는 건 불가능 하다고 모두 한마디씩 했지만,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티엔 파오의 의지가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뉴베리가 다섯 번이나 선택한 작가 마인데르트 드용의 1957년 뉴베리 영예상 수상작... 60명의 아버지가 있는 집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마인데르트가 미육군항공단 소속으로 중국의 페이시위 공항에서 3년간 복무할 당시에 돌보아 주던 집 잃은 소년이 있었다. 귀국길에 데려 오고 싶었지만 해외 입양이 힘들어 이별할 수밖에 없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한다. 철저하게 아이의 시선에서 모든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지만, 전장에 홀로 떨어져 있는 어린 아이의 다양한 심리 묘사와 당시 배경이 사실감 있게 묘사되어 있다. 아이와 함께... 전쟁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정당화 될 수 없고,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아슬아슬한 평화마저 얼마나 감사한지를 절실히 느껴 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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