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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지음, 이인웅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3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3년에 읽어 보고-그 때는 민음사 판본으로 봤다.-10년 만에 다시 읽어 봤는데, 역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출판사 책들이 대체적으로 좀 비싼 편이지만, 번역만큼은 좀 뛰어난 것 같아 망설임 없이 구입해서 읽어 봤는데,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한스가 살고 있는 지역 그 주 정부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만 뽑힌다는 시험을 준비한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학교의 교장선생님, 목수 등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공부를 도와준다. 어렸을 때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하고, 낚시를 하며 여유로움을 만끽하기도 하던 한스는 많은 양의 공부에 파묻히게 돼 그런 여유가 사라지게 된다.
시험을 제대로 잘 보지 못한 것 같아 아버지께 그 말씀을 드리자, 아버지는 매우 분노하고 침착하라고 말한다. 한스는 매우 죄스럽고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게 된다. 하지만 정작 시험 결과가 나와 보니 학교 내 차석이어서 모두를 놀라게 했는데, 부모님은 매우 기뻐한다. 앞으로 한스는 공부를 향한 길에 매진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굳게 믿고 아들에 대해 자랑스러워한다.
시험에 합격하고, 한스는 이전에 다니고 있던 학교의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학교에 출석할 의무를 면제받는다. 그는 짧은 기간이지만, 자연에서 여유를 만끽할 기회를 갖게 되며, 아버지께 돈을 받아 낚싯대를 구입해 낚시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른들에 의해 그는 뛰어난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공부를 놓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아-"입학하게 될 학생들도 열심히 공부를 하며 준비하고 있을 테니" 라는 말을 들어 가며-조금씩 이런 저런 공부를 한다. 그리스 희랍 고전(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같은) 등을 교장선생님의 지도를 받아 하루 중 꽤 많은 시간 공부하고, 목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가며 성경 공부를 조금씩 한다. 그러면서 압박감에 의해 조금씩 두통을 느끼는데, 이것이 모든 일의 전조는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아버지와 함께 짐을 챙겨 학교에 입학하는 한스는 자신이 비로소 이 학교에 입학했다는 생각이 들며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한다. 학교 내에 여러 기숙사가 있지만, 그는 5~6명 정도와 함께 생활하는 기숙사에 배정받는다. 기숙사생 중에 한스 하일너라는 인물은 모범적인 생활을 추구하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와는 다르게, 공부에 별 흥미가 없고, 시간 나는 족족 자연에서 시를 쓰며 생활한다. 한스는 학교의 분위기와는 조금 이질적인 방향을 추구하는 그에게 조금씩 이끌리게 되고, 하일너와 친해진다. 한스는 그의 천재적 면모와 시인적 기질에 사로잡히며, 자기가 추구했던 학교 생활 내의 모범적 사고방식에 조금씩 적응하기 힘들어 하기 시작한다.
하일너와 점점 친해지면서 한스는 학교 내의 문제적 행동에도 거리낌이 없어지며, 학교 공부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학교의 교장 선생님과 그를 매우 유심히 바라보던 많은 선생님들도 하일너와 교제하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하일너와 계속 깊은 관계를 맺는다.
하일너가 학교 아이들과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싸움에도 가담했을 때, 교장선생님은 그에게 징계를 내리며 학교 구성원 모두가 그와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명령한다. 한스는 그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갈등하며 결국 다가가지 않았고, 하일너는 그에게 굉장한 실망감을 느껴 여러 욕설을 내뱉는다.
어느 날, 하일너가 기숙사에서 몰래 나와 며칠을 잠적했을 때, 학교가 발칵 뒤집혀 모두가 그를 찾았지만, 그를 찾을 수 없었고, 결국 하일너의 아버지를 호출하기에 이른다. 하일너는 며칠 뒤 모습을 드러내었고, 교장 선생님은 분노해 그를 퇴학시킨다.
친한 친구가 아무도 없어진 한스는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이제 그는 공부를 할 수도 없고, 무언가에 골똘히 집중하는 것도 불가능하며, 계속되는 두통이 그를 괴롭히게 된다. 때로는 심신미약으로 갑자기 수업시간에 쓰러지기까지 하는데, 결국 학교생활을 더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판단돼 그는 명문 학교를 자퇴한다.
아버지는 굉장한 실망감을 느꼈지만, 한스에게 내색할 수 없었고, 확실하게 내색하지 않는 아버지를 보며 한스는 굉장한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학교를 자퇴한 한스는 집에 돌아와 다시 낚시를 해보기도 하고, 자연을 만끽해 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흥미가 없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떠올리면 괴롭기만 하고, 두통이 느껴진다. 아버지는 그에게 공장에서 일하는 게 어떻겠냐고 묻고, 공장에서 꽤 직급을 달고 있는 친구에게 상담한 결과 그도 공장에서 일하기로 마음 먹고, 아버지께 의견을 전한다.
공장에서 조금씩 일을 배우면서 어떤 여자아이에게 반해 버린 한스는 막상 여자아이가 그를 유혹하기도 하고, 그를 통해 성적인 장난을 쳐보기도 하지만, 쑥맥처럼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거나 집으로 도망가 버린다. 우연히 어떤 날 그 여자 아이가 완전히 어디론가 떠나버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자신이 장난의 대상으로 여겨졌구나 싶어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일에도 조금씩 숙달되고, 일하던 사람들끼리 술을 마시러 가서, 술에 안 취하려고 노력하던 한스는 기분이 꽤나 달아오르며 자신이 같이 일한 사람들과 이렇게 술 마시고 얘기하고 떠들고 즐기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너무 많은 술을 마신 한스는 집에 돌아가다가 연못에 빠져 죽게 되는데, 그가 자살을 했는지, 혹은 술에 거하게 취해 빠져 죽은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국 마을 목수만이 그를 적확하게 꿰뚫어 보았는데, 많은 어른들이 그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고 말았다는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느낀 바로는, 만약 한스가 하일너와 친해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도 작품을 읽으면서 꽤 들었다. 만약 하일너와 친해지지 않고 학교 생활에 매진했더라면 온전하게 학교 과정을 마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한스는 어떤 삶을 살아갔을까 그런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기도 했다. 한스는 부모님과 학교의 기대에 부응해 뛰어난 학자로서의 삶을 살아갔지 않았을까? 물론, 그것이 작품의 주된 이야기가 아닐진대,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따질 수도 있을 테지만, 큰 의미가 없어 보이는 것에 대해 굉장한 의구심과 의문을 갖는 것은 기본적으로 문학에 대한 기본적 예의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작품 내에 묘사된 공장에서의 생활은 내가 느끼기에 한스에게는 너무 고돼 보인다. 연약한 체구를 가진 한스가 그런 중노동을 앞으로 살아가면서 해 나가가기엔 전혀 수월해 보이지 않았다.
이 당시의 독일의 억압적인 교육 과정과 교육 방식을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교육에 투영해 보면 어떨까? 우리나라의 현재 교육과정도 작품 속 독일 내의 상황과 비교해 보았을 때, 만만치 않을 정도로 상당 부분 강압적이고 권위적이진 않나, 그런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