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19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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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 수행평가 반영 및 중간고사 시험에 실험적 요소를 끌어오셨던 젊은 선생님이 떠오른다. 교과서에 실리는 문학 작품은 텍스트가 짧아서 작품의 온전한 의미와 내용을 파악하기 힘드니, 책을 다 읽어 온 채로 수행평가에 임하도록 하라는 말씀과 중간고사 문제에도 반영하겠다는 선생님의 작은 호령에 학교가 나름 떠들썩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에 문학 시간에 교과서 내의 작품만 다루는 것이 아닌, 온전한 장편소설을 읽어오도록 하고 그것을 수행평가와 중간고사에 반영하려는 시도가 임용시험에 합격하고 새롭게 학교에 부임하신 선생님의 입장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알겠다.

그 선생님 덕분에 나는 한국의 대작가 박완서를 알게 되었고,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기뻤고, 내가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돌아가신 것이 참으로 슬펐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박완서 선생님의 자전적 면모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장편소설이다. 서문에 밝혔듯이 박 선생님이 이 책을 쓰는 데에 있어 집필 당시 기준으로 그 내용이 너무 아득한 과거이고,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상상력을 통해 기억의 점들을 연결했다고 하셨다. 하지만 박 선생님은 기억력이 굉장히 좋은 편이셨다고 알고 있어서, 책의 틀 자체는 장편소설이지만, 자서전으로 생각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작품이 시작되는 배경은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일제강점기의 시대가 오기도 전의 아득히 먼 옛날이다. 두 작품을 묶어서 생각해 볼 때, 작품의 배경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1. 일제강점기 이전에 유년기였던 화자가 그려내는 대가족의 일상과 풍경

2. 일제강점기의 화자 주변의 혼란했던 상황

3.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뒤이어 곧바로 6.25전쟁이 터지면서 이런저런 상황에 의해 피난을 가지 못하고 인민군에 의해 서울이 점령당한 순간에 화자가 겪었던 일들,
인민군에 의해 강제로 북으로 올라가다가 임진강 인근에서 간신히 탈출한 이후 서울에 도착해 가족들과 상봉한 상황 등.

4. 휴전된 이후 극심한 가난때문에 화자가 어떻게든 일자리를 알아보던 차에 겨우 취직이 됐던 미군부대 PX에서의 일화

화자는 주변의 인물들이 누가 됐든지 간에 냉정한-심지어 신랄하기까지 하다-묘사의 위치를 점한다. 읽고 있으면서 손이 벌벌 떨릴 때도 있었다. 때로는 너무 적나라하게 그려내서. 그것은 화자의 어머니라도 피해갈 수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들었던 생각은, '내가 아무리 Text로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접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 때의 상황과 맥락, 즉 Context를 절대로 온전히,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없겠구나. 겪어보지 않았으니까.'였다. 동세대셨던 최인훈 선생님도 전쟁을 직접적으로 겪은 세대셨기에 집필하신 여러 책에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있는 것으로 안다. 대표적으로 교과서에서도 자주 접했던 <광장>이 있겠지만.

나 스스로도 전쟁에 대해 굉장히 무감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의 세대 그 다음에는 밤에 통금이 있었던 세대가 있다. 난 그 당시의 통금을 비롯한 여러가지 사건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 때 사람들이 겪었던 일들을 '알 수는' 있어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소위 '통금'세대도 '일제강점기', '6.25전쟁' 세대를 이해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오죽할까. 그것이 21세기가 되기 바로 직전에 태어났던 나에게 내재된 어쩔 수 없는 한계다.

아무리 증조부모,조부모 세대가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이야기하고, 부모세대가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 집권 때의 상황을 부르짖어도, 나는 그것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 내가 태어난 시기가 갖는 맹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 그것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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