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이 1917년에 나왔다. 시대를 감안해서 읽어야 한다는 소리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자면 뭐 그리 대단한 것 없는 로맨스 소설이지만, 그 시대에서는 여성의 성욕구를 드러내고 주체적인 삶을 살려고 했던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했다는 커다란 의미를 지녔단다. 읽으며 결말이 어떻게 날지 궁금했다. 내가 생각했던 결말은 아니였고 맘에 들지도 않지만, 어쩌면 제일 현실적인 선택이었던 것임을 인정해야만 할 듯하다. 근데 아무래도 채리티가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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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뮤지컬, 오페라등의 공연예술평론가라는 나에게는 생소한 글쓰기를 하는 목정원 작가의 산문집이다. 공연을 자주 접해 보지 않아서 혹은 관심이 없어서 거의 문외한에 가까운 나는 이 책이 나와 맞을지 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연극이나 오페라를 직접 보고 있는 것처럼 상상 가능하게 서술하는 작가의 능력에 연신 감탄했다. 공연 평론이 아니라도 작가의 유학 시절 공부나 여행에 대한 이야기도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을 나와는 아주 다른 감성으로 이야기하고 있어 신선하고 자극적(?)이었다.

 

시대착오적인 여성 혐오적 고전 작품(?)에 대한 생각, 장 끌로드 아저씨 에피소드, 깔끔한 조카의 사려깊은 모습에 나 자신을 많이 반성하게 되었다.

 

이 책 자체의 독특함은 각주가 페이지 아래가 아닌 옆에 있다는 점인데, 이게 은근 보기가 편했다. 디자인적인 면에서도 더 예쁘게 느껴진다.

 

나의 관심 밖 분야의 책을 재밌게 읽어 보았다는데 뿌듯함을 느낀 독서였다.

 

 

 

p. 47 동시대인이라는 말의 가장 적합한 정의란 함께 죽음을 지켜본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다. 우리는 시대를 견디며, 시대를 견디지 못한 이들의 죽음을 지켜본 사람들. 그리하여 어떤 죽음들에 대한 기억을 설명 없이 나누는 사람들. 함께 웃는 사람들이기보다, 함께 웃지 못하는 사람들. 무언가가 좀처럼 웃기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p. 54 서구에서 극장이라는 말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의 테아트론 theatron에서 찾을 수 있는데, 흥미롭게도 테아트론은 무대가 아니라 객석을 칭하는 용어였다. 극장이란 무엇보다 보는 곳이었고, 그곳의 제1주체는 관객이었던 것이다.

 

p. 80 프랑스어로 유령은 revenant이며, 이를 직역하면 다시 돌아오는 자라는 뜻이다. 떠나간 이가 미처 영영 떠나지 못하고 또다시 돌아오는 일. 아마도 할 말이 남아 있어서.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있어서. 그 죽음이 개운한 안녕일 수 없어서. 납득하고 단념할 수가 없어서. 아파서. 아픔이 말이 되지 않아서. 산 자만이 그 말을 해줄 수 있어서.

 

p. 87 이 시대에 여전히 <돈 지오반니>를 공연하기 위해서는, 더불어 수많은 여성 혐오적 고전들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거리가, 시선이 필요하다. 남성 인물이 누리는 자유에 내재된 폭력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 자신조차 그에 대해 취할 수 있는 거리가 필요하다. 관객에게 사유와 비판을 가능케 하는, 여러 겹의 진실이 필요하다. 그 틈새 속에 누구든 은신하여 상처 받지 않을 수 있는 섬세한 깊이가 필요하다.


p. 102 신기하게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래, 비극이란 관객보다 고귀한 인물의 고통을, 희극이란 그보다 저급한 인물의 고통을 다루는 것으로 규정된다. 모두 고통인 것은 매한가지이나 인물에 대한 나의 거리가 다른 것이다.

 

p. 139 상징이란 말은 본디 둘로 쪼개어져 제 짝을 찾아야 하는 도자기 조각을 의미한다. 상징주의에 따르면 세계는 해독해야 할 신비로 가득 차 있다. 한 조각을 보면 그 배후에 또 다른 조각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리하여 영영 짝을 찾지 못할 거울을 들고 떠도는 것이 인간의 삶.

 

p. 181 모든 것을 알아도 생을 사는 이유는 살아야지만 삶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살아야지만 당신을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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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지독한 책벌레이다. 일상생활이 거의 안될 정도이다. 책과 교사라는 직업이외의 모든 것에서는 옆에 사람 복장터지게 하는 프랑스인 책벌레이야기다. 책벌레인 남편보다는 그 옆의 한국인 부인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에두아르가 부럽다. 그토록 좋아하는 것이 있고 그 일을 맘껏 하면서 살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가 추정한 책벌레가 되는 과정이 인상깊다. 책을 읽을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지고 자신의 무식함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더 책을 찾아 읽게 되고, 또 모르는게 많아지고... 그래서 그렇게 책벌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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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에 출간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이 책을 받아 든 생각은 볼 가치가 있을까,였다. 그러나 기우였다. 책에 대한 얘기지만 책 내용 소개 보다는 책에서 촉발된 인상이나 생각들을 풀어 놓는 것이 주가 되는 책이어서 정희진이라는 작가를 처음 대한 나에게는 그 작가의 솔직한 모습과 생각들을 알게 해준 귀한 책이었다. 바로 그의 신간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을 주문했다.

 

여기에 소개된 책들은 대부분이 안 읽어본 책들이었지만 책에 대한 생각이 주가 아니라 젠더, 권력, 정치등에 대해 나에게는 독특한 관점을 보여주는 내용이 많아 눈을 반짝거리며 읽게 되었다. 특히, 군 징병제와 지원병제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한 측면을 짚어주었다. 지원병제를 찬성하던 나는 지원병제가 군대 관련 문제를 특수한 집단만의 문제로 축소, 은폐되기 쉬우며 계급화를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렇다. 지금도 군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문제가 조직 특유의 폐쇄성으로 은폐되기 쉬운데 지원병제로 바뀌면 대다수 국민의 관심을 받기에는 더욱 힘들어질 터이다.

 

정희진씨는 여성의 군 복무 의무에 대한 논의는 거론하길 피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는데 이 문제도 남녀 사이의 꽤 첨예한 문제라 그의 입장을 듣고 싶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질문을 많이 해 보려고 노력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많은 질문이 눈에 들어왔다. 답 비슷한 것보다는 너무나 많은 질문이 쏟아지다 보니 그래서 어쩌라고하는 생각도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질문은 좋은 것이다. 아니, 좋은 질문이 좋은 것이다. 좋은 질문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고민과 성찰과 관찰등 많은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책을 읽으면서까지 그래야 하느냐라는 반문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독서 이유 중 가장 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정희진씨는 잘 맞는 것 같다. 그의 다른 책을 열심히 읽어보련다.


p. 12 위로는 깨달음에서 온다. 이 위로가 몸에 습관이 되어 독서의 즐거움에 중독되면 다른 일에는 흥미가 떨어진다.

 

p. 19 독서는 내 몸 전체가 책을 통과하는 것이다. 몸이 슬픔에 잠긴다’, ‘기쁨에 넘친다’, 감동에 넋을 잃는다텍스트를 통과하기 전의 내가 있고, 통과한 후의 내가 있다. 그래서 간단히 말해 독후의 감이다. 내게 가장 어려운 책은 나의 경험과 겹치면서 오래도록 쓰라린 책이다. 면역력이 생기지 않는 책이 좋은 책이다. 그리고 그것이 고전이다.

 

p. 25 인간관계에서 은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 잃을 것이 없는 사람, 덜 사랑하는 사람일지 모르지만 권력이 두려워하는 인간은 분명하다. 세상이 넓다는 것,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다.

 

p. 64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한수산의 평 그를 읽는다는 것은 젊은 날의 상처다. 그러므로 상처가 나을 때 독자는 그를 떠난다. 다자이는 홀로 거기 있다. 어린이가 자라서 또 다른 젊은이가 다자이를 만나고 .다만, 나는 안다. 그는 자신의 초기 작품에서 더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는, 나아가지 못한 작가라는 것을.”

 

p. 70 누구의 인생도 피해 경험이 없는 경우는 없으며 동시에 평생 피해자인 사람도 없다. 피해는 상황이지 정체성이나 지칭이 될 수 없다. 타자화는 나를 기준으로 타인을 정의하는 것. 그 자체가 폭력이다.

 

p. 82 안락사를 생명의 차원에서 다루는 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생명을 무시하는 태도다. 문제의 본질은 생명이 아니라 고통이다.

 

p. 101 악의 활동, 피해가 발생하는 시간은 짧다. 그러나 악의 이유를 묻게 되면 영원히 피해자가 된다. “ ?” 라고 질문하는 그 순간부터 피해자 됨의 진정한 의미, 불행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 당하는 것을 넘어 사로잡히는 것이다. 악의 이유에 대한 궁금증은 피해자의 자아 존중감을 파괴하는 악의 본질이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무관심으로 악의 기능을 중단시키자. 그럼, 누가 악과 싸우나? 그건 악 자신이 할 일이다.

 

p. 113 인간이 평생 동안 가장 많이 생각하는 주제는 자기 합리화라고 한다. 이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지나치면 문제겠지만 인간의 중요한 생존 기제다. 동시에 인생고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p. 119 말을 섞는 것은 살을 섞는 것보다 훨씬 육체적인 행위다. 대화는 상대의 몸에 삼투압을 일으키고 화학은 인간을 변화시킨다. 이러한 몸의 변용이 인생이고, 삶이 고해인 이유다.

 

p. 122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진보 개념은 근대화 시각에서 발전주의를 의미한다. 민주주의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는 적대하거나 논쟁하는 세력이 아니다. 정상적인 국가 건설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되 방법이 다를 뿐이다. 공통점은 성 차별과 주류 지향이고, 차이는 종북이라는 기이한 용어에서 보듯 제대로 된 국가를 만드는 일에 통일을 포함하는가 여부와 그 방식일 것이다.

 

p. 126 싸우지 않고 이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서로 당연하게 설정하고 있던 전선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다. 기존의 사고방식, 싸움 주체를 생소한 것으로 만들어 적을 인식 분열 상태로 만든다.

 

p. 151 박정희 체제의 공과를 논할 때 공은 경제 성장, 과는 인권 탄압이라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고문은 정권의 흠이 아니다. 통치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p. 157 글자들의 관계, 즉 문장의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뜻이 있는 글자가 아니라 뜻이 없는 글자, 조사다. 무의미는 모든 의미다. 뜻의 무게를 진 자()는 사용이 한정되지만, 조사는 자유로운 영혼이면서 문자를 배치하고 지배한다. 의미(권력) 없음이 의미를 통제하는 것이다.

 

p. 160 사람들이 폭력을 선택하는 이유는 저항과 자유를 포함한 무질서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비인간적 규정, 억압적 관료주의, 무신경, 군기, 일벌백계는 무질서에 대한 매력적인 대응책들이다.

 

p. 176 한 사회의 문명화 여부는 무조건적인 발전이 아니라 그 사회의 필요를 얼마나 만족시켰는가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p. 177 민족이 성찰과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피해의 기억으로만 한정될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누가 이득을 볼까. 나는 한국이 일본에게 좀 무관심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가해자는 뻔뻔한데 한쪽의 지나친 피해의식은 좌절, 절망, 원한을 순환하는 나르시시즘으로 추락하기 쉽다.

 

p. 185 지원병 제도는 전쟁과 군대로 인한 제반 논의가 특정 소수 집단의 문제로 축소되는 체제다. 이에 반해 보편적 의무로 운영되는 징병제는 어쩔 수 없이 전 사회적인 관심사가 된다. ... ‘바람직하지 않지만 불가피한 일은 모두가 경험하는 것이 좋다는 역설이다.

 

p. 188 평화에 대한 욕망은 반()평화적이다. 평화를 둘러싼 경합이 평화다. ‘모든 이()가 사이좋은 상태()’는 존재할 수 없다. 이 불가능한 상태를 약자가 인내함으로써 가능한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 평화다. 강자의 양보로 평화가 실현된 경우는 없다. 양보했더라도 그것은 정의이지, 관용이나 배려가 아니다.

 

p. 199 자신을 지배하는 정열이 사라질 때, 스스로에게 질문이 없을 때, ‘나는 정상이라고 믿을 때, ‘지당하신 말씀’, ‘쉽게 읽히는’, ‘대중성있는 글이 생산된다.

 

p. 210 사상은 과학이든 이데올로기든 조류(潮流)가 아니라 현실의 필요와 상황에 근거한 것이다. 사상의 발생은 연대기일 수 있지만 어떤 사유도 그 자체로는 시대착오거나 시기상조일 수 없다. 어떤 지역에서 한물간이야기가 다른 이들에겐 절실할 수 있고 가장 올바른 길일 수 있다. 사상은 보편성이 아니라 공간적(local) 맥락에서 논해져야 한다.

 

p. 215 사회적 약자는 약한 사람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부당한 질문을 받는 사람이다.

 

p. 217 ()을 구획하는 것은 자연도 신도 아닌, 사소하고 우연한 권력들이다. 이 권력을 가시화해야 한다. “배제되지 않기 위해 포함되길 거부하라

 

p. 220 “혁명은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인정하는 것이다.”

 

p.229 은유는 상상력과 새로움의 원천이다. 은유하는 능력은 이미 재현된 현실과 다른 차원의 시각과 감수성을 요구한다. 인간의 매력은 말과 글을 따른다.

 

p. 239 포스트는 실제 이후가 아니라 인식 이후를 말한다. 포스트모던은 기존 역사를 혼란시키기 위한 것으로 모던과 갈등을 일으키는 모든 개념을 말한다.

 

p. 260 생로병사가 사실이고 무병장수는 희망, 아니 탐욕이다. 꿰맨 자리는 아물기도 하고 터지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생명은 미봉의 점철. 그러므로 미봉책은 임시방편이 아니라 영원한 방도다.

 

p. 265 가진 자의 분노는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배려받지만 약자의 분노는 폭력 취급하는, 약자는 우아하고 세련된 시민일 수 없게 만드는 이 시스템!

 

p. 270 질병으니 삶의 부작용이 아니라 본질이다. 의료는 복지 이슈가 아니다. 쌀 수급을 복지 정책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질병은 비정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용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다.

 

p. 289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내가 필요한 존재였다는 것, 무엇인가를 추구했다는 것, 나만의 세계가 있었다는 것 등오로 다양할 것이다.

 

p. 296 경제적 합리성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자 빈부, 실력, 기회의 양극화보다 더 근본적인 의지의 양극화가 생겨났다. 근대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하면 된다는 의지적 인간의 탄생이었다. 작금의 자본주의는 의지의 소유조차 극소수로 제한된다. ‘나머지들은 자기 계발의 늪에 빠지고 좀 더 지혜로운 이들은 포기를 선택한다.

 

p. 306 어느 출판사의 사훈은 책 때문에 망가지는 나무가 없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한다. 좋은 독자는 지구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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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 책이 엄청 두꺼울거라 지레 겁을 먹었을까? 아마도 무슨 무슨 소녀 하는류의 추리소설이 있었서 그 영향이지 않을까 한다. 

'foster'라는 원제를 보고서는 이상한 위탁가정에 맡겨진 소녀가 학대를 당하는 식의 내용이 아닐까 심난했는데 그 반대의 따뜻하고 감동적인 내용이어서 다행이었다. 짧지만 진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의 힘!! 읽기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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