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뮤지컬, 오페라등의 공연예술평론가라는 나에게는 생소한 글쓰기를 하는 목정원 작가의 산문집이다. 공연을 자주 접해 보지 않아서 혹은 관심이 없어서 거의 문외한에 가까운 나는 이 책이 나와 맞을지 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연극이나 오페라를 직접 보고 있는 것처럼 상상 가능하게 서술하는 작가의 능력에 연신 감탄했다. 공연 평론이 아니라도 작가의 유학 시절 공부나 여행에 대한 이야기도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을 나와는 아주 다른 감성으로 이야기하고 있어 신선하고 자극적(?)이었다.
시대착오적인 여성 혐오적 고전 작품(?)에 대한 생각, 장 끌로드 아저씨 에피소드, 깔끔한 조카의 사려깊은 모습에 나 자신을 많이 반성하게 되었다.
이 책 자체의 독특함은 각주가 페이지 아래가 아닌 옆에 있다는 점인데, 이게 은근 보기가 편했다. 디자인적인 면에서도 더 예쁘게 느껴진다.
나의 관심 밖 분야의 책을 재밌게 읽어 보았다는데 뿌듯함을 느낀 독서였다.
p. 47 동시대인이라는 말의 가장 적합한 정의란 ‘함께 죽음을 지켜본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다. 우리는 시대를 견디며, 시대를 견디지 못한 이들의 죽음을 지켜본 사람들. 그리하여 어떤 죽음들에 대한 기억을 설명 없이 나누는 사람들. 함께 웃는 사람들이기보다, 함께 웃지 못하는 사람들. 무언가가 좀처럼 웃기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p. 54 서구에서 극장이라는 말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의 테아트론 theatron에서 찾을 수 있는데, 흥미롭게도 테아트론은 무대가 아니라 객석을 칭하는 용어였다. 극장이란 무엇보다 보는 곳이었고, 그곳의 제1주체는 관객이었던 것이다.
p. 80 프랑스어로 유령은 revenant이며, 이를 직역하면 ‘다시 돌아오는 자’라는 뜻이다. 떠나간 이가 미처 영영 떠나지 못하고 또다시 돌아오는 일. 아마도 할 말이 남아 있어서.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있어서. 그 죽음이 개운한 안녕일 수 없어서. 납득하고 단념할 수가 없어서. 아파서. 아픔이 말이 되지 않아서. 산 자만이 그 말을 해줄 수 있어서.
p. 87 이 시대에 여전히 <돈 지오반니>를 공연하기 위해서는, 더불어 수많은 여성 혐오적 고전들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거리가, 시선이 필요하다. 남성 인물이 누리는 자유에 내재된 폭력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 자신조차 그에 대해 취할 수 있는 거리가 필요하다. 관객에게 사유와 비판을 가능케 하는, 여러 겹의 진실이 필요하다. 그 틈새 속에 누구든 은신하여 상처 받지 않을 수 있는 섬세한 깊이가 필요하다.
p. 102 신기하게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래, 비극이란 관객보다 고귀한 인물의 고통을, 희극이란 그보다 저급한 인물의 고통을 다루는 것으로 규정된다. 모두 고통인 것은 매한가지이나 인물에 대한 나의 거리가 다른 것이다.
p. 139 상징이란 말은 본디 둘로 쪼개어져 제 짝을 찾아야 하는 도자기 조각을 의미한다. 상징주의에 따르면 세계는 해독해야 할 신비로 가득 차 있다. 한 조각을 보면 그 배후에 또 다른 조각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리하여 영영 짝을 찾지 못할 거울을 들고 떠도는 것이 인간의 삶.
p. 181 모든 것을 알아도 생을 사는 이유는 살아야지만 삶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살아야지만 당신을 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