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02년 '당신 인생의 이야기' 

2010년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 이번 작품집에도 실렸다.

무려 17년만에 드디어 두 번째 작품집 '숨'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냉큼 구입했다.

테드 창이다. 

무슨 긴 말이 필요한가.


1.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 시간 여행 이야기인데, 과학 소설이라기 보다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환상 소설에 가깝다.  사전 지식 없이 읽으면 한 편의 아름다운 아라비안 나이트 소설로 여기기 딱 좋다.


2. 숨 (Exhalation)

: 아무 생각 없이 읽기 시작했다가, 뭔가 희한하다는 느낌을 받더니, 다 읽고 나서는 결국 한 번 더 읽어야 했다.

테드 창, 정말..

엔트로피 개념을 소설화 하다니.


3. 우리가 해야 할 일

: 여기까지 읽으면서 테드 창이 일관되게 말하는 것이 '자유 의지의 부정' 즉 운명론 쪽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집의 첫 두 단편도 결국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고 이 단편도 그러하고, 특히 전작 '네 인생의 이야기'도 바꿀 수 없는 미래를 알면서도 순응해 가는 엄마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마찬가지.

https://blog.naver.com/mogulkor/220940265964 

약간 우울한 결론인 셈이다.


4.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

https://blog.naver.com/mogulkor/130174038767 


5.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이건 좀 쉬어가는 페이지.


6.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이번 작품집에서 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단편이었다. 

실로 여러 가지를 말해주고 있다.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얼마나 주관적으로 왜곡된 것인지,

혹은 차라리 왜곡 시켜서 기억되고 전승되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닌지 등을 주제로 미래 사회의 인류와 아프리카 오지 미개인들의 이야기를 교차 편집하면서 전개하고 있다.

미래에서는 최 첨단 동영상 기억 장치를, 오지에서는 종이와 필기구를 매체로 기록 하지만 결국 주제는 하나로 모아지는 절묘한 구성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작품이 내 가슴을 쳤던 것은 (조금 주제에서 벗어나지만)

주인공과 딸 사이에 있었던 갈등을 묘사하는 대목이었다.

소설 속에서의 내용이지만 정말 그 조그만 반전(읽어 보시면 안다)에 뒤통수가 얼얼하였다.

가족은 사랑으로 맺어지고 있지만, 평생 가는 아픔과 상처를 주는 것도 가족이다.

내가 아비랍시고 내 딸에게 나도 모르게 상처를 줬던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또한 나 자신이 기억을 왜곡시키면서 자기 합리화를 했었던 적이 없지 않았다는 점을 다시금 반성하게 되었다.

인생은 짧다.

사랑해 주기에도 모자란 시간이다.

나는 잊었는데, 자식들은 가슴 속에 반흔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다시금 돌이켜봐야 하겠다.


7. 거대한 침묵

음.. 이건 뭐랄까.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오는 돌고래들의 경고를 연상케 하였다. 혹시 그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나 하고 이 작품집 말미에 있는 작가 노트를 읽어 보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8. 옴팔로스

이 작품을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과학이라는 것이 종교에 잠식되어 버려서 창조론이 진화론을 밀어내고, 모든 것이 조물주의 의도대로 이뤄졌다고 믿는 세상이 되었다면 아마 이 단편에서 묘사되는 그런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 


9.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수 없이 갈라진 평행 우주들의 자아와 노트북(이 작품에서는 프리즘이라 칭한다)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고 설정을 하고, 이에 따른 각종 상황들을 현란하게 풀어간다. 테드 창의 상상력에 다시금 경의를 표하게 한 작품이다.  이번 작품집에서 영화화할 작품을 하나 고른다면 단연 이 단편이다!

감독은 당연히 드니 빌뇌브가 해야 하고.


이번 작품집은 수학, 물리 지식을 기반으로 깔고 있었던 '당신 인생의 이야기'와 비교해서 전반적으로 읽기가 좀 더 쉬워졌고, 좀 더 아름다운 느낌이다.  문과적 감성이 강하신 분들도 전작에 비해 꽤 친근하게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 젊은 괴짜 곤충학자의 유쾌한 자력갱생 인생 구출 대작전
마에노 울드 고타로 지음, 김소연 옮김 / 해나무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어릴 적에 파브르 곤충기에 빠져서, 그를 롤 모델 삼아 곤충학자의 길을 시작한 순수한 (정말 순수하다...) 일본 젊은이. 

메뚜기로 평생 전공을 삼았다가, 메뚜기의 본 고장(?)인 아프리카로 용감하게 뛰어든다. 

어찌 보면 별로 지혜로운 결단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무모한 오다쿠는 아니었고, 현실 인식이 확실히 되어 있는 기특한 젊은이였다. 

그 증거는 바로 이 문장 속에 함축되어 있다. 


꿈을 말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하지만 사회라는 집단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된다. 저 위대한 파브르조차 곤충 연구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어 교사를 하면서 생계를 꾸렸다(본 책 117쪽).


나름 현실 감각은 있으되, 학문적 순수 열정이 더욱 압도적이라 그런 결단을 내린 듯. 

그래도 아프리카 현지로 가서 정열적으로 메뚜기 연구에 임하지만, 돈 문제(주로 연구비를 말함이다) 등등에 대해서는 또 그렇게 현실적일 수가 없다. 물론 이재에 밝은 건 아니고, 오히려 어리숙해서 항상 당한다는게 문제. 

(이거 웃기는 상황 맞지?)


그의 최고의 꿈은 수억마리의 메뚜기 떼를 직접 영접(?)하며 연구에 하이라이트를 만들고 싶은 것.

그가 간 모리타니가 바로 거대 메뚜기 떼가 출몰하는 곳이었다.  벅찬 희망을 안고 모리타니 메뚜기 연구소에 정착했으나..

아 글쎄...

하필 그 시기가 모리타니에서 역대급 가뭄이 온 탓에 메뚜기 떼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연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 넘었다. 설마 '메뚜기 없는 상황'이 생길 줄이야. 최악이다.

떼로 발생한다던 메뚜기가 흔적도 없다니, 대체 나는 뭐하러 아프리카까지 왔단 말인가. - 190쪽.

(이거 웃기는 상황 맞지?)


초조하게 세월을 보내며, 연구비마저 다 떨어지고(끊기고), 이 젊은이의 궁상맞은 처절한 생계형 몸부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메뚜기 연구 관련 블로그질에다 아프리카 메뚜기에 대해 쓴 책 출간, 잡지 연재, 토크 콘서트, 인터넷 동영상(니코니코) 활동, 이 책 표지에 나온 것처럼 초록색 전신 타이츠를 입질 않나(종반부에 거대 메뚜기 떼를 영접하는 의상으로 쓴다), 모리타니 민속의상을 입고 메뚜기 채를 들고 나오질 않나...

Money 가 문제인데 무슨 짓인들 못하리?

이렇게 닥치는대로 처절하게 몸부림을 치며 대중의 시선을 모으고, 이는 결국 훗날 재기의 발판으로 삼게 된다.


이 책은 일단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흥미진진한 전개를 보여서 딴 생각을 하거나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전형적인 page-turner 다(실제 고생담을 기술한 수기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읽는 내내 자주 웃음보가 터진다.

뭔가가 될 것처럼 잔뜩 변죽을 울리다가 갑자기 허무하게 고난에 빠지곤 하는 주인공의 상황들이 내 머릿 속의 웃음 중추를 어김없이 건드리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거 웃어도 되는거야?' 하는 guilty pleasure 또한 동시에 들면서 말이다.  이런 걸 요즘 표현으로 '웃프다'고 하던가?   그저 순진하기만 한 주인공의 행보가 안쓰럽기까지 했다.


결국 고난 끝에 낙이라 했던가?

나름 무사히 연구 활동을 마치고, 모리타니를 떠나려는 순간 그렇게 그리워 했던 거대 메뚜기 떼와 드디어 마주친다.  초록색 전신 쫄쫄이 타이즈를 입고.

이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을 정도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메뚜기들아! 나를 잡아 먹어!"


젊음과 열정으로 순수하게 학문 연구에 정진한 젊은이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런데 자꾸 웃음이 나면서도 슬픈 감정도 동시에 드는 희한한 수기였다. 


이 책은 실화에 근거한 수기이지만 여느 소설들보다 훨씬 나은 흥행성을 가지고 있다.

단언컨대, 반드시 영화화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마 대단한 블랙 코미디 작품이 나올 듯 하다. 


사족: 이 책에서 가장 웃겼던 대목은 주인공이 다리를 전갈에 쏘인 후의 상황들이었다.  하필이면 독성이 강한 전갈에게 쏘인지라, 다리가 퉁퉁 부었고 생명의 위협까지도 느끼던 상황이었다.  그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면서 연구소장과 경비아저씨가 민간 요법(?)을 시전한다.  그건 다름이 아니고, 쏘인 다리에 손을 얹고 주문을 외우는 것이었다.  주인공이 그들의 정성(?)에 고마워 하면서도 속으로 '저.. 그냥 약 주시면 안 돼요? ㅠㅠ; ' 하는데 왜 이리도 guilty pleasure 와 함께 웃음을 참을 수 없던지..   이 책에는 이런 식의 개그가 정말 빈번하게 나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크리스마스 때는 SF 소설같은 장르 소설 한 권 읽는게 역시 꿀맛이다.

이번에 읽은 것은 휴고, 네뷸러 상 등을 석권한 중국계 미국인 작가 켄 리우의 단편 작품집이다.  

대륙의 작가인 류츠신의 충격적인 SF 소설 '삼체'를 영어로 번역하여, 그 또한 아시아 작가 최초로 휴고상을 타게끔 해 준 일등 공신.


켄 리우는 미국 국적이고 하버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중국에서 출생한 이래 정서적으로 동아시아 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는 것 같다.  영미권 독자를 대상으로 쓴 작품들이지만,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있는 우리들 시각에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과 주제들이 풍부하다.  솔직히 테드 창과 비교해서 SF 로 분류되는 것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인 생각이 들지만, 전반적으로 따뜻함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이런 작품들, 나는 너무 좋다.


종이 동물원 - 2012년 휴고, 네뷸러, 세계 환상 문학상까지 모두 석권한 문제의 작품이다.  읽는 내내 돌아가신 내 어머니가 자꾸 생각나서 가슴이 아렸다.  단편이지만 많은 주제를 담고 있다.  모성애, 효심, 인종 차별, 문화혁명의 광기까지.  종이 접기로 만든 동물들이 살아 움직인다는 설정에서는 판타지로 분류될 수도 있겠지만, 순수 문학으로 봐도 무리가 없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동물원을 뜻하는 영어 단어가 zoo 말고도 menagerie 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원래 유럽 귀족들이 자기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집에다 마련했던 동물원을 menagerie 라고 칭했고 (귀하고 화려한 것들을 모아놓는다는 의미의 어원에서 비롯), zoo 라는 단어는 20세기 들어서서 대중들에게 공개하는 동물원을 뜻하는 단어로 쓰이게 되었다.

제목인 '종이 동물원'은 아마도 테네시 윌리엄즈의 희곡 '유리 동물원(The Glass Menagerie)'를 차용한 듯.


천생연분 - 인공지능을 다룬 것인데, 얼마전에 본 영화 '업그레이드'가 연상되기도 했다.  구글과 포털들 모바일 디바이스에 코를 박고 사는 젊은 세대들을 보면 이 단편이 그리는 내용이 전혀 허황되지는 않은 듯.


즐거운 사냥을 하길 - 구미호를 잡는 퇴마 액션물로 시작했으나, 문명화되는 과정에서 어느새 모든 요기가 사라진다.  그리고 스팀 펑크로 변하는 기막힌 전개.  이건 영화화하면 딱 좋은 소재다. 상당한 매력이 넘치는 단편.


상태 변화 ​- 이건 좀.. 그냥 그랬다.

파자점술사 - 한자를 모르면 이해하기 힘든 단편인데, 영어권 독자들이 얼마나 이해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타이완 사람들도 우리 나라 못지 않은 시련기를 겪었다는 것도 알게 되고.


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 만들기 습성

- 초반 이 대목에서 감탄했다: '모든 생물종은 대를 이어 지혜를 전수하는 나름의 독특한 방법이 있다. 사유를 눈에 보이는 것, 만질 수 있는 것, 거스리지 못할 시간의 파도에 맞서는 방파제처럼 잠시나마 동결된 것으로 만드는 방법 말이다.  모두가 책을 만든다.'

이탈로 칼비노의 걸작인 '우주만화'의 영향을 받은 듯한 단편이다.


시뮬라크럼

'종이동물원'과 더불어 내 가슴을 가장 아프게 했던 단편이다.

딸 아이 키우는 아빠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

이제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자라난 내 딸이지만, 내 꿈 속에서 가끔 나타나는 내 딸의 모습은 아직도 일곱살 때 모습 그대로이다. 


레귤러

이 단편집 초반부의 따뜻한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스릴러.  같은 작가가 맞나 할 정도로 박진감 넘치는 작품이다.  이것도 영화화하면 괜찮을 듯.


상급 독자를 위한 비교 인지 그림책

역시 이탈로 칼비노의 '우주만화' 풍의 단편.  테드 창의 영향도 살짝 느껴진다.


파(波)

레이 커즈와일의 그 유명한 저서 '특이점이 온다(Singularity is near)'가 연상되는 작품이었다.

인류가 결국 특이점에 다다르면 그 이후에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소설적 상상력을 사용하여 제대로 기술하였다.  결국 우주가 된다는 것.  이런 식의 결말은 참 마음에 든다. 


모노노아와레 

2012년 3관왕에 이어 2013년 휴고상 2연패를 달성한 작품.  이 단편집에서 조금 이질적인 작품이다. 

이 단편만 읽으면 작가가 일본 빠인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이어지는 '태평양 횡단 터널 약사'와 '...다큐멘터리' 까지 읽으면 그런 오해는 불식된다. 


태평양 횡단 터널 약사(略史)

일본이 제국주의 시대 때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외교적 수완과 터널 횡단 공사로 번영을 했고, 그 바람에 세계 공황이 해결되었으며, 독일 나치는 아예 발흥을 하지 못했고 제2차 세계대전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대체 역사물이다.  그러나 조선인 일본군 성노예와 강제 징용 등이 또 다른 형태로 있었다는 것.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후반부에 가서야 알게 된다. 

앞선 '모노노아와레'에서는 질서를 지키고 남에게 폐를 안 끼치며 이타적이기까지 한 일본인 개개인을 그렸다면, 이 단편에서는 그런 일본인들이 전체주의라는 집단이 되었을 대 어떤 짓을 저지르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작가는 일본인들에 대한 이해도 매우 깊은 듯 하다.


송사와 원숭이 왕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은 평소 환영 속에서 제천대성 손오공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이 작품을 꿰뚫는 사건은 청나라 건국 전후에 양주성을 함락하면서 자행된 대학살이다.

이를 생생히 기술한 책이 금서가 되고, 이를 찾아서 은폐하려는 정부와, 이를 지켜서 후세에 전하려는 이들과의 쫓고 쫓김에 주인공이 말려드는 이야기다. 

읽어 보면 우리 나라의 비극적인 1980년 현대사와도 중첩이 된다.

매우 강렬했던 작품이었다.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 : 동북아시아 현대사에 관한 다큐멘터리

이 단편집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묵직한 작품으로, 2차대전 당시 일본 731 부대의 참상을 과거 시간 여행을 통하여 목격한 유족들의 증언과 실제 인체 실험에 참여했던 퇴역 군의관의 증언, 그리고 이를 부정하는 일본인들과 정치인들, 무관심한 중국인들, 일본 편을 드는 미국 정치인들 등의 증언들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기술된다. 사과하지 않는 일본.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거사임을 알 수 있다.  


아, 모처럼 맛 보는 즐거운 독서였다. 

켄 리우는 같은 중국계 미국인으로서 앞서 언급했던 테드 창과의 비교가 불가피할 것 같다.  

테드 창은 인간미가 넘치면서도, 과학 이론은 정통적으로 철저하게 녹여내고 있어서 비교적 하드 SF 로 분류되는 반면에 켄 리우는 테드보다는 좀 더 문과적이고 좀 더 판타지에 가깝다.  쉽게 말해서 테드 창보다는 켄 리우가 좀 더 쉽게 읽힌다. 

둘 다 따뜻하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말이다. 

앞으로 켄 리우의 작품들이 더 번역되어 출간된다고 한다.

특히 '초한지'의 SF 판타지 버전인 '민들레 왕조기'가 가장 기대된다.

테드 창, 켄 리우, 류츠신, 그리고 여기서 소개하지 않은 마보융.. 중국인 작가들의 약진이 유달리 두드러지는 요즘이다.   중국 국력의 신장과도 무관하지는 않은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어로부터의 자유 영어로부터의 자유 1
임병윤 지음 / 아작(도서출판)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영어 숙달에 영문법은 장애물인가?

1. 전공 분야 때문에라도 영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내 입장에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제목의 책이었다.  영어로 논문들을 쓰고, 영어로 좌장 보면서 영어로 토론도 종종해 보았고, 외국인 환자들도 심심찮게 보고 했지만 아직도 영어엔 자신이 없다. 십대때부터 시작해서 사십년 넘게 해 온 영어 공부인데 말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2. 영문법에 비중을 두었던 학창 시절의 영어 교육 때문일까? 성문종합영어, 영어의 왕도, 영문해석 1200제.. 귀 안 뚫리고 입 안 터지는 걸 숨기기 위해 쓸데없이 자세한 영문법으로 치장해서 모자라는 실력을 감추던 일본식 영어에 길들여진 탓일까?  솔직히 그게 맞긴 맞다. 

3. 그래서 우리 세대들 대부분의 영어 실력이 이 모양이다.  그리고 이후 젊은 세대들은 이런 일본식 영어에 반기를 들고, 듣기와 말하기에 무게 중심을 옮겼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젊은 세대들이 우리 늙다리 세대들보다 월등하게 영어를 잘하는 것 같이 보이진 않는다.  

4. 이쯤 되면 뭔가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는게 아닐까 한다. 그냥 우리 민족의 DNA 문제일 수도 있겠고..

5. 듣는 것은 역시 영어 뉴스 받아쓰기만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2분 남짓하는 뉴스 한 꼭지 받아 쓰는 데 대략 1시간이 걸린다.  참으로 고통스러운 과정이기도 하다.  허나, no pain 이면 no gain 인 법. 그래도 이런 고통을 감내하는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니 이젠 그럭저럭 뉴스는 들리긴 한다. 100%는 아니지만. (그런데, 웅얼거리는 드라마와 영화는 여전히 안 들린다. Turn it up louder 는 '관제탑 라우러'로 들리고.. 이게 한계인가..)

6. 입 터지는 건 회화 연습보다는 영작이 더 나은 것 같다. 영작문 책 아무거나 하나 사서 디립다 연습하다보면 손끝에서 써지던 영어가 어느 틈에 입에 붙는다. 최소한 엉터리 영어라도 입으로 터뜨리는 데에는 좀 뻔뻔해진다고나 할까.

7. 그런데.. 의외로 글을 쓰는 것은 웬만해선 늘지 않는다. 왜 지지부진할까 하고 고민이 많았었다.  

현재로서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하는 원인은.. 문법이 유력하다고 생각한다.

영문법이란 무엇일까?

8. 난 영문법은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규칙이나 법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9. 영문법은.. 뉘앙스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적절한 단어를 썼다고 생각하지만, 원어민 교정된 원고를 feedback 받아보면 다른 단어들로 바뀌어져 있곤 한다. 

도대체 어디에 근거해야 적합한 단어를 골라내서 문장마다 끼워넣을 수 있을까? 

그게 바로 문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추정한다.

10. 이러한 뉘앙스 차이를 제대로 감별할 수 있고, 본능적으로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다면 영문법의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성문 종합영어나 영어의 왕도를 골백번 판다고 달성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제대로 이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스승을 만나는 기연을 접해야 한다.

11. 이 책이 바로 내가 목말라하던 그 내용을 담고 있다.

12. 처음 책을 받았을 때 예상과 달리 600여페이지에 달하는 두껍고도 무거운 하드커버 양장본이라 좀 당황했었다.  첫 인상이 영.. 읽을 의욕을 꺾어버리고 있으니 말이다.

이 주눅 들음은 몇 페이지 읽어보면서 말끔히 해소 되었다. 바로 내가 원했던 그런 자세한 설명이 하나 가득 써 있었으니.

13. 이 책은 단점이 많다. 

- 이미 언급했지만 너무 두껍다. 게다가 이 책의 속편도 있는데 그건 한술 더 떠서 무려 800여페이지다. 

- 너무 말이 많다. 중언 부언 설명이 지나치게 많다.  평소에 문법을 고민해 본 독자가 아니라면 읽기를 포기하기 딱 좋다. 그러나 자세한 설명을 갈구했었다면 딱 만족스러운 만큼의 양이다.

- 영어 초보자나 수험생은 절대 읽어선 안된다. 문제 풀이 위주의 영어 교재를 원한다면 이 책은 가장 부적합하다.

- 이런 책이 많이 팔렸을리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는 말이 많은 만큼 시중 영어 교재들에 대한 적개심을 감추지 않는다.  그걸 좀 불편해 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14. 이 단점들을 상쇄할 만큼 장점도 크다.

- 아주 제대로 설명해주고 있다. 저자는 이를 영어 '혼내주기'라고 표현하는데, 쉽게 말해서 영어를 아주 속속들이 아작을 낸다.

- 일대일 지도하듯이 자상한 구어체로 구성되어 있어서, 한 번 궤도를 타면 죽죽 넘어간다.


결론) 모처럼 내 마음에 쏙 드는 영어 교재를 만났다.  양이 지나치게 많아서 다 읽는데 상당한 체력과 집중력을 요하지만, 그만큼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

물론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책이라 지인들에게 절대적으로 추천하는 데엔 좀 신중해진다. 

허나 적어도 내 경우에 국한해서만 판단한다면, 네이티브가 포착할 수 없고 한국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영어 공부의 애로 사항을 이 책만큼 공감가게 기술한 교재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교재야말로 back to the basics 다.


제2권은 동사에 중점을 두어서 기술했다고 하는데, 진짜 기대된다.


사족) 아무래도 이 교재는 조만간 절판되는 저주받은 걸작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우려마저 든다.  괜히 안타까운 심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주족 이야기 - 만주의 눈으로 청 제국사를 새로 읽다 경계에서 중국을 보다 1
이훈 지음 / 너머북스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우리 배달 민족은 과연 순수 단일 민족이 맞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고조선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조선시대만 해도 여진족을 비롯한 북방 민족들과 숱하게 전쟁이나 공존 등의 접촉을 했었다면 분명히 여러 민족들의 DNA 가 서로 recombination 이 되었을 것이다.

내 몸 속의 DNA 조차도 아마 그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 집안은 부계는 수양대군 때 학살을 피해 북으로 도망친 유응부의 후손이지만, 모계는 러시아 중국 등과 국경을 맞대던 함경도 주민이다.  돌아가신 내 어머니가 당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시면서 되뇌이던 내용을 들어보면, 어린 시절에는 동네 친구들과 5개국 언어를 섞어서 사용했었다고 한다.  일단 일제 강점기니까 일본어, 그리고 조선어, 나머지가 중국어, 심지어 러시아어도 약간 썼다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아직도 뭔지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내 개인적으로는 쇠퇴 중이던 만주어가 아니었을까 추정한다. 

이런 환경이었으니 이미 몇백년 전부터 여러 민족의 DNA 가 혼재했을 것이 분명했을 터.

따라서 내 DNA genome 어딘가에는 만주족(여진족)과 오랑캐의 DNA 가 자리잡고 있을 것이 당연하다.


2. 그래서 나는 '오랑캐'라는 단어가 멸칭이라는 느낌을 별로 받지 않는다.

오히려 아련하고 막연한 그리움이 솟는다고나 할까?


3. 또한 그래서.. 중국 역사 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역사가 청나라 역사다.  또또한 그래서.. 그동안 역사 교양을 쌓는답시고 읽어온 것들도 주로 청나라 관련 책이었다. 

강희제라던가, 누르하지라던가..

올해 나온 이 책도 당연히 덥석 집어들었고..


4. 진짜가 나타났다.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읽은 청나라 관련 역사서들 중에 이 책은 진짜배기였다.

일단 저자인 고대 사학과 이훈 교수가 국내 몇 명 안되는 만주어 능통자다.

만주어-한국어 사전을 펴 낼 정도이니..

몇 년전 개봉했던 조선판 아포칼립토 '활'이라는 영화에서 만주어 자문을 해 준 장본인이다.  저서 내의 용어들을 만주어로 표기하고, 만주어로 된 문헌들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청나라 역사서와 크게 차별화 된다.


5. 이 책에서 기술된 여러 전투들 중에 최고의 대목은 1619년 명나라와 맞짱을 떴던 사르후 전투다. 읽어보면 정말 믿겨지지 않는데, 이런 대규모 전쟁이 불과 나흘만에 누르하치의 대승으로 귀결되었다는 것. 4개로 구성된 명의 10만 대군을 불과 3-4만의 병력으로 나흘 동안에 75%를 전멸시키고 총사령관까지 죽여버렸으니, 이것이야말로 대첩이었다. 당시 조선도 어쩔 수 없이 명에 가담해서 만명 정도가 참전하였으나 모두가 잘 아시다시피 광해군 외교의 수완으로 싸우는 척만 하고 투항하여 최대한 전력을 아끼고 명분도 얻었던 (야사이지만) 바로 그 전쟁이다.  이 사르후 전쟁을 전환점으로 명나라의 멸망과 후금의 약진, 조선의 눈치 보기가 시작되었기에 동북아시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쟁이라 할 수 있겠다. 


안시성 전투가 동북아에서 가장 중요한 전쟁이었다고? 허허..


6. 재미있긴 하지만, 교양서라기 보다 교과서에 더 가깝다.

분명히 대중을 대상으로 펴 낸 교양서이겠지만, 그렇게만으로 보기엔 매우 철저하게 기술되어 있다.

연대기별 역사에만 그치지 않고, 여진족(만주족)의 유래, 여러 부족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 만주족의 문화, 건축, 등등에 대한 기술이 엄청 자세하다.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중국통사'이래로 또 하나의 양서를 소장하게 되었다.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7. 이 책을 읽고서 알게된 토막 지식들..

- 압록강, 두만강의 어원이 만주어였다. 압록은 yalu = 경계라는 뜻이고 

두만은 tumen = 만(萬)이라는 뜻이다. 오만가지 강 지류들이 두만강에 합류하기 때문.


- 오랑캐는 엄격한 의미로는 고비사막 동부에 살던 몽골계 민족이다. Uriankhai (올량합; 兀良哈) 이라는 단어를 우리 식으로 부른 것.

그러나 조선 시대에는 일일이 어느 민족인지 구분할 이유가 없어서, 그냥 북방에서 침략하는 '야만스러운' 민족들을 다 통틀어서 오랑캐라고 불렀다.  여진족은 아무 관계도 없는 데 조선 입장에선 졸지에 싸잡아서 오랑캐가 되어 버렸다.


- 조선 시대에 고관대작의 말 고삐를 잡던 하인을 '거덜'이라 불렀다 한다. 말 탄 고관 대작이 행차시에 "쉬이~~! 물렀거라!"하며 고관대작보다 더 의기양양하던 모습을 보이던.  그래서 거만하게 나대는 모습인 '거들먹 대다' 와 재산이 크게 흔들려서 망했다는 뜻인 '거덜나다'라는 단어의 유래가 되었다. 이 '거덜'의 어원은 몽고어이며, 이후 만주어와 조선어에 유입된 것이다.


- '열하일기'의 열하는 청나라의 강희제가 일년에 몇개월 정도 들러서 정무를 보던 제2의 수도였다. '열하'는 따뜻한 강이라는 뜻인데, 실제로 미지근해서 겨울에도 얼지 않은 데서 유래하였다.


- 여진이건 거란이건 전투를 했다하면 약탈과 더불어 항상 주민들을 잡아가곤 하는 일이 많다. 나는 그게 노예로 팔아먹기 위해서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누르하치의 경우는 그게 아니었다. 당시 명나라 인구는 1억명, 조선은 천만명이었던 반면에 후금은 겨우 100만명이었다고 한다(그러고도 연전연승을 했다니..). 아무리 전투력이 일당 백이라 하더라도 머릿수가 딸리면 더 이상의 발전이 불리하다. 그래서 같은 언어를 쓰는 같은 민족이자, 인구 수도 많은 동해여진을 수시로 침략하여 사람들을 많이 잡아 갔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후금은 인구를 거대하게 불렸고 이것이 명을 멸망시키고 청을 건국하는 기반이 되었다.


- 여진 부족을 통일할 때 마지막까지 저항한 부족이 해서여진의 여허였고, 수장이 긴타이시였다. 그가 최후를 맞이하면서 '미래에 나의 자손이 너희 아이신 구룬을 멸망시킬 것이다'라고 저주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훗날 청나라를 멸망시킨 서태후가 바로 긴타이시의 자손이었다고.


- 청나라 건국 후 만주족들이 중원으로 유입되면서 점차 한화가 된다. 그로 인해 문약화가 진행되어, 원래 보유하던 전투력이 약화되기 시작했다는 우려가 내부에서 나온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청 황실이 정기적으로 열던 행사가 수렵 대회였다. 보통 황궁의 사냥 놀이라고 하면 일종의 오락으로 간주되지만, 청 황실의 경우에는 엄연한 군사 훈련이었다.


- 청나라 때는 겨울만 되면 일종의 동계 체전을 크게 열었다고 한다.  정말로 스케이트를 신고 스피드 스케이팅 경주나 활쏘기, 심지어는 피규어 스케이팅 경연대회까지 열었단다.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 홍콩 영화 전성기 때의 미녀 배우 관지림은 관씨가 아니라는 사실도 이번에 알았다. 원래 만주족으로, 실제 성도 관으로 시작하는 기나긴 성이지만 그냥 '관'으로 줄인 것이라 한다.  말이 난 김에... 중국 여배우들 보면 최고 미녀들은 한족보다는 다른 민족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류시시는 회족. 요즘 최고 인기인 구리나자, 디리러바는 위구르 족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