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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부터의 자유 ㅣ 영어로부터의 자유 1
임병윤 지음 / 아작(도서출판)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영어 숙달에 영문법은 장애물인가?
1. 전공 분야 때문에라도 영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내 입장에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제목의 책이었다. 영어로 논문들을 쓰고, 영어로 좌장 보면서 영어로 토론도 종종해 보았고, 외국인 환자들도 심심찮게 보고 했지만 아직도 영어엔 자신이 없다. 십대때부터 시작해서 사십년 넘게 해 온 영어 공부인데 말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2. 영문법에 비중을 두었던 학창 시절의 영어 교육 때문일까? 성문종합영어, 영어의 왕도, 영문해석 1200제.. 귀 안 뚫리고 입 안 터지는 걸 숨기기 위해 쓸데없이 자세한 영문법으로 치장해서 모자라는 실력을 감추던 일본식 영어에 길들여진 탓일까? 솔직히 그게 맞긴 맞다.
3. 그래서 우리 세대들 대부분의 영어 실력이 이 모양이다. 그리고 이후 젊은 세대들은 이런 일본식 영어에 반기를 들고, 듣기와 말하기에 무게 중심을 옮겼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젊은 세대들이 우리 늙다리 세대들보다 월등하게 영어를 잘하는 것 같이 보이진 않는다.
4. 이쯤 되면 뭔가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는게 아닐까 한다. 그냥 우리 민족의 DNA 문제일 수도 있겠고..
5. 듣는 것은 역시 영어 뉴스 받아쓰기만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2분 남짓하는 뉴스 한 꼭지 받아 쓰는 데 대략 1시간이 걸린다. 참으로 고통스러운 과정이기도 하다. 허나, no pain 이면 no gain 인 법. 그래도 이런 고통을 감내하는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니 이젠 그럭저럭 뉴스는 들리긴 한다. 100%는 아니지만. (그런데, 웅얼거리는 드라마와 영화는 여전히 안 들린다. Turn it up louder 는 '관제탑 라우러'로 들리고.. 이게 한계인가..)
6. 입 터지는 건 회화 연습보다는 영작이 더 나은 것 같다. 영작문 책 아무거나 하나 사서 디립다 연습하다보면 손끝에서 써지던 영어가 어느 틈에 입에 붙는다. 최소한 엉터리 영어라도 입으로 터뜨리는 데에는 좀 뻔뻔해진다고나 할까.
7. 그런데.. 의외로 글을 쓰는 것은 웬만해선 늘지 않는다. 왜 지지부진할까 하고 고민이 많았었다.
현재로서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하는 원인은.. 문법이 유력하다고 생각한다.
영문법이란 무엇일까?
8. 난 영문법은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규칙이나 법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9. 영문법은.. 뉘앙스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적절한 단어를 썼다고 생각하지만, 원어민 교정된 원고를 feedback 받아보면 다른 단어들로 바뀌어져 있곤 한다.
도대체 어디에 근거해야 적합한 단어를 골라내서 문장마다 끼워넣을 수 있을까?
그게 바로 문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추정한다.
10. 이러한 뉘앙스 차이를 제대로 감별할 수 있고, 본능적으로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다면 영문법의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성문 종합영어나 영어의 왕도를 골백번 판다고 달성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제대로 이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스승을 만나는 기연을 접해야 한다.
11. 이 책이 바로 내가 목말라하던 그 내용을 담고 있다.
12. 처음 책을 받았을 때 예상과 달리 600여페이지에 달하는 두껍고도 무거운 하드커버 양장본이라 좀 당황했었다. 첫 인상이 영.. 읽을 의욕을 꺾어버리고 있으니 말이다.
이 주눅 들음은 몇 페이지 읽어보면서 말끔히 해소 되었다. 바로 내가 원했던 그런 자세한 설명이 하나 가득 써 있었으니.
13. 이 책은 단점이 많다.
- 이미 언급했지만 너무 두껍다. 게다가 이 책의 속편도 있는데 그건 한술 더 떠서 무려 800여페이지다.
- 너무 말이 많다. 중언 부언 설명이 지나치게 많다. 평소에 문법을 고민해 본 독자가 아니라면 읽기를 포기하기 딱 좋다. 그러나 자세한 설명을 갈구했었다면 딱 만족스러운 만큼의 양이다.
- 영어 초보자나 수험생은 절대 읽어선 안된다. 문제 풀이 위주의 영어 교재를 원한다면 이 책은 가장 부적합하다.
- 이런 책이 많이 팔렸을리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는 말이 많은 만큼 시중 영어 교재들에 대한 적개심을 감추지 않는다. 그걸 좀 불편해 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14. 이 단점들을 상쇄할 만큼 장점도 크다.
- 아주 제대로 설명해주고 있다. 저자는 이를 영어 '혼내주기'라고 표현하는데, 쉽게 말해서 영어를 아주 속속들이 아작을 낸다.
- 일대일 지도하듯이 자상한 구어체로 구성되어 있어서, 한 번 궤도를 타면 죽죽 넘어간다.
결론) 모처럼 내 마음에 쏙 드는 영어 교재를 만났다. 양이 지나치게 많아서 다 읽는데 상당한 체력과 집중력을 요하지만, 그만큼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
물론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책이라 지인들에게 절대적으로 추천하는 데엔 좀 신중해진다.
허나 적어도 내 경우에 국한해서만 판단한다면, 네이티브가 포착할 수 없고 한국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영어 공부의 애로 사항을 이 책만큼 공감가게 기술한 교재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교재야말로 back to the basics 다.
제2권은 동사에 중점을 두어서 기술했다고 하는데, 진짜 기대된다.
사족) 아무래도 이 교재는 조만간 절판되는 저주받은 걸작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우려마저 든다. 괜히 안타까운 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