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갱이들 - 제6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황보나 지음 / 사계절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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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출판사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솔직히 나는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아직 겪어본 적 없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본 장례식은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이었다. 그래서 감히 이 소설 속 주인공의 마음을 전부 이해한다고 할 수 없다. 가장 절친한 친구의 죽음. 유서도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친구의 죽음을, 주인공은 끝도 없이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다른 생각을 하다가도 절로 친구의 죽음으로 생각이 흘러간다. 빨리 썩어버리는 알맹이. 오래 남는 껍데기이자 부산물인 알갱이. 이 소설은 바로 이 ‘알갱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이 떠나버린 자리. 알맹이가 사라지고, 남은 껍데기들에 대한 이야기. 죽음이 이토록 두려운 이유는 그 뒤가 완전한 끝이기 때문이다. 어떤 변화도 없는,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 완전한 끝. 그렇기에 삶은 훨씬 어렵다. 끝도 없이 변하고, 흔들리며, 고통받아야 한다. 죽음을 끌어안고 사는 삶이란 나는 계속 변해가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을, 썩지 않을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모습 그대로 가슴에 콱 박혀버린 무언가를 끌어안고, 내내 알갱이를 떨어뜨리며 살아가는 것일지도. 이 소설은 어떤 면에서는 담담하고, 어떤 면에서는 폭력적이다. 쉬이 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을 던지면서도 불편한 지점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조금 과해지는 면이 있다. 담긴 사유는 좋으나,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에서는 동의할 수 없는 지점이 분명 존재한다.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을 곱씹어보며 페이지 안에서 길을 잃는 경험은 분명 흥미로운 것이나,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이 구태여 폭력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지점만 아니었다면 훨씬 깊은 소설이 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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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밤
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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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독파 엠버서더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출판사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지상의 밤] 은 '잔여물'에 관한 이야기다. 흘러가버리고, 남아버린 것들에 대한 이야기. 시간이 흐른 뒤, 내 몸에 남은 노화라는 잔여물. 이별이 지난 후, 내 가슴에 남아버린 상대의 잔여물. 사랑이 끝나고, 변해버린 감정의 잔여물. 과거가 흘러가고, 남아버린 현재와 미래라는 잔여물. 소설은 여러 단편들을 통하여 이 잔여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 묻는다. 흘러가고 남은 것을 끌어 안고, 그저 그 자리에 머물 것인지. 잔여물을 따라 흘려 보내고 계속 나아갈 것인지. 이 책이 특히 좋았던 건, 어떤 선택이 옳고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멈춰진 이들은 어떤 삶을 살고, 따라 흘러간 이들은 어떤 삶을 사는지 담담한 문체로 보여줄 뿐이다. 삶에 정답이란 없다고. 그저 이런 선택지도 있다고 말해줄 뿐이다. 어떤 선택을 해도 좋으니, 그 꽉 쥔 주먹을 풀라고. 바다를 떠다니는 해파리로 살아도 좋고, 늙어버린 몸으로 살아도 좋고, 헤어진 연인을 붙잡고 늘어져도 좋으니. 그 모든 삶이 정답이니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면 된다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이 소설을 추천했을 때, 진작 읽지 않은 게 후회가 될 정도였다. 나는 임선우 작가님이 보여주는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세계를 사랑한다. 거창한 위로가 아닌, 덤덤하지만 따뜻한 위로. 삶이 지칠 때, 언제든 돌아와 폭 안길 수 있는 포근한 침대 같은 소설이었다. '만약, 해파리가 되어 바다를 유영할 수 있다면, 난 계속 인간으로 살까? 아니면 해파리가 될까?' 글쎄.. 나도 한참 고민할 것 같다. (다음 생에는 고래로 태어나 마음껏 바다를 누비는 게 꿈인지라.) 그렇지만, 난 지금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얼마나 더 망가질지, 그리고 얼마나 더 행복할지. 그 끝을 보고 싶다. 삶은 계속 나를 주저 앉힐 것이고, 그 상처가 남긴 잔여물들은 끝도 없이 쌓이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나아갈 수 있다. 그것들을 다 흘려보내든, 끌어안든 상관 없이. 계속 나아갈 수 있다. 삶은 계속 이어지기에 그 자체로 축복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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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대와 욕조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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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출판사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작상되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내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민중이 들고 일어난 혁명.
봉건제를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시작한 사건.
민중이 빵과 자유를 외치며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운 사건.
자유를 위한 혁명.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벌어진 혁명.

나에게 혁명이란 꽤나 긍정적인 의미의 단어였다.
부조리한 기존의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를 위해 싸우는 것이니까.

그런데 이 책은 나에게 다른 시선을 던져주었다.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시스템이 산산이 부서진 세상에서,
한 개인이 겪는 부조리함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이 책이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하나같이 날카롭고,
답을 내리기 퍽 어려운 것들이었다.

정의와 자유라는 명분 아래 벌어지는 학살은 정당한가.
혁명 아래 희생은 불가피한 것인가.
혁명은 과연 시민을 위한 것인가.
혁명 뒤에 진정으로 새로운 시대,
자유의 시대가 도래하였는가.


프랑스 혁명에 참여한 군사 시몽은
전투 후 집으로 돌아왔다가
아버지는 체포 도중 사살되고,
어머니는 부당하게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만든 낭트의 폭군 총독을 살해하기 위해 반란군에 합류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총독의 아래로 들어가
그가 벌이는 참혹한 살육극을 목격한다.

소설은 실제 역사와 허구의 인물을 절묘하게 엮어
독자를 그 시대의 한가운데 떨어뜨린다.

그리고 역사서에는 기록되지 않은,
참혹한 혁명의 이면을 바라보게 만든다.

잊혀진,
허나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한구석을 말이다.

총독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단두대에 세우기 위해 싸우는 한편,
그가 저지르는 살육극에 일부가 되어야 하는 시몽의 입장에서
대체 이 모든 살육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자꾸만 돌아보게 만든다.

이 광기의 시대를 넘어서,
우리는 지금 자유의 시대를 맛보고 있는가.
이 희망도 없는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어떤 희생도 없이 변화가 도래할 수는 없다.
허나 그토록 무의미한 학살 아래 도래한 변화는 과연 옳은가.
그렇다면 무결하기 위해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은 옳은가.
잘못된 현실을 그저 묵인하고,
안온한 지옥을 견뎌내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정당한 혁명이란 대체 무엇인가.


책을 읽는 내내 끝내 답을 내리지 못한 질문들이
가슴을 꽉 메우는 기분이었다.

실제 역사와 허구의 사건.
역사에 기반한 소설은
소설이 끝나도 끝나지 않는 느낌을 준다.

우리는 이미 이 이후에 벌어질 역사를 알고 있기에.
한편으로는 씁쓸해지는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피와 희생으로 정립된 근대의 토대 위에서
앞으로 어떤 사건이 벌어질지 알고 있기에.
프랑스 혁명 이후 이어진 전쟁과 국가적 동원,
그리고 훗날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알고 있기에.

국민을 징병하고,
애국심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 끝없이 병사들을 집어 던지는
명분과 정의를 내세운 살육극.

[단두대와 욕조]에서 보여준
죄인들을 살육해 구덩이에 넣는 장면들은
절로 홀로코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폭력과 혐오, 분노로 세워진 질서는
계속해서 같은 것들을 원료로 삼아 나아간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질서 역시
완전히 그것들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 본질을 봐야만 한다.
우리 시대의 뿌리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당장 우리가 마주한 시스템을 전부 바꿀 수는 없겠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가는 것보다는
지금 있는 것들을 직시하는 편이 더 낫다.

그렇게 바라보고 있으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의 본질이 보인다.
이 시대에 이 소설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그것이 아닐까.

지금 이 시대의 기반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잔혹한 피 위에서 세워졌는지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이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또 다른 단두대가 세워져
무고한 이들이 그 아래 피 흘리지 않기 위해.

역사를 받아들이고 기억하되,
눈은 미래에 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끝내 시몽이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듯 말이다.

이미 벌어진 일을 바꿀 수는 없으나,
앞으로 다가올 것을 바꿀 수는 있다.

그러니 우리는 끝도 없이 고민하며,
두 눈을 크게 뜨고
세상에 대고 질문해야 한다.

대체 이 모든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냐고.

[단두대와 욕조] 는 이런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솔직히 그 과정이 꽤나 즐거웠다.
세상에 대한 시선을 깨부수는, 대담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 앞에서
작가와 허물없는 대화를 나누는 경험은
한줄평 : '혁명'의 잔재아래 가려진 그림자.

다만, 이 책을 따라가는 여정은 그리 쉽진 않았다.
문체 자체가 매끄럽게 읽히지 않고,
서사가 계속 뚝뚝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을 너무 역사서처럼 써놓았다는 감상을 지울 수 없었다.
조금더 인물 자체의 매력과
서사의 긴장감을 살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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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원의 삽목
마쓰시타 류노스케 지음, 마미영 옮김 / 반타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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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게 도서와 일정 고료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소설은 첫 시작부터 독자를 완전히 몰입시키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시작한다. '이백 년 전 발견된 뼈와, 실종된 여동생의 DNA가 일치한다?' 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해? 하는 물음이 절로 들면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추리 미스터리 장르에서 이런 시작은 극찬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절로 독자가 이 진실을 알고 싶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힘. 솔직히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의문이 하나 있었다. '일차원의 삽목' 대체 이 제목은 무슨 뜻일까. 이 책이 독자에게 처음으로 던지는 미스터리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작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몇 개의 설정을 더해, 이 이야기를 더 빠르고 힘 있게 끌고 나간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등장하는 안톤 시거가 생각나는, 석유통을 들고 다니는 인간성이 완전히 결여된 괴물. 거대한 제약회사를 운영하는 의붓아버지, 그와 연결된 알 수 없는 종교 단체 '수목회'. 그리고 뼈가 발견된 호수와 연관된 비밀과 저주까지. 이 책의 가장 놀라운 점은, 생각보다 많은 등장인물과 꽤나 복잡하게 얽힌 서사 속에서도 이야기가 길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종된 여동생을 찾는 주인공의 이야기에서, 의붓아버지의 이야기, 호수에 엮인 저주에 관한 이야기, 그 뼈를 찾는 괴물과 비밀의 냄새를 맡은 기자까지. 이렇게 복잡하게 연결되는 사건들 사이에서도 작가는 길을 잃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끝내, 독자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반전과 서사를 완성해낸다. 나는 이 소설을 이렇게 평하고 싶다. '가장 일본적이고 현대적인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이 이야기는 한마디로, SF의 고전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일본적 감성과 스릴러를 엮어 해석한 작품이다. '삽목'과 '수국'의 뜻을 이해하면, 이 말이 더욱 강렬하게 와닿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 그리하여 인간이 아닌 괴물.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이 정도 스케일의 미스터리를 이끌어나가는 힘을 가진 작가는 정말 흔하지 않다. 거기에 SF적인 설정과 예상을 비트는 소재, 그리고 다가오는 재앙과도 같은 악당이 만드는 긴장감까지. 일본식 미스터리 소설을 사랑한다면, 꼭 추천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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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쿠 - 망자의 터
기타자와 도 지음, 전선영 옮김 / 반타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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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게 도서와 일정 고료를 협찬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나는 솔직히, 꽤 오랫동안 인간보다 귀신이 더 무섭다고 생각했다. 침대 아래에 인간이 있는 것보다, 귀신이 있는 게 20000배는 더 무섭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그 생각이 좀 바뀌었다. 귀신보다 인간이 더 무섭다는 것. 더 나아가, 인간의 욕망이 제일 무섭다는 것. 그리고 이 책을 읽고 깨달았다. 인간의 욕망이 만든 귀신이 제일 무섭다는 것을. 이 책은 죽은 아내의 영혼을 만나려는 주인공으로 시작한다. 죽은 아내를 불러냈으나, 정작 그를 만나러 온 것은 완전히 뒤틀린 영혼이었다. '뒤에, 뒤에, 뒤에, 뒤에...' 분명 아내와 같은 목소리,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나 아내가 아닌 무언가가 되어버린 영혼. 그리고 그 영혼을 잡아먹으려 하는 인간이 아닌 존재, '에리마키'. 에리마키는 저 영혼을 지금 먹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생길 거라 말하며 아내의 영혼을 잡아먹으려 한다. 그렇게 주인공과 동거를 하게 된 에리마키. 둘은 주인공의 가문에 얽힌 비밀을 따라가며, 왜 아내의 영혼이 이렇게 변해버렸는지를 파헤치게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인외, '에리마키'가 정말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가장 사랑하거나, 저주하거나, 혹은 두려워하는 누군가의 얼굴로 보이는 존재. 하지만 주인공은 에리마키의 얼굴에서 어떤 것도 보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의 본질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존재 역시 주인공이다. 이런 설정이 둘의 관계를 한층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공포 소설 장르의 매력도 그대로 가져가면서, 그 안에 매력적인 인물 배치와 가문에 얽힌 비밀을 엮어 꽤나 매력적인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끝에 독자가 마주하는 것은, 가장 추악한 인간의 욕망에 대한 본질이다. 이 여름의 끝자락. 깊은 밤에 함께하기 딱 좋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뒤에, 뒤에, 뒤에, 뒤에, 뒤에...' 이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되면, 절로 어깨 너머를 돌아보게 될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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