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준 선물 - 아빠의 빈 자리를 채운 52번의 기적
사라 스마일리 지음, 조미라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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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요리하는 것도 수다 떠는 것도 싫어하는, 그다지 사교적이지 않은 성격을 가진 세 아이의 엄마가 있다. 오죽하면 '저녁식사에 사람을 초대해 놓고는, 손님이 오기 직전에 지하로 숨어버렸으면'(9쪽)하고 생각하기까지 했을까. 그런 그녀가 남편이 아프리카로 파병나가 있는 52주 동안,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저녁식사에 손님들을 초대했다. 낡은 나무식탁 앞에 앉아, 기꺼이 남편과 아빠의 빈 자리를 채워준 손님들, 매주 새로운 손님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 속에서 조금씩 함께 성장하는 아이들과 엄마의 이야기가 따스하다. 가족의 성 '스마일리(Smiley)'처럼, 책장을 넘기면서 저절로 미소지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스마일리 가족의 첫 저녁초대 손님은 첫째아들 포드가 편지를 보냈던, 메인주의 상원의원이었다. 상원의원실에서 저녁 초대에 응하겠다는 연락이 온 후, 처음 의젓하게 상원의원을 초대했던 포드는 갑자기 마음이 바뀐다. 초대를 취소하고 싶어하기도 하고,'우리를 불쌍하게 생각해 참석하는 저녁식사 자리에는 가지 않을 거예요'(41쪽)라고 주장하며 엄마의 애를 태운다. 그러나 엄마는 아들을 윽박지르거나 엄마의 기대를 강요하지 않고(대단하다!)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결정했다. 아이들을 위한 아이디어였다면 아이들의 생각을 따르기로. 아이들을 자랑하거나 아이들에게 예절을 가르치쳐는 것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하는 프로젝트도 아니고 실험도 아니었다. 단지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선물은 기대를 하면 안 된다. 저녁식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42쪽)

 

그렇게해서 '저녁식사를 너무 근사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겠다'는 약속 하에 상원의원과의 첫 저녁식사가 시작된다. 아이들과의 약속을 너무 굳게 지킨 나머지, 식탁 예절을 미리 가르치지 않은 엄마가 상원의원이 도착하고 나서야 '똥 얘기를 하거나 뽕뽕 쿠션으로 장난치면 안 된다'고 뒤늦게 허둥대며 주의를 주는 모습, 아이들이 상원의원이 선물로 가져온 직접 구운 브라우니에서 호두를 다 골라내 식탁에 쌓아둔 것을 보고 숨이 턱 막힌 모습(의원을 보며 얼마나 민망했을까)이 상상이 갔다.

역시 아이들은 천진난만하다. 어른들의 관점이나 잣대와는 상관없이, 거리낌없이(너무 거리낌이 없어서 가끔 탈이긴 하지만^^;) 그냥 마음에서 느낀대로 '스마일리 가족과의 저녁식사'의 초대손님들을 대한다. 아이들에게는 상원의원도 그냥 친절한 아줌마였을 뿐이었다. 그 후 학교 선생님, 이웃에 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전 주지사, 경찰서장, 동물원장, 일러스트레이터, 연방보안관, 라디오 진행자, 메이저리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등 수많은 다채로운 사람들과 함께 저녁식사는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엄마와 아이들은 종종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도 하고, 잠시 등을 돌리다가도 다시 보듬어안고, 결국은 서로를 이해하면서 성장해간다.

 

책장을 넘기며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오래된 아프리카 속담이 문득 떠올랐다. 정말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세 아이의 엄마, 사라 스마일리는 남편 없는 시간동안 혼자만의 힘으로 아이들을 키운 것이 아니었다. 이웃과 친구들, 지역사회의 많은 이들이 함께 이 가족을 지지해주고 함께 해주었다. 현관에 음식을 놓고 가고, 망가진 울타리와 물이 새는 창문을 고쳐주고, 추수감사절이나 아버지의 날에 초대해주고, 아이가 한밤중에 고열에 시달릴 때 돌봐준 것을 세 아이의 엄마는 회상한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내어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떻게 지내는지','필요한 것은 없는지' 물어봐 주었다.'(400쪽)

그래서 마지막 52번째 저녁식사는 그동안 도움을 준 이웃들을 한꺼번에 초대하기로 한다. 아이들은 지난 일 년 동안 자신들을 도와준 사람들을 위해 서빙을 하고, 엄마는 그 모습을 행복하게 지켜본다. 그 어떤 유명인을 초대한 것보다 더 뜻깊은 저녁식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눔과 감사에 대해, 함께 도우며 살아간다는 의미에 대해 아이들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다들 너무나 바쁘게, 삭막하게 산다.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자", 지나가는 말처럼 그냥 쉽게 말을 던지지만 막상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고 끊임없이 정당화(?)하며 산다. 과연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가족과 이웃, 친구와 함께 식사를 즐기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조차 아까워하면서... 그렇게 함께 나누는 시간이 진짜 인생에서 의미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는 책이다.

책장을 덮으며, 기꺼이 시간을 내어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어떻게 지내?', '내가 뭐 도와줄 것 없어?' 물어보는 것에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나에게만, 내 가족에게만 관심을 갖지 말고 마음을 다해 다른 이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것, 이웃과 친구들이 처한 어려움을 같이 느끼고 작은 도움이라도 건네는 것... 따스한 봄볕을 쬔 듯 마음이 훈훈해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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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예술견문록 - 중국 현대미술을 탐하다
김도연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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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격동의 세월 속에서 피어난 중국 현대미술은 지글지글 볶이는 중국요리처럼 우리의 오감을 강렬하게 사로잡는다.'(16쪽)

책장을 넘기는동안, 프롤로그에 쓴 저자의 이 말이 계속 떠올랐다. 그렇다. 불의 예술이라 불리는 중국요리처럼, 중국의 현대미술이 너무나 다채롭고 풍부하고 에너지가 넘친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책.

 

사실 이 책을 보기 전에는, 우리나라나 일본보다 반세기 이상 늦게 문을 연 중국의 현대미술이 이렇게까지 거대하게 성장해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중국이 경제성장과 더불어 미술시장도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는 것, 우리나라의 많은 화랑들도 중국 예술의 중심지 베이징에 진출해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고, 가끔씩 중국 작가들의 작품을 우리나라에서 접한 적도 있었지만 나의 상상계(?)를 넘어선 폭발적인 중국 미술의 성장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황막한 공장지대였던 798은 자금성과 만리장성에 버금가는 여행 메카로 자리잡게 되었고 지금 현재 798 내에 자리잡은 갤러리와 예술 공간들만 400개가 넘는다고 한다(또한 수많은 국내외 갤러리들이 여전히 자리가 생기기만을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단다). 역시 중국은 규모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쩝.^^;

 

'억압받은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는 듯 폭발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쏟아냈고, 열대 우림의 나무들처럼 쑥쑥 자라났다'(16쪽)는 저자의 말에 끄덕이며 책장을 넘겨갔다. 7년간 베이징에서 생활하며 중국 현대미술의 성장을, 그 힘찬 파도를 오랜시간 피부로 느꼈고, 무엇보다 그 파도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저자의 열정이 느껴져서 덩달아 가슴이 뜨거워졌다. '중국의 예술은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 이야기하기 벅차다'(20쪽)니, 저자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갈망은 축복인 법이니까.

 

책의 프롤로그가 28페이지 정도로 꽤 많은 양을 할애했는데(이것만 보더라도 이 책이 중국현대미술을 제대로 소개하기 위해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를 알 수 있다), 덕분에 중국 현대미술의 역사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눈을 뜰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베이징시미술가협회에서 전시를 거절당한 23명의 작가들이 권위의 상징 주국미술관의 동쪽 외벽에 150점의 작품을 붙인 <싱싱미전>은 무척 기억에 남는다. 전시 이틀 후 공안당국에 의해 전부 철거당하고 몰수당하고... 그 후 새로운 물결 '85신조'와 현대미술의 분수령이 된 <중국현대예술전>, 몇 달 지나지 않아 천안문사태가 발발하고 정국은 또 다시 긴장상태에 들어가 모든 현대 미술 전시가 금지되고... 중국의 예술이 얼마나 격동의 시간들을 통해 탄생했고 성장했는지 경외감이 든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 이야기하기 벅차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밖에.

 

그 다음 1부에서는 베이징의 대표적인 예술구 798과 차오창띠를 중심으로,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화랑들과 중국 미술관 몇 곳이 소개된다. 2부와 3부는 이 책의 심장부로, 저자가 수차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 예술가들과의 인터뷰와 작품세계의 소개로 이루어져있다. 자신의 예술세계를 이루고 성숙한 작품을 보여주고 있는 7명의 작가와, 이제 막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5명의 젊은 작가들을 골고루 소개한 점, 회화와 조각, 사진, 판화, 카툰과 비디오아트 등 각기 다른 영역과 매체의 작가들을 선정한 점이 좋다.

인터뷰를 읽다보면, 인터뷰어의 자세와 마음가짐이 인터뷰이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느낄 수 있다(성의없는 인터뷰어에게는 그 보답(?)으로 성의없는 답변이 돌아가니까). '내가 오랜 시간 작품을 보고 소통하며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이들'(13쪽)의 공간에 찾아간 저자가 그들의 작품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을 다해 진지하게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느껴지는 인터뷰였다.

 

이 책을 보면서 다시 중국어와 중국에 대한 에너지가 막막 솟는다(출근하기 전 열렬히 중국어회화를 공부하던 때도 있었지만, 아직 부끄럽게도 내 중국어실력은 초급에서 영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자유와 열망, 무수한 바람들을 담고 있는 798의 공기를 나도 마셔보고 싶다. 20세기 중반 건립 후 50년 동안 출입할 때 적어도 세 번은 검사를 거쳐야 하는 비밀스러운 공장이었던(798 같은 공장의 이름은 군수용품 제조의 상황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기 위한 암호였다고 한다) 798, 지금은 춤추는 예술구가 된 그 곳의 화랑들을 어슬렁거려보고 싶다.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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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암송 훈련 논어 채근담 - 동양 고전의 지혜 200문장 영어 암송 훈련
박광희 지음, 캐나다 교사 영낭훈 연구팀 엮음 / 사람in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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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채근담의 명구 중에서 내가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싶은 문장들을 영어로 암송한다는 신선한 발상이 돋보이는 책이다. '영어 말하기 연습'과 '논어, 채근담의 지혜 되새기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시간이 무척 즐거웠다. 마음속에 와 닿는 문장, 내 삶에서 실천하고 싶은 지혜들을 이렇게 영어로 음미해보니 또 그 맛이 새롭게 느껴진다.

 

사실 영어문장 암기에는 끊임없는 반복 말고는 왕도가 따로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암송훈련용 mp3파일, 플래시카드 pdf 파일과 함께 3단계로 암송 훈련을 도와주고 있다. 먼저 논어, 채근담에서 발췌하여 영어로 옮겨놓은 문장을 의미 단위로 끊어서 눈으로 암기를 하고, 두번째는 '따라 말하기'와 '통역하기'를 활용하여 암송하는 것이다. 세번째 단계로 암송한 문장을 듣고 받아쓰기를 하면 미션 완료! 꼭 완벽히 받아쓰기까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내 얘기다^^;), 같은 문장을 이렇게 여러 차례 익힐 수 있으니 저절로 반복학습이 되는 효과가 큰 것 같다.

 

'스스로를 되돌아본다면 닥치는 일마다 약이 될 것이다. 남의 탓을 한다면 생각하는 모든 것이 흉기가 될 것이다(If you reflect on yourself everything you encounter can be remedy. If you blame others every thought you have will be a weapon).'(170쪽)

심호흡을 하며 채근담의 이 문장을 읽어본다. 원래 좋아했던 문장인데 이렇게 영어로 만나니 신선한 느낌이다. 사실 살아가면서 뭔가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스스로를 되돌아보기보다는 남의 탓으로 돌리기가 얼마나 쉬운가. 그런 유혹에 흔들릴 때마다 이 문장을 떠올리며 마음을 추스려야겠다.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흉기가 아닌 약으로 만들기 위해서.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담금질해준 고전, 논어와 채근담의 보석같은 글귀들을 다른 언어의 틀로 바라볼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이 귀한 글귀들을 그림의 떡으로 남기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내 것으로 될 수 있도록, 매일 한 페이지씩이라도 꾸준히 읽고 외우고 실천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예전에 나에게 서운하게 했던 사람이 문득 떠올라 마음이 어두워진 오늘 아침에는 이 글귀가 나를 다잡아준다. 구깃구깃해졌던 마음의 주름이 조금씩 펴지고 있다. 고맙다.

'You should forgive the fault of others, but never your own.

You should bear your own trials, but never those of others.

(다른 사람의 잘못은 마땅히 용서해야 하지만 자신의 과오를 용서해선 안 된다. 자신의 괴로움을 ㅁ나땅히 참아야 하지만, 남의 시련은 결코 참아서는 안 된다).'(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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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발상의 비밀 - 노벨상을 수상한 두 과학자의 사고법과 인생 이야기
야마나카 신야 외 지음, 김소연 옮김 / 해나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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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을 수상한 두 과학자, 생물학자 야마나카 신야와 물리학자 마스카와 도시히데가 진지하게 나눈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생명과학과 이론물리학의 세계를 순수하게 즐기고 있다는 것, 그 세계의 경이로움에 대해서 진심으로 경탄하고 재미있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특히 두 사람 모두 한 우물만 팠던 삶을 살지 않았다는 점, 끊임없이 어슬렁거리고 기웃거리는 길을 걸어왔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직선형 인생'과 일단 시작한 일이라도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거나 더 재미있는 일이 나타나면 그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회선형 인생', 두 과학자 모두 회선형 인생을 살아왔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일본 학계에서도 연구의 일관성을 대단히 중시하는 풍토라고 한다. 그런 딱딱한 분위기에서, 수술이 서툴러서 '자마나카'(걸리적거린다는 뜻의 일본어 '자마'에 야마나카를 결합하여 만든 별명)라 불리고 줄곧 환자들의 링거 주사 보조만 해야했던 정형외과의 야마나카 신야는 녹아웃마우스를 이용해 동맥경화를 연구하겠다고 미국 유학을 떠났고, 막상 미국에서는 동맥경화가 아닌 암을 연구했고, 암을 연구하나 싶더니 귀국한 다음에는 만능세포를 연구했다. 그때그때의 연구 결과에 따라 그의 관심의 대상은 자유롭게 바뀌었다.

 

'옆에서 보면 제 인생은 먼 길로 빙 돌아가고 있고,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어요. 누군가는 제게 좀 더 합리적으로 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먼 길을 돌아왔기 떄문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79쪽)

 

마스카와 도시히데는 또 어떤가.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물리학자의 연구실에 물리학과 관련된 책은 몇 권 되지 않는다고 한다. 가장 많은 건 수학 책(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 때는 정말 신이 난다니 경이롭기만 하다^^;)이고, 정신의학,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책장 가득 꽂혀 있다고 한다.

 

'그런 것들이 물리학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런 얄팍한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저는 그냥 제 눈앞에 있는 재미있는 것들과 논 것 뿐이었죠.'(82쪽)

 

'그냥 논 것'이라 겸손하게 말하지만 그 놀이의 집중력은 폭발적이다. 논문을 검토하던 중 사흘 동안 잠도 휴식도 없이 꼬박 생각에 매달렸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아마 저는 머릿속으로 수식과 놀과 있었을 거예요'(108쪽)이라고 말하는데 혀를 내둘렀다. 1940년생이라는데, 참 푸근하고 천진난만한 인상이다. 세계적인 물리학자다운(?) 괴팍스러움이나 깐깐함이 아닌 장난기어린 동경 가득한 느낌.

'저한테는 물리학이나 수학, 천문학 모두 아이들 장난감 같은 존재예요. 평생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요.'(108쪽)

 

다음에 교토를 가게 되면 어쩐지 교토대학 근처를 어슬렁거리게 될 것 같다. 운이 좋으면 야마나카 신야가 대학 구내를 자전거로 달리는 모습을, 혹은 토론에서 막힐 때마다 머리를 비우기 위해 달리기하고 있는 모습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또 항상 8시 3분에 집에서 나와 역까지 걸어가 전차로 학교로 가는 마스카와 도시히데를 볼 수 있을지도. 세계적인 과학자 두 사람의 진솔한 대화를 들으면서, 따뜻한 위로와 힘찬 격려가 내 안에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으면 돈키호테처럼 한 발 내딛는 게 중요해요. 가만히 있으면 낭만은 절대 찾아오지 않습니다. 방황하고 벽에 부딪히더라도 실제로 움직이다 보면 동경은 낭만으로 바뀌죠. 전 그렇게 믿습니다.'(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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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치즈가 좋다 - 꿈을 찾는 당신에게 들려주는 꿈을 이룬 이야기
매트 페로즈 지음, 홍상현 옮김 / 이책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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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치즈를 만들고, 숙성하고 파는 것일까? 그 대답은 복잡하고 다양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돈 버는 것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86쪽)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 진정으로 가슴 뛰게하는 일을 찾아 용기있게 뛰어들고, 열정을 다해 그 꿈을 추구했던 저자 매트 페로즈의 여정을 따라가는 시간이 행복했다. 국가 감사원의 회계사라는 안정적이고, 수입 좋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 받을 일도 크게 없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던 그의 삶은, 사실 더 바랄 것이 없어 보였다. 모든 것이 갖춰진 편안하고 안락한 삶. 문제가 될 만한 것이라고는 '만약 지금 내가 뭔가 바꾸지 않는다면 이 편안하고 단순한 삶을 평생 이어가게 될 것이라는 점'(83쪽)밖엔 없다(사실 우리나라 대다수 젊은이들의 상황에서 바라본다면 이런 불만(?)도 '배부른 투정'으로 비춰지겠지만).

그러나 프랑스의 작은 염소 농장에서 우프(농장에서 숙식을 제공받으며 자원봉사를 하는 프로그램)를 체험하며 보낸 한 달간의 휴가는 그의 삶을 바꿔 놓았다. '돈 버는 것보다 재미있는' 대상인, 치즈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사실 나에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한 사무실에 틀어박혀 나이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96쪽)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을 하면서 이같은 충동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사실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회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다행히 매트 페로즈가 근무하던 회사에는 긴 휴직 제도가 있었고, 그는 그 제도를 활용하여 정장을 벗고 작업복을 입고 치즈의 세계로 뛰어드는 다이빙을 선택한다. 물론 좋은 직장이라 그런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쉬운 결정은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변함없는 사실은 휴직이 받아들여지든 말든 런던을 떠난다는 것이고 필요하다면 직장을 그만두면 되는 것'(98쪽)이라는 매트의 무대포(!) 정신은 그래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해진다. 뭔가 갈증이 확 풀리는 것 같은 느낌.

 

물론 꿈을 현실로 이루어가는데는 수많은 장벽이 존재한다. 여자친구 젠과 함께 미식가의 메카인 프랑스 리옹으로 용감하게 떠난 매트에게도, 본격적인 치즈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데 수많은 우여곡절들이 종횡무진 펼쳐진다. '꽤 많은 프랑스 사람들이 프랑스만이 최고의 치즈를 만들고 그 어떤 과정에도 외국인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213쪽) 텃세 속에서, 낯선 프랑스어와 열심히 씨름해 가면서, 오직 치즈에 대한 애정으로 꿋꿋이 치즈 장인들에게 치즈를 배우고 새로운 일에 적응해간 그의 여정에 박수를 보낸다.  

결국, 프랑스 최고의 치즈대회의 가장 초짜 참가자였던 그는 당당히 만장일치로 선정된 첫 외국인 챔피언이 되었다. '아는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챔피언이 된 후로도 자만에 빠지지 않고, 여전히 자신이 배우고 경험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같이 많다고 말하는 이 젊은이의 치즈 사랑에 전염된 것일까, 덩달아 가슴이 뜨거워진다. '돈 버는 것보다 재미있는 것', 그것이 내 삶에선 어떤 것일까. 그리고 나는 그것을 향해 온몸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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