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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예술견문록 - 중국 현대미술을 탐하다
김도연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14년 1월
평점 :
'실로 격동의 세월 속에서 피어난 중국 현대미술은 지글지글 볶이는 중국요리처럼 우리의 오감을 강렬하게 사로잡는다.'(16쪽)
책장을 넘기는동안, 프롤로그에 쓴 저자의 이 말이 계속 떠올랐다. 그렇다. 불의 예술이라 불리는 중국요리처럼, 중국의 현대미술이 너무나 다채롭고 풍부하고 에너지가 넘친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책.
사실 이 책을 보기 전에는, 우리나라나 일본보다 반세기 이상 늦게 문을 연 중국의 현대미술이 이렇게까지 거대하게 성장해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중국이 경제성장과 더불어 미술시장도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는 것, 우리나라의 많은 화랑들도 중국 예술의 중심지 베이징에 진출해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고, 가끔씩 중국 작가들의 작품을 우리나라에서 접한 적도 있었지만 나의 상상계(?)를 넘어선 폭발적인 중국 미술의 성장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황막한 공장지대였던 798은 자금성과 만리장성에 버금가는 여행 메카로 자리잡게 되었고 지금 현재 798 내에 자리잡은 갤러리와 예술 공간들만 400개가 넘는다고 한다(또한 수많은 국내외 갤러리들이 여전히 자리가 생기기만을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단다). 역시 중국은 규모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쩝.^^;
'억압받은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는 듯 폭발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쏟아냈고, 열대 우림의 나무들처럼 쑥쑥 자라났다'(16쪽)는 저자의 말에 끄덕이며 책장을 넘겨갔다. 7년간 베이징에서 생활하며 중국 현대미술의 성장을, 그 힘찬 파도를 오랜시간 피부로 느꼈고, 무엇보다 그 파도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저자의 열정이 느껴져서 덩달아 가슴이 뜨거워졌다. '중국의 예술은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 이야기하기 벅차다'(20쪽)니, 저자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갈망은 축복인 법이니까.
책의 프롤로그가 28페이지 정도로 꽤 많은 양을 할애했는데(이것만 보더라도 이 책이 중국현대미술을 제대로 소개하기 위해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를 알 수 있다), 덕분에 중국 현대미술의 역사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눈을 뜰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베이징시미술가협회에서 전시를 거절당한 23명의 작가들이 권위의 상징 주국미술관의 동쪽 외벽에 150점의 작품을 붙인 <싱싱미전>은 무척 기억에 남는다. 전시 이틀 후 공안당국에 의해 전부 철거당하고 몰수당하고... 그 후 새로운 물결 '85신조'와 현대미술의 분수령이 된 <중국현대예술전>, 몇 달 지나지 않아 천안문사태가 발발하고 정국은 또 다시 긴장상태에 들어가 모든 현대 미술 전시가 금지되고... 중국의 예술이 얼마나 격동의 시간들을 통해 탄생했고 성장했는지 경외감이 든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 이야기하기 벅차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밖에.
그 다음 1부에서는 베이징의 대표적인 예술구 798과 차오창띠를 중심으로,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화랑들과 중국 미술관 몇 곳이 소개된다. 2부와 3부는 이 책의 심장부로, 저자가 수차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 예술가들과의 인터뷰와 작품세계의 소개로 이루어져있다. 자신의 예술세계를 이루고 성숙한 작품을 보여주고 있는 7명의 작가와, 이제 막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5명의 젊은 작가들을 골고루 소개한 점, 회화와 조각, 사진, 판화, 카툰과 비디오아트 등 각기 다른 영역과 매체의 작가들을 선정한 점이 좋다.
인터뷰를 읽다보면, 인터뷰어의 자세와 마음가짐이 인터뷰이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느낄 수 있다(성의없는 인터뷰어에게는 그 보답(?)으로 성의없는 답변이 돌아가니까). '내가 오랜 시간 작품을 보고 소통하며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이들'(13쪽)의 공간에 찾아간 저자가 그들의 작품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을 다해 진지하게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느껴지는 인터뷰였다.
이 책을 보면서 다시 중국어와 중국에 대한 에너지가 막막 솟는다(출근하기 전 열렬히 중국어회화를 공부하던 때도 있었지만, 아직 부끄럽게도 내 중국어실력은 초급에서 영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자유와 열망, 무수한 바람들을 담고 있는 798의 공기를 나도 마셔보고 싶다. 20세기 중반 건립 후 50년 동안 출입할 때 적어도 세 번은 검사를 거쳐야 하는 비밀스러운 공장이었던(798 같은 공장의 이름은 군수용품 제조의 상황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기 위한 암호였다고 한다) 798, 지금은 춤추는 예술구가 된 그 곳의 화랑들을 어슬렁거려보고 싶다. 가슴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