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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시절
안드레아스 알트만 지음, 박여명 옮김 / 박하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개 같은 시절... 이라는 강렬한 제목과, 책 표지의 쭈그리고 앉은 채 담배를 물고있는 어린 소년의 모습. 담배를 문 채 눈을 내리깐 아이의 표정에서 아이다움은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다. 고단하고 메마른 표정의 소년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묻고 싶어진다. 아이야, 무엇이 너를 이런 모습으로 만든 거니?
전쟁이 끝나고 무사히 살아 돌아왔지만 이미 영혼이 황폐해져 버려 가족에게 폭력과 학대만을 일삼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저지할 아무런 힘이 없이 그저 무기력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어머니, 위선과 폭력으로 가득한 가톨릭 학교... 지옥 같은 매일이 반복된다. 책장을 넘기면서, 이것이 한 사람의 인생의 실제 이야기라는 사실이 경악스러웠고 슬프기만 했다. 전쟁이 끝난다고 해서 상황이 종료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깨달음에 몸서리가 쳐졌다. 오히려 전쟁이 끝나면서 모든 악몽은 다시 시작된다.
'지옥에는 소란도, 엄청난 화염도, 식인 마귀도, 절규도 없을지 모른다. 오히려 존재의 무의미함을 일깨워주는 곳, 그곳이 지옥일지도 모른다. 여기서는 아버지가 자식에게 그렇게 했다.'(93쪽)
전쟁이라는 것이 도대체 인간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 수 있는지,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도대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책장을 넘기면서 이런 의문이 끊이지 않고 고개를 들었다. 너무나도 나약했지만 소심하게나마 아버지의 광기를 저지하던 어머니마저 떠나고, 전쟁은 더욱 악화된다. 아버지의 광기를 막을 자는 이제 없다. 매일매일 계속되는 폭력과 학대, 어처구니 없는 절약 강박과 강제 노동이 이어지는 희망 없는 삶을 아이는 힘겹게 견디어간다.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의 메말라가는 가슴 한 구석에서, 그래도 실낱같은 온기를 목마르게 그리워하는 마음을 읽으며 슬펐다. 물론 아이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 온기는 알트만 하우스에서 이미 말라버린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그런 사랑은 원래부터 자신의 손에 쥐어져있지 않았다는 것을.
'며칠 뒤, 문득 내 어린 시절 소원이 떠올랐다. 오래전에 완전히 포기해버렸던 소원. 전 세계 아이들의 소원이기도 한 그것은 바로 잠들기 전에 아버지가 침대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주는 것이었다. 소설도 좋고 동화도 좋았다. 물론 그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던 아버지가 최근 몇 달간 내 침대로 왔다. 책이 아닌 몽둥이를 들고. 그것을 휘두르며 큰 소리로 나를 꾸짖었다.'174~175쪽)
어린 안드레아스는 어떻게 이런 지옥을 견뎌냈을까. 그런 숨막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아이다운 호기심이 살아있었다는 것이, 생명력이 힘차게 꿈틀대고 있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잠가놓은 식료품 저장소에 몰래 들어가 주린 배를 채우고, 아버지의 책상을 뒤져 우표를 훔쳐내 팔고, 몰래 묵주를 판 돈으로 한밤중에 탈출하여 소시지와 빵을 사 먹고...
모든 것이 너무나 막막한 상황이었지만 아이가 열한 살 때부터 일기를 썼다는 것, 그리고 일치단결했던 착한 둘째 형 만프레드가 있었다는 것에(정확히는 집을 떠났던 만프레드가 김나지움 편입에 실패하여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에-물론 만프레드에게는 불행이었지만)에 무한히 감사한다. 그 두 구원이 없었다면 그는 견디지 못하고 미쳐버렸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책 맨 첫장에는 '용기있는, 나의 형 M을 위해'라고 써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서투르고 형식적일지라도) 비밀스러운 방식으로 삶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것을 느꼈다.'(112쪽)
'그래도 알트만 하우스에는 만프레드가 있었다. 내 둘째 형 만프레드는 존재 자체로 나를 보호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곁에 있다는 사실 사나만으로도 나는 안심했다...(중략)...우리는 교대로 작업하며 고통을 나누었다. 그러나 얼마 후 나는 타인의 고통으로 내 고통이 배가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멸시는 곧 자기를 향한 멸시이며, 그 사람을 향한 구타는 곧 자기의 심장을 향한 구타였다.'(146쪽)
벽 한쪽 공간에 날짜를 세는 달력이 있었고, 안드레아스는 매일 24시간을 지우며 2초간의 행복을 누렸다. 열아홉 살, 그는 마침내 알트만 하우스로부터, 아버지로부터 탈출한다. 법적으로 성인이 되어 자유의 몸이 되는 스물한 살이 되기까지는 아직 851일이 남아있었지만 그는 두꺼운 빨간색으로 사선을 긋고 "나쁜 언행으로 조기 석방!"이라고 쓴다.
그리고 1부, 2부 '전쟁'이 끝나고 이어지는 에필로그. 에필로그를 여러번 읽으며 생각했다. 한 사람이 자신이 상처의 역사와 마주서는 일, 또 그것을 극복하는 일이 얼마나 끝없이 험난한 길인가에 대해서.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온 후 알트만 하우스에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듯, 아버지와 집으로부터 겨우 탈출하고 나자 또다시 전쟁이 시작되었다. 실체 없는,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전쟁에서 지지않기 위한 몸부림들. 그는 수많은 직업에 도전하며 자신의 가능성을(혹은 삶의 이유를) 발견하려 애쓰고, 그 과정에서 수없이 좌절하고, 수많은 곳을 여행하고,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동원한다. 성 불능을 이겨내고, 불교로부터 위안을 얻기도 하고, 자신의 호흡곤란의 증세에 숨겨진 출생의 비밀을 마주하고,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장례식에 참석한다.
그는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데 드디어 성공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기자가 된 지금 나는 내 영혼에 남아 있는 종양에 감사한다'(317쪽)라고 말한다. 그 종양은 지나친 자만과 긍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고, 더 섬세하고 투명하게, 더 엄격하게 현실을 재면서 글을 쓰도록 돕는다고.
그리고 마침내,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러시아의 한 마을을 여행하던 어느 겨울날, 그는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여든여덟의 안나 요노브가 독일 소련 전쟁에 참전해 살아돌아온 남편에 대해 들려준 이야기, '남편은 전쟁에서 이미 죽은 것이었다'는 그 이야기를 듣고선.
'아버지는 잘못된 직업을 가지고,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장소에서, 두 손에 최악의 카드를 쥐고 살았다. 나는 44년 뒤에 세상에 태어났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났다. 이날, 안나 요노브나의 목조 별장 의자에서 나는 나에게 행운이 있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행운이 없었음을 알았다.'(319쪽)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악몽의 시간을 건너야했을까. 그렇게 아버지의 비극에 대해 이해하고 난 후에도, 지금도 자다가 깨어나 울곤 한다는 그의 고백을 생각한다. 혐오스러울 정도로 망가져버린 두 사람의 인생에 대해, 또 자신을 위해 운다는 그 순간들을 생각한다. 마음이 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