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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계보학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전공은 문학이었지만, 우연히 만나 그 강렬함에 눈멀게 된 니체 덕분에 철학과 수업에 더 열심히 들락거렸던 대학시절을 보냈다. 니체를 좋아한다고 감히(?) 신나게 떠들고 다녔지만 여전히 나에게 니체는 어렵고, 수수께끼투성이다. 그래서 내가 니체를 좋아하는 것은, 마치 겨울날의 메마른 나뭇가지를 사랑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지금은 잎도 꽃도 피우지 못하지만, 열심히 파고들다 보면 언젠가 눈을 틔우게 될 거라고 굳게 믿으면서...
<도덕의 계보학>은 니체(1844-1900) 만년의 대표작이다. 24세의 젊은 나이로 스위스 바젤 대학 교수로 임명되었고, 28세 때 최초의 저작 <비극의 탄생>을 펴내 유럽 문명 전반을 꿰뚫는 통찰을 제시했던 니체. 이렇듯 새파란 나이 때부터 한참 잘 나갔던(!) 니체였으나 그 후로는 지독히 불행했다. 1879년 건강이 극도로 나빠져 십년간의 교직 생활을 접게 되고, 이후 긴 투병 생활과 함께 저술 활동에만 전념하게 된다. 1888년 말부터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 그는 병마에 시달리다 1900년 정신병원에서 고독한 삶을 마치게 되었으니... 도대체 몇 년 동안 투병생활을 한 건지. 자그마치 20년이 넘는 세월이다.
이 책의 서평을 쓰는 일은 어렵다. 솔직히 말하면 도저히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고 해야겠다. 물론 원인은 나의 무지함에도 있지만 니체식의 글쓰기에 주된 원인이 있다는 핑계를 넌지시 대어 본다. 니체는 도발적으로 글을 쓰는 철학자다. 그는 언젠가 자신의 글을 물고기를 낚기 위한 낚싯바늘로 표현하기도 했다(낚시질의 진정한 원조 니체!^^;). 이 책에서도 역시 니체는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고 단정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또 니체의 철학은 아포리즘(aphorism)의 철학이다. 이 책 <도덕의 계보학>도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경구에서부터 하나의 주제에 대한 비교적 긴 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의 아포리즘들로 가득하다. 아포리즘은 간결하지만 다의적이다. 쉽게 전달되지만 모호하다. 누구나 쉽게 니체를 읽지만, 누구나 쉽게 니체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다. 아포리즘은 사물과 직접적으로 관계하지 않으며, 오히려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물들을, 관념들을 낯설게 제시한다. 가령 이런 부분들을 읽을 때,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세뇌(!)되어 주입된 ‘도덕’이란 녀석을 불현듯 낯설게 바라보게 되는 것 아닐까.
사람들은 지금까지 인간 일반에 관련하여(인간의 미래를 포함하여) 진흥, 유용성, 번영이라는 의미에서 ‘선한 사람’을 ‘악한 사람’ 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는 일에 조금도 의심하거나 동요하지 않았다. 만약 그 반대가 진리라고 하면 어떠할까? ‘선한 사람’에게도 퇴보의 징후가 있다면,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위험, 유혹, 독이며, 가령 현재를 살기 위해 미래를 희생한 마취제가 있다면 어떠할까? 아마 현재의 삶이 좀 더 안락하고 덜 위험하지만 또한 보다 하찮은 방식으로 더 저열해지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인간이라는 유형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강력함과 화려함에 결코 이르지 못한다면 바로 도덕에 그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그 도덕이야말로 위험들 중의 위험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19쪽)
니체는 이 책에서 ‘계보학’답게, 도덕의 기원과 전개과정을 거슬러 올라가 상세히 고찰한다. 그 과정을 거쳐 결국 그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제시하는 것은 기독교 도덕에서 발생한 선과 악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주제 찾기(?)는 이 책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그 길을 찾아가는 과정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지각 경계를 흔드는 아포리즘들로 찬란하다는 것... 그것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
책을 읽으며 가끔씩, 이 책을 썼을 때의 니체의 모습이 어땠을까 상상해 보았다. 사랑도 실패하고, 가족도 친구도 없이 여동생 하나만을 곁에 두고, 끊임없이 정신질환에 시달리면서도 스스로를 끝내 놓지 않고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을 그 모습을.
“나 자신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몇몇 사람은 사후에야 태어나는 법이다.” 니체가 생을 마감하기 두 달 전에 완성한 <이 사람을 보라>의 한 대목을 떠올려본다. 그의 말이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니체는 고통스런 삶을 살았지만 분명, 사후에 다시 태어나 살아 있다. 20세기의 뛰어난 철학자인 들뢰즈는 니체에 관한 저작 <니체와 철학>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니체의 가장 일반적인 기획은 철학에 의미와 가치의 개념을 도입하는 데 있다. 분명, 현대 철학은 대부분 니체 덕으로 살아왔고, 여전히 니체 덕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니체가 원했던 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