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나이가 좋다 - 꿈이 있어 아름다운 88세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
이기옥 지음 / 푸르메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이보다 젊다, 는 가장 기분 좋은 한마디지만
나잇값을 한다, 는 가장 믿음직한 한마디일 것이다. (정철,<불법사전>중에서)  

 제목부터가 마음을 끌었다. “나는 내 나이가 좋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언제부터였을까, ‘나이 한 살 더 먹는 일’이 설레는 일에서 서럽고 두려운 일이 되어 버린 것은.
 우리 사회는 “늙지 않는 법(혹은 늙지 않게 보이는 법)”에 대해서는 앞 다투어 과잉된 정보를 쏟아내고 있지만, “늙음을 받아들이는 법”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하지만 아무리 보톡스와 레이저, 성형수술을 동원하고 ‘동안’ 소리를 듣기 위해 온갖 수를 다 쓴다 하더라도, 누구도 세월을 비껴갈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진리(!)를 깨달은 덕이었을까, 나는 예전부터 멋진 할머니들을 동경해 왔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씩씩한 할머니처럼, 나이 들어서도 생기 넘치는 모습, 소녀들의 현명하고 든든한 지지자가 되는 모습을 꿈꾸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구체적으로 ‘나이 들어가는 과정’에 대해선 고민해 볼 겨를 없이 숨 가쁘게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 노년의 일상을 살아가는, 저자의 진솔한 목소리가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가다가다 거울에 비치는 나를 보면 말려든 눈언저리와 입가에 깊이 팬 주름, 다리의 통증을 참는 미간의 주름 등에서, 육체적인 고통이 얼마나 세차게 휩쓸고 지나가는지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그러나 나의 여생을 아름답게 갈무리하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씩씩하게 인내하며 긍정적인 마음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쓴다(14쪽). 
 

 이 책의 저자는 1924년생이니 곧 90을 바라보는 나이다. 사람들의 편견으로 ‘외로움’, ‘무기력함’등의 형용사로 단정 짓기 쉬운 독거노인이다. 하지만 오래된 취미들을 즐기며 범사에 감사하며 생활하고 있는 저자의 글에는 따뜻한 노년의 일상이 잔잔하게 담겨 있다. 노년이 길어지면서 세 번이나 찍었던 영정사진, 줄어드는 동창회 모임의 친구들, 혼자 살다 보니 갑자기 떠날 때를 대비해 만든 특별한 명찰이나 사후 세계에 대한 명상 등 진지하고 묵직한 주제들도 저자의 담담한 목소리 덕에 진솔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유난히 책을 좋아하던 소녀는 11남매 중의 장남에게 시집가 고된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틈틈이 글을 썼고(시간이 남으면서도 글쓰기를 미루는 내게 찔리는 대목이었다), 남몰래 여러 편의 소설을 완성했다. 그렇게 스스로의 꿈을 놓치지 않은 결과 두 권의 산문집과 번역서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저자의 오래된 취미인 바느질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남는다. 시력이 나빠져 바늘에 실이 잘 꿰어지지 않아 눈을 비비고 미간에 주름을 모으면서도 저자는 손에서 바늘을 놓지 못한다.
 “고마워, 친구야. 너희들이 벗해주어서 나는 외롭지 않았고 바늘을 움직이며 과거와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었거든.”하고 바늘과 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는 부분을 읽으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 책 곳곳에서 저자가 자신을 둘러싼 많은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만난다. 내 발로 걸어서 장을 보러 가고 산책할 수 있어 감사하고, 아직 간을 맞출 수 있어 자식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줄 수 있어 감사하고, 오늘 눈이 보여 그림을 그리고 바느질을 할 수 있으니 더없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것들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눈을 갖는 일, 아름답게 나이를 먹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나이든 노인들에게는 꿈을 잃지 말라는 희망의 선물로, 노년의 문턱에 선 분들에게는 이제부터 원했던 꿈을 위해 한발 내디뎌 보라는 격려의 마음으로, 더 젊은 세대들에게는 노년의 삶이 결코 어둡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소통의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말하고 있다. 그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나도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내게 주어진 삶을 감사하며, 죽는 순간까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타인과 나누며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찾아 실천하고 싶다. 그런 삶이란, 세월을 비껴가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받아들이고 품어내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삶일 것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자아이의 왕국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그림, 이지원 옮김 / 창비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초경을 시작한 여자아이의 마음을 섬세한 글과 상징적인 그림으로 표현한 그림책, <여자 아이의 왕국>을 넘기고 있으니 마음이 어느새 따뜻해져 온다. 참, 아름다운 책이다. 한 편의 짧은 글을 이토록 섬세하게 시각화할 수 있는 작가의 표현력과 상상력이란! 훌륭한 그림책이란 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림으로 ‘말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림들이 자기 목소리를 잘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덮고 나서도 신비롭고 은은한 이미지들의 여운이 계속 남아 있다.


 

 이 책을 보니 어렸을 적, 언니와 함께 잠자리에 누워 천장과 벽의 벽지 문양을 골똘히 바라봤던 시간들이 문득 떠올랐다. 우리는 그 무늬들이 살아 움직이는 상상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지금 생각하면 꽃모양이 잔뜩 박힌 촌스러운 벽지였던 것 같다. 아무튼 심플하고 모던한 벽지가 아니었던 것이 늘 심심했던 우리에겐 참 다행이었다) 어느새 잠들곤 했다. 작가도 나처럼 벽지를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던 어린 시절을 보낸 걸까? 새와 꽃, 나비 등 벽지의 단순한 패턴들이 작가 특유의 섬세한 표현력으로 생명력을 얻은 듯 그려진다. 그렇게 은은한 색에 물드는 듯한 아름다운 그림들을 따라가다 보면 생명의 아름다움과 소중함, 여성이라는 존재의 특별함이 절로 스며든다. 

 원래 “여자아이=공주”의 뻔한 공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의 ‘공주’에 대한 해석은 새롭고 독창적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벽지의 무늬들이 그림으로 살아나면서 여자아이는 동화 속의 공주로 변한다. 공주가 된 여자아이가 겪는 몸과 마음의 변화와 혼란스러움을 작가는 자연스럽게 공주들이 겪는 각종 고난들로 형상화한다. 마침내 고난들을 견디고 이겨낸 공주는 아름다운 화환을 쓰고 당당한 여왕이 되어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마치 여자아이가 몸과 마음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당당한 여성으로 성장하여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마지막 장면이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내 딸아이가 자라서 초경을 할 나이가 되면 꼭 다시 함께 읽고 싶은 책, 딸아이의 성장을 축하하면서 머리 맞대고 함께 오래오래 들여다보고픈 그림들이다. 여성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따뜻하게 전해주는,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선물해주고픈 책을 만난 것 같다. 행복하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기만의 철학 창비청소년문고 2
탁석산 지음 / 창비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상담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 보니 10대들을 많이 만나는 편이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자주 듣는 질문 형식들 중 하나가 쿨~하게 무장한 자칭 “실용주의적(?) 질문”들이다. 가령, 다른 이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렇게 (배려)해서 뭐하게요?”와 같은.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숱하게 들었던 “철학 공부해서 뭐 하게요?”의 질문을 떠올렸다. 이 질문에 어떻게 하면 그 친구들의 시각과 입장에서 진지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이 책을 펼치게 했다. 내가 10대였을 때, 너희들은 아직 세상을 모르지만, 이렇게 운을 떼고 자기 눈높이로만 시종일관 이야기하는 어른들이 밥맛이었던 것을 떠올리면서.

 
 이 책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책이지만 성인이 읽어도 손색없을 만큼 이해하기 쉽고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철학’하면 무조건 ‘어렵다’ 혹은 ‘머리 아프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웬만한 어른들도 비슷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철학을 전공한 내 친구 하나는, 재학시절 내내, 아니 졸업한 이후에도 “그런 취업도 안 되는 것을 왜”부터 시작해서, 어이없게도 “철학관 할 거냐”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공부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이 철학에 대한 오해에서, 그리고 우리 입시교육이 이른바 ‘맞는 답’에만 주안을 두는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서구의 교육이 일방적으로 다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질문’에 초점을 맞추는 그들의 열린 교육은 철학을 모든 교육의 기본으로 삼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갇혀 있는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에게 시원시원하게 말해준다. 철학은 반드시 어려운 철학 책을 읽거나, 교과서에서 이름을 외웠던 권위 있는 사상가에 대해 공부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을 이해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지혜로서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다양하고 흥미로운 사례들을 제시하며 “철학이란 무엇인가?”, “왜 철학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답한다.

 1장에서는 과학과 철학을, 2장에서는 종교와 철학을 비교, 대조하며 철학의 개념에 대해 설명해준다. 명쾌한 어조, 흥미로운 예들을 들어 차근차근 설명해서 청소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장 <철학의 세 단계>는 참신한 저자의 생각이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철학을 기하학의 단계에 비유해서 ‘잠재적 철학’, ‘경험적 철학’, ‘전문 철학’의 세 단계로 분류한 생각, 좁은 의미의 철학에 갇히지 않고 자기 경험을 쌓으며 하나의 체계를 갖춘 사람들을 새롭게 조명하는 저자의 시각이 인상적이었다. 4장 <자기만의 철학을 하려면>에서는 청소년들을 위한 애정 어린 조언과 격려가 담겨 있다. 거창한 문제를 다루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진짜 고민을 깊이 있게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결국 진짜 철학은, 자기 삶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 나아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저자의 생각과 청소년들을 위한 애정 어린 태도에 박수치고 깊이 공감하면서, 한편으로 암울한 현실을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해진다. 그렇다. ‘자기만의 철학’이 왜 필요한지 따져(?) 묻는 청소년들은, 이 책에서 말하는 것들을 귀 기울일 수 있는 이들은 다행이고 희망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바깥쪽은 어떡하나.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자기 주관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장면들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일까. 청소년들에게 자기 삶의 문제를 고민하고 생각할 권리가 있다는 것, 그 소중한 가능성들을 부디 원천봉쇄하지 않는 가정과 학교, 사회가 되기만을 바란다.

 앞으로 “철학해서 뭐 하게요?”라고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할지, 이 책을 덮으며 생각해 본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는 없잖아. 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네 생각을 갖는 거야. 결국 그 생각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다른 삶을 만들어 가는 거라고. 즉 다른 철학이 다른 삶을 만드는 거야, 그러니까 힘 내!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덕의 계보학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전공은 문학이었지만, 우연히 만나 그 강렬함에 눈멀게 된 니체 덕분에 철학과 수업에 더 열심히 들락거렸던 대학시절을 보냈다. 니체를 좋아한다고 감히(?) 신나게 떠들고 다녔지만 여전히 나에게 니체는 어렵고, 수수께끼투성이다. 그래서 내가 니체를 좋아하는 것은, 마치 겨울날의 메마른 나뭇가지를 사랑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지금은 잎도 꽃도 피우지 못하지만, 열심히 파고들다 보면 언젠가 눈을 틔우게 될 거라고 굳게 믿으면서...

 <도덕의 계보학>은 니체(1844-1900) 만년의 대표작이다. 24세의 젊은 나이로 스위스 바젤 대학 교수로 임명되었고, 28세 때 최초의 저작 <비극의 탄생>을 펴내 유럽 문명 전반을 꿰뚫는 통찰을 제시했던 니체. 이렇듯 새파란 나이 때부터 한참 잘 나갔던(!) 니체였으나 그 후로는 지독히 불행했다. 1879년 건강이 극도로 나빠져 십년간의 교직 생활을 접게 되고, 이후 긴 투병 생활과 함께 저술 활동에만 전념하게 된다. 1888년 말부터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 그는 병마에 시달리다 1900년 정신병원에서 고독한 삶을 마치게 되었으니... 도대체 몇 년 동안 투병생활을 한 건지. 자그마치 20년이 넘는 세월이다.

 이 책의 서평을 쓰는 일은 어렵다. 솔직히 말하면 도저히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고 해야겠다. 물론 원인은 나의 무지함에도 있지만 니체식의 글쓰기에 주된 원인이 있다는 핑계를 넌지시 대어 본다. 니체는 도발적으로 글을 쓰는 철학자다. 그는 언젠가 자신의 글을 물고기를 낚기 위한 낚싯바늘로 표현하기도 했다(낚시질의 진정한 원조 니체!^^;). 이 책에서도 역시 니체는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고 단정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또 니체의 철학은 아포리즘(aphorism)의 철학이다. 이 책 <도덕의 계보학>도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경구에서부터 하나의 주제에 대한 비교적 긴 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의 아포리즘들로 가득하다. 아포리즘은 간결하지만 다의적이다. 쉽게 전달되지만 모호하다. 누구나 쉽게 니체를 읽지만, 누구나 쉽게 니체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다. 아포리즘은 사물과 직접적으로 관계하지 않으며, 오히려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물들을, 관념들을 낯설게 제시한다. 가령 이런 부분들을 읽을 때,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세뇌(!)되어 주입된 ‘도덕’이란 녀석을 불현듯 낯설게 바라보게 되는 것 아닐까.

 사람들은 지금까지 인간 일반에 관련하여(인간의 미래를 포함하여) 진흥, 유용성, 번영이라는 의미에서 ‘선한 사람’을 ‘악한 사람’ 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는 일에 조금도 의심하거나 동요하지 않았다. 만약 그 반대가 진리라고 하면 어떠할까? ‘선한 사람’에게도 퇴보의 징후가 있다면,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위험, 유혹, 독이며, 가령 현재를 살기 위해 미래를 희생한 마취제가 있다면 어떠할까? 아마 현재의 삶이 좀 더 안락하고 덜 위험하지만 또한 보다 하찮은 방식으로 더 저열해지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인간이라는 유형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강력함과 화려함에 결코 이르지 못한다면 바로 도덕에 그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그 도덕이야말로 위험들 중의 위험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19쪽)  

 니체는 이 책에서 ‘계보학’답게, 도덕의 기원과 전개과정을 거슬러 올라가 상세히 고찰한다. 그 과정을 거쳐 결국 그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제시하는 것은 기독교 도덕에서 발생한 선과 악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주제 찾기(?)는 이 책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그 길을 찾아가는 과정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지각 경계를 흔드는 아포리즘들로 찬란하다는 것... 그것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

 책을 읽으며 가끔씩, 이 책을 썼을 때의 니체의 모습이 어땠을까 상상해 보았다. 사랑도 실패하고, 가족도 친구도 없이 여동생 하나만을 곁에 두고, 끊임없이 정신질환에 시달리면서도 스스로를 끝내 놓지 않고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을 그 모습을.  

 “나 자신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몇몇 사람은 사후에야 태어나는 법이다.” 니체가 생을 마감하기 두 달 전에 완성한 <이 사람을 보라>의 한 대목을 떠올려본다. 그의 말이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니체는 고통스런 삶을 살았지만 분명, 사후에 다시 태어나 살아 있다. 20세기의 뛰어난 철학자인 들뢰즈는 니체에 관한 저작 <니체와 철학>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니체의 가장 일반적인 기획은 철학에 의미와 가치의 개념을 도입하는 데 있다. 분명, 현대 철학은 대부분 니체 덕으로 살아왔고, 여전히 니체 덕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니체가 원했던 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비한 바다 어드벤처 : 해양 산업.경제편 만화로 배우는 바다 교과서 시리즈 1
남춘자 지음, 김남해.연두스튜디오 그림 / 스코프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학자, 그 중에 해양생물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야심찬 조카와 함께 머리 맞대고 재미있게 읽은 <신비한 바다 어드벤처>. 바다에 대한 전문가들과 현직에 계신 많은 선생님들이 만든 책답게 우리나라의 해양 산업과 그 미래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상당히 자세하게 알려주는 책이었다. 또한 학습만화답게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많이 보였다.  

 호기심 많은 호기와 아라, 커다란 배의 선장이 꿈인 해실이, 매사에 시큰둥하지만 머리 좋은 강아지 시큰둥이가 해양박물관 연구소 소장인 해기 아빠와 함께 신비한 바다 세계를 탐험하는 내내 조카는 정말 재미있어했다. 어른인 내가 봐도 몰입도가 높은 귀여운 그림체와 친근한 설명으로 아이들에게 우리나라 바다의 특징과 해양 산업의 현재와 미래, 바다를 슬기롭게 이용하던 우리 조상들의 모습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관련 직업들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지식을 전해주는 책이었다. 완전 몰입하여 읽은 조카는, 책을 덮자마자 책의 마지막 장에 안내해 놓은 각종 해양 정보 사이트들을 찾아다니느라 지금 바쁘다.^^;  

 어린이를 위한 학습만화지만 어른인 나도 잘 모르고 있었던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세뇌(?)되어 각인된 “삼면으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의 무한한 해양자원”이지만 막상 수산물이랑 천연가스 정도밖에는 알고 있는 게 없었던 것 같다. 이 책 덕분에 해양심층수, 망간단괴, 하이드레이트 등의 이름이 꽤 친근해지게 되어서 기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다 속의 대체자원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땀흘리고 있겠지. 머나먼 우주만큼이나 아직 깊은 바다 속의 세계에 대해서는 인간이 모르고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다는 것, 풀리지 않는 신비와 의문으로 가득하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유익하고 알찬 내용, 쉽고 재미있는 구성으로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춰 준 좋은 책이지만 살짝 아쉬운 면이 있다면 시종일관 바다를 “우리나라 미래 경제의 원동력”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아이들에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5번째로 선박규모가 큰 나라라는 것, 10위권 안에 드는 해양산업 강국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해양산업 순위를 강조하는 이런 시각이, 바다를 인간이 일방적으로 정복하고 개발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든다. 물론 <신비한 바다 어드벤처>의 부제가 ‘해양 산업․경제 편’이기에, 거기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학습만화이기에, 생태계지향적인 시각까지 넣어줄 것을 기대한 것은 다소 무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니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기 때문에 더더욱, “‘무한하지만은 않은’ 바다자원에 대한 ‘개념 있는’ 개발”에 대한 시각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바다와 인간의 관계는 일방적인 정복과 개발이 아니라 ‘공생’이 되어야 하는 관계이므로.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