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철학 창비청소년문고 2
탁석산 지음 / 창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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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 보니 10대들을 많이 만나는 편이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자주 듣는 질문 형식들 중 하나가 쿨~하게 무장한 자칭 “실용주의적(?) 질문”들이다. 가령, 다른 이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렇게 (배려)해서 뭐하게요?”와 같은.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숱하게 들었던 “철학 공부해서 뭐 하게요?”의 질문을 떠올렸다. 이 질문에 어떻게 하면 그 친구들의 시각과 입장에서 진지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이 책을 펼치게 했다. 내가 10대였을 때, 너희들은 아직 세상을 모르지만, 이렇게 운을 떼고 자기 눈높이로만 시종일관 이야기하는 어른들이 밥맛이었던 것을 떠올리면서.

 
 이 책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책이지만 성인이 읽어도 손색없을 만큼 이해하기 쉽고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철학’하면 무조건 ‘어렵다’ 혹은 ‘머리 아프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웬만한 어른들도 비슷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철학을 전공한 내 친구 하나는, 재학시절 내내, 아니 졸업한 이후에도 “그런 취업도 안 되는 것을 왜”부터 시작해서, 어이없게도 “철학관 할 거냐”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공부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이 철학에 대한 오해에서, 그리고 우리 입시교육이 이른바 ‘맞는 답’에만 주안을 두는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서구의 교육이 일방적으로 다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질문’에 초점을 맞추는 그들의 열린 교육은 철학을 모든 교육의 기본으로 삼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갇혀 있는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에게 시원시원하게 말해준다. 철학은 반드시 어려운 철학 책을 읽거나, 교과서에서 이름을 외웠던 권위 있는 사상가에 대해 공부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을 이해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지혜로서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다양하고 흥미로운 사례들을 제시하며 “철학이란 무엇인가?”, “왜 철학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답한다.

 1장에서는 과학과 철학을, 2장에서는 종교와 철학을 비교, 대조하며 철학의 개념에 대해 설명해준다. 명쾌한 어조, 흥미로운 예들을 들어 차근차근 설명해서 청소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장 <철학의 세 단계>는 참신한 저자의 생각이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철학을 기하학의 단계에 비유해서 ‘잠재적 철학’, ‘경험적 철학’, ‘전문 철학’의 세 단계로 분류한 생각, 좁은 의미의 철학에 갇히지 않고 자기 경험을 쌓으며 하나의 체계를 갖춘 사람들을 새롭게 조명하는 저자의 시각이 인상적이었다. 4장 <자기만의 철학을 하려면>에서는 청소년들을 위한 애정 어린 조언과 격려가 담겨 있다. 거창한 문제를 다루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진짜 고민을 깊이 있게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결국 진짜 철학은, 자기 삶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 나아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저자의 생각과 청소년들을 위한 애정 어린 태도에 박수치고 깊이 공감하면서, 한편으로 암울한 현실을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해진다. 그렇다. ‘자기만의 철학’이 왜 필요한지 따져(?) 묻는 청소년들은, 이 책에서 말하는 것들을 귀 기울일 수 있는 이들은 다행이고 희망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바깥쪽은 어떡하나.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자기 주관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장면들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일까. 청소년들에게 자기 삶의 문제를 고민하고 생각할 권리가 있다는 것, 그 소중한 가능성들을 부디 원천봉쇄하지 않는 가정과 학교, 사회가 되기만을 바란다.

 앞으로 “철학해서 뭐 하게요?”라고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할지, 이 책을 덮으며 생각해 본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는 없잖아. 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네 생각을 갖는 거야. 결국 그 생각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다른 삶을 만들어 가는 거라고. 즉 다른 철학이 다른 삶을 만드는 거야, 그러니까 힘 내!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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