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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을 꼭 써야 할까? - 십대를 위한 폭력의 심리학 ㅣ 사계절 지식소설 3
이남석 지음 / 사계절 / 2011년 9월
평점 :
지난 7월이었던가, 4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당한 강원도 해병대 총기 사고를 접하고 마음이 참 저릿했던 기억이 난다. 해병대 특유의 ‘기수 열외’라는 현상이 원인이었다고 언론은 밝혔으나, 더 근본적인 원인은 학교에서부터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안에서 곪을 대로 곪은 폭력 문화, 집단 따돌림의 문화가 교문 밖으로 나가 새로운 문제를 낳은 것이다. 학교에 만연한 폭력 문화부터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지 않으면 이런 비극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저자의 이력이 인상적이었다. “폭력의 피해자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방관자와 가해자로 고등학생 시기를 보낸 경험을 바탕으로 청소년 상담을 하던” 저자는 날로 심해지는 청소년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지 가해자만을 선도해서 될 일이 아님을 깨닫고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저자는 ‘일부 문제 학생’과 ‘일반 학생’을 갈라놓고 보는 기존의 시각은 청소년들을 대상화시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런 시각 자체가 폭력적이며 그것은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뿐이라는 비판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저자와 상담분야는 다르지만 십대들을 일상적으로 만나고 있는 나도 대화를 나눌 때마다 느끼는 부분이라 저자의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한다. 많은 이들이 학교 폭력은 몇몇 문제 학생들의 영역이라 생각하거나, 가해자들만을 강력하게 선도하면 해결될 문제라고 여기곤 하는데 현실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저자가 말하듯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것과 다르게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폭력적인 사고와 행동이 일상생활에 널리 퍼져 있다’. 게다가 오늘날의 학교 폭력은, 예전의 치고 단순히 치고 밟는(!) 물리적 폭력만이 아니라 너무나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에서 폭력을 성찰하며 스스로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도록 돕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저자는, 소설의 형식을 빌리고 주인공을 청소년으로 설정해 놓았다. 학교 ‘짱’인 종훈, 논술학원 명강사였다가 태껸 사범으로 온 방과후 강사 우경, 종훈과 함께 사범의 특별한 과제 수행을 하게 되는 수정. 이런 인물들의 구체적인 이야기 속에서 폭력의 다양한 양상을, 폭력이 발생하는 심리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또한 각 장마다 ‘생각의 징검다리’가 함께 있어 소설 속에서 다 밝힐 수 없었던 심리학적 원리를 소개해 준다. 청소년들의 인정 욕구와 폭력과의 관계, 폭력에 동조하게 되는 심리 등을 설명해주는 이 부분이 참 유익했다.
청소년 폭력에 대한 저자의 깊이 있는 문제의식과 ‘청소년들을 문제 해결의 주인공으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에 완전 공감하지만, 이 책이 아쉬운 부분은 소설의 구성이 좀 진부하게 여겨졌다는 데에 있다. 공부 따윈 신경쓰지 않고, 일진 생활을 하던 종훈이 사범의 독특한 지도에 차츰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열게 된다는 설정이 과연 요즘 청소년들에게 먹힐지(?)가 걱정되는 것이다. 청소년 폭력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청소년들에게 흥미롭게 전달하기 위해 이왕 소설의 형식을 빌리기로 했다면, 좀 더 소설적 재미와 흡인력을 부여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뭐 <늑대의 유혹>이나 <그놈은 멋있었다>류를 쓰라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들에게 ‘꼰대들의 추천도서’(?)로만 찍히는 책이 되진 않아야 할 텐데.
아무튼, 캐릭터 설정과 소설적 구성의 세련됨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은 가해자를 대상으로 조치를 취하는 기존의 방식과는 달라야 한다’는 일관된 주제의식을 가지고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겪는 폭력적인 사고와 행동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한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책이다.
청소년 폭력은 너무나 복합적인 현상이고, 그 현상을 만드는 다양한 원인들 중에 제일 덩치 크고 악랄한 놈들은 극단적인 입시경쟁과 청소년 체벌을 당연히 여기는 사회 풍조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처럼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에서 폭력을 성찰하며 스스로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도록 응원하면서도, 이 근본적인 어두운 구조에 대해서는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슬프기만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디 내일 위대한 너보다는 방금 전보다 조금 더 나은 너를 만들기 위해 더 집중하라(p.212)’는 청소년들을 위한 애정어린 조언을 기억하고 싶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