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 - 그 창조적인 역사
피터 투이 지음, 이은경 옮김 / 미다스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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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나는 권태라는 단어에 애정이 깊은 편이다. 뭐 내가 딱히 권태로운 성격이라서가 아니라(사실 파닥거리는 것을 즐기는, 정반대에 가깝다), 순전히 10대 때부터 매료된 이상(李箱) 덕분이다. 첫 키스의 기억만큼 강렬했던, 이상과의 첫 만남이었던 ‘날개’의 주인공이 보여주었던 ‘권태’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이상은 ‘권태’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일본에서 발표했다. 그 중 한 구절은 이렇다. 

 “끝없는 권태가 사람을 엄습하였을 때, 그의 동공은 내부를 향하여 열리리라. 그리하여 망쇄할 때보다도 몇 배나 자신의 내면을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아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겨우 스물일곱 해 살았던 주제(?)에 이런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니.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시대를 앞서간 천재라고 하나보다.

 이 책 <권태>의 저자 피터 투이도 자타가 공인하는 권태 매니아(?)이다. 파릇한 나이에 세상과 이별한 이상과 차이가 있다면 올해 환갑인 그는 꽤 오랫동안 권태를 주제로 사색해 왔다는 것일 것이다. 그는 권태에 지워진 낡은 견해와 부정적인 개념 정의에 반기를 든다. 그리고 “권태야말로 사상가와 예술가들이 지금까지 널리 인정돼온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계기”였다고 강조한다.

 물론 저자도 ‘만성적 권태’의 위험에 대해서는 경고한다. 사람들이 만성적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종종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성적 권태가 감추고 있는 파괴적 힘, 극단적인 방법의 선택이라... 이거 혹시 우울증과도 관련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사람들을 우리는 (슬프게도) 꽤 많이 알고 있다. 그들이 겪은 우울증에는 이 만성적인 권태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지.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실용적이고 창조적인 권태란 뭘까? “단순하고 일상적인 권태는 우리 곁에 살아 숨쉬는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일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것은 분명 순수하고 희석되지 않은 시간이며, 거기에서 광채를 발견하는 것은 바로 당신의 몫”이라는 저자의 시각은 분명히 실용적이고 창조적이다. 무미건조한 시간으로 여겨온 권태에서 우리는 광채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아마도, 이상도 그랬겠지?

 우리가 흔히 단조롭고, 쓸모없고, 심지어 해로운 감정으로 여기는 권태가 아닌, 오래 담금질한 사색을 통해 새로운 눈으로 권태의 창조성을 바라보게 하는 책. 좋은 책은 이렇듯, 전혀 다른 시선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그것도 아주 성실한 방식으로.

 아무래도 저자 피터 투이는 르네상스형 인간 같다. 저자의 전공인 그리스/로마 고전학 외에도 철학과 심리학, 문학과 회화에 비평까지, 온갖 분야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권태의 역사를 추적하고, 권태의 양상을 두루두루 펼쳐낸다. 가끔 그 비행에 어지럽긴 했지만, (능력은 심하게 모자라도) 르네상스형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나에게는 좋은 지적 자극을 주었던 책이었다. 그렇다, 이렇게 생각으로 꽉 찬 책을 읽는 일은, 전혀 권태롭지 않은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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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 시속 370㎞ - 제9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72
이송현 지음 / 사계절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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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학원, 친구관계, 뒷골목의 세계 등등 청소년소설 하면 으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소재들이 있는데, 이 소설은 독특하게도 매사냥 전수라는 전통문화 계승을 둘러싼 얘기들로 한 소년이 아버지를 이해하고 스스로를 보듬어가는 성장통을 다룬다. 처음에는 ‘응사(매잡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한, 잊혀져가는 ‘우리의 전통문화’와 스피드라면 끔뻑 죽는, 자기만의 오토바이 갖기가 소원인 ‘요즘 십대’가 머릿속에서 쉽게 연결이 안 되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내려 가다보니 가정을 돌보지 않은 채 매에만 미쳐 사는 아버지, ‘할 줄 아는 일이라곤 힘차게 나는 것밖에 없는’ 어린 보라매 보로, 그리고 자기 오토바이를 갖는 것이 일생일대의 소원이지만 아쉬운 대로 동네 중국집 고물 스쿠터를 빌려 타며 신나하는 열일곱 동준이 자연스럽게 잘 어우러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생생한 캐릭터들이 펼쳐내는 이야기들에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고, 전체적으로 굉장히 속도감 있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가 첫 번째 도전한 청소년소설이라는데, 시트콤 구성작가로 활동한 내공이 책 곳곳에 묻어나는 느낌이다. 주인공 동준과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준의 오랜 친구 똠양꿍, 동준에게 ‘피 맛’나는 강렬한 첫사랑의 기억을 남긴 나예리, 자기 색깔이 뚜렷한 인물들의 말과 행동, 심리묘사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개성강한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자기만의 상처들을 안고 만만치 않은 현실을 살아가지만, 모두 쉽게 꺾이지 않는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주어진 현실을 껴안고 서로를 보듬으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그 모습들이 눈물겹게도 느껴지고 사랑스럽다. 툭툭 어깨를 다독여 주며 “잘 하고 있어! 기운 내!” 하고 싶을 만큼. 

또 청소년소설을 접할 때마다 주인공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주변 인물들을 말 그대로 주변에만 버려두는(?) 상황을 종종 접해서 안타까웠는데, 작가는 동준 외에도 나머지 인물들(과 조류 한 마리)도 살뜰하게 살피며 저마다 나름의 ‘성장통’을 부여한다. 열일곱 동준의 삶에 깊이 연관된 그들은 동준을 성장시키면서 자신들도 자연스럽게 성장해나가는 것이다. 단지 오토바이 마련을 위한 돈벌이 대상이었던 닭대가리로 보로를 바라봤던 동준이가 어린왕자가 여우와 나누는 소통에 버금가는 ‘너는 나의 매이며 나는 너의 사람이다’라고 마음으로 외치기까지의 긴 여정, 그렇게 자기를 길들인 것은 매가 아니라 아버지의 진심이었다고 생각하며 아버지를 마음으로 이해해가는 과정들은 감동적이면서 유머러스하기도 하고때때로 가슴이 아릿해지기도 한다.

 나는 ‘청소년 권장도서’, ‘청소년 필독도서’, ‘청소년들이 꼭 읽어야 할 책’ 뭐 이런 말들에 진지하게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청소년들을 ‘육성’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그 저변에 깔린 시각도 싫고, 책에 대한 청소년들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장도서는 청소년들에게 말 그대로 ‘권장’만 되고 학부모와 교사들의 애호만 듬뿍 받고, 정작 당사자인 청소년들은 (어른들 눈엔 ‘듣보잡’인) 판타지를 파고드는 현실에 눈 돌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른들의 눈높이가 아니라 시종일관 동준이의 시선에서 무겁지 않게, 재미있게 생생하게 흘러가는 이 이야기가 좋았다. 이 책이 많은 열일곱 살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아, 그런데 정말 아쉬운 점 하나.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인데 책의 얼굴인 표지가 너무 헉! 이다. 시속 370km라는 느낌을 표현하려고 굳이 “대한민국 국가대표”를 떠올리는 저 포즈가 필요했나? 비주얼에 목숨 거는 요즘 친구들이 가까이하기엔 책 표지 디자인이 먼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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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회 - 평등이라는 거짓말
대니얼 리그니 지음, 박슬라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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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 보드게임이 유행이었을 때, ‘모노폴리’라는 보드게임을 했던 기억이 난다.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자산을 갖고 게임을 시작한다. 그러나 게임이 진행되면 처음에 존재했던 동등한 기회는 곧 극단적인 불균형의 모습을 띄게 된다(불행히도 게임에 별 소질이 없는 나는 보통 가난한 쪽이 되곤 했다^^;;). 어느 정도는 기복이 있지만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대개 더 부자인 참가자가 점점 더 부자가 되고 더 가난한 참가자는 점점 더 가난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부유한 참가자가 모든 자산을 독점하고 가난한 참가자가 파산하면 게임 오버! 
 왜 난데없는 보드게임 이야기냐 하면, 이 책에서 분석하고 있는 주제 ‘마태 효과(The Matthew Effect)'와 이 게임의 양상이 무척 닮았기 때문이다. 물론 게임 참가자에게는 누구나 이길 ‘기회의 평등’이 주어진다. 매우 드물지만, 적은 자산을 갖고도 자산을 불리는 솜씨가 뛰어나고 거기에 운이 척척 따라주면 우승자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에 우위를 점한 쪽이 이길 확률이 단연 압도적이다. 게임에서야, 작은 우위가 쌓여서 점점 걷잡을 수 없는 큰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목도하는 슬픔(!)을 친구에게 점심 한번 사는 정도의 아량으로 넘어가면 되지만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저자 대니얼 리그니는 우리 사회를 부익부 빈익빈의 악순환으로 몰고 가는 마태 효과를, 경제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정치, 과학, 교육, 문화 등 사회 모든 분야의 양극화 현상의 원인으로 깊이 있게 분석해낸다.

 고백하자면, 인간 사회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 ‘마태 효과’라는 말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 1986년 미국 컬럼비아대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마태복음 13장 12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라는 구절을 빌려 만든 것이라고 한다. 산뜻한 노란색의 예쁜 책표지와는 달리, 이 책은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양극화의 현실을 냉정한 눈으로 똑바로 바라보게 한다. 무섭다. 하지만 눈을 감을 수는 없다.

 1장에서 마태 효과의 원리를 밝힌 저자는 본격적으로 2장에서부터 과학과 기술 분야, 3장에서는 경제 분야, 4장과 5장에서는 정치와 교육/문화 분야에서 마태 효과의 강력한 영향력에 대해서 분석한다. 교과서에 나와 있던 '기회의 평등'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순진하지는 않았지만 마태 효과에 대한 여러 가지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다. 특히 2장, 나름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갖춘 과학계조차 노벨상 수상, 유명 대학 교수라는 명성에 따라 평가가 쏠리는 현상들을 보고는 참 씁쓸했다.
 3장에서 빈부격차와 시장경제의 독과점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불균형이 심화되는 현상도 허울 좋은 세계화 시대를 사는 우리가 꼭 직시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두뇌 유출, 또는 지적 인재들의 양성과 고용을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내가 피부로 느껴본 적이 있어선지 더 절실하게 와 닿았다. 은퇴한 백만장자들이 많이 사는 호주의 부자 동네에서 1년쯤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만났던 인도,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 출신의 고급 두뇌들은 절대 가난한 자기 나라로 돌아가 찌질한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들 개개인의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거대한 구조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한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고급 두뇌가 해외로 빠져나가면 후진국의 발전은 일순간 더뎌진다. 그럼으로써 두뇌 유출은 이미 세계의 중심에 있는 강대국들의 힘을 더욱 증진하고 속국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주변국들을 좌절시킨다’는 그의 혜안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 어떻게든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제 3국가들은 한 줄기 희망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배워오라고 똘똘한 애들을 보내는데, 그 애들은 자라 안 그래도 배부른 강대국들의 힘을 더욱 키우는 것이다.
 4장에서는 왜 기존의 정치인이 후원금 모금과 선거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는지, 왜 조직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더 큰 권력을 유지하는지, 왜 복권이 빈부격차를 늘리는 세금으로 작용하는지와 같은 예를 통해 마태 효과가 정치와 공공정책에 끼치는 영향력을 분석한다. 또 5장 ‘교육과 문화 분야에서의 마태효과’는 부모의 경제적 수준이 곧 자녀의 대학 레벨과 연결되는 것이 언제부턴가 당연해진,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더욱 울림이 깊은 이야기다.

 저자는 마태 효과 때문에 일어나는 불균형의 심화가 '자연 법칙'인지 아니면 노력을 통해 완화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사회적 구조'인지를 탐구한다. 만약 마태 효과가 자연 속에도 존재하는 하나의 자연법칙이라면 사실상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저자는 ‘자연법칙이므로 억울하더라도 받아들이라’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도덕적, 정치적 의지에 의해 얼마든지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저자의 시각에 완전 동의한다. 도덕적, 정치적 의지로 꽉꽉 뭉친 외부의 힘이 개입하지 않으면 불평등은 영속적이고 자가 증식적인 특성을 발휘하게 되며, 그 결과 가진 자와 덜 가진 자 사이의 격차가 더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 외부의 힘이란 것이 반대로 흐르고 있으니 서글플 따름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확산된 세금 감면과 누진세 완화는 오히려 마태 효과에 날개를 달아주는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저자의 분석이나 설명이 난해해서가 아니라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무력하게 겪고 바라봐야 했던 많은 사회적 사건들이 떠올라 우울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상처받는 일이다. 앎을 얻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고통과 상처를 이해해간다는 것이다. 이런 책이 널리 읽히고, 사람들이 양극화의 극단을 달리는 이런 사회를 더 이상 당연하게 여기지 않도록 생각과 힘을 모으는 일, 그것이 ‘마태 효과’의 저주에서 벗어나는 길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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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이후, 두려움과 설렘 사이 - 생존을 위한 두려움과 더 좋은 삶을 꿈꾸는 설렘 사이
정도영 지음 / 시간여행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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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에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대학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던 언니인데 올해 마흔인 언니는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 카페 창업을 준비 중이다. 도서관에서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 마시던 시절에도 유난히 자판기별 커피 맛의 미묘한 차이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던 언니답게, 바리스타 자격증 공부도 하며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했던 통화에서 대화를 끝맺던 언니의 말이 떠올랐다. 
 “전혀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거야. 그래도 지금이 참, 행복하다.”

 오랫동안 커리어 컨설턴트로 근무하고 주로 중, 장년을 대상으로 다양한 직업 컨설팅을 해 온 저자답게 이 책은 현실적이고 현장 지향적인, 구체적인 조언들로 가득하다. 허황된 꿈을 단호히 버리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자신의 능력과 여건을 알고 세상을 이해하면 벌써 반은 성공한 것이라고 한다. 급여와 여러 조건이 무조건 상승해야 한다는 이직의 조건은 환상이라는 것이다. 제 2의 인생을 꿈꾸는 이들에게 저자는 재취업을 하든, 사업을 하든, '먼저 자신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다음에 현장의 어려움을 제대로 파악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저자의 조언은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격려로 와 닿는다.

 인생은 마흔부터, 인생의 이모작, 제 2의 인생... 마흔을 수식하는 화려한 말들은 우리 주위에 넘친다. 하지만 내 주위만 얼른 둘러봐도, 이론과 현실의 괴리는 상당한 것 같다. 마흔 이후 제2의 인생을 위해 변화를 인정하고 함께하는 캐릭터들보다는, 생존을 위한 소모전으로 지쳐가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아직 마흔이 되기는 먼 나지만, 마흔 이후 갈팡질팡하며 막연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하다.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고 미리 준비하게 한다. 이십 대 때 나는 서른이 먼 나라 이야기인 줄만 알았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한정된 자원의 절실함에 대해 무뎠었다. 막상 삼십 대를 맞고 보니 '서른'이라는 말 앞에서 왜 그렇게 나는 작아지던지, 그동안 난 무엇을 했던가를 수없이 질문하며 갖가지 불안과 고민에 잠겼던 시간이 떠오른다. 그래서 40대를 맞을 때는 그런 심란한 얼굴 대신 설레는 얼굴을 하고 싶다. 저자의 말대로 ‘변화는 변화하고자 하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다’라고 믿으면서. ‘세상을 불평하기 전에 나의 부정적 요소를 불식시키기 위해 스스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헤아려 보아야 한다.’는 말을 기억하면서.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만 가득한 채 나 스스로를 채우는 노력에는 게으른 어른은 절대 되고 싶지 않기에.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실행력은 완전해지기 위한 것이 아니다. 조금씩 더 좋아지는 과정이다’라고. 완전해지기 위해서 뭔가를 실행한다면 우리에게 새로운 변화와 도전이란 얼마나 힘겹고 요원한 과제가 될 것인가. 차곡차곡 조금씩, 즐겁게, 내 가치를 새롭게 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싶다. 또 ‘어떤 선택을 하든지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라는 조언도 기억하고 싶다. 평범해 보이지만 정말 맞는 말이다. 실행을 멈추지 말고 계속 해 나가야, 나를 지키는 힘인 브랜드 혹은 시스템이 쌩쌩 활기 있게 가동될 것이니까.

 창업 준비에 여념이 없을 언니를 만나면 이 책을 전해주고 싶다. 언니, 마흔 되어서 새로운 일 시작하게 된 것 축하해. 그거 알아? 마흔 이후, 직장에서 이직을 하면서 혹은 창업을 해서 하고자 하는 일을 통해 마음이 설렐 수 있다면 그 일이야말로 최고의 선택이래. 언니의 멋진 카페에서 같이 수다 떨 날을 손꼽아 기다릴게, 힘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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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 길 위에서 만난 나누는 삶 이야기
박영희 지음 / 살림Friends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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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초였던가, 부모를 한국으로 떠나보낸 조선족 아이들의 슬픔어린 이야기 <만주의 아이들>을 읽고 박영희라는 진지한 르포 문학 작가의 이름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열 개의 조선족 자치구를 누비며 취재한 정통 르포문학의 깊이를 담은 원고에 직접 촬영한 사진들을 보며 감동받았던 그 때를 떠올리며 이 책 <내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를 읽는다. 결코 안락하지 않은, 고단하고 힘겨운 삶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돌아볼 줄 아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12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따뜻하고, 아프다. 역시 작가가 직접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실제 목소리를 듣고, 피부에 느낀 것에 대한 기록이라 그 울림이 더욱 깊게 느껴진다.

 우리는 보통 내가 가진 것이 ‘흘러 넘쳐야’ 비로소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산다. 당장 내가 먹고 사는 일도 버겁다고 생각하며, 조금이라도 내가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불우이웃’이란 평소에는 까맣게 잊고 있다가 연말쯤에나 거리에 울리는 구세군 냄비에서 만나고 잠깐 멈칫하는 단어가 된지 오래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초등학생들에게 행복이 뭐냐고 물었더니 서슴없이 ‘돈 많이 버는 거요!’, ‘로또 1등 당첨되는 거요!’라고 답해서 놀라고 슬펐던 적이 있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남보다 많이 갖는 것이, 남보다 앞서는 것만이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남보다 많이 갖는 걸 불편해하고 나보다 못한 사람이 자꾸 눈에 밟혀, 내가 가진 얼마 안 되는 것이라도 남과 나누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만 저만치 앞서 가는 것이 아니라 더디더라도 함께 나아가는 것이 참다운 행복이라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에는 그렇게 말없이 묵묵하게, 자신도 힘들면서 불평하는 대신 기꺼이 세상의 한줄기 빛이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해서 눈물이 난다.

 모두가 돈을 아귀처럼 좇는 시대인데, 돈이 마치 신이 된 것 같은 시대인데, 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손에 닿은 돈은 다르다. 귀도 들리지 않는 몸으로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고물을 모아 한 푼 한 푼 모은 돈, 몇 년 간 힘들게 도라지 농사를 지어 비닐봉지에 모은 꼬깃꼬깃한 돈, 희귀병에 걸려 장기가 손상되어 끼니 당 세 숟가락을 넘기지 못하면서도 결식아동들을 위해 꽉꽉 채워 보낸 저금통 두 개...

 이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이 저릿해져 온다. 생각해보니, 용돈도 넉넉하지 않았고 늘 시간이 쪼들렸던 고등학교 시절 나는 봉사활동에 꽤 열심이었다. 학교에서 멀지 않았던 곳에 작은 보육원이 하나 있었는데, 주말마다 친구랑 찾아가서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하고 청소나 빨래를 거들기도 했다. 학교 앞 분식집과 떡볶이 포장마차에 바칠(?) 돈을 쪼개어 아이들 학용품이나 책을 사 주며 기뻐하기도 했다. 대학 1,2학년 때까지는 어떻게 그 맥을 유지했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 나는 서서히 ‘내 살 길도 바쁘다’ 논리에 길들여졌다. 그리고 숨 돌릴 틈 없이 내 시간을 휘몰아 가기 시작했다. 학교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아 키우면서, 봉사나 나눔이란 ‘지금의 나에게는 먼 일’, ‘넉넉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나도 모르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열두 분의 보석 같은 삶을 들여다보니 그랬던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훗날, 내 인생을 돌이켜보며 내가 한 일들 중에서 가장 의미 있다고 여기게 될 일이 무엇일까? 이 책은 이런 물음을 나 자신에게 진지하게 묻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면, 아주 작은 일이라도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것이 세상에 있을까.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언니와 했던 전화통화가 떠오른다. 모임에서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께 김치 담아 드리기를 한다며 너도 와, 하기에 언니 나는 우리 집 김치도 못 담그는데, 하며 말끝을 흐렸었다. 무언가를 알게 되면(읽게 되면)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당장 전화해야겠다, 김치 잘 담글 자신은 없지만 조수 노릇은 잘 할 수 있다고, 나도 끼워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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