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회 - 평등이라는 거짓말
대니얼 리그니 지음, 박슬라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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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창 보드게임이 유행이었을 때, ‘모노폴리’라는 보드게임을 했던 기억이 난다.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자산을 갖고 게임을 시작한다. 그러나 게임이 진행되면 처음에 존재했던 동등한 기회는 곧 극단적인 불균형의 모습을 띄게 된다(불행히도 게임에 별 소질이 없는 나는 보통 가난한 쪽이 되곤 했다^^;;). 어느 정도는 기복이 있지만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대개 더 부자인 참가자가 점점 더 부자가 되고 더 가난한 참가자는 점점 더 가난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부유한 참가자가 모든 자산을 독점하고 가난한 참가자가 파산하면 게임 오버! 
 왜 난데없는 보드게임 이야기냐 하면, 이 책에서 분석하고 있는 주제 ‘마태 효과(The Matthew Effect)'와 이 게임의 양상이 무척 닮았기 때문이다. 물론 게임 참가자에게는 누구나 이길 ‘기회의 평등’이 주어진다. 매우 드물지만, 적은 자산을 갖고도 자산을 불리는 솜씨가 뛰어나고 거기에 운이 척척 따라주면 우승자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에 우위를 점한 쪽이 이길 확률이 단연 압도적이다. 게임에서야, 작은 우위가 쌓여서 점점 걷잡을 수 없는 큰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목도하는 슬픔(!)을 친구에게 점심 한번 사는 정도의 아량으로 넘어가면 되지만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저자 대니얼 리그니는 우리 사회를 부익부 빈익빈의 악순환으로 몰고 가는 마태 효과를, 경제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정치, 과학, 교육, 문화 등 사회 모든 분야의 양극화 현상의 원인으로 깊이 있게 분석해낸다.

 고백하자면, 인간 사회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 ‘마태 효과’라는 말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 1986년 미국 컬럼비아대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마태복음 13장 12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라는 구절을 빌려 만든 것이라고 한다. 산뜻한 노란색의 예쁜 책표지와는 달리, 이 책은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양극화의 현실을 냉정한 눈으로 똑바로 바라보게 한다. 무섭다. 하지만 눈을 감을 수는 없다.

 1장에서 마태 효과의 원리를 밝힌 저자는 본격적으로 2장에서부터 과학과 기술 분야, 3장에서는 경제 분야, 4장과 5장에서는 정치와 교육/문화 분야에서 마태 효과의 강력한 영향력에 대해서 분석한다. 교과서에 나와 있던 '기회의 평등'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순진하지는 않았지만 마태 효과에 대한 여러 가지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다. 특히 2장, 나름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갖춘 과학계조차 노벨상 수상, 유명 대학 교수라는 명성에 따라 평가가 쏠리는 현상들을 보고는 참 씁쓸했다.
 3장에서 빈부격차와 시장경제의 독과점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불균형이 심화되는 현상도 허울 좋은 세계화 시대를 사는 우리가 꼭 직시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두뇌 유출, 또는 지적 인재들의 양성과 고용을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내가 피부로 느껴본 적이 있어선지 더 절실하게 와 닿았다. 은퇴한 백만장자들이 많이 사는 호주의 부자 동네에서 1년쯤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만났던 인도,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 출신의 고급 두뇌들은 절대 가난한 자기 나라로 돌아가 찌질한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들 개개인의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거대한 구조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한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고급 두뇌가 해외로 빠져나가면 후진국의 발전은 일순간 더뎌진다. 그럼으로써 두뇌 유출은 이미 세계의 중심에 있는 강대국들의 힘을 더욱 증진하고 속국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주변국들을 좌절시킨다’는 그의 혜안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 어떻게든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제 3국가들은 한 줄기 희망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배워오라고 똘똘한 애들을 보내는데, 그 애들은 자라 안 그래도 배부른 강대국들의 힘을 더욱 키우는 것이다.
 4장에서는 왜 기존의 정치인이 후원금 모금과 선거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는지, 왜 조직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더 큰 권력을 유지하는지, 왜 복권이 빈부격차를 늘리는 세금으로 작용하는지와 같은 예를 통해 마태 효과가 정치와 공공정책에 끼치는 영향력을 분석한다. 또 5장 ‘교육과 문화 분야에서의 마태효과’는 부모의 경제적 수준이 곧 자녀의 대학 레벨과 연결되는 것이 언제부턴가 당연해진,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더욱 울림이 깊은 이야기다.

 저자는 마태 효과 때문에 일어나는 불균형의 심화가 '자연 법칙'인지 아니면 노력을 통해 완화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사회적 구조'인지를 탐구한다. 만약 마태 효과가 자연 속에도 존재하는 하나의 자연법칙이라면 사실상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저자는 ‘자연법칙이므로 억울하더라도 받아들이라’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도덕적, 정치적 의지에 의해 얼마든지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저자의 시각에 완전 동의한다. 도덕적, 정치적 의지로 꽉꽉 뭉친 외부의 힘이 개입하지 않으면 불평등은 영속적이고 자가 증식적인 특성을 발휘하게 되며, 그 결과 가진 자와 덜 가진 자 사이의 격차가 더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 외부의 힘이란 것이 반대로 흐르고 있으니 서글플 따름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확산된 세금 감면과 누진세 완화는 오히려 마태 효과에 날개를 달아주는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저자의 분석이나 설명이 난해해서가 아니라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무력하게 겪고 바라봐야 했던 많은 사회적 사건들이 떠올라 우울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상처받는 일이다. 앎을 얻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고통과 상처를 이해해간다는 것이다. 이런 책이 널리 읽히고, 사람들이 양극화의 극단을 달리는 이런 사회를 더 이상 당연하게 여기지 않도록 생각과 힘을 모으는 일, 그것이 ‘마태 효과’의 저주에서 벗어나는 길이리라 믿는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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