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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 길 위에서 만난 나누는 삶 이야기
박영희 지음 / 살림Friends / 2011년 9월
평점 :
올해 초였던가, 부모를 한국으로 떠나보낸 조선족 아이들의 슬픔어린 이야기 <만주의 아이들>을 읽고 박영희라는 진지한 르포 문학 작가의 이름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열 개의 조선족 자치구를 누비며 취재한 정통 르포문학의 깊이를 담은 원고에 직접 촬영한 사진들을 보며 감동받았던 그 때를 떠올리며 이 책 <내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를 읽는다. 결코 안락하지 않은, 고단하고 힘겨운 삶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돌아볼 줄 아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12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따뜻하고, 아프다. 역시 작가가 직접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실제 목소리를 듣고, 피부에 느낀 것에 대한 기록이라 그 울림이 더욱 깊게 느껴진다.
우리는 보통 내가 가진 것이 ‘흘러 넘쳐야’ 비로소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산다. 당장 내가 먹고 사는 일도 버겁다고 생각하며, 조금이라도 내가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불우이웃’이란 평소에는 까맣게 잊고 있다가 연말쯤에나 거리에 울리는 구세군 냄비에서 만나고 잠깐 멈칫하는 단어가 된지 오래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초등학생들에게 행복이 뭐냐고 물었더니 서슴없이 ‘돈 많이 버는 거요!’, ‘로또 1등 당첨되는 거요!’라고 답해서 놀라고 슬펐던 적이 있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남보다 많이 갖는 것이, 남보다 앞서는 것만이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남보다 많이 갖는 걸 불편해하고 나보다 못한 사람이 자꾸 눈에 밟혀, 내가 가진 얼마 안 되는 것이라도 남과 나누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만 저만치 앞서 가는 것이 아니라 더디더라도 함께 나아가는 것이 참다운 행복이라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에는 그렇게 말없이 묵묵하게, 자신도 힘들면서 불평하는 대신 기꺼이 세상의 한줄기 빛이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해서 눈물이 난다.
모두가 돈을 아귀처럼 좇는 시대인데, 돈이 마치 신이 된 것 같은 시대인데, 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손에 닿은 돈은 다르다. 귀도 들리지 않는 몸으로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고물을 모아 한 푼 한 푼 모은 돈, 몇 년 간 힘들게 도라지 농사를 지어 비닐봉지에 모은 꼬깃꼬깃한 돈, 희귀병에 걸려 장기가 손상되어 끼니 당 세 숟가락을 넘기지 못하면서도 결식아동들을 위해 꽉꽉 채워 보낸 저금통 두 개...
이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이 저릿해져 온다. 생각해보니, 용돈도 넉넉하지 않았고 늘 시간이 쪼들렸던 고등학교 시절 나는 봉사활동에 꽤 열심이었다. 학교에서 멀지 않았던 곳에 작은 보육원이 하나 있었는데, 주말마다 친구랑 찾아가서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하고 청소나 빨래를 거들기도 했다. 학교 앞 분식집과 떡볶이 포장마차에 바칠(?) 돈을 쪼개어 아이들 학용품이나 책을 사 주며 기뻐하기도 했다. 대학 1,2학년 때까지는 어떻게 그 맥을 유지했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 나는 서서히 ‘내 살 길도 바쁘다’ 논리에 길들여졌다. 그리고 숨 돌릴 틈 없이 내 시간을 휘몰아 가기 시작했다. 학교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아 키우면서, 봉사나 나눔이란 ‘지금의 나에게는 먼 일’, ‘넉넉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나도 모르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열두 분의 보석 같은 삶을 들여다보니 그랬던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훗날, 내 인생을 돌이켜보며 내가 한 일들 중에서 가장 의미 있다고 여기게 될 일이 무엇일까? 이 책은 이런 물음을 나 자신에게 진지하게 묻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면, 아주 작은 일이라도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것이 세상에 있을까.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언니와 했던 전화통화가 떠오른다. 모임에서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께 김치 담아 드리기를 한다며 너도 와, 하기에 언니 나는 우리 집 김치도 못 담그는데, 하며 말끝을 흐렸었다. 무언가를 알게 되면(읽게 되면)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당장 전화해야겠다, 김치 잘 담글 자신은 없지만 조수 노릇은 잘 할 수 있다고, 나도 끼워 달라고.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