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동안 나를 기다리는 것들 - 미리 알아두면 삶이 편해지는 23가지에 대하여
웬디 러스트베이더 지음, 이은정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나이 들어간다는 것, 요절을 면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이 숙명에 대한 따뜻하고 확신에 찬 조언으로 가득한 이 책을 읽으면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떠올랐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소피’라는 소녀인데, 이 당찬 소녀는 황무지 마녀의 마법에 걸려 쭈글쭈글한 90세 할머니의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처음 이 애니메이션을 봤을 때, 꽤 놀랐다. 원래 애니메이션이란 어리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인물들로 가득한 세계인데, 주인공이 90세 할머니가 되다니.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때부터였다. 소피는 할머니의 몸 안에서 놀라운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90세의 신체란 움직이기 수월한 것은 아니었지만, 할머니 소피는 어린 소피보다 훨씬 더 평온하고 자신감에 차 있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나이 들어 좋은 점은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했던, 할머니 소피의 대사를 아직도 기억한다. 나이가 지긋한 여성의 용기와 보살핌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중요한 열쇠가 되며, 결과적으로 마법을 푸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이후로 할머니 소피처럼 나이 드는 것을 꿈꾸고 있는 나에게,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인생 선배들도 소피로 다가왔고, 소피로 말을 걸어 주었다. 수많은 ‘할머니 소피’들은 서글프게 쇠락하는 노년에 대한 부정적 편견 따위는 과감히 깨뜨린다. 그리고 젊었을 때보다 오히려 더 담대하고, 더 활력이 넘치고,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서 삶을 향유한다.

 

이 책의 저자는 사회복지사로서 오랫동안 쌓은 경험을 명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아마도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진심을 가지고 대하는 좋은 사회복지사였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저자가 직접 경험하고 만나고 대화를 나눈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실화가 주는 힘이 느껴졌다.

 

특히 아버지가 감옥에 간 9세 때부터 다양한 죄목으로 감옥에서 35년을 보낸 마이클 게이건의 변화는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남편의 수감 후 절망한 어머니는 그를 가톨릭계 소년의 집으로 보냈는데, 그곳에서 그는 오랫동안 심한 성희롱을 당했다고 한다. 그 후 여러 건의 은행 절도, 폭력 사건 등으로 그의 인생은 얼룩졌다. 출감했을 때 그는 남은 인생을 분노에 차서 살 수도 있었지만, 솔직하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제 궤도를 찾는 길을 택했다. 지금 그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밑거름 삼아, 아이들이 성폭력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채워가고 있다고 한다.

 

핑계를 대거나 남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고 자신이 불행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돌아본다는 것은 분명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의 경험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나도 예전에 내가 불행한 이유가 남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힘들어했던 적이 있었기에 진하게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러면 사소한 걱정 대신 가장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우리에게 닥친 상황을 더욱 잘 헤쳐 나갈 수도 있다. 아침마다 현관에 앉아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함께 하는 기회를 놓치지 마라.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행복하고 수월하게 인생을 보낼 수 있는 비결은 더욱 기쁜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302쪽)” 그렇다, 좋은 처방은 지극히 단순한 법! 기쁜 마음으로, 당당히 살아있음을 만끽하며 내게 주어진 하루를 맞이해야겠다. 목덜미를 간질이는 봄 햇살이 사랑스럽다. 참 좋은 일이다. 살아간다는 것,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 아름다운 공존을 위한 다문화 이야기
SBS 스페셜 제작팀 지음 / 꿈결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각자는 세상을 이루는 퍼즐 조각이다. 모든 사람이 존재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84쪽)”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 비틀린(?) 기질이 다분히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우리나라가 하나의 핏줄을 이어받은 민족으로 구성된 단일민족국가라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말씀하시던 선생님들을 기억한다. 단일민족이라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럽고 대단한 것인가.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럼 인종의 전시장이라는 미국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터키는? 라틴 아메리카는? 한 줄기로만 좁게 가는 것보다 두루 섞여 넓게 나아가는 것이 더 좋은 것 아냐?

 

물론 그때의 나는, 세월이 흐르며 우리나라가 이렇게 급격히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의 유전자 지도를 거슬러 올라가면 남방계의 유전자 그룹과 북방계의 유전자 그룹이 섞여 있다는 것도 그때는 몰랐고, 단군신화는 민족의 탄생신화가 아닌 한민족이 최초로 세운 국가에 관한 건국신화라는 사실도 알 턱이 없었다. 다만, 워낙 초등학교 때부터 늘 세뇌 받다시피 한 ‘단결’, ‘협동’, 뭐 이런 단어들이 지긋지긋했고 ‘우리는 자랑스러운 한 핏줄’이라는 말에서도 그런 집단주의의 느낌을 받았기에 싫었던 것이리라.

 

그 후 대학생이 되었고, 고등학교 때부터 꼭 하고 싶었던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주말을 이용해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3D 업종의 인력 수급난으로 무작정 외국인들을 데려와 놓고, 시간이 흐르면 그대로 불법체류자로 방치해 버리는 산업연수생 제도의 폭력성에 신음하는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나의 학생들이었다. 밀린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고생 고생하는 일들은 부지기수였고, 일하던 중 기계에 손가락을 잘렸는데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결국 불구의 몸으로 고향으로 돌아간 이도 있었다.

 

SBS 스페셜 제작팀이 2006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제작하고 방영했던 두 편의 다문화 다큐멘터리를 엮은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이들의 얼굴들이 스쳐간다. 벌써 그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고, 그 무자비한 산업연수생 제도는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바뀌었지만 아직 외국인에 대한 체류기준법은 시정되어야 할 부분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이 다루는 부분은 사회제도나 법률에 대한 것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자세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새로운 이웃들에게 단일민족이라는 그릇된 신념으로 상처를 주고 있는 현실을 반성해 보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책에서 말하는 내용들은 특별히 새로운 것은 없었지만,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뿌리 깊은 의식을 돌아보게 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같은 외국인이라도 백인에게는 환대와 친절을,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에게는 차별과 멸시를 하는 이중 잣대에 대해서는 나도 일상생활에서 느껴오고 있는 터라 씁쓸한 공감을 느꼈다.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스스로를 다른 인종의 아래에 두는 겸손함과 또 다른 인종에 대해서는 근거 없는 우월감을 동시에 내면화하게 되었을까. 통탄스러운 일이다.

 

이 책은 특히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청소년들, 중간입국자녀들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책장을 넘기면서 마음이 저릿저릿해져서 몇 번이나 책을 덮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책을 열기를 되풀이해야 했다. 부디 이 아이들이 겪은 아픔과 상처들이 꼭 치유될 수 있기를. 더 이상 이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애써 받아들이며 마음을 다쳐야 하는 일들의 반복이 아니기를. 그리고 앞으로의 세상은 같잖은 순혈주의, ‘단일민족국가’라는 폭력적 환상을 넘어설 수 있기를. 그래서 우리 모두가 ‘다름’을 ‘틀림’이 아닌 ‘축복’으로 여기며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나게 될 거야 - 사진작가 고빈의 아름다운 시간으로의 초대
고빈 글.사진 / 담소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대리만족을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준비(?) 삼아, 한동안 여행 에세이들을 책장 몇 칸에 빽빽하도록 꽂아놓고 읽다가 시들해진 참이었다. 일단 언제부턴가 여행 에세이들이 엄청나게 많아졌고, 그 홍수들 속에서 어디에 가 보니 멋있더라, 이것을 먹어보니 맛있더라하는 차원에 머무르는 것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정말 영혼을 뛰게 하는 사진들과 이야기들은 생각보다 흔치 않았다. 아 그런데 이 책을 만나고 나니, 오랜만에 두근거렸다. 마음이 봄날처럼 푸근해지는 느낌. 지금 내 마음은 인도와 네팔, 티베트의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고 있다.^^;

 

‘나의 여행은 온통 동물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었다’(13쪽)는 그의 말처럼, 그의 여정에는 동물들과의 특별한 인연들이 많은데 그것이 이 책을 더욱 따스하게 느껴지게 했다. 우연하게 여행의 동반자가 된 힌두쿠시 계곡에서 만난 당나귀 이야기, 푸리 해변에서 만났던 하얀 개 시봄과 베나레스 강변의 차멜리 이야기, 히말라야 계곡의 염소족과 물소족 이야기, 타르 사막에서 만난 신비로운 파란소 이야기... 신비로운 동화를 읽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때묻지 않은 동물들과 여행자가 만나고 헤어지며 일어난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읽으며 깔깔 웃기도 하고 마음이 저릿해지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차멜리의 새끼, 차멜리는 지금도 베나레스 강변의 신전에서 네 마리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을까? 신비로운 파란소 닐가이는 여전히 망고 피클을 좋아할까?

 

현지인들을 담은 사진들도 느낌이 참 좋다. 독특한 공통점이 있는데, 인물 사진들이 거의 다 똑바로 정면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그들을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그들과 내가 동등하게 마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이 그들을 단순한 호기심으로 구경하면서 카메라를 들이댄 것이 아니라, 그들과 진심으로 어우러져서 찍은 사진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이들의 정직한 눈빛, 때묻지 않은 웃음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말갛게 씻기는 느낌이다. 이 책, 자주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의 마지막 순간, 나는 학생이 되었다 - 북미 최고의 치유심리학자 기 코르노의 자전 스토리
기 코르노 지음, 김성희 옮김 / 쌤앤파커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평생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온 치유 심리학자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처럼 닥친 말기암 선고. 그가 담담히, 진솔하게 써내려간 자신의 이야기에는 실화만이 줄 수 있는 감동과 따뜻한 위안, 힘찬 격려가 있었다.

 

처음에 그는 (당연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억울함과 분노와 무기력함에 사로잡혀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서 절망하고 주저앉는 대신, 자신의 심리상태를 다스리는 훈련과 명상을 시작한다. 그의 투병 기록을, 자신의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 내면의 상처들을, 그리고 현재 그것들을 대면하는 자세를 읽으면서 사람이란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누구나 상처받은 기억들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아픔들을 갖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 아픔들을 치유하고, 성장하고 나아가기도 한다. 그 과정들이 얼마나... 애처롭고, 또 절실한지.

 

‘그냥 죽고 다른 몸으로 태어나고 싶었다’(198쪽)고 표현했을 만큼 힘겨웠던 화학요법의 영향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는 시골 별장에 머무르며 음악을 연주하고 시를 쓴다. 그것이 그에게는 무엇보다 커다란 치유였으리라. 그러다가 뜻밖에 극본을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기도 한다. 유년기 때 연극배우를 꿈꾸었으나 부모님의 기대에 맞는 다른 삶의 방향을 택한 그에게 그 제안은 얼마나 놀라운 것이었을까. 자신이 쓴 극본이 무대에서 공연되는 것을 본 그는, “숨 쉬는 것 자체가 축복이었다”(257쪽)고 표현한다. 어릴 적 간절히 꿈꾸었던 것이 시간이 흘러 다른 형태로 실현되었다는 것, 암세포와 싸우면서도 그 꿈을 현실로 옮긴 그는 얼마나 벅찼을까 생각하니 내 마음도 덩달아 두근거리는 것 같았다.

 

죽음의 공포와 싸우면서, 암이라는 시련과 마주하면서 그는 차차 이전까지 몰랐던 인생의 참된 의미를 알게 된다. 암은 그에게 분명히 혹독한 시련이었지만, 그 시련이 그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한 것이다.

그는 ‘산다고 애쓰는 데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고 말한다. 의무감과 책임감을 수행하는 인생, 공을 쌓고 인정받으려 애쓰는 인생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기쁨을 음미하는 것, 그런 마음가짐으로 인생에 온건히 집중할 때 우리는 삶의 본질을 맛보는 것이라는 그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가 책속에서 인용했던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한 구절을 기억한다. “중요한 것은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까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삶에 무엇을 보여주느냐 하는 것이었다. 삶이 의미가 있는 건지 질문하는 대신, 매일 매 순간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했다.”(214쪽)

정말, 그렇다. 매일, 매 순간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나 자신, 그리고 이 순간은 다시는 오지 않는 것. 이 책을 덮으며,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애쓰기보다 나 자신의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해야겠다는 것, 무엇보다도 현재의 순간을 마음껏 음미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새로이 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투표한다, 그러므로 사고한다 1881 함께 읽는 교양 12
장 폴 주아리 지음, 이보경 옮김 / 함께읽는책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4월 11일 총선과 12월 19일 대선. 올 한 해는 이 두 선거로 온통 세상이 떠들썩한 분위기가 될 것 같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는 말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투표권 행사는 대의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이 되는, 국민의 대표자를 뽑는 투표는 국민의 신성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겠지만, 사실 다들 먹고 살기 바빠서, 정치인들 하는 꼴을 보니 울화통이 터져서, 투표를 시큰둥하게 여기는 것 같다. 내 주변만 해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4월 11일 총선에 투표에는 별 관심 없고 그냥 하루 노는 날이라는 데에만 의의를 두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니.

 

샛노란 표지의 책이 인상적이다. 처음엔 이 책이 2007년 프랑스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출간되어 주목받은 책이라고 해서, 시민들의 구체적인 정치 참여 방법이라든가, 현재의 민주주의에서 대안이 될 정치 제도 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까 하고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뭐랄까,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는 책이었다. 자유와 행복의 추구, 사회적 불평등, 정의, 권력 등 정치철학의 근본 문제들이 어떻게 사유되어 왔는가를 찬찬히 되짚어볼 수 있었다.

 

총 14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장은 생각보다 장황하지 않게, 꽤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읽으면서, 추상적이거나 모호한 개념을 적절한 비유로 설명하고 구체적인 생활에서 예를 드는 기술이 장난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책날개를 들춰보니 현재 저자는 프랑스 고등학교에서 그랑제꼴 입시준비반 교사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고 한다(프랑스 대학입시인 바칼로레아 시험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문제 몇 개를 직접 확인하고 정말 놀랐던 기억이 난다. 1번 문제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였지...^^;).

 

또 각 장의 마무리는 ‘고찰하기’라는 형식으로 끝나는데(몇몇 장에는 빠져 있지만) 이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그냥 단순히 앞서 언급했던 내용을 정리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 실생활에서 더 고민해 볼 수 있는 정치철학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준다. 영화로 치면 관객에게 열린 결말쯤 되는, 멋진 마무리. ^^

 

“정치란, 인간 세계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사상이 붕괴되는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86쪽)는 저자의 통찰이 날카롭다. 그는 또, “사람들을 체념시키는 가장 확실하고도 오래된 방법은 미래가 이미 정해져 있다고 설득하는 것이다”(87쪽)라고 덧붙인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어느 놈이 되어봤자 그 놈이 그 놈이지”라는 논리로 미리 우리의 미래를 속단해 버리고 무기력해져져서는 안 되는 것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