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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 아름다운 공존을 위한 다문화 이야기
SBS 스페셜 제작팀 지음 / 꿈결 / 2012년 3월
평점 :
“우리 각자는 세상을 이루는 퍼즐 조각이다. 모든 사람이 존재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84쪽)”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 비틀린(?) 기질이 다분히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우리나라가 하나의 핏줄을 이어받은 민족으로 구성된 단일민족국가라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말씀하시던 선생님들을 기억한다. 단일민족이라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럽고 대단한 것인가.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럼 인종의 전시장이라는 미국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터키는? 라틴 아메리카는? 한 줄기로만 좁게 가는 것보다 두루 섞여 넓게 나아가는 것이 더 좋은 것 아냐?
물론 그때의 나는, 세월이 흐르며 우리나라가 이렇게 급격히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의 유전자 지도를 거슬러 올라가면 남방계의 유전자 그룹과 북방계의 유전자 그룹이 섞여 있다는 것도 그때는 몰랐고, 단군신화는 민족의 탄생신화가 아닌 한민족이 최초로 세운 국가에 관한 건국신화라는 사실도 알 턱이 없었다. 다만, 워낙 초등학교 때부터 늘 세뇌 받다시피 한 ‘단결’, ‘협동’, 뭐 이런 단어들이 지긋지긋했고 ‘우리는 자랑스러운 한 핏줄’이라는 말에서도 그런 집단주의의 느낌을 받았기에 싫었던 것이리라.
그 후 대학생이 되었고, 고등학교 때부터 꼭 하고 싶었던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주말을 이용해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3D 업종의 인력 수급난으로 무작정 외국인들을 데려와 놓고, 시간이 흐르면 그대로 불법체류자로 방치해 버리는 산업연수생 제도의 폭력성에 신음하는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나의 학생들이었다. 밀린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고생 고생하는 일들은 부지기수였고, 일하던 중 기계에 손가락을 잘렸는데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결국 불구의 몸으로 고향으로 돌아간 이도 있었다.
SBS 스페셜 제작팀이 2006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제작하고 방영했던 두 편의 다문화 다큐멘터리를 엮은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이들의 얼굴들이 스쳐간다. 벌써 그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고, 그 무자비한 산업연수생 제도는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바뀌었지만 아직 외국인에 대한 체류기준법은 시정되어야 할 부분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이 다루는 부분은 사회제도나 법률에 대한 것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자세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새로운 이웃들에게 단일민족이라는 그릇된 신념으로 상처를 주고 있는 현실을 반성해 보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책에서 말하는 내용들은 특별히 새로운 것은 없었지만,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뿌리 깊은 의식을 돌아보게 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같은 외국인이라도 백인에게는 환대와 친절을,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에게는 차별과 멸시를 하는 이중 잣대에 대해서는 나도 일상생활에서 느껴오고 있는 터라 씁쓸한 공감을 느꼈다.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스스로를 다른 인종의 아래에 두는 겸손함과 또 다른 인종에 대해서는 근거 없는 우월감을 동시에 내면화하게 되었을까. 통탄스러운 일이다.
이 책은 특히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청소년들, 중간입국자녀들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책장을 넘기면서 마음이 저릿저릿해져서 몇 번이나 책을 덮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책을 열기를 되풀이해야 했다. 부디 이 아이들이 겪은 아픔과 상처들이 꼭 치유될 수 있기를. 더 이상 이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애써 받아들이며 마음을 다쳐야 하는 일들의 반복이 아니기를. 그리고 앞으로의 세상은 같잖은 순혈주의, ‘단일민족국가’라는 폭력적 환상을 넘어설 수 있기를. 그래서 우리 모두가 ‘다름’을 ‘틀림’이 아닌 ‘축복’으로 여기며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