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에버트 - 어둠 속에서 빛을 보다
로저 에버트 지음, 윤철희 옮김 / 연암서가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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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에버트’라는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하게 된 것은, 몇 년 전 만나게 된 <위대한 영화>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TV 영화 비평프로그램인 <시스켈과 에버트>를 통해 이름이 알려진 영화 평론가인 그가 사랑하는,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고통스러운 생각이 드는' 영화들을 모아놓은 그 책은 매혹적이었다. 그의 리스트에 들어있는 영화들 중에선 내 가슴에도 ‘위대한 영화’의 전당에 들어있는 작품들이 여럿 있어서 기뻤고, 그 책 덕분에 그동안 미국 영화에 편중되어 있던 취향을 돌려 훌륭한 유럽영화와 아시아영화, 고전영화들을 만나게 되었다. 어떤 리뷰들은 영화만큼이나 아름다웠던 기억이 난다.

 

그렇듯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가 갑상선암 치료에 따른 합병증 때문에, 먹고 마시고 말하는 능력을모두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을 이 회고록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40년간 브라운관을 통해 수많은 대중들 앞에서 입담을 과시하던 그에게, 목소리를 영영 잃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고통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시종일관 태연하고 담담한 어조로 자신이 겪었던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깨와 두 다리에서 살점을 떼어내어 시도한 수차례의 재건 성형이 실패하고, 불완전하더라도 말하는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 겪은 세 차례의 수술도 모두 성공하지 못했고, 잃어버린 부위의 환지통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절망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이런 상태에 빠졌고, 이 장애를 고칠 방법은 없다. 내가 글쟁이라는 것, 그래서 나 자신을 글을 통해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568쪽)’

 

614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이었지만 책장은 술술 잘 넘어갔다. 태연하고 천연덕스럽고 유머가 담긴, 그 아래에 삶에 대한 깊고 예리한 통찰력을 담고 있는 그의 글솜씨에 홀린 듯이 책을 읽어 내려갔던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 다시 표지 사진을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에스콰이어>지에 전면으로 실렸다는, 그가 현재 어떤 모습인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사진. 다리에서 취한 뼈와 살로 얼굴을 완전히 재건하는 수술은 실패했지만, 그래서 그의 턱 일부는 사라지고 없지만, 그는 웃고 있다. ‘그게 뭐 어때서?’라는 듯이.

 

‘그 얼굴을 부인하는 것은 의미 없는 짓이다. 그 얼굴을 감출 도리는 없다. 그런 얼굴로 살아가는 편이 훨씬 낫다. 그 얼굴이 당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건 당신의 문제다. 나는 내가 이보다 더 나쁘게 보이지 않아서 행복하다. 나는 삶을 계속 살아가기 위해 간단한 결정을 내렸다. 나는 글쟁이였다. 그래서 나는 운이 좋았다. 나는 썼다. 그러므로 나는 살았다. 다른 외과적 시도를 제의받았지만, 나는 싫다고 말했다. 할 만큼 했다. 나는 내 지금 모습처럼 보일 것이고 나 자신을 활자로 표현할 것이다. 그리고 만족할 것이다.(577쪽)’

 

자신과 사람들의 삶에 대한 그의 따뜻한 시선, 그를 지켜준 아내 채즈에 대한 지고지순한 믿음과 사랑, 영화와 글쓰기에 대한 한없는 애정과 열정... 책을 읽는 동안 가슴이 따뜻해져 왔다. 삶이 던져준 커다란 고난을 이겨낸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듯, 로저 에버트의 이야기 속에서도 삶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그의 시선을, 지혜와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간결한 어조로 말한다. ‘친절’은 그의 정치적 신념의 전부를 커버한다고. ‘우리에게 부여된 능력을 따른다면, 결국, 우리는 다른 이들을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일을 할 수 있고,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610쪽)’ 그는 말한다. 크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다른 이들을 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범죄다.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모든 범죄가 비롯되는 지점이다. 우리는 세상의 기쁨에 기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무슨 문제점을 가졌고 우리의 건강상태가 어떠하며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떠하건, 그것은 참말이다.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내가 이 깨달음을 늘 알았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나는 이걸 알아내기에 충분할 만큼 오래 살았다는 사실이 행복하다.(610쪽)’

 

사랑스러운 글이다. 사실 이런 깨달음을 모른다기보다는, 우리는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닐까.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 우리 자신도 다른 이들도 덜 행복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 너무나 많은 핑계를 대고, 눈앞의 다른 이익에 급급하고, 편협해진 눈과 마음을 쉽게 정당화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로저 에버트의, 한쪽 턱의 살점이 없는 채로 당당하게 웃는 얼굴이 잊히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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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읊다, 서사시 대백제 1881 함께 읽는 교양 13
강수 지음, 오순제 감수.해제 / 함께읽는책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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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삼국 시대의 역사를 읽으면서 늘 동경과 찬미의 눈으로 봤던 나라는 단연코 고구려였다. 친구들과 함께, 만약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광활한 만주의 영토가 우리 땅이었을 텐데 하며 울분(?)을 토했던 기억도 난다. 그에 비해 백제는, 뭐랄까 좀 유약한 이미지의 나라였고 상대적으로 삼국 중 가장 나의 관심을 적게 받곤 했다. 물론 크면서 단순한 땅 크기재기에서 벗어나, 백제의 훌륭했던 문화와, 일본에게 미쳤던 커다란 영향 등 백제의 다른 면을 볼 수 있었고 공주와 부여를 답사하는 기회도 몇 번 얻긴 했지만, 여전히 백제에 대해서는 신라와 고구려에 비해 잘 알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았다. 다행히 이 책 덕분에 이제는 백제가 굉장히 친근하게 느껴진다. 백제의 700년 역사가 생생하게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이랄까.

 

이 책은 온조왕과 근초고왕, 그리고 의자왕과 흑치상지를 소재로 한 서사시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 서사시를 이렇게 책으로 만나기는 상당히 드문 일인 것 같다. 서사시, 하면 바로 길가메시 서사시나, 호머의 일리아드, 오디세이가 자동적으로 떠오르는데, 우리 역사를 이렇게 서사시로 만나는 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이다(기념해야겠다.^^;). 아,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때 졸면서 배웠던 용비어천가도 서사시였지. 암튼 그건 자발적 독서의 범주에 넣을 순 없으니 패스.

 

고대사 중 특히 백제와 고구려에 관련된 사료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한다. 그래서 지은이는 사료로 메울 수 없는 부분들, 역사서에 있는 문구 하나에도 너무나 다양한 해석과 분석이 붙어있는 그 틈들에 문학적, 역사적 상상력을 불어넣어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팩트 포엠(fact-poem) 혹은 역사시(history poem)라는 이 장르의 가능성은 앞으로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취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역사에 관심이 있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많은 상상을 해가며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룬 네 명의 인물 중에서 가장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 인물은 흑치상지였다. 백제 멸망의 혼란 속에서 백제부흥운동의 선봉장에 섰으나 배신과 좌절을 경험하고 끝내 자결로 생을 마친 비극적인 인물.

특히 흑치상지와 장수들이, 당나라로 잡혀가는 의자왕을 향해 절을 올리며 가슴을 치고 울 때 나오는 ‘백제의 흙이 부르는 노래’, 그리고 당나라 황실의 모함을 받아 혹독한 고문을 받은 흑치상지가 전쟁터를 누벼 온 육십 평생을 떠올리며 자결을 한 후 이어지는 ‘백제의 바람이 부르는 노래’, 그리고 백성들이 부른 산유화 노래 가사에 특히 반했다. 이런 것이 역사에서의 문학적 상상이라는 것이구나 싶었다. 나는 흑치상지라는 이름을 처음 만났던 고등학교 역사시간을 기억한다. 아무런 감흥 없이 밑줄쳐가며 연도별로 외워야했던 그 역사적 사실이 뼈와 살을 얻은 느낌이다. 오늘, 진짜 흑치상지를 만났고 그의 야망에, 그의 번뇌와 아픔에 귀를 기울였다. 이제야 이름만 박제된 그가 아닌, 진짜 그를 알게 되었다. 다행이다.

 

 

나는

흑치상지의 발자국을 가슴에 새기고 있지

그와 그를 따라다니던 백제 백성들의 발자국을 알고 있지

맨발에서부터 짚신까지,

손ㅂ닥만 한 어린아이의 발부터 상처로 부르튼 어른의 발까지,

피 흘르던 그들의 삶을 모두 가슴에 새기고 있지

그들의 영혼과 그들의 몸이

썩고 문드러져서 나의 몸이 되었지

내 몸속으로 흘러든 그들의 피로

나는 그들과 한 몸이 되었지

모두가 잊혀져 가는 삶,

역사는 이긴 자들의 것,

모두가 승자(勝者)를 칭송할 때

나는 홀로 부르지

몰락한 자들의 노래를......

 

                                   -391쪽, ‘백제의 흙이 부르는 노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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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는 악어가 살지
파비오 제다 지음, 이현경 옮김 / 마시멜로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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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하면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다. 전란의 소용돌이가 휩쓸고 간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했던 감동적인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의 주인공 마리암과 라일라. 가난과 차별, 끊임없는 폭력과 생명의 위협이 가득한 아프가니스탄의 숨막히는 상황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믿음과 희생으로 희망을 가꾸어가던 두 여인. 이 두 사람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이제 또 여기에 이름 하나를 추가한다. 에나이아트, 아프가니스탄의 하자라족 마을에서 가족과 함께 평화롭게 살던 열 살 소년의 이름을. 이 어린 소년이 실제로 겪은 일들을 소설로 재구성했다는 이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마음이 아려서 책장을 잠시 덮고 마음을 가라앉혔는지 모른다. 차라리 허구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기막힌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고, 또한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니.

얼마나 수많은 어린 에나이아트들이 살기 위해서, 목숨을 건 여행을 해야만 했을까. 소설의 맨 앞 장에는 에나이아트의 7년간의 여정이 지도 위에 그려져 있다.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여 파키스탄, 이란, 터키, 그리고 그리스를 거쳐 이탈리아로 오기까지의 길고 긴 길들.

 

행군 도중 열두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이란을 떠나 터키로 향하는 27일간의 죽음의 산길에서, 자갈과 돌이 실린 트레일러의 바닥에 짐짝처럼 실려가 피오줌을 누면서, 악어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은 채 낡은 고무보트에 몸을 싣고 그리스로 향하는 바닷길에서, 얼마나 수많은 어린 밀입국자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갔을까. 그들이 원했던 것은 거창한 행복이 아니었는데. 목숨의 위협을 받지 않고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 단지 그것뿐이었는데.

 

"코로 숨을 쉬자 먼지가 한 가득 들어왔다. 입으로 숨을 쉬니 가슴이 아팠다. 공기로부터 습기를 빨아들이는 식물처럼 귀나 머리카락으로 숨을 쉬고 싶었다... (중략) 그 이후로 나는 존재하는 것을 멈췄다. 시간 재는 것을 멈추고 언제 도착할지 기다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생각과 근육이 울고 있었다. 무감각한 몸과 뼈가 눈물을 흘렸다(173쪽)".

 

에나이아트의 엄마는 강도떼들에게 남편을 잃고, 트럭과 물건을 배상해야 한다며 자식들을 끌고 가겠다고 협박하는 파슈툰들의 눈을 피해 에나이아트와 동생을 밤마다 구덩이 속에 숨긴다. 하지만 에나이아트가 열 살이 되어 구덩이에 몸을 숨기기에는 너무 커버리자 에나이아트를 떠나 보내기로 결심한다. 아, 에나이아트의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어린 아들을 생면부지의 낯선 땅에 버리고 와야 했을까. 다른 자식들 때문에 다시 아프가니스탄에서 숨막히는 삶을 살면서, 어린 아들의 생사조차 알지 못하고 어떻게 하루하루를 견뎠을까.

 

어린 나이에 홀로 모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했던 에나이아트, 하지만 그 잔인하고 험난한 시간들 속에서도 엄마와 했던 세 가지 약속을 잊지 않고 지키려고 노력하고,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이 아이는 눈물겹게 대견스럽고 사랑스러웠다. 언제 어디서 경찰에게 끌려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면서, 하루에 열한 시간씩 모레를 나르고 벽돌을 지는 힘든 노동을 하면서, 하자라라는 이유로 업신여기고 멸시하는 사람들의 냉대를 견디면서도 에나이아트는 끝내 희망을 잃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마음을 잃지 않는다.

 

"...종교적인 형제들끼리는 서로 잘 해준다는 어리석은 사실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신분증이나 종교적 신념에 신경을 쓰지 않고 모두에게 친절해야만 한다고 믿었다(82쪽)".

 

거리에서 과자와 껌, 양말을 팔며 근근히 생활하면서도 에나이아트는 근처의 학교를 매일 찾아간다. 마치 결석을 원치 않는 아이처럼 하루도 건너 뛰지 않고.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아이들이 얼마나 부러웠을까. 얼마나 나바 마을의 가족과 친구들이 그리웠을까. 아프가니스탄의 나바 마을에서 살던 무렵, 아이가 너무나 사랑하던 하자라족 학교는 강제로 문을 닫아야 했다. 무장한 탈레반들은 학교를 폐쇄하라는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선생님들을 쏘아 죽였다.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노는 동안 나는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나바의 내 친구들 이름을 부르며 놀았다... 난 그 애들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쉬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 소리가 다시 듣고 싶어졌다(58, 59쪽)."

 

책장을 넘기면서, 내가 만약 아프가니스탄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는 하자라족으로 태어났다면, 에나이아트처럼 어린 나이에 혼자 세상에 버려져서 힘든 노동과 학대를 견뎌야만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이 아이처럼 꿋꿋하게,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내 운명과 맞서 싸울 수 있었을까. 에나이아트, 너는 어떻게 해서 그토록 꿋꿋하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니. 그 모진 시간을 헤쳐 나오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비뚤어짐 없이, 인간에게 소중한 것들을 꼭 지키면서 성장할 수 있었니. 정말, 정말로.

 

"맞아요. 보다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이 그 어떤 감정보다 강렬했어요. 예를 들면 우리 어머니가 내린 것도 이런 결정이었을 거예요. 미래를 향한 여행을 하며 늘 위험에 처하는 쪽이, 당신 곁에 있지만 진흙탕에서 매일 두려움에 떨면서 위험하게 사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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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찬 청춘 - 원하는 것을 스스로 요구하는 정치적 주체
조윤호 지음 / 씨네21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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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얇지 않은 두께의 책이었는데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갔다. 89년생, 내 동생과 동갑인 나이의 저자가 20대들을 향해 쏟아내는 거침없는 목소리가 싱그러웠고 든든하게 느껴졌다.

 

저자가 10대 때부터 겪었던 10여년의 경험들은 내가 겪었던 시간들과도 오버랩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책장을 넘기면서, 잊을 수 없이 생생하게 내 안에 새겨져 있는 여러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효순이 미선이 사건, 한미 FTA, 이라크 파병, 김선일의 납치와 피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2007년 정권교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88만원 세대’의 하나였던 나는 분노했고, 주변의 뜻이 맞는 친구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고, 촛불을 들었다. 환희를 맛보기도 했고, 깊은 실망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저자가 말했듯, ‘정치가 우리 사회 구성원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나도 온몸으로 경험했던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요구하는 정치적 주체, 개념찬 청춘이 되자”. 저자의 메시지는 명쾌하고 또 간절하다. 그도 하마터면 최악의 길로 빠질 뻔했다고 고백한다. 그가 희망을 품고 응원을 보냈던, 스스로를 ‘개혁 세력’라 말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변질해 가는지를 지켜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최악의 길이란 정치 자체에 대한 혐오, ‘그놈이 그놈’이니 정치에 대해 일말의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냉소주의이다. 하지만 그는 그 냉소주의를 극복하자고, 삶이 퍽퍽해질수록 정치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정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수록 삶은 더욱 퍽퍽해지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이제는 끊자고 외친다.

 

“...나는 ‘정치’가 단순히 선거가 있을 때 투표하는 것, 국회의사당에서 국회의원들끼리 모여 떠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지키고 이루기 위해서는 ‘그 이상’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287쪽)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사실, 오늘날 20대가 처한 상황은 너무나 힘겹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등록금과 취업 문제 같은 개인적인 문제만으로도 사실 벅차다. <88만원 세대>에서는 20대에게 ‘토플 책을 덮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으라’고 패기만만하게 말했지만, 사실 당사자인 20대에게, 너무나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는 20대에게 토플 책을 덮고 연대해 싸우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아니 그렇기에 더더욱 원자화 혹은 개인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의 마지막 장의 저자의 체험기는 특히 감동적이었다. 스물두 살에 가출을 감행해서,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친구들끼리 ‘공동생활전선’이라는 20대 생활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연대라는 가치를 살려 내기 위해서 독립을 감행한 것이다. 모두가 원하는 가치를 위해 함께 고민하고 행동에 옮긴다는 것, 그 아름다운 연대의 기록들을 읽으며 내 가슴도 함께 뛰는 듯 했다. 대학생들이 반값 등록금을 외치며 거리를 뛰어다닐 때, 홍익대와 고려대의 청소노동자들이 부당한 해고를 당했을 때, 한진중공업의 부당 해고에 맞선 ‘소금꽃나무’ 김진숙을 도와 희망버스에 탔을 때... 그는 그 현장에서 함께 울고 웃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요구하는 정치적인 주체가 된다는 것, 거창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 중에 정치와 관련되지 않은 것들이 어디 있겠는가.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작은 일이라도 참여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 그것이 저자의 말대로 우리의 퍽퍽한 삶의 숨통을 틔워 줄 유일한 방법일 것이라 믿는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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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프로그래밍 되었는가 - 한국인으로 태어난 우리를 지배하고 명령 내리는 것들
고진석 지음 / 갤리온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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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프로그래밍 되었는가. 제목도, 사유의 전개도 독특한 책이다.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어떤 목적을 위하여 지금의 우리로 프로그래밍된 것이다’를 전제로 깔고 있는 이 책의 제목부터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프로그래밍이라니. 내가 무슨 컴퓨터인가 하는 반발심이 들면서도 또 한편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는 생각의 틀이 과연 내가 원하는 틀이 맞는지, 언제부터인가 그 틀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살아왔던 것이 아닌지 하는 의문이 불쑥 머리를 드는 것이다.

 

그 프로그래밍의 실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한반도와 일본의 역사, 특히 근대사를 해부하며 여러 문제의식들을 풀어낸다. 우리가 일본을 통해 서양의 잘못된 제국주의의 근대를 수입했기 때문에,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닌 국가를 위한 군국주의를 들여오고 내면화하게 되었다는 것, 그것이 우리의 잘못된 프로그래밍의 명령 코드라고 그는 말한다.

 

이렇게 역사 뿐 아니라 철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현대 물리학 등 여러 분야의 사유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지독한 독서광이라는 저자가 펼쳐내는 다양한 지식들의 네트워크를 좇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의 시에서부터 영화 ‘매트릭스’의 여러 의미 있는 대사들, 현대 물리학에서 바라보는 시간의 개념, 영국 BBC에서 실험한 버터 바른 토스트 떨어뜨리기 실험까지 다양한 비유들을 들어가며 저자는 자신이 확장해가는 사유에 우리를 동참시킨다.

 

‘지금의 내가 나라고 믿고 있는 나는, 나만의 생각으로 만들어진 나일까?’라는 의문과 회의는 분명 고통스럽다. 하지만 ‘이런 회의는 인간으로 태어나 누리는 가장 큰 즐거움이기도 하다(10쪽)’는 저자의 말에 진한 공감을 느꼈듯 그런 회의의 원인을 찾아내고 그것과 대면하고, 더 자유로워진 자신을 만나는 과정은 크나큰 기쁨이다. 고통이지만, 살아있음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기분 좋은 고통(이렇게 쓰니까 좀 변태 같다^^;;)이라고 할까.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것은 질문이야.(164쪽)”

저자가 인용했던 <매트릭스>에서 트리니티가 네오를 처음 만났을 때 했던 이 말은, 나도 이 영화에서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대사이기도 하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재프로그래밍하기 위해서는 먼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왔던 수많은 것들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아닌, ‘1등이 아니어도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주춧돌이 될 것이다. 실패자와 낙오자에게 가혹한, ‘죽도록 노력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가 아닌, 조금씩 나누며 함께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해야 할 질문들이 너무나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정답을 제시해 준 책이 아니라, 많은 질문들을 던져준 책이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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